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화 〉 302.주화입마-2
"나는 네가 좋아."
선우는 올곧은 눈으로 능소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낯부끄럽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본녀도 그대가 좋다. "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부끄러운듯 몸을 배배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 너는 내가 좋아하는 능소화가 아닌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더냐! 본녀보고 본녀가 아니라니!?"
능소화는 이어지는 선우의 말에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내가 아는 능소화는 천하다고 다른 이를 폄하하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죽이라는 말을 함부로 담지 않았어."
선우는 거칠게 내쉬었던 호흡을 천천히 안정시킨 뒤 말을 이었다.
"넌 능소화가 아니야. 그저 능소화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마공의 잔재지."
"웃기지마!"
선우의 말에 화가 난 능소화는 그의 주위에 둘러싸고 있는 화염의 크기를 더욱더 키웠다.
살이 익어버릴 것 같은 뜨거움과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소용없어."
그때 선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찔러들어왔다.
능소화의 눈이 휘둥그래해졌다.
분명 고온 고압의 열기를 그대로 뿜어내지 않았던가?
고온 고압의 열기는 선우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온 몸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뜨거움과 공기마저 뜨거워 호흡이 곤란한 고통으로 말이다.
그런데 어찌 저리도 차분하게 말을 이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멀쩡할 수 있지?"
"바꿨을 뿐이야."
능소화의 물음에 선우는 담담히 답하였다.
"바꾸다니?"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선우에게 물었다.
바꾸다니 별안간 무엇을 바꿨다는 말인가
"내게 오는 모든 열기를을 말이야."
"말도 안돼! 내력도 아니고 열기같은 자연의 현상조차 되돌린다고!?"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선우가 공격을 되돌리는 특수한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애초에 그런 특수한 무공때문에 금제의 해제를 부탁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극양염황마공에 의해 만들어진 화기 아닌 자연 현상을 되돌리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기공만을 되돌리는 것과 자연 자체를 되돌리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전자의 경우 비슷한 무공이 더러 있을 뿐더러 내가기공이 극에 다다르면 어느정도 흉내내는 것이 가능하였지만 후자의 경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찌 흐르는 자연을 억지로 비틀어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어찌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네가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아."
능소화의 외침에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이제 네 열기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선우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능소화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무척이나 오만하구나. 고작 열기 하나 튕겨내었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알더냐?"
선우의 눈을 마주한 능소화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과연 그런 오만함을 가질 실력이 되는지. 본녀가 직접 확인해봐야겠구나!"
화아아아아악
능소화가 말을 마치자 선우의 주위에 있던 불길들이 일제히 그를 덮쳐들었다.
화르르르륵
'비튼다!'
선우는 재빨리 건곤대나이를 발휘하여 불길의 흐름을 바꾸어버렸다.
그러자 덮쳐오던 불길들이 모두 반대 반향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소용없다!"
그 모습을 본 능소화는 흩어진 불길들을 다시금 뭉쳐버려 더욱더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 선우에게 다시금 보내었다.
불꽃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해일이 순식간에 선우를 덮쳐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크다.'
불꽃으로 만든 거대한 해일을 본 선우는 생각하였다.
이번에 덮쳐올 불길은 상상이상으로 거대하다는 것을 말이다.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불안감이 들었다.
자신이 과연 저 흉포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기운을 비틀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히 선우는 이를 악물고 건곤대나이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과거 고금제일마라 칭해지던 천마의 절대적인 무공이 선우의 손에서 발휘되기 시작하였다.
'비튼다!!'
이내 해일이 선우의 몸에 닿았다.
그리고 선우는 몸에 전해지는 화기의 흐름을 전부 비틀어버리기 시작하였다.
치이이익
그때 갑자기 선우의 옷이 조금씩 타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젠장'
미처 비틀지 못한 화염이 몸에 닿기 시작한 것이다.
전해져 오는 화기의 흐름이 너무나 많고 거대하여 일일이 비트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크으으으윽!"
선우는 몸에 파고들기 시작하는 화기에 고통에 찬 신음성을 내뱉었다.
선우는 건곤대나이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사고를 가속하여 몸에 닿을 흐름과 닿은 흐름 모두를 계산하기 시작하였다.
'비틀어져라!'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불길로 만들어진 해일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전부 흩어져버리기 시작하였다.
"하아...하아....하아.."
선우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숨까지 참아가면 사고를 가속했던 탓인지 숨이 막혀왔다.
게다가 사고를 가속하는 과정에서 심력을 너무 소모한 것인지 머리가 띵해지는 것까지 느껴졌다.
"대단하다! 대단해! 역시 그대는 본녀가 친애하는 자답다!"
그때 앞편에서 감탄성이 섞인 능소화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선우는 고개를 들어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말이다.
선우는 당황하였다.
이정도 규모의 광역 공격을 무효화할 정도면 위기감이 들어야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저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아...하아...허세 부리는 거야?"
선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물었다.
"허세라니?"
선우의 물음에 능소화는 모르겠다는듯 선우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이 통하지 않는 걸 확인한 시점에서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을 리 없잖아?"
"불이라면 통했도다."
"통했다니?"
선우는 모르겠다는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대의 옷과 피부가 살짝 그슬리지 않았던가?"
능소화는 그슬려있는 선우의 옷과 피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충분히 공격이 통한다는 증거이니라."
능소화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커다란 불길에서 겨우 이 만큼 밖에 그슬리지 않았어.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선우의 물음에 능소화는 단언하듯 말하였다.
"더 큰 불길을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닌가?"
화르르르르
말을 마친 능소화는 몸속에 있는 극양염황마기를 더욱더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전보다 휠씬 더 거대한 크기의 불길이 하늘높이 치솟기 시작하였다.
"이것도 바꿀 수 있겠는가?"
능소화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그 불길을 본 선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하였다.
설마하니 그전보다 더욱더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낼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꿀꺽
선우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이내 더욱더 거대해진 불길의 해일이 선우를 덮쳐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사고를 가속시키고 건곤대나이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였다.
어떻게든 저 불길을 막아서겠다는 일념하에 말이다.
곧이어 선우와 능소화가 만들어내 거대한 불길이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이내 어떻게든 흐름을 바꾸려는 선우와 어떻게든 그를 덮쳐버리려는 화염 간의 치열한 대치가 시작되었다.
솨아아아아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꽃의 해일이 선우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
"대단하도다."
능소화가 입을 열었다.
"설마하니 그것까지 버텨낼 줄은 상상도 못하였노라."
그녀는 놀란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아...하아..하아..하아...아슬아슬 했어."
선우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선우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온몸에 있는 옷가지들은 대부분 타버렸으며 여기저기 화상 자국들이 가득하였다.
"이제 우리 둘다 알몸이 되었구나."
능소화는 얼굴을 슬쩍 붉히며 입을 열었다.
"신기하도다. 남자의 몸은 그리 생긴거더냐?"
능소화는 선우의 몸을 유심히 훑으며 말을 이었다.
"하아...하아..그렇게 유심히 훑지 말아줄래?"
"다름을 아는 것이 배움의 시작이니라."
"그런 다름은 나중에 네 남편한테 배워."
"그대가 본녀의 남편이 되면 되지 않는가?"
능소화는 반달처럼 눈매를 휜 채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양할게."
그녀의 말에 선우는 능소화를 향해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청혼은 맨 정신일 때만 받는다."
팡
말을 마친 선우는 그대로 능소화에게 달려들었다.
풍진보를 극성까지 끌어올린 선우는 빛살같은 속도로 능소화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에게 검을 휘둘렀다.
부웅
선우의 검이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을 내며 능소화에게 날아들었다.
화르륵
선우의 검이 날아들자 능소화의 몸 주위에 있던 불길들이 칼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쾅
그리고 이내 상당한 굉음이 울리면서 진동음이 퍼져나갔다.
"그대는 너무 성급하다. 남자는 자고로 진중한 면모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호신강기!?"
선우는 자신의 검을 막아낸 능소화의 불길들을 보고 놀란듯 되물었다.
아무리 검면으로 후려쳤다지만 어찌 쇳덩이를 맨 손으로 막는다는 말인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구나. 물론 본녀의 염황마기는 한낱 호신강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선우의 물음에 능소화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젠장'
선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속전속결로 접근하여 그대로 기절시킬 요량이었건만 아무래도 실패한 듯 싶었다.
화르르륵
그때 능소화가 반대 손을 펴더니 그대로 불길을 내뿜었다.
선우는 건곤대나이신공을 운용하여 그대로 그녀의 공격을 되돌려버렸다.
화르르르륵
내뿜어진 불길은 다시금 능소화에게로 환원되었고 능소화는 더욱더 강력한 불길을 뿜어내었다.
'시발'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선우는 다시금 불길의 흐름을 비튼 후 그대로 땅을 박찼다.
그리고는 뒤편으로 몸을 날려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
"왜 가는 것이더냐? 더 하지 않고?"
능소화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선우를 바라보았다.
"괜한 심력낭비니까."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불길을 아무리 비틀어버려도 결국 네 몸으로 돌아가버리니까."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선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불길을 비틀어버려도 흩어지거나 사라지긴 커녕 그녀의 몸으로 환원되어버렸다.
이런 상태에서 그녀의 불길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무식한 행위일 것이다.
결국 내력을 더욱더 많이 소모하는 것은 자신이 될테니까 말이다.
"영 바보는 아니구나."
능소화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그런 능소화를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그녀를 제압할 마땅한 방법을 말이다.
능소화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불길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 피어오른 불꽃들은 꺼지지 않고 그녀의 몸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건곤대나이만 믿고 마냥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는 내공에 크게 구애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내공을 갖게 된 자신이었지만 무한에 가까운 그녀의 불꽃은 전부 튕겨낼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대등하게 맞선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격차는 끝도 없이 벌어질 것이 뻔하였다.
생각해내야한다.
그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망할 저놈의 불꽃만 어떻게 하면!'
선우는 답답함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저놈의 불꽃이 문제였다.
자율의지를 가진 것도 아닐진대
어찌 주인에게 날아드는 공격에 그렇게 즉각적으로 반응을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불길주제에 물리력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능소화가 피어올리는 불길은 단순히 열과 빛을 발생시키는 현상따위가 아니었다.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특수한 무언가인 것이다.
그러니 짜증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열과 빛은 물론 물리력까지 갖춘 녀석이 자율의지까지 있으니 말이다.
선우는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마땅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불꽃을 없앨 방법을 찾아야해. 이러다간 내 내력이 먼저 고갈되고 말거야.'
선우는 사고를 가속시키기 시작하였다.
상당한 정신적 피로감이 몰려들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빠르게 해결책을 찾아야했다.
'불길......마공....화기...극양.......양기.....대척점.....음기....극음..'
선우는 머릿속에 그녀와 관련된 수많은 단어들을 나열한 후 하나하나 조합을 맞추듯 끼어넣기 시작하였다.
'빙정'
그리고 이내 해답이 되어줄 마지막 한 조각의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
빙정이었다.
그녀에게 빙정을 먹일 수 있다면 불길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내 선우는 깨달았다.
자신이 순서를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를 제압하고 빙정을 먹이는 것이 아닌 빙정을 먹이고 제압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선우의 눈빛이 반짝이듯 빛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