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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85화 (286/1,419)

〈 285화 〉 286.빙궁주와 대면하다

"그대가 싫어하는 일을 부탁하고 싶지 않다!"

"목숨 걸린 일에 그런게 뭐가 중요해!"

"나한테는 중요하다!"

능소화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선우에게 소리쳤다.

"그대는 본녀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이다! 물론 그대에게 나는 그저 오가다만난 인연정도 밖에 안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친구다! 그런 그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대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 어찌 이리도 내 마음을 몰라준단 말이더냐!"

"안 곤란하다니까?"

"거짓말 하지 마라. 인상을 그렇게 와락 찌푸리면서 싫은 티를 팍팍 낸 것을 내 다보았느니라! "

그녀는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어차피 그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혼자 독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신경쓰지마라!"

"어떻게 신경을 안써!"

"신경쓰지마라! 어차피 그대와는 상관없는 일이니라!"

"상관이 왜 없어? 충분히 상관있어!"

"대체 그대가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가족인가? 친지인가? 아니면 수하인가? 그 무엇도 아니면서 무슨 오지랖을 벌인단 말인가!"

"친구니까!"

선우는 화가난듯 언성을 높이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흔들리는 눈으로 선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한테도 넌 소중한 친구다. 오가다 만나는 그저 그런 인연이 아닌 친구 말이야. 그런 친구가 목숨이 위급하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어!"

선우는 또렷한 눈으로 능소화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선우의 말을 가만히 듣던 능소화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이더냐."

그리고 이내 개미가 지나가는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가?"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아직도 분이 안풀렸는지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정말로...본녀를 친구로 생각하느냐는 말이다."

선우의 물음에 능소화는 몸을 배배꼬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선우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선우는 진실로 그녀를 친구로 생각하였다.

애초에 무림에 떨어지고 나이마저 같은 이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당서윤 또한 친구라는 느낌이 강하긴 하였으나 엄연한 연상이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면이 많았기에 친한 누나같은 느낌이 강하였다.

하지만 능소화의 경우에는 살짝 고지식하긴 하였지만 진실로 친구와 같다는 느낌을 받은 선우였다.

"그렇다면.....그대는...본녀가 소중한가?"

"소중해."

선우는 고민없이 즉답을 하였다.

비록 사귄 기간은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간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고 깨달음을 공유하며 정신적인 교감을 나눴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소중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대는 사람을 너무도 부끄럽게한다."

능소화는 고개를 더욱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거절치마. 나는 내 친구를 위해서 나서는 일이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대가 죽을지도 모른다."

"안죽어."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하는가?"

"그럼 죽어서도 원망해주마."

선우는 짐짓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그녀의 불안을 덜어주려는 심산인듯 하였다.

능소화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러자 마치 홍시마냥 잔뜩 상기되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고맙다."

그녀는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한 채 몸을 배배꼬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부끄러움이 몰려온듯 하였다.

"잊지마."

그녀의 감사에 민망함이 몰려든 선우는 딴소리를 하였다.

"무엇을 말이더냐?"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기로 한 것 말이야."

"약속하겠다. 그대가 무엇을 원하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들어주겠다."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확신에 찬듯한 표정으로 답을 하였다.

"뭐든?"

"물론이다?"

"그 약속 잊지마라."

"본녀는 군주이다. 이언二言은 없다."

그녀는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내내 걱정만 하던 그녀가 기운을 차린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언제쯤 찾아갈 심산이야?"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쇳뿔도 단숨에 뽑으라는 말이 있지. 내일 당장 찾아갈 심산이다."

능소화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만약에 말이야. 그녀가 살기를 내뿜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라."

"걱정말거라. 그대에게 짐이 될 생각은 없다.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도망칠터이니 걱정말거라."

능소화에게 확답을 들은 선우는 그제야 안심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우는 속으로 빌었다.

북궁연과의 교섭이 잘되기를 말이다.

************

두근 두근

선우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분명 어제만 해도 호기롭게 걱정말라며 능소화를 안심시켰던 그였다.

아무런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은 죽지않을 거라며 말이다.

그런데 막상 북궁연에게 갈 생각을 하니 미친듯이 심장이 떨려왔다.

'망할 선배님은 어디간거야!'

선우는 속으로 애꿏은 검인을 탓하여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사실 어젯밤 능소화에게 한껏 분위기를 잡긴 하였지만 불안감이 앞섰던 선우였다.

때문에 검인에게 조력을 부탁할 심산이었다.

북궁연과 동급의 강자인 검인이 있다면 적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선우의 바램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빙궁부터 마을까지 온갖 장소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검인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운적자를 통해 그가 성문 밖으로 나갔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선우는 청천벽력이 쏟아지는듯한 충격을 받았다.

어찌 이렇게 절묘한 시점에서 사라진다는 말인가

선우는 운적자에게 물었다.

대체 왜 그가 성문 밖을 나갔는지 말이다.

운적자는 답하였다.

잠시 산책을 다녀온다고 하였다고 말이다.

선우는 절규할 수 밖에 없었다.

왜 하필 오늘 같이 중요한 날 산책을 간다는 말인가

애초에 어떤 미친놈이 산책을 성문밖으로 나간다는 말인가

검인의 소식을 전해들은 선우는 절망하였고 결국 검인이라는 보험도 없이 북궁연을 만나러가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검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를 원망하는 마음이 무럭무럭 올라왔다.

"긴장되느냐?"

그때 옆에서 능소화의 아름다운 미성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선우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여 걱정을 한듯 싶었다.

"솔직히 조금 그러네."

선우는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말하였다.

자연 재해나 다름없는 인간을 만나러 가는 자리였다.

어찌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터업

그때 갑자기 오른 손바닥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온기에 놀란 선우는 재빨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손바닥을 부드럽게 감싸안고 있는 능소화의 손바닥을 말이다.

"이러면 조금 나을 것이다."

능소화는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긴장을 풀어주려는 그녀의 나름의 배려인듯 싶었다.

선우는 마음속에 따뜻한 훈풍이 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얼마나 따뜻한 여자란 말인가

마음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그대로 전해져 오는 느낌이 들었다.

"고마워."

"아니, 고맙다는 말은 오히려 내가 해야한다. 그러니 그대는 그런 말을 넣어두거라."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마음속에 긴장이 점점 완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선우는 능소화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머지않아 커다란 대전의 입구가 보였다.

선우는 붙잡고 있던 능소화의 따뜻한 손을 천천히 놓았다.

아쉬운 마음이 물밀듯이 몰려왔지만 이대로 계속 잡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터업

선우는 대전 입구에 있는 문을 잡았다.

끼이이익

그리고 천천히 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하였다.

이내 선우는 문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문 안쪽에는 커다란 옥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옥좌 위에는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고대 여신과도 같은 외모를 지닌 절세미녀가 오만한 표정을 지은 채 앉아있었다.

꿀꺽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선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마주하게 된 것이다.

북해 빙궁의 궁주인 북궁연을 말이다.

"무슨 일이지?"

그 때 북궁연의 서리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원래 말투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갑작스러운 방문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그녀의 말투는 차갑고 시리기 그지없었다.

마치 북해에 부는 설풍과도 같이 말이다.

"그대에게 제안할 것이 있다."

그때 그녀의 말을 들은 능소화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흐음 제안이라."

능소화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짐짓 고민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거절한다. 돌아가도록."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축객령을 내렸다.

"........!?"

그녀의 축객령에 당황한 능소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여기긴 하였으나 설마 제안을 듣지도 않은 채 거부할 줄은 예상치 못하였다.

"일단 들어는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능소화는 다시금 그녀에게 권유하듯 말하였다.

"글쎄? 그런 마음이 안드네."

능소화의 말에 북궁연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어째서더냐?"

"뭐가 말이지?"

"어째서 내 얘기를 듣지 않겠다는 거지?"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능소화의 물음에 북궁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북해에서 만인지상의 위치하고 있는 북해빙궁의 궁주이다. 그런 내게 너의 말투는 무척이나 거슬리기 짝이 없구나. 예의를 다시 차려서 오거라."

북궁연은 차가운 음색으로 신랄한 비난을 하였다.

그녀는 능소화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위에서 군림하는듯한 말투가 말이다.

자신은 북해에서 가장 존귀하고 가장 위대한 지배자이다.

그런 자신에게 어찌 내려다보는듯한 말투로 말을 한다는 말인가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 된 것이다.

꾸욱

"............"

그녀의 신랄한 비판에 능소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설마하니 말투에서 꼬투리를 잡힐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뭣 들하느냐? 물러나지 않고?"

북궁연은 그런 능소화를 바라보며 더욱더 차가운 태도로 축객령을 내렸다.

"부탁드리겠..소....부디 제안을 들어주시....오."

능소화는 안떨어지는 입을 겨우겨우 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투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명령하는듯한 말투에서 하오체로 바뀌게 된 것이다.

북궁연의 완강한 태도에 그녀 나름의 타협을 한듯 보였다.

물론 평생토록 위에서 명을 내렸던 그녀에게 바꾼 말투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말이다.

"글쎄, 내가 보기엔 아직도 예의가 부족한듯 싶은데?"

북궁연은 그런 능소화의 말투가 재밌었는지 좀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해봐. 제발 제안을 들어주세요 해봐."

"............"

북궁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얼굴을 붉혔다.

참기 힘든 수치심이 치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능소화가 딱히 권위적인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위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그 방대하기 짝이 없는 대륙을 지배하는 황제의 손녀이자 그의 셋째 아들인 연왕의 딸인 경화 군주가 아니던가

더욱이 팔년 전 반란군의 수괴인 진왕을 비롯한 모든 반란군을 홀로 제압한 황실의 수호자가 아니던가

북궁연은 그런 자신에게 지금 존대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도 마치 조롱하듯이 말이다.

어찌 수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내 수치심은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격노가 되었다.

으득

능소화는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북궁연의 오만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부동심이 깨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분하였다.

분해도 너무나 분하였다.

당장이라도 저 무례한 여인에게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자신은 빙정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그대로 들이받아버린다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버린다.

능소화는 끓는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혔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제....발.....부..탁...드...리.."

능소화는 수치심에 얼굴을 잔뜩 붉히며 말을 이었다.

"뭐라고? 잘 안들리는데?"

북궁연은 그런 능소화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더욱더 악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골렸다.

"제!발!..부!..탁!.."

그녀의 악의적인 요구에 능소화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더할 나위없는 수치심과 모욕감이 잔뜩 치밀어올랐지만 그녀는 애써 무시한 채 언성을 높였다.

제안을 할 기회라도 얻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갑작스레 땅이 흔들리더니 이내 상당한 굉음이 대전 안에 울려퍼졌다.

그 이질적인 소리에 놀란 능소화는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굉음에 진원지를 쳐다보았다.

굉음의 진원지는 대전 바닥에 박혀 있는 선우의 발이었다.

선우의 발이 대전 바닥을 부수며 굉음을 발생시킨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내 낮으면서 싸늘한 목소리가 대전 안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능소화는 알 수 있었다

선우가 지금 화가 나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그게 뭐하는 짓이더냐?"

북궁연은 선우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날파리가 있어서요."

선우는 그런 북궁연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북궁연은 짜증 섞인 눈으로 선우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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