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화 〉 295.본녀가 그리도 매력적이더냐?
"이해가 안돼."
선우는 이해가 안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말이더냐?"
"아무리 불길이 거세도 그렇지. 반시진이나 떨어진 곳에서 빙정을 흡수한다니? 너무 과한거 아니야?"
"전혀 과하지 않다."
선우의 말에 능소화는 단호하기 짝이 없는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말하지 않았더냐? 현재 본녀의 상태는 언제 터질지 모를 벽력탄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말이다. 금제를 통해 두달이라는 시간동안 화기를 강제로 꾹 꾹 억누르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로 빙궁 근처에서 금제를 푸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능소화는 침중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더욱더 큰 문제는 이 빙정이다."
능소화는 손에 든 목함을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빙정이 품고 있는 극음의 기운이 내가 품고 있는 극양의 기운과 만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 주화입마에 걸려 폭주할 수 도 있는 것이다."
"빙정만 흡수하면 불길이 치솟는 것이 고쳐지는 것 아니었어?"
선우는 놀랐다는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주화입마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론상은 그렇다. 하지만 어찌 인간사가 계획대로 되겠는가? 만일의 경우를 항상 염두해야된다. 만약 내가 빙궁 안에서 폭주를 하게된다면 어마어마한 불길이 치솟을 것이고 마을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될 것이다."
"그정도로 화력이 강하다고?"
"그대는 너무 본녀를 무시하고 있다. 본녀가 겉보기에는 현숙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아녀자로 보여도 실상은 반선이라 불리우는 현경의 경지에 근접한 무인이로다. 실상 화력만 따지자면 현경이라 칭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 내가 폭주를 한다고 생각해보거라. 대체 어찌 되겠는가?"
능소화는 답답하다는듯한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말없이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현경의 고수가 주화입마로 폭주했다고 가정했을 때의 상황을 말이다.
오싹
이내 선우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상상만해도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선우가 겪었던 현경의 고수는 네 명이었다.
절대무신 이재원과 음양마 이호선 그리고 검인과 북궁연이었다.
네 사람모두 인간을 초월한 반선半仙답게 감히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무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폭주한다고 하니 끔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재원과 스승인 이호선의 경우
제대로 된 전력을 내보인적 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검인과 북궁연은 그 경우가 달랐다.
두 눈으로 두 사람의 힘을 일부나마 확인하지 않았던가?
검인은 한철 섞인 거대한 철문은 그저 가벼이 베어버릴 정도로 경지가 높은 고수였다.
그런 그가 폭주하여 검을 휘두른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절로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든 벨 수 있는 검을 가진 그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앞에 무엇이 가로막든 검 한 자루를 들어 모든 베어낼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북궁연은 자연 그 자체를 다루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진 여자였다.
눈보라를 일으키고 사람을 순식간에 냉동까지 시키는 능력을 갖춘 그녀가 아니던가
뿐만 아니라 공기 중에 수분마저 급속 냉각시켜 물리력까지 행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선우였다.
그런 그녀가 폭주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함이 몰려들었다.
찰나에 모든 것이 순식간에 얼어붙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그들의 모습을 그리니 두려움이 절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선우는 깨달았다.
자신이 능소화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의 무공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던 탓에 평가절하한 것이다.
엄연히 현경에 근접한 그녀를 말이다.
".....끔찍하네."
이내 선우는 능소화에게 솔직한 생각을 말하였다.
끔찍했다.
현경의 고수의 폭주는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생각을 드니 반시진 거리도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겠느냐?"
선우으 태도에 능소화는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해했어. 예상보다 더욱더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야."
"이해하였으면 되었다. 답답해 죽을 뻔 하였다."
"반시진으로 충분하겠어?"
걱정이 앞선 선우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 이상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일단 최저치는 반시진 정도로 정해놓았다."
선우의 말에 능소화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선우, 그대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뭔데?"
"본녀가 빙정을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겠는가?"
능소화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하였다.
"뭐라고!?"
선우는 그녀의 부탁에 놀란듯 되물었다.
이 아가씨는 뭔놈의 부탁이 뭐그리 많다는 말인가
"너는 무슨 부탁이 그리도 많아?"
".......우우..본녀도 염치없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굳이 상기시키지 말았으면 좋곘다."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부끄러운듯 얼굴을 잔뜩 붉히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런 부탁을 하는 것자체가 무척 염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애초에 선우의 역할은 빙정을 얻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아니 이미 차고넘쳤다.
그런데 또 이런 부탁을 하니 염치가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우가 아니면 자신의 불길에서 멀쩡할 수 있는 이가 없을테니까 말이다.
"본녀에게 걸린 금제를 풀기 위해서는 누군가 반 시진간 끊임없이 특수한 구결에 따라 내력을 불어 넣어야한다. 본래라면 마 호위에게 그 역할을 시킬 심산이었는데 생각을 해보니 불길이 치솟을 경우 마호위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현경에 다다른 내 몸에서 나오는 불길이다. 고작 절정에 불과한 마호위가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나는 괜찮고?"
"그대는 기운을 되돌리는 특이한 무공을 익히고 있지 않던가? 그정도라면 본녀의 화기정도는 어렵지 않게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능소화는 확신에 찬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 못 되돌리면?"
"되돌릴 것이다."
"아니 못 되돌리면?"
"..........."
선우의 집요한 질문에 능소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선우가 공격을 되돌릴 수 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었기에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지 않은 그녀였다.
반박할 말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였다.
"흐음....어쩐다...이거.""
선우는 짐짓 고민하는듯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선우입장에서도 살짝 도박이 섞인 일이었다.
건곤대나이는 그 어떤 기운의 흐름도 마음대로 바꿔버릴 정도로 사기적인 무공이었지만 과연 현경에 다다른 능소화의 화기까지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껏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무공이긴 하였지만 만일의 경우라는게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고민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해야할지 말이다.
"....저.."
그렇게 선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져있는 찰나
능소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거."
능소화는 품안에서 무언가 꺼내더니 그대로 선우에게 건네주었다.
'뭐지?'
그녀가 건넨 물건을 얼떨결에 받아든 선우는 시선을 내려 물건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입을 턱하니 벌렸다.
물건의 정체가 익히 알고 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묘안석?!"
"본녀도 영 염치가 없지는 않다. 그리고 댓가도 없이 그대에게 부탁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받아주었으면 한다. 본녀의 성의니라."
선우는 떨리는 눈으로 손바닥 위에 있는 묘안석을 바라보았다.
영롱한 빛깔과 주먹보다 살짝 큰 크기를 보니 북궁연에게 주었던 것보다 훨씬 상급의 물건인듯 싶었다.
입을 턱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
선우의 눈이 맹렬히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부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매년 중원에 모든 이들에게 세금을 절반이상 징수해가는 것이 황궁이 아니던가
하지만 설마 이렇게 귀하디 귀한 물건을 턱하니 내놓을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눈에 그득한 욕심이 들어차기 시작하였다.
이 묘안석만 있다면 굳이 사천당가를 고집하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을 정도의 금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비상금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딜가든 풍족하게 시작할 수있는 기반이 될만큼 말이다.
욕심이 차지 않을 리 없었다.
"부디 부탁한다. 난 그대가 아니면 그 누구도 의지할 곳이 없다. 부디 부디 나를 도와다오."
그때 능소화가 고새를 숙이며 간곡한 어조로 부탁을 하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라는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 담겨져있었다.
아마 자신이 거절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듯 하였다.
'반칙이네.'
선우는 생각하였다.
반칙이라고 말이다.
저런 얼굴로 저런 눈빛으로 저런 목소리로 그리고 이런 보물로
회유하는데 안 넘어갈 이가 어디있겠는가
선우는 생각하였다.
인생 자체가 반칙이나 다름없는 여자라고 말이다.
"그러보니까 빙정을 거래하게 해준 댓가를 못받았었지?"
"......그...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것 말이더냐?"
"맞아, 아직 댓가도 못받았는데 멋대로 객사하게 놔둘 수는 없지."
선우는 스스로 말하고도 머쓱한듯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하였다.
"도와줄게."
와락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따스한 감촉이 온몸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역시 나는 그대가 아니면 안된다. 그대를 친구로 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
능소화는 선우를 와락 끌어안더니 격렬하게 기쁨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선우는 그녀의 격렬한 반응에 당황스러운듯한 감정을 느꼈다.
중원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불리우는 아가씨가 뭐 이리 덥석 덥석 안겨든다는 말인가
폭신
그때 갑자기 몸통 쪽에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폭신?'
선우는 슬며시 시선을 내려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이내 볼 수 있었다.
몸통과 닿아있는 그녀의 가슴을 말이다.
선우는 당황하였다.
아까는 우는 그녀를 달래느라 제대로 의식하지는 못하였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의식되기 시작하였다.
폭신 폭신
꿀꺽
이내 선우는 몸을 지그시 누르는 폭신한 감촉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얘, 생각보다 크구나..'
선우는 폭신한 감촉에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상을 내뱉었다.
몸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볼 때 그녀는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였다.
출산의 경험이 있는 당대부인이나 주소양처럼 어마어마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옥령이나 당서윤정도는 되는듯 하였다.
두근 두근
갑자기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였다.
당가를 떠나온지 벌써 두달이 넘었다.
그리고 자연히 두 달간 여자를 안은 적이 없는 선우였다.
남자라는 생물은 욕구를 주기적으로 배출하지 않는 생물이 아니던가
다행히 경지에 올라 그 욕구 조절할 수 있었지만 이렇듯 직접적으로 여체에 맞닿으니 조절해왔던 욕구가 슬구머니 고개를 내미는 느낌이 들었다.
'위험해.'
선우는 생각하였다.
이러다가는 상당히 민망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와 떨어져야했다.
자신의 용두龍頭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말이다.
선우는 손을 들어 그녀를 밀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생각과 달리 몸은 그녀를 이대로 놔주고 싶어 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제발 지랄좀하지마!'
선우는 거칠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에 힘을 주기 시작하였다.
이성과 본능 사이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크으윽 으으윽!'
얼마 지나지 않아 선우는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천천히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이성이 이긴 것이다.
이내 몸을 짓누르고 있던 폭신한 감촉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아'
그 감촉이 사라지자 선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밀어내긴 하였지만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 떨어져! 다 큰 처자가 외간 남자한테 안겨서 뭐하는거야!"
선우는 아쉬운 마음에 화풀이하듯 능소화에게 성을 내었다.
"그대는 내 친구가 아닌가? 친구는 괜찮다."
"너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 알아?"
"친구 사이에 남녀가 어디있는가? 그저 사람과 사람간의 포옹일 뿐이다."
선우의 말에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듯 말을 이었다.
"남자는 다 늑대라고! 이런 식으로 접촉했다간 쥐도새도 모르게 잡아먹힌다."
"괜찮다. 그대는 선우이지 않은가? 선우는 괜찮다. 그런 일을 할 리 없다."
선우의 말에 능소화는 맹목적인 믿음에 홀린 사람처럼 연신 괜찮다는 말을 남발하였다.
'아니....내가 안괜찮다고...'
그리고 그녀의 그런 맹목적인 믿음은 선우에게 부담감이 되었다.
방금 전까지 그녀에게 음욕을 품었던 자신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저런 발언을 하니 스스로가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내가 안 괜찮아. 나도 남자니까. 필요이상으로 붙지마."
선우는 올곧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기분 나빴더냐?"
"아니 너무 좋아서 문제야. 너는 친구라 여기고 안심할지 모르지만 나한테 넌 너무 매력적인 여자야. 참기 힘들다고."
선우는 자신이 느꼈던 심정을 솔직하게 말하였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선을 그을 심산이었다.
앞으로도 몇 달이고 같이할 그녀였다.
불상사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화악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순간 옥용을 능금처럼 붉혔다.
선우에게 직접적으로 저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갑자기 싱숭생숭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본녀가 그리도 매력적이더냐?"
얼굴이 잔뜩 상기된 능소화는 확인하듯 그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가까이 붙기만 해도 살떨린다고 그러니까 붙지마. 큰일 날뻔했네."
"붙으면 큰일이 나는가?"
"큰일나지."
"어떤 큰일이 일어나는가?"
능소화는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으로 선우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을 들은 선우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딴 질문은 왜한다는 말인가?
그런 선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능소화는 호기심이 서린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