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화 〉 293.그녀를 달래주다-1
선우는 무척이나 무심한 눈빛으로 능소화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
그리고 그런 선우의 눈빛을 마주한 능소화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빙정에 대한 가격 조정이 성공적으로 완료되고 선우는 그녀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따로 할 말이 있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능소화는 군말없이 그의 방으로 향하였다.
심적으로 상당수 찔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는 자신의 돌발적인 행동에 화가 났을 것이다.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를 정도로 감정적인 행동에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질책하기 위해 자신을 불렀을 것이다.
능소화는 속으로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충분히 혼날만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상하였다.
분명 귀가 따가울 정도로 자신을 질책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방에 도착한 후 선우는 무심한 눈빛으로 지긋이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심한 듯한 시선은 능소화를 더욱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질책을 하거나 혼낼거면 곧바로 해주면 좋으련만 그는 그저 침묵으로 자신을 압박하였다.
능소화의 입장에서는 언성을 높이며 호되게 질책하는 것 보다 침묵으로 압박을 주는 것이 더욱더 불편하고 두려웠다.
마치 자신에게 실망했다는듯한 태도로 보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능소화의 불편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우는 그저 침묵어린 시선만을 이어갔고 능소화는 애꿎은 땅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능소화."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선우가 입을 열었다.
"....말하거라."
능소화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답하였다.
계속되는 침묵 어린 압박에 진이 빠진듯 하였다.
"내가 너 왜 불렀을 것 같아?"
".........혼내려고 부른 것 같다."
능소화는 쭈글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맞아."
그녀의 말에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럼 네가 뭘 잘못했는지도 잘 알고 있겠네?"
".......잘못했다."
"뭘 잘못했는데?"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하지 못하고 그녀를 도발하였다."
"그것 뿐이 아닐텐데?"
"......되도않는 고집을 부려 열심히 설득한 그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또"
그녀의 말에 선우는 다시금 물었다.
".......상대적 우위를 이용하여 그녀를 압박하였다."
"그리고?"
"...........모르겠다."
선우의 물음에 능소화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진짜 몰라?"
"더는 모르겠다.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말이다."
선우의 거듭되는 질문에 능소화는 울상을 지으며 답하였다.
더는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자신의 잘못은 모두 나열하지 않았던가?
대체 어떤 잘못이 더 있다는 말인가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었잖아."
그녀의 모습을 보던 선우는 입을 떼었다.
".......미안하다...내 고집이 그대의 목숨을 해할뻔 하였노라.."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더욱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자신의 철없는 행동이 그의 목숨을 위협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듯하였다.
북궁연은 반선이라고 불리우는 현경에 다다른 고수였다.
그런 여자의 분노를 샀으니 선우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갔다.
친구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나섰는데 목숨을 위협받게 되었으니 화가 나지 않을 리 있겠는가?
능소화는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에게 사죄를 하였다.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말이다.
"내 목숨 때문이 아니야."
그녀의 사과를 들은 선우는 전혀 다른 소리를 하였다.
"그..럼..대체?"
선우의 답을 들은 능소화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에게 되물었다.
"내가 화가 난 건 네가 너 스스로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야."
선우는 짐짓 화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또박 또박 말을 이었다.
"죽다살아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긴 한 거야? 아무리 감정이 남아 있다지만 이성적인 생각은 해야되는 거 아니야? 너는 지금 약해. 북해궁주가 손 한번만 휘저으면 그대로 생명이 위급할 정도로 연약하단 말이야. 그런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궁주를 도발한거야? 목숨이 여러 개라도 돼? 아니면 여차하면 군주라는 신분을 밝혀 위기를 모면할 심산이었어?"
선우는 열이 차올랐는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지금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지금 능소화는 삼류무인조차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하디 약한 상태가 아니던가
그런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반선半仙이라고 불리우는 경지에 도달한 북궁연과 대치를 한다는 말인가
지금 능소화와 북궁연의 간극은 인간과 개미만큼이나 거대하기 짝이 없는 격차를 가지고 있었다.
과장을 보탠다면 북궁연이 입김만 불어도 능소화는 생을 달리해야할 정도의 격차를 지닌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도발하고 대치하며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말인가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가
금제만 풀리면 자신도 못지 않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여차하면 군주라는 신분을 드러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인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저 생각나는대로 감정에 이끌리는대로 행동했던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그녀의 행동은 어리석었으며 위험을 초래하였다.
이는 질타받아 마땅한 일인 것이다.
"......미안하다."
선우의 질타에 능소화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선우의 날카로운 음성이 마음 속 깊을 곳을 콕 콕 찔렀기 때문이었다.
"됐어! 사과는 나말고 너 스스로한테나 해!"
선우는 아직도 분이 안플렸는지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눈가에 물기가 젖어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화난 선우는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그녀였다.
짓궃은 장난을 치며 자신을 놀려먹긴 하였지만 선우의 장난 속에 숨어있는 다정함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런 그가 거칠게 언성을 높이며 자꾸 질타를 하니 두려움이 올라왔다.
자신에게 실망한 선우가 자신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말이다.
그녀에게 선우는 삶에서 처음 사귄 또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자신을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이내 슬픔으로 승화되어 그녀의 눈가를 젖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싫었다.
너무 싫었다.
선우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말이다.
자신을 소중하다고 해주었던 이였다.
자신의 신분따위는 전혀 상관치 않는 특별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렁 그렁
눈물이 그렁 그렁 맺혔다.
주르륵
그리고 그렁 그렁 맺혀 있었던 그녀의 눈물 한방울이 그대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르륵 주르륵
그 한방울의 눈물을 시작으로 이내 쉴새없이 눈물들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하였다.
"흐극....흑....흐극...흑...흑."
결국 능소화는 울음을 참지못하고 그대로 터트렸다.
이내 방안에는 그녀의 울음소리가 가득차기 시작하였다.
"흐으윽..,,,미안....하다.흐흑..본녀가...흐극..잘못했다...흑흑"
울음을 터트린 능소화는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선우에게 사과를 하였다.
"............"
그리고 그녀의 울음기 섞인 사과를 들은 선우는 입을 꾹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당혹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녀를 눈물 콧물 쏙 빠질만큼 호되게 질책하리라 다짐했던 그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능소화를 몰아부치며 호되게 다그쳤다.
다시는 이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설마 그녀가 눈물을 흘릴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이건 선우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선우는 당황했다.
예상치도 못한 일은 사람의 뇌를 일시적으로 정지시켜버린다.
순간 사고가 정지가 되었다.
그만큼 능소화의 눈물은 파격적이다 못해 경악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능소화가 누구란 말인가
중원에서 더할나위없이 존귀하다고 여겨지는 천자天子의 핏줄이자 군주라는 지위를 가진 황족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아직 이립도 안된 나이에 반선이라고 불리우는 현경에 경지에 다가간 찬란한 재능마저 갖춘 팔방미인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그녀가 눈물을 흘린다는 말인가
한낱 범부인 자신의 질책에 의해서 말이다.
이해가 안되었다.
그리고 당혹스러웠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할지 감이 안잡혔기 때문이었다.
".......흐흑....흑...흑..흐극"
그렇게 선우가 당혹스러운 감정에 빠져있는 동안 능소화의 울음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선우는 생각하였다.
그녀를 달래야겠다고 말이다.
"알았어..알았으니까....그만 울어..."
선우는 울음을 터트린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흐흐윽....흐흑...흑,....흑"
하지만 선우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능소화는 울음은 그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진짜 알았다니까? 울지마....제발 울지마."
선우는 서럽게 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간곡히 청하였다.
선우는 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선우가 생각하는 능소화는 언제나 당당하고 엉뚱하며 배려심과 자존감이 넘치는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이 슬픔에 젖어 울음을 토해내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흐흐흐흐흑… 흑흑 흑흑."
선우의 간곡한 청에도 능소화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 북받친 감정은 도무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울었다.
쉴새없이 울고 또 울었다.
이십 팔년 간 제대로 울어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울음을 멈추는 방법따위를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서럽게 울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다 떠안고 있는 슬픔의 여신처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을었을까?
꼬옥
갑자기 몸에서 뜻밖에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온몸에 따뜻한 온기가 온몸에 전해지며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뚝
순간 능소화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이 갑작스러운 감촉이 포옹이고 그 주체가 선우라는 것에 경악하였기 때문이었다.
"미안해....내가 잘못했어..그러니까 그만 울어."
그리고 귓가에 선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대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인가?.....잘못한 것은 나다..."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아직 진정이 안되었는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무 화를 낸 것 같아. 미안해....좀더 부드럽게 말해야 했는데...."
"아니다...그대는 잘못이 없다...그저...내가 미성숙한 탓이다.."
선우의 사과에 능소화는 고개를 도리질치며 말하였다.
잘못한 것은 자신인데 어찌 그가 사과를 한다는 말인가.
"그대가...나를....싫어한다해도..본녀는...할 말이 없다.....본녀는 감정에 휘둘려 그대에게 실망을 주었다."
능소화는 그렁한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목소에는 울음기가 가득하였다.
"내가 왜 너를 싫어하겠어?"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짓말 하지 말거라!..분명..그대는 내게 실망하였을 것이다..생각이 짧은 계집이라 속으로 경멸을 하고 있을 것이다.."
능소화는 말을 하면서도 서러움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더욱 글성였다.
"안 싫어해."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하였다.
"내가 어떻게 너를 싫어할 수 있겠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친구인데?"
".............정..말..이더냐?"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물기젖은 눈빛으로 선우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정말이고 말고"
"하지만...그대는 평소와는 달리 언성이 높았고 음색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그리고 장난기도 없었고....또...또"
능소화는 선우의 몇 가지 행동들을 떠올리듯 말하며 횡설수설하게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쓰윽 쓰윽
"많이 놀랐지?"
선우는 그런 능소화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녀의 타는듯한 붉은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미안해, 그냥 네가 너무 걱정되서 그랬어. 네가 다칠까봐. 네가 목숨을 소중히하지 않을까봐. 너무 걱정되서 그랬어. 결코 네가 싫어서 그런게 아니야."
"............정말로 그런 것이더냐?"
능소화는 확인하듯 선우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정말로...그대는...본녀가...소중하였기에 그리 대했던 것이더냐?"
능소화는 떨리는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정말이야. 천지신명에 맹세할 수 있어."
선우는 확신에 찬듯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흐흐흐흐흑..흑흑...흑"
그런 선우의 목소리에 긴장이 풀린 것인지
그리고 선우의 넓직한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다시금 울음을 터트렸다.
"흐흐흐흑...본녀는...본녀는...그대가...나를...싫어하는줄...알고.."
능소화는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선우에게 말하였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내가 어떻게 너를 싫어해?."
"...흑...흑..다행이다...너무 다행이다...흐그흑.."
선우의 가슴팍이 능소화의 눈물로 적셔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런 능소화를 더욱 부드럽게 끌어안고는 천천히 등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진정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능소화는 눈물이 마를때까지 한참을 선우의 품에 안겨 마음을 다독였다.
두 사람의 포옹은 상당한 시간이 지날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