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화 〉 298.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보지 않겠는가?
푹 푹 푹
흉마와 마귀들은 자꾸만 깊숙이 빠지는 눈밭에 짜증이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놈의 눈밭은 어째 가도가도 쌓이고 가도가도 쌓인다는 말인가
흉마는 후회라는 감정을 치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혈마를 몇 필 구비해둘걸 하면서 말이다.
애초에 북해빙궁의 영역내에 존재하는 모든 말들을 싸그리 죽여버린 그였다.
오로지 마을 사람들의 도주로를 막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결정이 업보가 되어 돌아온듯 싶었다.
'젠장할 젠장할'
흉마는 속으로 쉴새없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연의 부장인 강패가 길잡이로 나선지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이정도로 왔으면 북해빙궁은 아니더라도 가는 길목정도는 보일법도 했는데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이새끼 사실 길 잃어버린 거 아니야?'
흉마는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워낙 당당히 길을 안내하기에 군말 없이 그를 따랐던 흉마였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모르는 길만 나오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흉마는 의심어린 눈초리로 강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야."
그의 목소리에는 진득한 살기가 달려있었다.
"........."
하지만 그의 물음에도 강패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야!"
강패가 반응이 없자 흉마는 더욱더 큰 음성으로 그에게 소리쳤다.
".........."
흉마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강패는 묵묵부답이었다.
턱
짜증이 치밀어오른 흉마는 그대로 팔을 들어 강패의 어깨를 잡아챘다.
"죽고 싶은 것이냐!"
"무슨 일이오."
어깨를 잡히자 강패는 그제야 몸을 돌려 흉마를 바라보았다.
"내가 몇 번이고 부르지 않았더냐!"
"내 이름은 '야'가 아니라서 말이오."
흉마의 물음에 강패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으득
그리고 강패의 말을 들은 흉마는 이를 으득하고 갈았다.
분명 제놈을 부르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뻗댄 것이다.
"뭐 어쨌든 불렀으니 물어는 봐주겠소. 왜 불렀소?"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냐!"
"누가 마도종자 아니랄까봐. 참을 성이 없는 것 같소?"
흉마의 고함에 강패는 약올리듯 그에게 되물었다.
으득
"참을성이 없는게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헤매지 않았느냐!"
흉마는 이를 으득 갈며 언성을 높였다.
"잘가고 있으니 괘념치 마시오."
"그 말만 이틀째다! 이틀이면 아는 길목이라도 나와야 정상이거늘 어찌 처음보는 길목만 나온다는 말이냐!"
"사시사철 눈보라가 치는 북해에서는 지형이 바뀌는 일은 흔한 일이오. 괘념치 마시오."
"그 개같은 말도 벌써 이틀 째다! 네놈은 같은 말밖에 반복치 못하는 것이냐!"
"마도종자주제에 기억력은 좋은 것 같소."
"으아아아아아 못참아!"
강패의 빈정거림에 화가난 흉마는 이내 폭발적인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하였다.
"이연이고 뭐고 다 필요없어! 오늘 내가 죽나 네놈이 죽나 한 번 해보자! "
이내 흉마는 흉포하기 짝이 없는 마기를 순식간에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쯔쯧, 과연 마도종자로다. 식견이 이리도 좁아서야 어디다 쓰겠소?"
그 모습을 본 강패는 긴장도 되지 않는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흉마가 붙잡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을 그대로 끊어버렸다.
투둑
"이 개자식이!!!"
이성을 잃은 흉마는 내력을 손에 한가득 모았다.
그대로 휘둘러 강패의 머리통을 터트릴 요량이었다.
이내 흉마의 주먹에는 흉포한 살기와 마기가 섞인 불길한 기운들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흉마는 그대로 주먹을 뒤로 뻗었다.
그대로 후려칠 요량이었다.
"크윽!"
그때 갑자기 흉마가 신음성을 토해내었다.
"크아아아악!"
이내 그의 신음성은 비명으로 바뀌었고 흉마는 악을 쓰기 시작하였다.
[내가 강패는 아끼는 수하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때 귓가에서 마치 옆에서 속삭이듯이 선명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으아아아아악!"
[네놈이 마도종자라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강패를 해하려고 하느냐?]
'이연!'
그 목소리를 들은 흉마는 알 수 있었다.
귓가를 울리는 선명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연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아아악!! 자...잘못했다! 용서해다오!"
흉마는 비명성을 내지르면서 이연에게 용서를 구하였다.
온몸을 압박하는 어마어마한 내력을 참지 못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다.
[쯔쯧, 어찌 그리도 근성이 없다는 말인가]
그의 말을 들은 이연은 한심한듯 혀를 찼다.
파앗
이내 귓가를 울리던 음성을 마지막으로 온몸을 압박하던 거대한 기운이 단박에 사라져버렸다.
"하아....하아....하아..."
몸의 자유를 찾은 흉마는 그제야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호흡을 정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몸을 압박하였던 이연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이연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어...어떻게 된 것이냐.."
흉마는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강패를 바라보았다.
분명 어느곳에서도 이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이런 거대한 압박을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왜 이연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냐는 말이냐!"
흉마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길잡이를 한다고 했지. 북해빙궁으로 안내한다는 말은 안했소만?"
흉마의 물음에 강패는 유들유들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똥물에 튀겨죽일 새끼!"
강패의 말을 들은 흉마는 살기 어린 기색으로 그를 노려보며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마도종자답게 더렵기 그지 없구려."
"이연은 어디있느냐!"
"멀지 않은 곳에 계시오."
"웃기지마라! 지평선이 넘어갈 때까지 둘러봐도 이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 있다는 것이냐!"
흉마는 말도 안 된다는듯이 고개를 거칠게 저으며 고함을 질렀다.
"지평선 넘어갈때까지 안보였다면 그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겠소?"
강패는 그런 흉마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비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말도 안 된다! 분명 내 감당치 못할 거력을 느꼈거늘! 어찌 나를 이렇게까지 압박할 수 있다는 말인가!"
흉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연이 황궁제일검이라 불리우며 반선에 도달한 이라고 해도 어찌 지평선 너머에서 자신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일이었다.
"믿기 싫으면 마시오. "
거듭되는 흉마의 불신에 강패는 관심을 잃은듯 몸을 홱 돌려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으득
흉마는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강패의 태도에 이를 갈았다.
그간 북해빙궁을 차지하고 왕처럼 지내던 흉마였다.
그런 흉마에게 강패의 무시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선사하였다.
번뜩
이내 흉마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리기 시작하였다.
'두고보자, 개같은 새끼야.'
흉마는 속으로 훗날을 기약하였다.
마음같아선 지금이라도 천령개에 주먹을 꽂아 터트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어딘가에 있을 지 모를 이연이 두려웠다.
만약 강패를 죽이게 된다면 분명 이연은 자신을 오체분시하고 말 것이다.
으득
흉마는 이릏 한 번 더 갈고는 이내 강패를 따라걸어갔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흉마와 마귀대는 이내 지평선 너머까지 도달하게되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수천 명의 군사들과 오연한 자세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연의 모습을 말이다.
"충!"
쿵
이연의 모습이 보이자 강패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는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이제 오는가?"
이연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늦었습니다. 장군."
이연의 물음에 강패는 송구럽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되었다. 어찌 세상 일이 뜻대로 되더냐."
"송구합니다."
"그만 일어나거라. 보고를 듣고 싶다."
"명을 받듭니다."
이연의 명령에 강패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이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흘 전 북해호를 이잡듯이 뒤졌으나 목표인 북궁연은 결국 찾지 못하였습니다. "
"그것 참 아쉽구만 그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녀가 어디있는지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이 어디더냐?"
"북해빙궁입니다!"
이연의 물음에 강패는 자신있게 답을 하였다.
"근거는?"
"북해호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
"북해호가?!"
강패의 말을 듣던 이연은 놀라 되물었다.
북해호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바다만큼이나 넓은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호수이자 절대 얼지 않는 북해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곳이 얼어붙었다니?
"물론 전부 얼어붙은 것은 아니였으나 성인 남성 수 십이 올라타도 버텨낼 수있을 정도의 두께를 가진 얼음층이 형성 되었습니다."
"크기는 어느정도였지?"
"자그마한 마을 하나 정도는 되는 듯하였습니다."
"그래? 흐음....그렇단 말이지..."
강패의 보고를 들은 이연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심을 하기 시작하였다.
북해호는 얼지 않는다.
이는 자연의 섭리와도 같기에 북해호를 언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란 소리였다.
그런데 북해호가 얼어버렸단다.
그것도 마을 하나 정도의 크기로 말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그곳에 개입되어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쯧, 반선의 경지에 올라선 것인가? 귀찮게 됐군."
이내 생각을 마친 이연이 혀를 차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연은 알아챌 수 있었다.
북궁연이 경지를 넘어 현경에 도달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일이 생각보다 귀찮게되었다고 말이다.
현경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반선半仙이라 불리우며 자연조차 거스를 힘을 갖게되는 위대한 경지가 아니던가
그런 경지에 도달한 이가 적이되었으니 귀찮지 않을 리가 없었다.
"반...반선이라면 현경을 말하는 것이오!?"
그때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흉마가 놀란듯 되물었다.
"뭘 그리 놀라느냐, 당연한 것이 아닌가?"
"아니 어찌 북해호가 얼었다는 사실만으로 북궁연이 현경에 올랐다고 확신하는 것이오!"
흉마는 말도 안 된다며 언성을 높였다.
현경의 경지가 뉘집 누렁이도 아닐진대 어찌 이립도 안된 계집애가 도달한다는 말인가
"나야말로 묻겠다. 어찌 그녀가 반선半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흉마의 거친 반응에 이연은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녀는 천음빙백신공(天陰氷白神功)이라고 불리우는 북해빙궁의 비전무공을 익혔소! 공기마저 얼릴 수 있을 정도의 극음지기를 다루는 무공을 말이오! 북해호가 얼린 것은 그녀가 가진 무공이 특수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말이오!"
흉마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이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현경의 경지가 무엇이란 말인가
반선이라 불리우며 인간을 초월했다 일컬어지는 위대한 경지가 아니던가
그런데 고작 이립밖에 안된 계집따위가 어찌 그런 위대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인가
흉마라 불리우며 전 무림을 벌벌 떨게 만든 자신조차 그 벽에 부딪혀 절망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인가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할 리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참으로 불쌍한 자로다."
그때 이연의 연민 가득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어째서 내가 불쌍하다는 것이오."
"열등감에 찌들어 현실을 부정하고 있지 않는가? 어찌 불쌍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의 연민어린 목소리가 흉마의 심장을 사정없이 후벼파기 시작하였다.
"웃기지마! 북해호가 언 것은 그저 빙공을 익혀서 그랬을 뿐이다!"
흉마는 발악하듯 소리쳤다.
"북해호는 얼지 않는다."
그의 말을 들은 이연이 단호한 음색으로 말을 내뱉었다.
"생각을 해보아라. 그간 수많은 혹한의 추위가 불어닥치던 북해호였다. 그런데 그 북해호는 수백년 간 단 한번도 얼어붙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북해호가 얼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자연의 섭리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
"북해호가 언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지. 오직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만이 그런 위대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연은 오연한 눈으로 흉마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인간을 초월한 위대한 경지에 도달한 이다. 이는 재고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확고한 사실이지."
"............"
이연의 말을 들은 흉마의 눈이 쉴새없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의 눈빛에는 두 가지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제일 먼저 든 감정은 열등감이었다.
자신조차 도달하지 못한 위대한 경지에 다다른 북궁연에 대한 열등감이 들었다.
자신은 그 위대한 경지에 발조차 내딛지 못한 채 인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든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웠다.
그것도 미칠듯이 말이다.
자신은 북궁연의 모든 것을 앗아간 장본인이자 불구대천 원수였다.
자연마저 거스르는 위대한 힘을 갖게된 북궁연은 분명 자신을 찾아올 것이다.
처참히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어찌 두렵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십여년 동안 즐겨왔던 모든 것들을 말이다.
"두려운가?"
그때 이연의 위엄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끄덕 끄덕 끄덕 끄덕
겁이 질린 흉마는 말도 제대로 못한 채 고개만 맹렬히 끄덕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두려울 것이다. 그녀의 경지는 나조차 경시하지 못할테니까 말이다."
이연은 이해한다는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네놈과 마귀들이 그녀와 맞닥뜨리게 된다면 분명 처참하게 죽고 말것이다. 이는 자연의 섭리나 마찬가지인 일이지."
이연의 말을 들은 흉마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죽음이 한 발자국 앞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그런 흉마를 보며 이연은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떤가?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보지 않겠는가?"
이연의 눈에는 황금 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