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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82화 (283/1,419)

〈 282화 〉 283.능소화의 정체를 알게되다

선우는 배정된 방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는 무척이나 심란한 상태였다.

검인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이후 마음이 싱숭생숭해졌기 때문이었다.

지키는 검이라

호기롭게 말하기는 하였지만 역시나 자신이 없었다.

지키는 검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검인은 분명 말하였다.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방향성은 추구하는 목적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검을 추구하던 검인이 종국에는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심검心劍을 얻었고 원하는 것을 벨 수 있는 검을 추구하던 검황은 베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공간까지 뛰어넘으며 벨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심검心劍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상대가 누가 되었던 소중한 것들을 지킬 수 있는 절대적인 검은 대체 무엇일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검인의 말에 따르면 심검心劍은 강기공과는 차원이 다른 기술이라고 하였다.

내력이 집약되어 파괴력을 높이는 강기공과는 달리 마음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자신의 지키는 검은 대체 어떤 형태의 심검이 될 것인가?

"으으으으"

선우는 골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뜬구름을 잡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망망대해를 보면 이런 느낌일까?

저 멀리 펼쳐져 있는 넓디넓은 지평선을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모르겠다.

가슴속에 갑갑함이 가득 차올랐다.

"하아"

선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잠을 자긴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똑 똑

그때 갑자기 귓가에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분명 문을 두드리고 있는 소리였다.

의아함이 든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은 자정을 넘어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런 야심한 시각에 대체 누가 찾아온다는 말인가?

"누구시오!"

선우는 문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다."

선우가 묻자 문밖에서는 아름다운 미성이 들려왔다.

고압적이면서 고지식한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선우는 방문자의 정체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더 의문이 들었다.

저 여자가 별안간 자신의 방에는 왜 찾아온다는 말인가?

그것도 이런 야심한 밤에 말이다.

선우는 순간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멋지게 등장하여 목숨을 구해준 자신에게 빠진 그녀.

자신과 친해지려고 일부러 같은 마차를 타고 온 그녀.

오는 내내 전하지 못한 연모의 마음에 답답해하던 그녀..

결국, 북해빙궁에 도착한 그녀는 참지못하고 야심한 밤에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꿀꺽

대충 상상을 마친 선우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 좋을대로만 생각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고민하였다.

이미 자신에게는 수많은 여인들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기에서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선우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고민을 하였다.

상처를 주지않고 거절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선우가 깊은 고심에 빠져있을 찰나

똑 똑

다시금 문이 두드려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을 열어다오."

그리고 문 밖에서는 다시금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열려있어. 그냥 들어와."

선우는 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끼이이익

그러자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와아."

그리고 모습을 본 선우는 저도 모르게 감탄성을 내뱉었다.

눈앞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중원인으로선 절대 가질 수 없다고 여겨지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디 붉은 적발과 적미 그리고 적안

그리고 조막만한 얼굴 안에 마치 베일 것처럼 오똑하기 그지없는 콧날과 붉은 입술까지

그것은 초월의 미美였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마치 신화속에 나오는 고대 여신을 방불케할 정도로 숨이 막혔다.

익숙해졌다고 여겼건만 하루정도 안봤다고 또다시 감탄성을 내뱉게 만든다.

"훗, 그렇게 아름답더냐?"

그런 선우의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능소화는 작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응"

선우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평소라면 골려줄 생각이 먼저 들었겠지만 초월의 미美에 빠져든 그에게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생각뿐

그런 선우의 생각을 눈치를 챈 것일까

능소화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새삼 그런 반응을 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구나."

그녀는 선우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기뻐 보였다.

"맨날 보고 있어서 깜빡하고 있었나 봐. 이렇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말이야."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매끄럽게 입을 열었다.

"후후후후후 좀더 감상하는 것을 허하겠노라."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내뱉었다.

끄덕

그녀의 허락에 선우는 더욱더 노골적인 시선으로 그녀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마치 신이 한 땀 한 땀 조각을 한 것처럼 완벽하기 그지없는 그녀였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훗날 누군가 그녀의 남편이 된다면 그는 전생에 분명 세상을 구한 영웅일 것이라고 말이다.

선우는 그녀의 얼굴을 계속하여 응시하였다.

얼굴에 익숙해질 때까지 말이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근데 왜 온거야?"

그녀의 얼굴에 익숙해진 것인지 선우가 입을 열었다.

"참으로 빨리도 물어보는구나."

선우의 물음에 능소화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원 없이 감상하라고 말한긴 하였지만 설마 이각에 가까운 시간동안 얼굴만 들여다볼 줄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었다.

"얼굴에 익숙해지려면 어쩔 수 없었어."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선우에게는 그녀의 얼굴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것도 야밤에 달빛의 비춰져 더욱더 아름다워진 그녀에게 적응하려면 말이다.

"훗, 아름답다는 것도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구나."

선우의 변명에 능소화는 피식 웃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것보다 왜 온 거야?"

선우는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할 말이 있어서 왔느니라."

"할 말?"

"그렇다. 너에게 꼭 해야 할 말이지."

선우의 물음에 능소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말해봐."

"그전에 기막氣幕부터 감싸주길 바란다."

"기막氣幕?"

"워낙 기밀을 요하는 일이니라. 아무도 듣는 이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흐음"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궁금증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슨 말을 한다고 기막까지 쳐달라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야?"

"중요하다마다. 만약 발설시에는 무척이나 큰 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녀는 짐짓 과장된 동작으로 선우를 위협하며 말을 이었다.

"킥"

그런 그녀의 행동에 선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동행 이후 설향과 놀더니 그녀와 비슷해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천천히 음양조화기를 운용하였다.

그리고 이내 그의 몸에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방 전체에 감싸 안기 시작하였다.

머지 않아 음양조화기는 방 전체를 둘렀고 완벽한 기막이 형성되었다.

"자, 이제 말해봐. 대체 할 말이 뭔지 말이야."

선우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대로 쳐진 것 맞는가?"

"고함을 지른다 해도 아무도 모를 거야."

"그것참 다행이로다."

말을 마친 능소화는 올곧은 눈으로 선우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대는 내가 누군지 짐작이 가는가?"

그리고는 위엄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적어도 돈 많고 명문가의 딸이라는 것 정도는 유추할 수 있겠던데?"

"어찌 그렇게 생각하지?"

"일단 입고 있는 옷이 너무 좋았으니까."

"옷이?"

그녀는 의문 서린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네가 입고 있는 비단 옷말이야. 색이 너무 곱더라. 촉금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말이야. 중원에서는 쉽사리 찾기힘든 색일 터이니 분명 물 건너온 비단일테고 그런 비단을 수십벌이나 있는데 어찌 부자가 아니겠어?"

선우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를 대며 그녀에게 설명하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확실히 부족하게 자란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명문가의 딸이라는 생각은 어찌하여 그리 나오게 된 것이더냐?"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선우에게 물었다.

"그거야 말투 때문이지."

"말투?"

"쓰는 단어 하나 하나가 고풍적이야 꽤나 고급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겠지. 그리고 고압적이고 명령하는듯한 어투가 강해, 누군가를 부리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야."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런 사실들을 이리저리 짜집기 해보니 돈 많은 명문가의 딸래미라는 결과가 나오더라고."

"그런 단편적인 정보들로 거기까지 추론하다니 대단하구나!"

능소화는 감탄한 듯 답하였다.

정체를 어느 정도 근접하게 맞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단하긴 무슨 너랑 대화해본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을걸?"

"...........그렇게 티나더냐?"

"티가 안났다고 생각했던거야? 그게 더 놀라운데?"

선우는 새삼 놀랍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큼 큼"

선우의 신랄한 말에 능소화는 민망한지 헛기침을 내뱉었다.

나름 명력적이고 고압적인 어투를 줄인다고 줄였는데 아무래도 소용이 없는 짓인듯싶었다.

이리도 티가 날 줄이야.

민망함이 몰려들었다.

"어쨌든 본녀는 그대에게 본녀의 진실한 신분을 밝힐까 한다."

능소화는 진지한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왜?"

"이제는 그대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영광으로 여기거라. 본녀에게 인정받은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괜찮은데?"

"사양치 않아도 된다."

"진짜 괜찮다니까?"

"허어 겸손도 너무 과하면 오히려 독이 되는 법. 더 이상 겸양치 말거라."

"진짜 듣기 싫다니까?"

선우는 진심이 담긴 얼굴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어..어째서더냐!"

선우의 완강한 거절에 능소화는 당황한듯 되물었다.

"뭔가 들으면 엄청 귀찮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선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을 사실이었다.

사실 그녀가 누구이든 관심없기도 하였고 무엇도 보다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심히 귀찮아 질 것이라고 말이다.

"귀찮다니! 무엄하다!"

선우의 불손한 태도에 능소화가 언성을 높였다.

이쪽에서 나름의 신뢰를 표하였는데 저런 불손한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쨌든 나는 들을 마음 없어."

"............"

선우의 완강한 태도에 능소화는 고민에 빠졌다.

사실 그녀는 신분을 밝힌 후 선우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북해빙궁주를 직접 만나 교섭을 진행할 요량이었으나 그녀가 만만치 않은 성격인 것을 인지한 탓이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성질머리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능소화에게 고민거리가 되었다.

흉마와 마귀대에 의해 철저히 망가져버린 북해는 현재 복구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빙정을 달라고 하면 선뜻 줄 것 같지도 않거니와 목숨마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선우의 도움을 받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완강히 거부하니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여기서 멋대로 정체를 밝히고 선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자신은 신분을 빌미로 그를 압박하여 억지로 도움을 받는 꼴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고 전후 사정도 모르는 그에게 다짜고짜 부탁하는 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목숨이 걸린 일인데 진정성을 보이고 싶었다.

그녀는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고심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터업

능소화는 손을 뻗어 선우의 소매를 붙잡았다.

"정말로....들을...생각이 없는 것이냐?"

그리고는 선우를 바라보며 다시금 물었다.

"안 듣는다니까?"

"정말...정말....정말...이더냐?"

그녀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그런 그녀의 눈빛을 마주한 선우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에 심장이 벌렁거렸기 때문이었다.

"........들어주면 안 되는 것이더냐?"

그녀는 애처로운 눈빛에 아주 조그마한 물기가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선우의 보호본능을 미칠 정도로 자극하였다.

"드…. 듣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

선우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말? 정말이더냐?"

선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능소화는 기쁜 듯이 몇 번이고 되물었다.

선우는 그런 능소화의 다채로운 변화에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고 말고."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확답을 하였다.

선우의 확답을 들은 능소화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본녀는 군주이니라."

순간 선우의 입가에 지어졌던 미소가 순식간에 지워졌다.

"현 황제의 셋째 아들인 연왕의 딸이지."

그리고 이내 선우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변하였다.

아무래도 일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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