〈 323화 〉 324.인질로 잡다.
"어서 대피하세요!"
운혜는 답답하다는듯 늙은 노파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야?"
노파는 귀가 잘들리지 않는지 귀에 손을 가져다대며 물었다.
"대! 피! 하! 시! 라! 구! 요!"
콩
그때 노파가 주먹으로 운혜의 머리통을 살짝 쥐어박고는 외쳤다.
"귀 안먹었어!"
"으으,할머니, 대피하셔야해요!"
별안간 머리통을 쥐어박힌 운혜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무야?"
하지만 노파는 다시금 되물을 뿐이었다.
"에잇!"
그 모습에 화가 난 운혜는 노파를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안아버렸다.
"뭐여! 뭐하는겨!"
갑작스럽게 운혜에게 안기게 된 노파는 당황한듯 소리쳤다.
"너는 내 취향이 아니여! 나는 머리를 빡빡 깎은 여자한테는 관심없어서라!"
"저도 없거든요!"
노파의 말을 들은 운혜는 발끈하듯 언성을 높였다.
기껏 대피시켜주려고 했더니 이게 뭔 헛소리란 말인가
"아이고! 영감! 당신 죽고 고이 지키던 정절을! 머리 밀은 계집한테 뺏기게 생겼소! "
노파는 억울한듯 허공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고 운혜는 그런 노파를 바라보며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그냥 기절시켜버릴까?'
속으로 나쁜 마음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재빨리 도리질쳤다.
아무리 노파가 짜증이 난다해도 자신은 아미의 제자가 아니던가
어찌 일반 양민에게 거칠게 손을 쓸 쑤 있다는 말인가
"동네 사람들 다 나와보소! 머리 민 강간마가 여기있소!"
운혜에게 안긴 노파는 다시금 허공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이익!'
탁 탁 탁
그 말을 들은 운혜는 참지 못하고 재빨리 노파의 수혈을 짚어버렸다.
"쿠우울"
그러자 노파는 기절한듯 코를 골며 그대로 잠이 들게 되었다.
'후우'
그 모습을 본 운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재빨리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안그래도 급박한 상황에 노파와 대치하며 시간을 너무 낭비하였다.
낭비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선 재빨리 몸을 움직여야했다.
타타타탁
"대피하세요! 적습입니다!"
운혜는 고함을 내지르며 노파를 업은 채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끌벅적했던 마을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모두 대피한 것이리라
"후우"
운혜는 그제야 안심이 된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마을에 남아있는 이는 등 뒤에 업혀 있는 노파말고는 없는듯 했기 때문이었다.
'이동하자.'
운혜는 곧바로 북해빙궁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재빨리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대피자를 데려가기 위해서 말이다.
운혜의 신형이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운혜는 어느새 빙궁이 위치한 중앙쪽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아..하아..하아..하아."
빙궁 바로 앞에 멈춰선 운혜는 가쁜 숨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다급한 나머지 너무 속도를 올린 탓에 무리가 간듯 싶었다.
'아니 도대체 왜 이리 먼 거야.'
숨을 고르던 운혜는 속으로 불평을 호소하였다.
중앙에 위치한 빙궁은 마을과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마을의 경우 성문에서 고작 일각 정도 걸으면 도달할 거리에 위치해 있었지만 빙궁의 경우 마을에서 반시진은 쉴새없이 달려야할 정도로 먼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운혜는 그 사실이 불만이었다.
만약 빙궁이 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더라면 이렇듯 고생을 하지 않았을터이니 말이다.
속으로 불만을 토로하던 운혜는 궁시렁거리며 빙궁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빙궁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와아.'
그 모습을 본 운혜는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미 전날에 한 번 봤던 곳이긴 했지만 어찌나 아름다운지 다시봐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벅 저벅
운혜는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빙궁 안을 거닐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
.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운혜는 갑자기 의아함이 들기 시작하였다.
빙궁 내부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뭐지?'
분명 그녀를 비롯한 아미의 제자들은 마을 사람들을 전부 빙궁 안으로 피난시켰다.
마을 사람 수가 적긴 하였지만 못해도 기백은 될법한 숫자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 찬 빙궁이 쥐죽은듯이 조용하였다.
의아함이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꿀꺽
운혜의 눈빛에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혹여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에 남아있는 이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말인즉슨 자신을 제외한 아미의 제자들이 모두 빙궁에 모여있다는 말이 되었다.
일류와 이류에 들어선 수 십명의 고수들과 아미제일고수인 불허사태가 말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분명 피난처에서 쥐죽은듯이 가만히 지내고 있는 것이다.
운혜는 애써 불안감을 지우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피난 장소로 정해놨던 대전 입구가 보였다.
운혜는 화색이 되었다.
철컥
재빨리 걸음을 옮긴 운혜는 문고리를 잡았다.
끼이이익
그리고 천천히 문을 밀어넣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낡은 경첩소리가 나더니 이내 문이 완전히 개방되었다.
"저 왔........."
문이 완전히 개방되고 운혜는 곧바로 입을 열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아니 알리려고 했다.
눈앞에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져있는 한 사람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
운혜는 순간적으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장문인과도 자웅을 겨룬다는 아미 최고의 고수가
마흔의 나이로 초절정 상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존경하는 사고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쥐죽은듯이 쓰러져있었다.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가 않았다.
어찌 불허 사태가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이고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피투성이가 된 채로 말이다.
운혜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았다.
"짜잔!"
그때 어디선가 익살스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상념을 깨버렸다.
움찔
순간적으로 정신이 돌아온 운혜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볼 수 있었다.
음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를 말이다.
"이제야 왔구나? 귀여운 것."
남자는 징글징글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오싹
그 미소를 마주한 운혜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당...당신은...누구시죠?"
운혜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쥐어짜듯 입을 열었다.
"나? 누굴 것 같나?"
그녀의 물음에 남자는 더욱더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모...모르겠어요."
그의 물음에 운혜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상상이 안갔다.
저 남자가 누군인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어째서 자신을 바라보고 저리도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지 말이다.
"모른다면 가르쳐줘야지."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씨익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주도산이라고한다."
남자는 흉광이 섞인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세간에서는 흉마凶魔라고 부르지."
그의 말을 들은 운혜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
"흉...흉마!"
그의 말을 들은 운혜는 놀란듯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두려운듯 온 몸을 오돌오돌 떨기 시작하였다.
"크크크큭, 겁먹은 모습이 마치 작은 병아리 같구나."
흉마는 그런 운혜가 귀여운 것인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본좌는 계집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단다. 특히 너처럼 작고 귀여운 계집은 말이다."
흉마는 음흉한 시선으로 운혜를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부르르르
그 시선을 느낀 운혜는 마치 온 몸에 뱀이 기어다니는듯한 소름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떠는 모습조차 이리도 사랑스럽구나."
흉마는 그런 모습조차 귀여운 것인지 달콤한 말을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물론 운혜 입장에서는 끔찍하기 그지 없는 말이었지만 말이다.
"사..고는 당신이..이렇게 만든 것인가요?"
운혜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사고라면 여기 자빠져있는 여자를 말하는 것인가?"
퍽
흉마는 쓰러져있는 불허를 발로 차며 입을 열었다
"크윽!"
흉마의 발길질에 고통을 느낀 것일까
불허는 신음성을 내지르며 고통을 호소하였다.
"사고!"
그 모습을 본 운혜는 재빨리 소리를 질렀다.
고통에 신음성을 내뱉은 사고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뭐하는 짓이예요!"
운혜는 거친 흉마의 행동에 언성을 높였다.
"마음에 안들어서 말이다."
그런 운혜를 바라보며 흉마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다 늙어빠진 년이 내게 대적하려고하니 어찌 기분이 좋을 수있겠느냐?"
"뭐...뭐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네년을 만났기 때문이지."
흉마는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운혜를 바라보았다.
"곱구나, 내가 봤던 빡빡이들 중 가장 고와."
저벅 저벅
흉마는 운혜에게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분명 처녀겠지? 아니 처녀일 것이다. 왜냐면 냄새가 나거든....본좌는 처녀를 전문적으로 탐색하는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지."
흉마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운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무슨!"
운혜는 흉마의 노골적인 말에 당황한 것인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언성을 높였다.
"너희 아미의 계집들은 대부분이 처녀더구나."
흉마는 혓바닥으로 입술을 할짝이며 입을 열었다.
오싹
운혜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역겹고 두려워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저벅 저벅
이내 흉마는 걸음을 더욱더 빠르게 옮겼고 운혜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쓰담
운혜에게 도달한 흉마는 그대로 손을 들어올려 그녀의 도화빛으로 물들어있는 뺨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하아.....좋구나....네 년은 분명 심기체心技體 모두 처녀일 것이 분명하다."
"............"
운혜는 너무나도 소름끼치는 소리를 하는 흉마를 바라보며 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아아...아아..발기가 되는구나.."
흉마는 벌떡 벌떡 움직이고 있는 아랫도리를 운혜의 팔에 비비며 입을 열었다.
이내 그 더러운 감촉에 수치심을 느낀 운혜의 눈가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였다.
"울지말거라. 우는 모습을 보이니 더 따먹고 싶지 않더냐? 크흐흐흐"
운혜의 눈물샘이 고이자 흉마는 그 모습에 더욱더 흥분이 되었는지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만해라."
그때 뒤편에서 담담한 목소리 하나가 흉마의 귓가에 들려왔다.
와락
그 목소리를 들은 흉마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바위와 같이 단단한 인상을 가진 선이 굵은 남자가 서 있었다.
이연의 부장이자 북방군의 이인자인 강패였다.
"뭐가 불만이더냐!"
흉마는 잔뜩 화난 음색으로 강패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딴 짓은 임무가 완수되고나서 해라."
"아무짓도 안하려고 하였다!"
"추잡한 아랫도리를 들이밀지 않았느냐?"
"넣지 않았지 않더냐!"
"넣었다면 그대로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뭐라!"
"내놈이 장군의 명에 불복하는데 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나는 이연의 부하가 아니다!"
"아니, 한 배를 탄다고 했을 때부터 네놈은 이미 장군의 부하이다."
"뭐라!"
강패의 말에 잔뜩 발끈한 흉마는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대체 누굴 누구의 부하라고 칭한다는 말인가
"그딴 잡스러운 짓거리는 모든 일이 끝나면 하도록해라. 어차피 빙궁이 네놈 것이 될텐데. 어찌 벌써부터 그렇게 미쳐날뛴다는 말이더냐?"
"한 달이나 못했단 말이다!"
흉마는 억울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하루 추가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흉마의 말을 들은 강패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목석같은 새끼!"
흉마는 답답하다는듯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 목석같은 놈은 인간사 희노애락에 대한 공감을 전혀 못하는듯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뭐 어쨌든 계획대로 빙궁을 점령했으니 인질을 몇 명만 챙겨서 성문쪽으로 가도록 하지."
강패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네놈 혼자 갔다오거라. 나는 이곳을 지키고 있겠다."
흉마는 뻔뻔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차라리 노름꾼에게 돈을 빌려주겠다."
"무슨 말이냐?"
"개소리하지 말라는 말이다. 빙궁을 지키는 것은 네놈들 부하들로 충분하다. 네놈은 나와 성문으로 이동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귀대 놈들이 얼마나 미친 놈들인지 아느냐? 내가 통제하지 않는다면 여기있는 계집들을 전부 쑤셔버릴 것이고 남자들은 모두 죽일 놈들이다!"
흉마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부하에 대한 믿음따위는 한톨도 없는 모습이었다.
흉마의 말을 들은 강패는 눈쌀을 살짝 찌푸렸다.
오직 교접만 생각하는 미친 놈과 대화를 하려니 머리가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약속을 해라."
"무슨 약속?"
"일이 끝난다면 아무나 원하는 여자 중 하나를 고르게 해준다고 말이다."
"안된다! 모든 처녀는 다 내것이란 말이다!"
강패의 말을 들은 흉마는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그럼 전부 잃을 셈이냐? 난 네가 성문으로 따라오지 않겠다면 생사결을 나눌 참이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
강패의 물음에 흉마는 입을 꾹 다물었다.
구태여 그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떠그랄!"
흉마는 욕을 내뱉고는 마귀대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약조를 하였다.
만약 모든 일이 다 끝나게 된다면 인 당 한명씩 쳐녀를 양보하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만약 한 놈이라도 계집들을 건들게 된다면 처녀는 물론 모두 팔 한쪽씩 내놓을 각오를 하라고 말이다.
그의 말을 들은 마귀대의 마귀들은 환호하였고 흉마는 눈물을 머금고 강패와 성문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인질이 될만한 이를 데리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