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화 〉 304.완전무결한 불꽃
콰쾅
"크윽"
다시금 능소화가 뒤편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검을 견뎌내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능소화는 짜증이 치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내력이 부족하다고는 하나 사정없이 밀리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자신이 이리도 간단히 밀린다는 말인가
이해가 안되었다.
분하였다.
분하고 또 분하였다.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현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다다른 위대한 무인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이렇게 맥없이 밀린다는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능소화는 용천혈에 내력을 흘려보내었다.
그리고 그대로 폭발시켜 그 반발력으로 몸을 날렸다.
쇄애액
그녀의 신형이 순식간에 뒤편으로 날아가더니 그대로 안착을 하였다.
"인정하겠노라."
선우와 거리를 벌린 능소화는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여러모로 강한 이다. 설마 본녀조차 속을 정도의 심계를 품고 있었을 줄이야. "
능소화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냥 빙정 찾으려고 도발한건데...'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뻘쭘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이라
그녀가 칭찬을 하여도 그리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간단한 격장지계에 걸려들어 힘조절 못하고 화공을 전부 쏟아낸 것은 그녀가 아니던가?
그런데 무슨 심계란 말인가
"그대는 자격이 있다. 본녀의 모든 것을 볼 자격이 말이다."
능소화는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보여준 화룡이 전부 아니였어?"
"화룡은 힘의 집약체 일뿐.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녀석이지."
선우의 물음에 능소화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본녀는 그대를 죽일 각오로 대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알아서 살아남도록 하라. 나의 정인이여."
말을 마친 능소화는 눈을 슬며시 감았다.
'허세는'
선우는 그런 능소화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그대로 검을 뺴들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분명 그녀가 자신에게 밀린 것이 부끄러워 허장성세를 펼치는 것이라고 말이다.
부웅
선우는 검면을 세워 능소화의 머리통을 향해 휘둘렀다.
단박에 기절시킬 심산이었다.
화르륵
그때 불이 피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매캐캐한 냄새가 피어오르더니 선우의 코를 괴롭게 하기 시작하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으윽"
이내 검을 쥔 오른팔쪽에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아아악!"
선우는 갑작스러운 고통에 비명성을 내질렀다.
뜨거웠다.
미치도록 뜨거웠다.
선우는 시선을 돌려 오른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오른손에 타오르고 있는 칠흑과도 같은 검은 불꽃을 말이다.
'망할!'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선우는 재빨리 건곤대나이 신공을 운용하였다.
오른손을 불태우고 있는 검은 불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우우우우웅
건곤대나이의 구결에 따라 음양조화기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건곤대나이를 운용한 선우는 검은 불꽃의 바라보았다.
흐름을 느끼기 위해였다.
그리고 선우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검은 불꽃의 흐름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체...이게..무슨!?'
선우의 눈이 휘둥그래해졌다.
대체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흐름이 전혀 안보인다니!?
대체 그게 어찌 가능하다는 말인가
흐름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순리나 마찬가지였다.
풀,나무,공기,바람,불,물,땅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흐름이 없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대체 어찌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선우는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찌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 있다는 말인가
"카아아아아아악!"
선우는 살갗을 타고 전해져오는 뜨거운 열기에 비명성을 내질렀다.
챙그랑
선우는 그대로 검을 놓쳐버렸다.
검수에게 검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그런 검마저 놓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벗어나고 싶었다.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었다.
붕 붕
선우는 팔을 맹렬히 흔들어도 보았다.
검은 불꽃은 꺼지긴 커녕 오히려 더욱더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뒹굴
선우는 이번에는 빙산이 녹아 생긴 물웅덩이에 몸을 굴렸다.
치이이이이
그러자 오히려 물웅덩이에 있던 물이 수증기가 되어 그대로 날아가버렸다.
"아아아아악!"
선우는 타는듯한 고통에 더욱더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아팠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이 고통에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성이 마비되고 고통에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만이 남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불타고 있는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검은 불꽃은 이상하게도 번지지 않았다.
오직 검을 잡고 있던 손의 팔뚝 부분만을 불태울 뿐이었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이 손을 잘라버린다면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너무나 극심한 작열통에 극단적인 생각이 든 것이다.
사람이 가장 크게 고통을 느끼는 것이 생 살이 타들어가는 작열통이라고 했던가?
선우는 그간 느꼈던 고통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고통을 느꼈고 정신이 반쯤 나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핏줄이 잔뜩 선 눈으로 땅바닥에 떨궈져있는 용미연검을 바라보았다.
용미연검은 매끄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나신을 자랑하였다.
또한 광채가 쏟아져 나오기시작하였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저 광채가 쏟아지는 용미연검이라면
저 매끄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용미연검이라면
자신을 고통에서 단번에 해방시켜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선우는 마음을 굳혔다.
왼손으로 용미연검을 쥐고 오른 팔을 잘라버리자고 말이다.
솨아아아아아아
그때 갑자기 어마어마한 냉기가 선우의 왼손에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번뜩
갑작스러운 냉기에 정신이 번쩍 뜬 선우는 왼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까 집어든 빙정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이성이 끊기면서 빙정을 압박하고 있던 음양조화기가 사라진듯 하였다.
우우우우웅
선우는 재빨리 음양조화신공을 운용하였다.
그러자 왼손에 파고들었던 냉기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검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오른 팔에 음양조화기를 흘려보내었다.
어떻게든 제압을 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검은 불꽃은 음양조화기마저 연료를 삼는 것인지
더욱더 덩치를 키울 뿐 꺼질 기미가 안보였다.
'크으으윽!'
으득
그리고 불의 크기와 비례하여 커진 고통에 선우는 속으로 비명성을 내질렀다.
'이러다간 위험하다.'
위험했다.
빙정에 의해 겨우 정신이 든 선우였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다시금 정신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막아야했다.
화르르르륵
선우가 생각에 잠긴 사이 검은 불꽃은 더욱더 크게 타올랐고 선우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물......차가운거...차가운게 필요해!'
극심한 뜨거움에 선우는 차가운 것을 찾게 되었고 이내 왼손에 쥐고 있는 빙정에 시선이 갔다.
'이거다!'
결정을 마친 선우는 그대로 검은 불꽃에 빙정을 가져대었다.
치이이이익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검은 불꽃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빙정을 더욱더 가까이 가져다대었고 이내 검은 불꽃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하아...하아..하아..하아.."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난 선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숨쉬는 것조차 잊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은가?"
그때 선우의 귓가에 능소화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 능소화를 바라보았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선우는 두렵다는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선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말이더냐?"
"시치미 떼지마! 아까 그 검은 불꽃, 대체 정체가 뭐지!?"
선우는 언성을 높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본녀의 깨달음이다."
"깨달음?"
"그렇다. 그리고 본녀가 추구하는 최종적인 불의 형태이기도 하지."
"말도 안되는 소리야."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도리질하며 말하였다.
"저런 게 불꽃일 리 없어."
선우는 단정짓듯 그녀에게 말하였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느냐?"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흐름?"
선우의 말에 능소화는 모르겠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세상 만물은 모두 각자 고유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공기, 물, 불,풀, 나무,철 그외 모든 것들 전부 말이다. 그런데 아까 본 검은 불꽃에서는 그 무엇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런게 불꽃일 리가 없어."
선우는 확신에 찬듯 말하였다.
선우는 진실로 검은 불꽃이 불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그런 것을 어찌 불이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
"재밌구나. 본녀의 흑염黑炎이 불이 아니라니 말이다."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재밌다는듯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불이 맞다. 본녀가 피워올린 하나의 불꽃이지."
능소화는 선우를 바라보며 단언하듯 말하였다.
"웃기지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그런 것이 불꽃일 리 없어!"
"그럴 수 있다."
"어떻게 확신하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 되는 것이 아닌가?"
"..............."
번뜩
순간 능소화의 말을 들은 선우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 하고 스쳐지나갔다.
예전에 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현경
"그렇다. 본녀는 결국 현경에 도달하였고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능소화는 차분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본녀는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을 익히면서 생각하였다. 불이라는 것은 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가하고 말이다."
능소화는 상념에 빠진듯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불은 물에 닿으면 꺼지고 흙에 덮이면 꺼지고 바람이 불면 꺼지고 태울 것이 남아있지 않으면 꺼지고 만다. 이 어찌 불완전하다고 말할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본녀는 한탄하였다. 이런 불완전한 것으로는 정상에 닿을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능소화는 눈을 반짝 빛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본녀는 생각을 하였다. 물에 닿아도 흙에 덮여도 바람이 불어도 태울 것이 남아있지 않아도 영영 불탈 수 있는 완전무결한 불이 존재할 수는 없을까 하고 말이다."
능소화는 핏물처럼 붉디 붉은 적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본녀는 결국 그 목표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꺼뜨릴 수 없는 완전 무결한 불꽃. 그렇다. 바로 그대의 오른팔을 불태웠던 흑염黑炎을 말이다!"
능소화는 자랑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떤가? 완전무결한 불꽃에 당해본 소감은?"
"끔찍했어."
"그럴만도하다. 흑염이 주는 고통은 기존의 작열통보다 수십배는 될터이니 말이다."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미쳤네."
선우는 입에서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기존의 작열통의 수십배라면 자신의 정신이 나갈뻔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작열독의 완벽한 상위호환이 아니던가?
"완벽무결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것이다. 기존의 불꽃보다 더욱더 뜨거워야하고 더욱더 강력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니라 "
"그래서 그 완벽한 불꽃으로 내 팔을 태워 버린거야?"
"어쩔 수 없었다. 그대가 나를 궁지에 몰았으니까 말이다. 진심을 내보일 만큼 말이다."
능소화는 어쩔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흉터 남겠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흉터라니?"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모르겠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그 완벽한 불꽃이 내 팔을 태웠는데 흉터가 안나고 배겨?"
"흉터가 어디있다는 말이냐?"
선우가 팔을 들어올렸음에도 능소화는 모르겠다듯이 되물을 뿐이었다.
"시치미떼지마. 여기 떡하니 상처가......"
선우는 팔을 들어올리고는 불탄 부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녀에게 증거를 보여줄 심산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가 없었다.
"....없네?"
흑염黑炎이 타올랐던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말하지 않았더냐? 흉터따위는 없다고."
그런 선우의 반응이 재밌는 것인지 능소화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순간 선우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팔을 잘라버릴 생각조차 들게 만들었던 극도의 고통을 말이다.
물구덩이에서 구르고 팔을 세차게 휘둘러도 꺼지지 않았던 그 집요함을 말이다.
그런데 어찌 팔에 화상자국이 없다는 말인가
이해가 안되었다.
머릿속이 깨질 것만 같았다.
어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어...떻게 된거지?"
이내 선우는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녀가 분명 완전무결한 불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선우가 귀여운 것인지 능소화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태우고 싶은 것만 태워야 완전무결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대한 공포심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걸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심염心炎?
심흑염心黑炎?
아니면 흑염룡黑炎龍?
감히 정의조차 할 수 없었다.
위대한 경지에 다다른 그녀의 불꽃에 대해서는 말이다.
선우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