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화 〉 290.나한테 씨를 주지 않을래?
두근 두근
북궁연은 심장이 두근 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기분은 태어나 처음 드는 기분이었다.
곧이어 온몸을 달구는 흥분감이 서서히 온몸을 감싸기 시작하였다.
북궁연은 생각하였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흥분했었던 적이 과연 언제였을까하고 말이다.
천음빙백신공(天陰氷白神功)을 처음 전수받았던 날일까?"
현경에 올라 반선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일까?
북궁연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시작에 대한 설렘과 성취에 대한 흥분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이건 연정戀情이었다.
이십팔년이라는 세월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본적 없는 감정이 개화한 것이다.
"혹시 말이야, 너도 이주해올 생각 없어?"
북궁연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선우의 귓가를 울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방금 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갑고 무심하기 그지없던 목소리는 농염하고 매혹적이면서 끈적끈적하게 바뀌어져 있었다.
"..........."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선우는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일 듯이 개지랄을 했으면서 갑자기 왜 저런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응? 잘해줄게."
선우가 답이 없자 북궁연은 더욱더 농염한 목소리로 선우를 졸랐다.
그리고 그 농염함은 선우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 충분하였다.
거듭 말하지만 북궁연은 인세에 다시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눈처럼 하얗기 그지없는 머리와 새하얀 눈썹 그리고 큰 눈에 청명하기그지없는 푸른 눈동자, 신이 직접 조형한듯 보이는 오똑한 코와 갸름하면서도 조막만한 얼굴 그리고 화룡점정을 장식한 붉게 상기되어 있는 입술을 가진 그녀는 마치 인세에 강림한 여신과도 같은 절대적인 미美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무협지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수많은 여인들을 만나왔던 선우였지만 북궁연과 비견될 만한 여인은 오직 능소화정도 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녀는 절대적인 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여자가 농염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비음까지 내며 자신을 졸랐다.
어찌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꿀꺽
선우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정색을 하며 굳게 닫아뒀던 입매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표정이 풀릴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네 말에 동의해. 지금 빙궁에는 빙정보다는 돈이 필요해. 그리고 사람도 필요하지. 네 말대로 적극적으로 이주 정책을 펼쳐 젊은 부부들을 받아들일 생각이야. 그리고 그들에게 출산을 장려할 생각이기도 하고 말이야. "
저벅 저벅
어느새 옥좌에서 내려온 북궁연은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선우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말이야."
저벅 저벅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궁주인 내가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어?"
북궁연의 신형이 더욱더 가까이 오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처녀라서 말이야."
저벅 저벅
"아는 남자도 없고 말이지."
저벅 저벅
"모범을 보여주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네."
뚝
이내 북궁연의 발걸음이 선우의 코앞에서 멈춰섰다.
"그래서 말인데."
북궁연은 섬섬옥수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기 짝이 없는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쓰담 쓰담
그리고는 선우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나한테 씨를 주지 않을래?"
그녀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씨...씨요?"
그녀의 물음에 당황한 선우는 재빨리 반문하였다.
씨라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씨? 무슨 씨? 배추씨? 수박씨? 사과씨? 참외씨? '
갑작스럽게 일어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선우의 뇌는 정지가 왔다.
그리고 온갖 상념들이 폭주하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분명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말이다.
아니면 그녀가 정말 식물의 씨앗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짜고짜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 그럴 것이다.
그때 갑자기 북궁연이 얼굴을 갖다대었다.
'뭐야!?'
깜짝 놀란 선우는 당황하였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얼굴은 선우의 얼굴을 지나 그의 귀 근처에 멈춰섰다.
"그래, 씨앗, 건강하기 그지없는 너의 씨앗말이야. 네 아이를 낳고 싶어."
북궁연은 농염하기 그지 없는 매혹적인 목소리로 선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그녀의 농밀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와 뜨거운 숨결에 속삭여진 선우는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선우는 북궁연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였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천하 제일과 제이를 다투는 절세의 미녀가 이렇듯 뜨거운 숨결로 유지하는데 어찌 싫을 수가 있겠는가
좋았다.
미친듯이 좋았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자신이 상경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부동심이 곧바로 깨지고 자지가 미칠듯이 팔딱 뛰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아...그....저.."
심장이 너무 떨려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네 아이를 낳게 해줄거야?"
쿵
그때 북궁연의 후속타가 들어왔다.
그녀가 내리찍은 후속타는 너무나도 강렬하였다.
권강을 있는대로 두른 황보강이 심장을 뚫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선우는 서서히 표정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아이 정도는 낳게 해줘도 되지 않을까라는 망측한 생각마저 떠올랐다.
탁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손이 선우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던 북궁연의 팔을 붙잡아버렸다.
"그만하거라."
이내 그녀의 팔을 붙잡은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고풍적이고 위엄이 있었다.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저 팔을 붙잡은 이의 정체가 능소화라는 사실을 말이다.
"무슨 짓이지?"
팔이 잡힌 북궁연은 차가운 시선으로 능소화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가 곤란해 하고 있지 않더냐!"
능소화는 짐짓 화난듯한 표정으로 북궁연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무슨 상관이지?"
북궁연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혹시 가족이야?"
"아니다!"
"그럼 부인?"
"그도 아니다!"
"그렇다면 연인?"
"그것도 아니다!"
"그럼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왜 나를 방해하는 거지?"
"나는 그의 친구다!"
북궁연의 말에 능소화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물론 그녀의 말대로 자신은 선우의 가족도 부인도 연인도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히 그에게 상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은 선우의 친구였으니까 말이다.
능소화는 보기가 싫었다.
저 얼음덩이같은 여자가 선우에게 다가가는 것이
끈적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선우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이
전부 싫었다.
"친구면 친구의 행복을 바라는게 어때?"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네가 어떻게 알아?"
북궁연은 능소화의 반응이 짜증났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얼음이 차가운지 아닌지는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북궁연의 짜증 어린 물음에 능소화는 언성을 높이며 말하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 사갈같은 여자를 어떻게든 선우와 떼어놓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거 알아? 얼음이 너무 차가우면 되려 뜨거움이 느껴지는거?"
"관심없다! 어서 선우에게 떨어지거라!"
능소화는 얼굴을 잔뜩 붉히며 말을 이었다.
"버릇없네."
"버릇없는 것은 그대이다. 어찌 그리 무도하게 군다는 말인가!"
북궁연은 차갑기 그지 없는 눈빛으로 능소화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능소화 또한 지지 않겠다는듯이 뜨겁기 그지 없는 눈빛으로 북궁연을 노려보았다.
두 여인은 말없이 서로의 눈빛을 노려보며 대치를 이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너 괜찮겠어?"
싸늘한 눈빛으로 능소화를 노려보던 북궁연이 입을 열었다.
"뭐가 말이더냐!"
그녀의 물음에 능소화가 외치듯 반문하였다.
"나한테 이렇게 반항해도 괜찮냐는 의미야."
"흥, 그대에게 반항하면 안될 이유라도 있더냐?"
그녀의 말에 능소화는 콧방귀를 뀌며 답하였다.
"너 빙정을 원하고 있잖아? 그런데 태도가 영 아니네?"
북궁연은 싸늘한 미소로 능소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 말대로 빙정을 얻기 위한 태도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좀더 비굴하게 기어봐. 그래야 내가 빙정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어?"
북궁연은 악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능소화에게 말하였다.
으득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이빨을 갈았다.
화가 났다.
저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태도가 말이다.
빙정은 필요하다.
태초의 화공이라고 일컬어지며 열화태양신공의 원본인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의 부작용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였으니까 말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군주의 신분따위는 잊은 채 얼마든지 떠받들어줄 수 있었다.
자신의 미래가 걸린 일인데 어찌 그런 것 하나 못하겠는가?
참을 수 있었다.
저런 수치와 모욕쯤은 얼마든지 말이다.
세상일이 어디 뜻대로만 되겠는가
자신이 존귀한 신분을 타고났다고는 하지만 언제든 굽히고 타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타협할 수 없는게 생겼다.
"일단 이 건방진 손부터 놓는게 어때?"
바로 눈앞의 여자가 멋대로 선우를 만지작 거리며 유혹하는 일이었다.
그것만큼은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으며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열불이라는 것들이 치솟아 견딜 수가 없었다.
어찌 계집이 그리도 천박하게 말을 하며 사내를 유혹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왜 하필 그 사내가 선우라는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 싫었다.
"싫다."
능소화는 북궁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뭐? 감당할 수 있겠어? 빙정이 날아갈텐데?"
북궁연은 재밌다는듯이 능소화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빙정 따위는 필요없다! 그러니 내 친구에게 손댈 생각 말거라!"
능소화는 매서운 시선으로 북궁연을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어?"
능소화의 격한 언성에 북궁연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분명 후회할 것이다!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내 감정에 충실할 심산이다. 나는 그대가 선우를 멋대로 하려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고 싶지 않다!"
"대체 네가 뭔데 참견이냐고?"
"그의 친구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친구 말이다!"
"친구 주제에 왜 주제넘게 남녀간의 애정사까지 관여하는데?"
"그건 애정이 아니다! 그대의 반반한 외모로 유혹하는 것이 아니던가! "
"유혹도 애정이 있으니까 하는거지. 내가 창관의 여급도 아니고 아무 남자한테나 그러겠어?"
북궁연은 불쾌하다는 듯이 능소화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떳떳하다면 적어도 일을 마무리 지어라! 지금 그대가 하는 유혹은 상대적 우위를 빌미로 선우를 압박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능소화는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좋아. 마무리 짓지. 빙정은 없어. 그러니까 너는 꺼져!"
능소화의 말에 화가난 것일까
북궁연은 잔뜩 성이난 얼굴로 능소화를 노려보며 쏘아부치듯 말하였다.
"알겠다. 선우 돌아가자. 이 여자는 도통 말이 안통하는구나."
터업
말을 마친 능소화는 재빨리 선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어..어.."
선우의 몸이 힘없이 그녀에게 끌려갔다.
터업
"누구 마음대로! 선우는 두고 가!"
선우의 몸이 속절없이 끌려가자 북궁연이 반대쪽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속절없이 끌겨가던 선우의 몸이 그대로 멈춰서게 되었다.
양쪽에서 팔을 잡고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놓거라!"
"너야말로 놔!"
"아니 어찌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 것이냐! 축객령을 내린 것은 그대가 아닌가?"
"내가 꺼지라고 한 사람은 너뿐이야!"
"애초에 용건이 없는데 왜 남아있으라는 말이더냐!"
능소화는 짜증이 난다는듯 그녀에게 소리쳤다.
"유혹하려고 그런다!"
"무슨 유혹을 자랑스럽다는듯이 말하는가!"
"그게 뭐 어때서!"
"그대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없는 것인가?"
"유혹이 왜 부끄러운거지? 애정의 연장선이잖아?"
"어찌 아녀자가 그런 천박한 일을 한단 말이더냐!"
"그럼 멍청하게 남자가 알아서 알아주길 기다리라고?"
"그런 말이 아니지 않느냐!! 애정이란 좀더 마음을 나누는..."
"너"
북궁연은 능소화의 말을 끊은 후 그녀를 불렀다.
"연애 해본 적 없지?"
"..........."
북궁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입을 꾹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저 말이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꼭 연애도 안해본 것들이 마음이 어쩌고 사랑이 어쩌고 하면서 꿈꾸듯 말하더라."
"............"
"내가 보기에는 네가 지금 딱 그런 상황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해?"
북궁연은 악의적인 미소를 지은 채 능소화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혼인 전 순결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녀의 물음에 능소화는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우와, 너 정말 천박한 여자구나?"
그녀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감탄하듯 그녀에게 말하였다.
"뭐라!?"
"생각하는게 천박하잖아. 연애가 꼭 순결을 더럽히는 짓인 것처럼 말하는게 말이야."
".............."
"나도 혼인 전 순결을 지키는 것은 찬성이지만 누군가와 연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행위조차 금하는 것은 너무 고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북궁연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으득
그리고 그녀의 미소를 본 능소화는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