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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87화 (288/1,419)

〈 287화 〉 288.돈만 쥐어준다면 사랑조차 살 수 있습니다.

"저에게 일각이라는 시간을 주십시오. 궁주님을 납득 시키겠습니다."

선우는 북궁연을 확신에 찬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북궁연은 어이없다는듯이 쳐다보았다.

선우가 내지른 발언에 당혹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돈으로 빙정은 물론 북해빙궁의 미래까지 살 수 있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북해빙궁의 미래가 어디 시장에서 거래되는 나물도 아니고 어찌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는 것인가

그녀는 이해가 안되었다.

저 정신 나간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리고 무슨 자신감으로 저딴 말을 짓거리는지 말이다.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는 것일까?

북궁연이 보기에 선우는 기껏해야 화경 상경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이었다.

물론 그 또한 지고한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이미 반선의 경지라고 불리우는 현경에 이른 그녀 입장에서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경지인 것이다.

그런데 대체 뭘 믿고 저리도 함부로 말한단 말인가?

혹여 검인이라는 남자를 믿는 것일까?

하지만 이내 북궁연은 고개를 살짝 좌우로 저었다.

검인이 숨어서 대기하고 있었다면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검인은 없었다.

어디에도 말이다.

북궁연은 의문이 더욱더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가

이내 의문은 강렬한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호기심은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마음같아선 당장에라도 얼음 동상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그전에 변명 정도는 들어도 될 것 같았다..

"납득시켜봐. 대신 납득이 안된다면 본 궁주를 희롱한 것으로 간주하고 얼음덩어리로 만들어주지."

북궁연은 선우를 바라보며 스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목소리에는 차갑기 그지 없는 싸늘함이 담겨져 있었는데 어찌나 싸늘한지 멀리 떨어져있음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꿀꺽

그런 그녀의 싸늘한 목소리를 마주한 선우는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그녀의 싸늘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서 어마어마한 한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말을 듣고 납득이 안된다면 분명 자신을 얼려버리리라

선우는 생각하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납득시켜야겠다고 말이다.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올곧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궁주님은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돈을 그저 유형의 물체만 사고 팔 수 있는 매개체로만 여기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더냐!"

"돈은 모든 것을 살 수 있습니다. 식량과 귀금속 그리고 의복 같은 형태를 갖춘 것 이외에 형태가 없는 것들까지 모두다 말이죠."

"거짓말, 형태가 없는 것을 어찌 돈을 주고 살 수있다는 거지?"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모든 돈으로 살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사람의 감정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이지요. 돈만 쥐어준다면 사랑조차 살 수 있습니다."

"궤변이야, 돈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진실된 관계라고 생각해?"

"진실마저 돈으로 사면 됩니다."

"그게 무슨 억지지?"

"사랑이 진실되지 못하다고요? 그건 돈이 부족해서 그런겁니다. 더 큰 돈을 쥐어 줘보세요. 열렬히 사랑하다 못해 불구덩이 속에라도 뛰어들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사람이 인생에서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돈이 아닐진대 어찌 그걸 확신하지?"

"그럼 인생에서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란 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야.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니까. 하지만 적어도 돈은 아니라고 생각해."

"저도 동의합니다. 돈은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필수적인 거니까요."

"어떻게 말이 그렇게 되지?"

북궁연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개같은 논리란 말인가

"인간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던 결국 그 밑 바탕에는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돈은 인간의 삶과는 뗄레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얽혀 있는 관계죠."

"헛소리야."

선우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도리질치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에 돈이 필요 할 리 없잖아!"

"그럼 반박할만한 예시라도 있습니까?"

선우는 비웃듯이 미소를 살짝 지으며 말하였다.

".....중원에는 심산유곡에 처박혀 도道만을 갈구하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다."

"도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도사, 그들은 오로지 도道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평생을 심산유곡에서 수련을 한다. 그런 그들에게 돈이 필요 하겠는가?"

"필요합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도사들도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일진대 어찌 돈이 필요치 않겠습니까?"

"뭐라고?"

"그들이 직접 쓰지는 않는다해도 그들이 입고 있는 도복과 그들이 섭취하는 벽곡단 그리고 누워쉬는 침상까지 어떤 것 하나 돈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돈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탕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식으로 따진다면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어디있겠어!"

선우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언성을 한껏 높이며 소리질렀다.

그렇게 세세하게 전부 따진다면 돈이 안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어디 오지에서 자급자족하며 먹고 사는 이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밑바탕에는 돈이 있어야한다고 말입니다. 어디 오지에서 원시적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

선우의 유창한 말에 북궁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궤변이라고

말도 안 된다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돈이 안들어가는 것이 어디있겠는가

그런 돈의 필수성을 설토하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그리고 선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솔직히 말을 하면서도 혹여 그녀가 기습을 할까 노심초사하던 선우였다.

하지만 다행히 그녀는 선우의 얘기를 제대로 들어주었고 어느 정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우는 느꼈다.

그녀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쇄기를 박아버리자고 말이다.

선우가 입을 열 찰나였다.

"좋아, 이해했어.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네 말대로 인간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 동의해. 네 말대로 가치조차 돈으로 산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닐지 몰라. 돈이 없다면 가치따위는 생각할 여력따위는 없을테니까."

북궁연은 진중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선우에게 말하였다.

"하지만"

북궁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북해의 미래를 살 수 있다는 말은 동의를 할 수 없어. 빙정은 북해의 무인들을 육성시킬 수 있는 보물이다. 그런데 그런 보물을 너에게 넘긴다면 어떻게 북해빙궁을 재건하라는 말이지?"

북궁연은 동의 할 수 없었다.

빙궁의 미래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저 자의 무도한 말을 말이다.

살수 있을 리 없었다.

북해빙궁은 엄연히 무도를 추구하는 문파이다.

북해의 지배자라던가 북해의 수호자라던가 북해의 지존이라던가

수많은 명칭으로 불리우고 있지만 결국 그 본질은 무도를 추구하는 문파인 것이다.

그런 북해빙궁에게 있어 빙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무도를 추구하는 문파의 힘은 곧 제자들의 무력과 숫자에 비례한다.

무문에 나온 제자들이 강하고 많을 수록 문파의 위세는 더욱더 드높아지는 것이다.

이는 북해빙궁 또한 마찬가지였다.

빙궁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빠르게 제자들을 육성할 필요가 있었고 빙정은 그런 빙궁에 없어서는 안될 보물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런 물건을 돈을 받고 넘긴단 말인가

말도 안 되었다.

"궁주. "

선우는 북궁연을 바라보며 그녀를 불렀다.

"제가 알기론 북해에서는 빙정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

"맞아 하지만 손가락 마디만한 빙정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자그마치 이십년이야. 난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

북궁연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보통 빙정은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햇빛이 비치지 않고 냉기가 아주 짙은 곳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자연 빙정과 북해빙궁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빙정이었다

과거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깊은 고심에 빠졌었다.

빙공의 성취를 높이기 위해서는 빙정이 필요하였는데 자연 빙정의 경우 발생이 어렵고 찾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북해빙궁은 수세대동안 인위적인 빙궁을 만들기 위해서 연구를 하였고 그 결과가 바로 인위적인 빙정을 만드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물론 자연적으로 발생한 빙정과 비교한다면 다소 손색이 있긴 하였지만 빙공의 성취를 얻기 충분한 극음의 기운은 품고 있었다.

빙정을 만들어냈다는 소식은 수많은 북해의 무인들을 설레게 하였다.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면 북해 빙궁이 부흥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바램은 이뤄지지 않았다.

자연빙정은 수십 년간 냉기를 맞으며 자연스레 냉기를 품게 되는 원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인위적으로 만든 빙정에 냉기를 품게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십여년이라는 세월동안 끊임없이 냉기를 불어넣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주변의 모든 냉기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완성되는 양 또한 손가락 한 마디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빙정은 인위적으로 만들 기술을 갖춘 북해빙궁에서조차 귀하디 귀한 보물이 되었다.

이십 년에 한 번 손가락 한 마디정도 크기를 만들 수 있는데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현재 북궁연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연 빙정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빙정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냉기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자연 빙정을 어찌 돈을 받고 넘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녀에게는 천금보다 더욱더 큰 가치를 가진 것이 빙정이었다.

넘겨줄 수 있을 리 없었다.

"빙정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더더욱 저한테 넘겨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북궁연은 모르겠다는듯 선우에게 물었다.

"궁주께서는 북해빙궁을 어떻게 재건할 계획입니까?"

"그걸 내가 왜 너에게 말해야하지?"

선우의 물음에 북궁연은 퉁명스럽게 답하였다.

"무척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부디 계획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까칠한 그녀의 반응에 선우는 정중한 태도로 간곡히 청하였다.

그 모습에 마음이 흔들린 것일까

북궁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모든 은원을 청산할 것이다. 북해빙궁의 멸문과 관계된 이들 모두 말이다. 그리고 마을에서 제자를 모집할 것이다. 골격과 오성에 따라 급을 나누고 육성을 통하여 훌륭한 북해빙궁의 무사로 만들 것이다. "

북궁연은 자신의 계획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사실 계획이랄 것도 없었다.

제자를 육성해 키우는 것말고 어떤 계획이 있다는 말인가

제자의 숫자와 전력이 곧 문파의 힘이니 말이다.

"그게 끝입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벙찐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끝인데?"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오히려 반문하였다.

"..........."

선우는 잠깐동안 말없이 입을 오물거렸다.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이...아니겠지....대충 요약해서 설명한거겠지.'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문파 하나를 재건하는 일인데 저렇게 단순하게 계획을 세웠겠는가?

분명 세부적인 계획이 있을 것이다.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선우의 물음에 북궁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문파를 재건하시려면 상당한 돈이 필요할 것입니다. 돈은 어떻게 조달하실 속셈이죠?"

"빙궁은 대대로 마을로부터 일정 금액의 보호세를 걷었어. 그 보호세로 문파를 재건할 요량이야"

"제자들은요?"

"당연히 마을 사람들 중 무재가 보이는 아이들을 고를 심산이야."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계획은 정말 말한 것이 전부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심각한 착각에 빠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궁주님."

선우는 진지한 어조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지?"

"아쉽게도 북해빙궁의 재건은 힘들 것 같습니다."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죽고 싶어? 누가 막말하래?"

선우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응원을 해줘도 모자랄 판국에 왠 재수없는 소리란 말인가?

"막말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궁주님의 계획대로라면 백 년이 지나도 북해빙궁을 재건 못합니다."

선우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선우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납득시켜봐."

북궁연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선우에게 말하였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궁주님이 세운 계획이 엉망진창이니까요."

선우는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찌릿

그리고 선우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짜증을 넘어 살기어린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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