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화 〉 306.그녀와 입을 맞추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지 얼마나 지났을까
폭연이 스멀스멀 거치더니 이내 능소화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폭연이 거치자 능소화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폭발에 휘말린 선우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서 까맣게 그을린 채 쓰러져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우!"
능소화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소리쳤다.
저벅 저벅
능소화는 그곳을 향해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그리고 이내 그곳에 도착한 능소화는 고개 내려 쓰러져 있는 선우의 모습을 확인해보았다.
선우의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하였다.
전신은 폭발에 휘말린 탓인지 전신이 까맣게 그을렸고 여기저기 화상자국이 가득하였다.
게다가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것인지 몸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능소화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애초에 그녀는 선우를 이렇게까지 다치게할 생각은 없었다.
공격을 되돌리는 무공을 익힌 선우라면 폭륜겁의 폭발에도 멀쩡할 것이라는 생각에 부담없이 사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폭발에 휘말렸고 전신에 화상과 충격을 받았다.
당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쿨럭....쿨럭...쿨럭."
그때 바닥에 쓰러져있던 선우가 연신 기침을 토해내었다.
그 소리를 들은 능소화는 반색하였다.
다행히 죽지는 않은듯 하였다.
"능....소..화.."
선우는 더듬거리며 능소화를 불렀다.
"정신이 드는 것이냐?"
능소화는 선우를 바라보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폭..발은..대체?"
선우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의 비기 중 하나인 폭륜겁爆輪劫이다. 조그만 충격에도 폭발해버리는 거대한 띠를 두르는 기술이지."
능소화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군."
선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대야 말로 이상하다! 어째서 폭발에 휘말린 거지? 그대는 공격을 되돌리는 무공을 익히고 있지 않았던가?"
능소화는 다소 언성을 높이며 입을 열었다.
이해가 안되었다.
어찌 폭발력을 되돌리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냈다는 말인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될 것이 뻔한데 말이다.
"할...수..없었..어."
선우는 간신히 쥐어짜는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라!?"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당혹스러운듯 되물었다.
"공격을...되..돌리는..건..생각..보다..심력을 많이..소모하거든....다른 기술과...병행할 수는..없었어.."
"이런 바보 같은! "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정말 바보같은 남자였다.
충분히 몸을 지킬 방도가 있으면서 어찌 이리도 바보같은 행동을 한다는 말인가
이해가 안되었다.
그저 공격만 되돌리면서 버티기만 한다면 무사태평하거늘
어찌 이리도 바보같은 선택을 한다는 말인가
"소화야....어..쩔수..없었어....너를..되돌리고..싶었..어."
"말하지 않았느냐! 본녀는 그저 본녀일 뿐이다! 그런데 어찌 본녀를 되돌린다는 말을 한단 말인가!"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다.
자신은 그저 자신일 뿐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자신을 부정한다는 말인가
"그러게...너는..너일텐데...내가 어째서...그런 선택을...했을까?"
선우는 능소화를 바라보며 후회의 감정이 가득 서려있는 말을 내뱉었다.
"그대는 바보다! 어찌 이리도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는 말인가!"
"소화야...나는..으윽.....크으윽.."
선우는 말하는 것이 고통스러운지 연신 신음성을 내뱉었다.
"그만 말하거라! 상처가 덧 날것이다!
능소화는 그런 선우를 만류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극심한 중상을 입은 주제에 무슨 말이 이리도 많다는 것인가
"크으윽....아니...지금이....아니면..으윽...할 수 없는 말이야."
선우는 연신 신음성을 내뱉으며 말을 쥐어짜듯 말하였다.
"그런 말 말거라! 마치 죽을 사람처럼 말하지 말라는 말이다!"
"으윽....소화야....나....널..처음..본..순간부터...좋아했어.."
"그만! 그만 하거라! "
능소화는 고개를 도리질치며 언성을 높였다.
원래라면 너무나도 듣기 좋은 말이었겠지만 지금 만신창이가 된 선우에게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말은 상태가 회복되면 그때 하란 말이다!"
"소화야...내..상태는..내가..잘알아.."
선우는 그런 능소화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크으윽....나는...죽을거야...겉보기엔 멀쩡해보이는데..내장이 완전히 꼬여버렸어...숨을 쉬기가...벅차고....이젠 입을 떼는 것조차 하기 힘들어.."
선우는 힘이 빠지는지 처음 말을 떼었을 때보다 훨씬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안된다! 선우! 본녀는 그대가 죽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부정하듯 소리쳤다.
선우가 죽는 것은 싫었다.
그는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고 말해준 남자가 아니었던가
이대로 냅둘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그의 몸에 손을 대어 내력을 불어넣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몸에 타오르고 있는 불꽃의 존재가 그런 그녀의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
만약 몸에 피어오르고 있는 불꽃에 선우가 닿게 된다면 선우는 더욱더 극심한 고통에 휘말리게 될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능소화는 고심에 빠졌다.
"소화야..."
그때 선우가 다시금 능소화를 불렀다.
"나...부탁...좀..해도 되?"
"얼마든지 말하거라! 본녀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냉큼 답을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해치지...말아줘.."
"바보같은! 그대는 어찌 끝까지 그렇게 남을 위한다는 말인가!"
능소화는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이 어리석은 남자는 어찌 죽어가는 순간까지 남 걱정만 한다는 말인가
"들..어..줄 수..있어?"
선우는 애원하듯 말을 이었다.
"알았다..알았으니까! 더 이상 말을 삼가라!"
"다행이다...."
선우는 그제야 안심한다는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바보다! 그대는 정말 바보다! 어찌 끝까지 다른 이들만 걱정한다는 말인가! 그대를 위해 살라는 말이다!"
"...나를..?"
"그렇다! 그대만을 위한 부탁을 하란 말이다!"
"소화야..정말.그래도..될까?"
선우는 자신없다는듯 말을 이었다.
"물론이다! 언제든 말하라!"
"그럼...입..맞.추어 줄 수 있어?"
화악
그 말을 들은 능소화는 얼굴 잔뜩 붉혔다.
"그게..무슨!...임신해버린단 말이다!"
"그렇지?..안되겠지?....나도..안될 줄..알았어..커윽!"
선우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입울 열었다.
"커어억..어억...어윽.."
그리고 이내 선우는 격한 신음성을 내뱉으며 숨을 빠르게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선우! 괜찮은것이냐!"
능소화는 걱정 그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뱉었다.
아무리봐도 선우의 상태가 그 전보다 더욱더 심각하게 보였다.
"크으윽..괜찮아....그저.....자연으로...돌아가는 과정일 뿐이야.."
"그런 말하지말아라! 어찌 그런 말을 한단 말이냐!"
"소화야....나...이제..귀가..슬슬..멀어져 가는 것 같아. 네 목소리가 너무 희미하게 들려....더 듣고 싶은데...네 목소리를...더 듣고 싶은데.."
선우는 슬픔이 가득 담긴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자꾸만 눈이 감겨....눈꺼풀이 마치 태산을 올려놓은 것처럼 무거워.....안되는데...눈을 감으면 안되는데....네..아름다운 모습을....봐야되는데.."
선우는 사라져가는 자신의 감각을 하나둘씩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아마 죽음의 그림자가 그에게서 감각을 하나 둘씩 빼앗아가는듯 하였다.
"안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능소화는 비명성을 내질렀다.
이대로 가다간 선우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그의 의식을 붙잡아야했다.
어떻게든 그를 정신 차리게 해야했다.
그에게 닿아야했다.
능소화는 몸에 피어오르고 있던 화기를 거둬들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극양염황마기가 반발하며 불을 더욱더 거세게 피어올렸다.
"이런 건방진!"
반발하는 극양염황마기를 느낀 능소화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저 단전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기운주제에 어디 건방지게 주인에게 반발을 한다는 말인가
능소화는 의지를 담아 극양염황마기를 거세게 압박하였다.
우우우우우웅
그러자 몸에서 피어오르던 불꽃이 차츰차츰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화르르
화륵
이내 능소화의 몸에서 피어오르고 있던 모든 불꽃들이 일제히 사라져버렸다.
능소화의 거대한 의지에 극양염황마기가 굴복을 한 것이다.
화기가 거둬들여지자 능소화는 재빨리 바닥에 앉은 뒤 선우를 흔들었다.
하지만 선우는 미동조차 없었다.
"선우! 일어나라! 일어나란 말이다!"
능소화는 더욱더 격렬하게 선우의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선우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손가락을 코 밑에 가져다대었다.
코에는 아무런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한 능소화는 단전에 손을 대고 내력을 불어넣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선우의 몸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선우의 단전에 잠들어있는 내력들을 일깨우기 위해 몇번이고 몇번이고 일주천을 하였지만 소용 없었다.
내력은 그저 자리를 지킬 뿐 어떠한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능소화는 단전 위에 올려놨던 손을 천천히 떼었다.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선우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말이다.
글성 글성
그리고 눈가에서 이질감이 들기 시작하였다.
지금껏 단 한번도 느껴본적 없는 감각이었다.
또르르르
이내 눈에 이질감을 주던 것이 뺨을 타고 그대로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능소화는 천천히 손을 들어 뺨을 만져보았다.
촉촉한 액체가 만져졌다.
이내 능소화는 깨달았다.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내 마음속 깊은 곳이 미칠듯이 아파왔고 어마어마한 상실감이 온몸을 덮쳤다.
"흐윽...흑..흑..흑.."
능소화는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후회하였다.
화를 참지 못하고 그에게 폭륜겁 날려버린 과거의 자신을 말이다.
또 후회하였다.
죽기직전 입맞춤을 해주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을 말이다.
"선우...미안하다...정말...미안하다..흐흑흑흑"
능소화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건네었다.
그녀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미안하다....본녀가 우유부단하여 그대의 마지막 소원조차 이루어주지 못하였구나."
능소화는 후회가 가득 담긴 시선으로 쓰러진 선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선우를 품으로 끌어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무릎 위에 선우를 완전히 눕혀버렸다.
"이미 돌아올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그대에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본녀는 그대가 죽어서라도 소원을 이뤘으면 한다."
능소화는 눈물을 글성이며 말을 이었다.
"본녀는 그대가 좋다. 좋아도 너무 좋다. 사실 처음부터 그대를 좋아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구해지는 것은 태어나 처음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 후부터 계속 그대에게 눈길이 갔다. 한 마디라도 더 말하고 싶었고 그대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싶었다. 사실 마차에 동승한 것도 사실은 그대라는 남자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선우의 죽음 앞에 감성적으로 변한 것일까
능소화는 지금껏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진솔하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대와 대화를 나눌 때면 본녀는 군주가 아닌 평범한 아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대는 본녀의 비위만 맞추려는 이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대가 본녀에게 아름답다고 말해주던 날 본녀는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려 터져버릴 뻔했느니라."
능소화는 아련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북궁연 그 건방지기 짝이 없는 계집이 그대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하였을 때 본녀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본녀가 먼저 좋아했거늘! 그대는 본녀의 것이거늘! 어찌 그대를 탐을 낸다는 말인가? 본녀는 분노하였다. 그리고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불쾌한 감정이 질투였고 본녀가 북궁연에게 질투를 할만큼 그대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능소화는 무릎 위에 앉아있는 선우를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몸을 숙이기 시작하였다.
"사랑한다. 그대여."
그리고는 입술을 살짝 내밀더니 이내 선우의 입술에 가져다대기 시작하였다.
츄읍
얼마 지나지 않아 능소화의 입술이 선우의 입술에 완전히 닿게 되었다.
태어나 단 한번도 느껴본적 없는 감각이 그녀의 입술에 느껴졌다.
부르르르
능소화는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대한 어색함과 민망함 그리고 떨림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부끄러워.'
태어나 처음 입을 맞춘 능소화는 부끄러움이 몰려들었다.
그때였다.
할짝
순간 그녀의 입술에서 무언가 질척이는 감촉이 느껴졌다.
할짝
할짝
한 번이 아니었다.
질척이는 감촉은 끊임없이 능소화의 입술을 자극하였고 이내 입술 사이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이내 입술 사이로 파고든 것이 그녀의 혀에 닿았다.
그리고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질척이는 감촉의 정체가 혓바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능소화의 눈이 휘둥그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