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화 〉 282.자네는 지키는 검을 추구하게나.
"그...그게 대체..무슨 소리입니까!"
검인의 충격적인 말을 들은 선우는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었다.
눈앞에 있는 이가 인간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을 초월했다는 것이 맞겠구먼."
선우의 물음에 검인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초월 말입니까!?"
"자네도 현경의 경지를 뭐라고 하는지 알지 않는가?"
"............반선半仙의 경지"
"크하하하 잘 아는구먼"
선우의 말을 들은 검인은 유쾌하다는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비유가 아니었습니까? 반쯤 신선이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양과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비유 말입니다!"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당혹스러웠다.
그것도 상당히 말이다.
분명 현경의 경지는 반선半仙의 경지라고 불리우긴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세상에 신선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판국에 어찌 반선이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는다는 말인가?
"비유가 아니었다네."
선우의 물음에 검인은 웃음기를 싹 지우며 말을 이었다.
"현경의 경지는 진정으로 반선의 도달한 것을 뜻하는 경지였다네."
"............."
검인의 확신에 찬 말을 들은 선우는 말을 잃었다.
그의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럼...인간이..아니라는 말은?"
"반선半仙이라는 뜻이지."
"반선 또한 인간이 도달하는 경지가 아닙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였다.
"다른 개념이라네. 인간을 초월하여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니 말일세."
검인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자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구먼. "
"모르겠습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모르겠는가?"
"제 눈에 선배님은 누가 봐도 인간입니다. 즐거울 때는 웃고 진지할 때는 표정을 굳히는 인간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 인간과 다른 존재라고 칭한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봐온 검인은 누구보다 인간 냄새를 물씬 풍기는 남자였다.
그런데 그런 남자가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라고 칭하니 이해가 될리 만무하였다.
"그렇게 봐주니 고맙구먼,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인간이라고 칭하기에는 많은 것들이 바뀌어버렸거든."
"그게 무슨.."
"제일 먼저 바뀐 것은 감정이라네. 지금의 난 화경에 이르렀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대부분의 감정들이 결여되었다네. 더욱더 무심해지고 무덤덤해졌지."
검인은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처음 실종자들과 처음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라네.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꼈지만 나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네. 그저 팔다리가 잘려있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받아들일 뿐이라네."
"말도 안됩니다! 선배님은 분명 저와 검을 나눌때 즐거워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호승심이라는 감정을 제게 가르쳐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찌 감정이 결여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대부분의 감정이 결여되었다고 하였지. 모든 감정이 결여된다고는 하지 않았다네. 물론 나도 감정을 느낀다네. 하지만 그 감정의 표출이 좀더 적어지는 것일 뿐이지."
"그럼 그저 무심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글쎄 감정을 본래보다 절반밖에 느끼지 않는 자를 과연 인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선우의 말에 검인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현경이라는 경지는 말일세. 신선이 되는 과정 중 하나라네. 종국에는 오욕칠정을 모두 벗어던게 되는 거지. 그러니 자연히 감정이 옅어지는 과정을 겪는 것이지."
검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는 현경을 인간의 탈을 벗기 시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네. 분명 종국에 이르러 신선의 경지에 도달하였을 때는 인간을 전혀 다른 생물로 . 여기게 될 걸세."
".............."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할 말을 잃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 변한 것은 신체라네."
"신체 말씀입니까?"
"그래, 인간의 연약한 육체라고 칭하기엔 너무나 단단하고 튼튼해졌지. 외공의 고수처럼 말일세. 상상이 가는가? 어떤 내력도 두르지 않은 상태에서 도검불침의 경지에 이르게 된 걸세. 게다가 잔 생채기 같은 것은 순식간에 회복할 수 있는 초월적인 회복력조차 가지게 되었지. 어찌 이런 괴물 같은 신체를 가진 자를 인간이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
검인은 눈을 반짝이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다물었다.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검불침이라는 경지는 외공의 고수라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는 경지였지만 외공은 부수적으로 익히는 내가 기공의 고수들로서는 도달하기 요원한 경지였다.
내가 기공의 고수들에게는 신체자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보단 내력을 몸에 두르는 것이 더욱더 낫다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경의 경지에 오른 것만으로도 육체 자체가 도검불침으로 바뀌어버린다니
더구나 작은 생채기 따위는 순식간에 회복시킬정도의 회복력까지 갖추게 된다고 한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선우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새로운 인류를 목격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클클 너무 머리 아픈 얘기를 했나보군."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검인이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화경이란 인간의 한계점을 뜻하는 경지라네. 그리고 화경 상경의 경지는 한계의 끄트머리까지 다다른 상태라고 할 수 있지."
"그럼 제가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말씀입니까?"
"맞네. 그리고 다르게 말하자면 초월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지."
"초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초월에 도달하는 방식은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바뀐다네."
선우의 물음에 검인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목적이라면?"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에는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검에 초점을 맞추었지. 벨 마음이 든다면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을 말일세. 그리고 그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경에 올랐고 종국에는 무엇이 되었든 벨 수 있는 최고의 검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
"심검心劍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자네가 초월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방향성 정해야 한다. 자네가 추구하는 최종적인 목적을 말일세."
검인은 진지한 어조로 선우에게 말하였다.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선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어려워하지 말게. 자네는 어떤 검을 추구하는가?"
".............."
선우는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추구하는 검은 무엇 일까 하고 말이다.
검인처럼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일까?
이내 선우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무엇이든 벨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신의 추구하는 검은 그런 검이 아닌듯싶었다.
그렇다면 검황처럼 베고 싶은 것만 베는 검일까?
과거 검황은 반쪽자리 심검이라고는 하나 자신만의 심검을 선보였던 적이 있었다.
그는 공간을 뛰어넘어 패왕귀면갑 너머의 있는 자신을 베었다.
베고 싶은 것만 베는 검을 추구한 결과인 것이다.
선우는 생각해보았다.
과연 검황의 검이 자신이 추구하는 검에 가까운 검일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내 선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간마저 뛰어넘는 그의 검은 무척 매력적이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검은 아닌듯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웠다.
검은 그저 검일 뿐인데
도대체 어떠한 검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인가?
"자네는 검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하였는가?"
".......모르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게나. 분명 자네는 답을 알고 있을걸세."
"........."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동안을 고심하고 또 고심하기 시작하였다.
과연 자신이 검을 들 때 가지는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또 생각하였다.
자신이 무협지 안으로 떨어지고 처음 검을 들었을 때 과연 자신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내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검이 무엇인지 말이다.
처음 검을 뽑은 것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절망적인 세계관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위해 검을 빼 든 것이었다.
그다음 검을 빼들었을 때는 옥령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목숨이 위급한 그녀를 위해 선우는 당가를 향해 검을 빼 들었다.
그다음 검을 빼 들었을 때는 요랑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멍청한 약속을 지키고자 죽을 위기에 처한 그녀를 지키기 위해
선우는 망설임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다음 검을 빼 든 것은 소중한 이들이 있는 당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당가를 집어삼킬 계획을 하고 있던 황보세가의 모략을 깨부수고자 그저 검을 빼 들었다.
그다음은 당서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납치당한 그녀를 지키기 위해 천검후라 불리우는 주소양을 향해 검을 빼 들었다.
이내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검이 무엇인지 말이다.
생각을 마친 선우는 검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키는 검."
그리고 이내 확신에 찬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검을 처음 들었을 때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검을 빼 들었습니다."
선우의 말을 들은 검인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마음은 변치 않았던가?"
"언제나 같았습니다. 저는 언제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으니까요."
"그럼 답은 나왔구먼. 자네는 지키는 검을 추구하게나. 상대가 무엇이 되었든 소중한 것들을 지킬 수 있는 절대적인 검을 말일세."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선우는 짐짓 불안한 듯 그에게 물었다.
"글쎄, 어쩌면 단순히 베기만하는 내 검보다는 더욱더 어려울지도 모를 것 같군."
선우의 물음에 검인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할 수 있을 것 같다네."
"그게 무엇입니까?"
"만약 도달할 수만 있다면 자네를 해할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말일세."
검인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선우를 바라보았다.
방향성을 정해놨으니 이제 그에 따른 성취는 온전히 그의 몫일 것이다.
검인은 기대되었다.
과연 선우가 어떤 형태의 심검心劍을 보여줄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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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이이이이이잉
"시발"
흉마는 갑자기 불어드는 설풍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놈의 북해의 날씨는 월경 중인 계집마냥 변덕스럽기 그지 없었다.
심심하면 설풍이 불어닥쳐 온 세상을 눈으로 뒤덮어버리곤 하였으니 말이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짜증이 치밀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북해호에 도착한 후 북궁연이 있을만한 곳을 이 잡듯이 뒤졌던 그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북궁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찾지못한 흉마는 초조함을 느꼈다.
절대 얼지 않는다는 북해호마저 얼릴 정도의 빙공을 연마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북해호에 없다면 어디 있을지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북해빙궁이었다.
분명 그녀는 이십여년 전 북해빙궁의 무인들을 전부 몰살시키고 북해빙궁을 차지한 자신과 마귀대의 마귀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다.
북해빙궁으로 직접 찾아가서 말이다.
그 사실을 어림짐작한 흉마는 초조함이 들었다.
현재 북해빙궁에 남아있는 마귀들로는 그녀를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초조함이 든 흉마는 재빨리 수하들을 이끌고 북해빙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보를 지랄같은 설풍이 자꾸만 가로막았다.
한시라도 빨리 북해빙궁으로 복귀를 해야한건만 자꾸 설풍이 불어 진로를 방해하였기 때문이었다.
"대주님, 오늘은 이곳에서 쉬어야할둣 싶습니다!"
그때 수하 중 하나가 흉마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시발 좆까! 갈길이 구만리구라고! 설풍이 불 때마다 쉬면 어쩌자는 거야! 너는 시발놈아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대가리는 장식이야? "
흉마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부하를 탓하였다.
"하..하지만 설풍이 불 때 함부로 이동했다가는 길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수하는 당황하면서도 제 할 말을 다하였다.
그의 말을 사실이었다.
휘몰아치는 설풍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매섭게 불었고 발자국조차 지워버렸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간 길을 잃을 것이 뻔하였다.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떠그럴! 네놈이 길을 잘 보면 되는 것이 아니더냐! 길잡이라는 놈이 설풍 좀 불어제낀다고 길도 못찾아야 되겠느냐!"
수하의 대답에 흉마는 성을 내며 언성을 높였다.
흉마 또한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렇게라도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 정신이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강행한다! 토 달지 마! 만약 토를 달겠다면 머리통을 터트려주겠다!"
흉마는 수하를 바라보며 억지를 부렸다.
"............."
흉마의 억지를 들은 수하는 말을 잃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만약 강행했다가 길을 잃게된다면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떠넘길 거면서 어찌 그런 억지를 부린단 말인가
"왜 말이 없느냐! 내 말이 우스운 것이냐?"
수하가 답이 없자 흉마는 언성을 높이며 소리질렀다.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흉마의 고함을 들은 수하는 간신히 답을 하였다.
길을 못 찾아도 죽고 명을 거부해도 죽는다.
그럴 거면 차라리 길을 찾다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지금은 죽음을 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수하는 똥 씹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설풍을 헤치며 길을 안내하였다.
그리고 흉마는 그런 수하의 뒷통수를 그대로 따라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