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화 〉 289.너도 이주해올 생각 없어?
"제대로 말해. 대체 어디가 엉망진창이라는 거지? "
북궁연은 성난 얼굴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선우의 딴지가 이해가 안되었다.
문파의 제자들을 육성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있다는 말인가
또한 그리고 제자를 선별해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보호세 명목으로 돈을 거둬들이는 것은 북해빙궁에서 대대로 이어져오던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 계획이 엉망진창이라는 망언을 한다는 말인가
이해가 될리 만무하였다.
북궁연은 생각하였다.
선우가 괜한 꼬투리를 잡는다고
분명 꼬투리를 잡아 빙정을 홀라당 먹어버릴 심산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았다.
만약 납득가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괘씸죄로 얼음 동상으로 만들어버릴 심산이었다.
"애초에 처음 계획하셨던 것부터 잘못 되었습니다."
선우는 담담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뭐라고?"
"마을에서 제자를 선별하여 받아들인다는 계획 말입니다."
"그 계획이 어째서 잘못 된거지?"
그녀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으로 선우에게 되물었다.
"궁주님께서는 마을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선우는 침중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마을에는 북해빙궁의 제자로 들어갈만한 이가 전혀 없습니다."
"제자가 없다니?!
"현재 마을에는 무공을 익힐 만한 어린 아이가 전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뭐라고?"
선우의 말에 북궁연은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린 아이가 없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째 사람이 사는 곳에 아이가 없다는 말인가
이해가 안되었다.
"오늘 부득이하게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알게된 사실입니다."
선우는 검인을 찾아 마을을 이잡듯이 돌아다니면서 알게된 사실을 말하였다.
"이십여 년전 흉마가 마을을 점령하자마자 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선우는 북궁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모르겠어."
선우의 물음에 북궁연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초야권初夜權"
선우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혼인을 치르는 신부는 신랑과 잠자리를 하기 전 무조건 자신과 먼저 잠자리를 해야한다는 규칙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
"혼인율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고 그에 따른 출산률 또한 비례하여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흉마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게 정말이야?
"아무렴요. 사실입니다. 게다가 초야권을 치른 신부들은 마귀대의 마귀들에게 윤간까지 당하게되니 누가 혼인을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리고 혼인이 없이 누가 이 지옥같은 곳에 아이를 낳고 싶겠습니까? "
선우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북궁연을 노려보며 빙궁의 속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선우의 눈빛에는 어찌 궁주라는 작자가 외인인 자신보다 속사정을 모르냐는 질타가 섞여 있었다.
"북해 빙궁의 제자로 들어가는 것은 물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세상에 다시 없을 신공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사람자체가 없는데 어찌 제자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
선우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부끄러움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북궁연은 마을에 온지 정확히 사흘정도 되었다.
온지 하루 만에 모든 마귀대의 마귀들을 죽여버렸고 그 후에는 그들과 결탁한 이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얼음 동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가만히 기다렸다.
흉마가 돌아오기를 말이다.
그러는 동안 북궁연은 단 한번도 마을에 관한 물음을 던진적이 없었다.
흉마와 마귀대의 마귀들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어떤 방식으로 착취를 하였는지
인구는 어떻게 되는지
나이대별 분포는 어떻게 되는지
달마다 벌어들이는 수입은 어느정도 되는지
그 무엇하나 물어본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저 은원을 정리한 후 북해빙궁을 정리할 생각만 가득했을 뿐이었다.
몰랐다.
마을에 그런 비사가 숨겨져 있었는지 말이다.
부끄러웠다.
마을에 들어온지 하루밖에 안된 외인조차 아는 것을 몰랐던 자신이 말이다.
북궁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대체 뭐가 북해의 지배자고 뭐가 북해의 지존이란 말인가
휘하에 있는 마을의 사정조차 모르는 자신이 어찌 북해를 다스린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창피했다.
당장에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선우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엉망진창이었다.
자신이 세운 계획은 처음부터 틀어져 있었다.
그녀는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십여년 간 마을은 저출산을 기록하였고 고령층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마을의 생산 인력은 중장년층에 분포되있습니다. 이 상태로 세월이 흐르게 된다면 그들은 고령층이 될 것이고 마을에 생산 인력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게 되겠지요. 결국 세금조차 거둘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태평하게 보호세를 걷고 문파를 재건하겠다니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선우는 신랄한 어조로 그녀를 비난하였다.
사정이 열악하기 짝이 없는데 어찌 과거의 영광만을 생각하고 태평하게 군다는 말인가
선우는 생각하였다.
무공이 높은 것과 현실을 파악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이상주의자였다.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이상만을 꿈꾸는 이상주의자 말이다.
선우는 시선을 올려 북궁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도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대책없이 꿈만 꾸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생각지 못했어.."
그때 북궁연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침울한 표정으로 말이다.
".........마을에 그런 비사가 있었는지..."
그녀는 조용한 음색으로 말을 읊조렸다.
그녀의 음색에는 부끄러움이 가득하였다.
그녀는 부끄러웠다.
마치 벌거벗은 몸을 그들에게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자신을 얼마나 무식하다고 생각했을까?
자신을 얼마나 생각이 짧다고 비웃었을까?
알 수 없었다.
알 수는 없었기에 너무 부끄러웠다.
현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올랐기에 상당수의 감정이 옅어진 그녀였지만 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 드높은 자존심과 자부심에 금이가고 만 것이리라
"네 말이 맞아....난 엉망진창이야....엉망진창..."
처음 그 위엄 넘치고 악의적인 모습을 온데간데 없어졌다.
지금은 그저 스스로의 허물을 부끄러워하는 한 여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정도면 충분하려나?'
선우는 생각하였다.
이정도면 충분히 몰아세운게 아닐까하고 말이다.
"크흠 크흠"
선우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이제 채찍질은 충분히 하였으니 당근을 줄 차례였다.
아주 먹음직스러운 당근을 말이다.
"궁주님."
".......왜."
선우의 부름에 북궁연은 시무룩한 목소리로 답하였다.
"계획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짤 수 는 없습니다.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쳐가면서 완성에 가깝게 만드는 과정을 거치는 거지요."
선우는 눈을 반짝이며 북궁연에게 말하였다.
"지금 궁주님은 시행착오를 거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사전조사조차 제대로 안되있는 상태에서 어찌 완벽한 계획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선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바라보며 위로를 하였다.
"난 궁주 자격이 없어......어찌 궁주라는 작자가 다스리는 곳에 대한 속사정을 외인보다 모를 수 있겠어?"
선우의 부드러운 위로에도 불구하고 북궁연은 더욱더 자책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닙니다. 궁주님이 아니라면 누가 북해를 다스리는 지고한 위치에 오르겠습니까?"
선우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눈빛이 워낙 담담하여 오히려 신뢰가 가는 그런 눈빛이었다.
".............."
"궁주님도 궁주자리에 오른 지 사흘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까? 세상에 어떤 이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해낼 수 있겠습니까? 처음이니까 넘어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똑바로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이지요."
"..........."
선우의 부드러운 위로에 북궁연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리 위로를 들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생각하였다.
쇄기를 박자고 말이다.
"궁주님"
"...말해"
"제가 살짝 건방진 말씀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응"
"지금 북해빙궁에 필요한 것은 빙정이 아닙니다. 돈이지요. 돈만 풍족하다면 제자 문제 따위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선우의 거듭되는 언변에 신뢰가 생겼는지 북궁연은 성을 내기 보단 방법을 물었다.
"북해빙궁에 사람이 없다면 사람을 들이면 될 일입니다. 중원에서 사람을 영입하면 될 일이지요.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가 부른다고 올까?"
북궁연은 자신없다는듯 선우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돈이 필요한 것이지요.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이주 정책을 펼친다면 안오고 배기겠습니까? 현재 중원에는 가축보다 못한 삶을 보내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북해빙궁의 적극적인 이주 정책은 어두운 밤에 비치는 한줄기 달빛이 될 것입니다."
선우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더욱더 매끄럽게 혀를 놀리기 시작하였다.
이미 물은 들어왔다.
여기서 더욱더 빠르게 저어야했다.
"그들이 과연 이 춥디추운 북해까지 이주를 할까?"
북궁연은 걱정된다는듯이 말을 이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궁주님께서 충분한 자금만 투자하신다면 너도나도 북해로 달려올 것입니다. 적극적인 이주 정책을 펼치는 것입니다. 대상은 이제 막 혼인을 한 가난한 신혼 부부들을 대상으로 말이지요. 일단 정착 지원금부터 준다고 하는겁니다. 그럼 모두들 솔깃해 할 겁니다. 그리고 일자리 또한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도록 말이지요."
"대체 어떤 일자리를 주어야하지? 모르겠어."
북궁연은 모르겠다는듯이 선우에게 물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지금 양조장이나 대장간과 같은 기술직들은 지금 은퇴를 미루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체 인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젊은 일꾼들이 온다면 그들은 일을 물려주고 은퇴를 할 수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을 기술직으로 전향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기술직은 숫자가 한정 되어있잖아."
"괜찮습니다. 북해에는 그 외에도 할 일이 많으니까요. 북해빙궁은 지리적으로 북해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북해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은 중간에 무조건적으로 빙궁을 지나치고 가지요.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겁니다."
선우는 반짝이는 눈으로 북궁연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그들에게 북해빙궁은 필연적으로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이니 기존보다 비싼 가격으로 벗겨먹어도 무방할겁니다. 두배..아니 네 배는 받아먹어도 없어서 못 살겁니다."
"............그게 정말이야?"
"당연하지요. 보통 북해에 오는 이들은 대형상단들입니다. 그들은 돈이 많지요. 돈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반발은 하지 않을까?"
"반발이라뇨 북해빙궁을 들리지 않고는 제대로 정비할만한 곳이 없는데 어찌 반발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런 자들이 있다면 사정없이 내쫓아버리시면 됩니다. 그럼 모두 별말없이 수긍하게 될 것입니다."
선우는 북궁연에게 북해빙궁이 가지는 지리적인 이점과 그 이점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북해빙궁은 요충지였다.
북해와 거래를 트고있는 수많은 상인들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교통의 요충지 말이다.
그 이점을 잘만 이용한다면 기존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 중 일부를 세금으로 치환하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금 돈이 모일 것이고 그 돈으로 다시 이주 정책을 펼치는 것입니다. 그럼 인구 수가 더욱더 증가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종국에는 북해빙궁의 부흥기를 이끌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선우는 확신에 찬듯한 표정을 지으며 북궁연에게 말하였다.
"이 모든 계획을 실현시키기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 말이지요. 그리고 궁주께서는 그 돈을 융통할 수 있는 귀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빙정 말입니다! 궁주님 진지하게 심사숙고 해주십시오. 이십년 뒤 영광을 얻게 될 것인지 절망을 얻게 될 것인지는 오로지 궁주님꼐 달려있습니다! 저는 궁주님께서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선우는 뜨겁기 그지없는 눈으로 북궁연을 바라보며 열변을 토해내었다.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힘있고 자신감이 넘쳐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신뢰를 가지게 만들었다.
"..............."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멍한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정신 나간 미친놈인줄 알았던 인간이
주제도 모르고 건방지기 짝이 없다고 느껴졌던 인간이
다르게 보였다.
두근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당황하였다.
단 한 번도 이런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경에 오르고 수많은 감정이 결여된 그녀였다.
더욱이 그녀가 익힌 천음빙백신공(天陰氷白神功)은 익힌 이의 감정을 차갑고 무미건조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뛰었다.
이런 감정은 이십 팔년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자에게 가슴이 뛰다니 말이다.
애초에 후사를 위해 혼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쁘지 않은 씨를 가진 남자와 관계를 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녀였다.
감정이 대부분 마모된 그녀에게 순결이나 애정 따위는 큰 의미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이 바뀌었다.
씨를 받고 싶어졌다.
순결을 바치고 싶어졌다.
눈앞의 저 남자에게 말이다.
"........하아"
뜨거운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던 북궁연이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참기 힘들었다.
온몸에 저릿 저릿한 감각이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혹시 말이야."
그녀는 저릿한 감각을 참아내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너도 이주해올 생각 없어?"
그녀는 고혹적인 입술을 핥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혹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갑자기 저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