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화 〉 317.황궁제일검 이연
두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
지천이 울리는 거대한 굉음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갔다.
수 백필의 한혈마를 타고 있는 북방의 군대 또한 그 위용넘치는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었다.
".........."
그리고 청송은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북방의 군대는 하루가 멀다하고 국경을 침범하는 이민족들을 막기위해 국경선에 주둔해있는 군대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들이 북해빙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말인가
북해빙궁은 국경선 너머에 존재하는 곳이었다.
어찌보면 다른 나라의 영역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북방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내다니?'
침략을 하려는게 아니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다들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하라!"
청송은 청성의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더욱더 대비를 해야했다.
아무런 마찰이 없다면 좋겠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청송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일제히 답을 하였다.
그리고 긴장된 기색으로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북방의 군대를 바라보았다.
지천을 울리는 진동소리가 더욱더 커져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두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
뚝
코앞까지 다가온 기마 부대는 일제히 한혈마를 멈춰세우더니 이내 마치 자로 잰듯 나란히 정렬하였다.
가히 일대장관이라 칭해도 어색치 않은 모습이리라
청송은 긴장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봤을 때도 어마어마한 위압을 자랑하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코앞까지 다가오니 그 위압감이 배가되는 느낌이 들었고 그 모습에 절로 주눅이 들었다.
수백의 한혈마들과 그 위의 타고 있는 역전용사들은 존재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었다.
꿀꺽
청송은 저도모르게 침이 꿀꺽 삼켜졌다.
분명 그들의 기세에 긴장이 더욱더 커진 것이리라
그렇게 긴장어린 눈으로 그들을 주시하던 그 순간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정렬해 있는 기마부대 사이로 말 발굽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의아함이 들어 안력을 돋구아보니 뒤편에서 한혈마 한 마리가 그들을 헤치고 앞으로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이내 한혈마 한 마리가 선두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청송은 몸을 흠칫 떨었다.
일반적인 한혈마보다 두 배는 커보이는 덩치와 기세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연이라고 한다."
그때 한혈마 위에 타고 있던 묵빛 갑주를 입고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북방의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이지."
남자는 심연처럼 가라앉은 눈으로 청송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
이연의 말을 들은 청송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자의 말을 듣고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송뿐만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수색대원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이연이 누구란 말인가
황궁제일검 이연
수십 년간 북방 이민족들의 침입으로부터 중원을 지켜낸 북방의 수호자
비록 관과 무림이 불가침이라고는 하지만 이연에 대한 명성을 모르는 이는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무인들은 기본적으로 군문무공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군문에서 가르치는 무공의 경우 실전적인 대신 깊이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군문 무공을 연마하여 경지에 들어선 이 또한 극히 드물기도 하였고 말이다.
하지만 이연만큼은 달랐다.
그렇게 군문 무공을 무시하는 무인들조차 예외적으로 경외하고 존경하는 이가 바로 이연이었다.
평생을 북방에서 보내며 나라를 지켜온 공과 거친 북방의 이민족들조차 단신으로 격파해나갔던 명성을 익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연이 북해빙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두 번 말하는 것은 싫어한다."
수색대원들이 아무런 말이 없자 이연은 낮은 음색으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중원에서 온 청성과 아미 그리고 당가의 무인들입니다."
그의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청송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어째서 이곳에 있느냐?"
"네!?"
"어찌하여 중원의 무인들이 북해빙궁에 있냐는 말이다."
이연은 나른한 목소리로 청송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그...."
갑작스러운 이연의 물음에 청송은 당황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더듬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사정을 이야기한다면 말이 길어지고 말이 길어지면 그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단편적으로 요약해서 말하자니 퉁명스럽게 들릴까 고민이 되었다.
청송의 낯빛이 더욱더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저희는 빙궁으로 표행을 왔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청길이 재빨리 말을 받아 답을 하였다.
"표행?"
이연은 궁금하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북해로 표물을 전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고 저희는 그것을 수행하러 온 것이지요."
"한낱 표행에 중원에서 이름난 세력 세곳이 다 달라붙는다는 말인가?"
청길의 말을 들은 이연은 의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사천당가와 청성 그리고 아미에 대해서는 그도 모르지는 않았다.
한곳은 사천의 실질적인 지배자였고 다른 곳들은 구대문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의심이 들었다.
그 거대 세력들이 단체로 북해빙궁으로 온 사실이 말이다.
"지금 청성과 아미 그리고 당가는 현재 사천연맹이라고 불리우는 연합체를 구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표행을 같이오는 것 정도는 흔치않은 일도 아니지요."
청길은 이연의 의심스럽다는듯한 물음에 매끄럽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 말에 거짓은 없으렷다?"
청길의 말을 들은 이연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제가 어찌 구국의 영웅이자 북방의 수호자이신 이연 장군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제 말에는 한 치의 거짓이 없습니다."
청길은 올곧은 눈으로 이연을 바라보며 답을 하였다.
"다행이군."
그의 말을 들은 이연은 만족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동향 사람을 죽일 일은 없어서 말이야."
"그...그게 무슨!?"
이연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청길이 그에게 되물었다.
"나는 오늘 북해빙궁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심산이라네."
이연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혹여 그대들마저 죽여야될까봐 걱정했다네. 만약 북해빙궁과 또다른 유착이 있었다면 모를까 단순한 표행으로 온 것이라면 나름의 자비를 베풀어줘야겠지."
"................"
"..............."
"..............."
이연의 살벌한 말을 들은 수색대원들은 그 누구도 선뜻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흉포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북해빙궁을 지워버린다는 말이었다.
그들은 당황하였다.
별안간 이연이 어찌 북해빙궁을 지워버린다는 말을 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북방의 군대를 이끌고 말이다.
당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오랜 침묵이 지속되는 가운데 청길이 조심스레 입을 열어 그에게 물었다.
"알 필요없다. 그대들은 그저 걸리적거리지 말고 모두 길을 열도록 하라."
청길의 물음에 이연은 알 필요 없다는듯 일축한 후 명을 내렸다.
"............."
"............"
하지만 이연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수색대원들 중 누구 하나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재 그들에게 북해빙궁의 주인인 북궁연은 은인이었다.
실종되었던 사문의 사형제들을 구해준 은인말이다.
그런 은인을 죽이러간다는데 어찌 쉽사리 자리를 비켜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이연은 황실의 사람이었다.
그것도 북방의 수호자라고 불리울 정도로 영향력이 강한 장군 말이다.
그런 자의 명을 어기는 것은 황실을 반역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고민 할 수밖에 없었고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지금 이 상태가 최선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내 명이 들리지 않는 것인가?"
수색대원들이 움직이지 않자 이연은 노한듯 표정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이연은 두 번 말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였다.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감히 자신의 말을 말이다.
무표정했던 이연의 얼굴에 조금씩 화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두 번 말하는 것은 싫어한다."
이연은 경고하듯 그들에게 말하였다.
하지만 수색대원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장군."
그때 뒤편에 있던 청송이 입을 열어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말하라."
"북해빙궁을 지우라는 것은 황실의 뜻입니까?"
"알 필요없다."
"그렇다면 장군의 독단적인 생각인 겁니까?"
"내 알 필요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연은 언성에 내력을 담아 그대로 내질렀다.
그러자 내력이 퍼져나가면서 그대로 청송의 온몸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으으으윽!"
온몸을 옥쇄는듯한 고통에 청송은 비명성을 내질렀다.
"그대는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인가? 내가 그대들의 물음에 대답할 의무는 없다. 그런데 어찌 건방지게 대답을 강요한다는 말인가? 문파의 장문인이 온다하더라도 내게 이렇게 건방진듯이 말을 하진 못할 것이다!"
이연은 화가난듯 언성을 높이며 소리질렀다.
그는 상당히 불쾌하였다.
고작 제자 신분밖에 안되는 주제에 어딜 자신과 맞먹으려고 든다는 말인가
그들의 장문인이 온다해도 자신에게 이리도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하시지요."
팟
한 마디 말과 함께 청송을 압박하던 이연의 기운이 일순간 해소되었다.
"호오"
그 모습을 본 이연은 살짝 감탄성을 내뱉었다.
갑작스러운 실력자의 등장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네놈은 누구더냐."
이연은 기운을 일순간 해소시킨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본도는 운적자라고 합니다. 청성의 장로이지요."
이연의 물음에 운적자는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다른 놈들과 달리 한 수 재간이 있는 놈이구나."
"뜻하지 않게 깨달음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 그래서 그 알량한 깨달음을 믿고 그대도 내게 대적할 심산인가?"
"대답 여하에 따라선 말입니다."
운적자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우습구나. 네놈이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연은 비웃음 섞인 웃음을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산유곡에서 무공만 익혀서 그런지 세상물정은 물론 주제도 모르는구나."
"외골수적인 면모가 도사의 특징이긴 하지요."
"어리석은 놈."
이연은 운적자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장군. 북해를 멸절시키라는 명은 황실에서 내려온 명입니까?"
운적자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만약 황실의 명이라면 그들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천자天子가 군림하는 나라에 사는 그들이 어찌 명을 어길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연의 독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니, 내 독단이다."
"그렇다면 저희는 비켜드릴 수 없습니다."
"어째서지?"
이연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나라의 울타리 안에 있는 자들이 자신의 명을 어길 수 있다는 말인가
"보은報恩입니다."
운적자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이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은報恩이라?"
"그렇습니다. 저희 연맹은 북해빙궁의 궁주에게 갚지 못할만큼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녀를 해치려고하는 북방군을 북해빙궁으로 들일 수 있겠습니까?"
운적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빙궁주에게 받은 은혜는 상상이상으로 거대하다고 말이다.
비록 여기저기가 다친 곳이 수두룩하긴 하였으나 제자들을 구해준 몸이었다.
어찌 그 은혜가 작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보은報恩이라는 것이 목숨보다 중한 것인가?"
이연은 모르겠다는듯이 그에게 물었다.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어찌 그런 하찮은 이유로 자신과 대치하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제의 동료였던 이도 오늘의 적으로 수시로 바뀌는 곳이 바로 전쟁터였다.
그런 전쟁터에서 평생을 보내온 이연은 이해가 안되었다.
고작 보은 한 번 하겠다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손해를 본다는 말인가
북해빙궁으로 데려온 병력은 삼천이 넘었다.
아마 저들도 눈이 있다면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결코 극복할만한 전력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어찌 보은을 하겠다는 명분으로 자신을 막아선다는 말인가
자신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말이다.
알 수가 없었다.
저 어리석음과 멍청함을 말이다.
"중하지요. 협俠을 숭상하는 정파의 문파에게는 더더욱 말이지요."
"협俠이라는 것은 참으로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군. 죽음을 알고도 나서야한다니 말이다."
이연은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쩔 속셈인가?"
"막아설 것입니다. 북방의 군대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운적자는 결연의 의지가 담긴 눈동자로 이연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안타깝구나. 동향 사람을 죽이게 되었으니 말이야."
이연은 안타까운듯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