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0화 〉 281.실종자들과 재회하다.
"운경아!"
운혜는 눈물을 흩뿌리면서 운경에게 뛰어들었다.
"운혜야!"
운경 또한 눈물을 흘리며 양팔을 벌려 그녀를 반겼다.
와락
이내 두사람은 얼싸안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괜찮은거지? 왜이렇게 말랐어! 밥은 제대로 먹은 거 맞아? 걱정했단 말이야! 흐아아아앙"
운혜는 쉴새 없이 말을 내뱉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동기가 실종되었을 때
그녀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똑같이 절간에 버려져 자매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던 가족 같은 동기였다.
어찌 가족이 실종되었다는 말을 듣고 멀쩡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깡마른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운혜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북해를 떠나기 전만해도 젖살이 안 빠져 귀엽게 통통했던 볼은 앙상하게 뼈만 보였으며 도화빛 가득했던 곱디고운 피부가 한눈에 봐도 푸석푸석함이 묻어나왔다.
그 모습을 본 운혜는 운경이 그간 겪었던 고초를 어림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짐작은 그녀의 눈물샘을 자극하였다.
운혜는 울음터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 젖혔다.
슬펐다.
너무 슬펐다.
먼 이국땅에서 갖은 고초를 받았을 친구를 생각하니 슬픔이 벅차올라 눈물샘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괜찮아...정말 괜찮아..나는...살아서 널 만난 것만으로 기뻐.."
운경 또한 그런 운혜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그녀는 행복감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평생 못 볼줄 알았던 친구였다.
흉마와 마귀대의 마귀들에게 온갖 수치와 모욕을 받으며 죽음을 꿈꾸던 그녀였다.
흉마가 돌아오면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받고 마귀대의 노리개로 생을 마감하리라 절망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의 등장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과 희망을 선사해주었다.
살아서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아미파로 돌아갈 수있는 희망말이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젖살 통통하던 볼이 이렇게 홀쭉해졌는데!"
그녀의 괜찮다는 말에 운혜는 성을 내었다.
괜찮긴 뭐가 괜찮다는 말인가?
이렇게 비참한 꼴을 당하고도 어떻게 괜찮다는 말이 나온단 말인가?
"괜찮아..정말 괜찮아..흐흑"
운혜의 말을 들은 운경은 고마움에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위해 대신 화를 내주는 운혜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눈물이 그칠 때까지 꼬옥 껴안으며 서로를 위로하였다.
서로를 위로하는 것은 그들뿐이 아니었다.
"설..마....청강이더냐?"
청송은 앞에 있는 앙상한 몰골의 남자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청송 사형?"
청송의 물음에 청강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스승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대사형이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청강의 물음에 청송은 말없이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내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하였다.
청강은 한눈에 봐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먹지를 못한 것인지 얼굴은 광대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 있었고 볼은 홀쭉했으며 제대로 물조차 섭취를 못 한 것인지 입술이 잔뜩 갈라져 있었다.
게다가 갖은 고초에 근육이 전부 빠진 것인지 기골이 장대했던 몸집은 온데간데 없었지고 비쩍 마른 초라한 모집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있어야 할 오른팔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청강은 팔이 없었다.
그것도 오른팔이 말이다.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것이냐! 어쩌다!"
그런 청강의 몰골을 본 청송은 비명 지르듯 소리를 질렀다.
외팔이가 되었다.
자신을 가장 따랐던 귀여운 사제의 오른팔이 온데간데없어져 있었다.
청송은 절규하였다.
청강은 오른팔을 사용하는 검수였다.
그런 청강에게 오른팔이 사라졌다는 것은 평생을 이룩한 무공을 전부 잃어버렸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였다.
절규할 수 밖에 없었다.
가난한 사문을 위해 그 고된 북해 행을 선택한 사제였다.
그런 착하디 착한 사제가
우직하고 곧은 사제가
팔을 잃어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청송은 비명성을 내질렀다.
"저는....저는...괜찮습니다."
그런 청송이 걱정된 것일까
청강은 자신은 괜찮다며 그를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어찌 괜찮다는 말이냐! 네녀석...팔이 없어지지 않았느냐!"
하지만 그의 그런 말을 오히려 역효과였는지
청송의 언성을 더욱더 높이게 하였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청강은 체념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였다.
이미 절망에 끝자락까지 도달했던 그였다.
지금은 그저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만족하리라
"크흐흑흑흑흑"
그런 청강의 체념어린 시선을 보며 청송은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그에게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청강은 그런 청송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하나뿐인 팔로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청송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흐그으으으윽"
청송은 그런 청강의 따뜻함을 느끼며 더욱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흑흑흑흑"
"으아아아아앙"
"흐그그윽흑흑
"엉어어어엉`
장내는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실종된 자들은 수색대원들의 동료였고 친구였고 가족이었다.
그들의 처참한 몰골을 본 수색대원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다.
특히 연배가 어린 제자일 경우
명문대파의 체면 따위는 저 멀리 벗어던진 채 울음보를 터트리기 일쑤였다.
아마 감정조절이 더욱 되지 않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들과는 달리 연배가 어느 정도 찬 제자들은 분노를 먼저 터트렸다.
자신의 소중한 이를 이렇게 만든 흉마와 마귀대에 관한 분노가 말이다.
고오오오오오오
특히 운적자의 경우에는 그 분노가 정점에 도달한 것인지 숨쉴 때마다가 살기가 피어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청성의 희망이라는 제자들이 처참한 몰골을 당하였다.
팔이 잘린 이들은 물론이고 사지가 절단당한 제자마저 있었다.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화가났다.
그것도 너무 화가 나서 주체가 안 될 정도로 말이다.
"궁주"
운적자는 조용함 음색으로 옆에 있던 북궁연을 불렀다.
"왜 그러지?"
북궁연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고맙소."
운적자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하였다.
제자들은 그런 지옥의 구렁텅이 속에서 빼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고마워할 것 없어. 애초에 구해줄 요량으로 마귀들을 죽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애초에 연맹의 무사들이 잡혀있는지도 모르던 그녀였다.
그저 흉마와 마귀들을 죽이는 과정에서 우연치 않은 구함이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궁주께서 연맹의 무사들을 구해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소. 평생의 은인으로 삼겠소."
그녀의 겸양 어린 말에 운적자는 더욱더 공손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의도가 어쩄든 결과적으로 연맹의 제자들은 그녀에게 구원을 받았다.
그녀를 연맹의 은인이라 칭하는 것을 부당하다 여기는 이는 결코 없을 것이다.
"마음대로 해."
운적자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담담히 말하였다.
은인으로 여기든 말든 그녀는 하등 상관없었다.
그저 자신은 복수만을 이룩하면 되니 말이다.
"그런데 궁주."
운적자가 다시금 그녀를 불렀다.
"왜?"
"그런데 흉마는 어딨소?"
"뭐하려고?"
"당연히 죽일 심산이오. 태어난 사실을 후회할 정도로 끔찍하게 말이오."
그녀의 물음에 운적자는 어마어마한 살기를 폭출하며 말을 이었다.
"안돼."
운적자의 말에 북궁연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찌!!"
그녀의 말에 운적자가 반발하며 소리쳤다.
어찌 그를 죽이는 것을 반대한다는 말인가
"그 새끼는 내 몫이다."
북궁연은 농밀한 살기를 흩뿌리며 말을 이었다.
그 농도가 어찌나 진한지 운적자가 폭출 시킨 살기따위는 가볍게 찜쩌먹을 정도였다.
"..........."
그런 북궁연의 살기에 노출된 운적자는 아무런 말도 못하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녀가 가진 무공과 원한의 깊이가 자신보다 더욱더 크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돕게라도 해주시오. 은혜를 갚고 싶소."
운적자는 한 발 물러나며 말하였다.
온 몸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여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었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싫어."
하지만 북궁연은 운적자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거절의 의사를 비추었다.
"그놈들은 전부 내가 죽여. 한 놈도 빠짐없이 말이야."
북궁연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끄응"
그녀의 단호한 말에 운적자는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래도 쉽사리 허락해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들을 건들면 당신도 내 적이야."
북궁연은 운적자의 반응이 마땅치 않았는지 다시금 경고를 건네었다.
".....알았소."
그리고 그 경고를 들은 운적자는 어두워진 낯빛으로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북궁연은 그제야 만족스러운듯한 작은 미소를 지었다.
******
"하아."
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실종자들의 상태가 더욱더 나빴디.
마귀대의 취미가 고문이었는지 몸이 성한 이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지절단은 물론 눈이 파이거나 이빨이 뽑힌 이들도 수두룩하였다.
그나마 여승들의 경우 흉마의 엄포가 있었기에 강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 온갖 추행을 당했다고 들었다.
`시발새끼들이 진짜`
선우는 속으로 욕지거리가 올라왔다.
그저 심심하다는 이유로 비인륜적인 짓을 벌인 흉마와 마귀대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 올랐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연맹을 지탱할 기둥이 될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저렇게 처참한 몰골을 당하였는데 어찌 분노가 치솟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오오오오오오오
선우는 살기를 흩뿌리기 시작하였다.
죽이고 싶다는 감정이 미친 듯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이들이었다.
자신에게 생채기 한 번 내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죽이고 싶었다.
그것도 미치도록 말이다.
살기가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선우의 눈이 희번득하게 바뀌기 시작하였다.
팍
그때 갑자기 뒤통수에서 강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아악!"
선우는 그 충격에 저도 모르게 비명성을 내질렀다.
"선배님! 무슨 짓입니까!"
선우는 머리를 후려갈긴 검인을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크흐흐 진정하게나."
그런 선우의 언성에 검인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자네 지금 무척 상태가 위험했다네."
"위험하다뇨?"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살기에 잡아먹힐 뻔했다는 말일세."
"살기에요?"
"그렇지."
꿀꺽
검인은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모를 술을 홀짝 삼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 자네는 중요한 선택에 기로에 서 있다네. 그런 자네에게 살기에 잠식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라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라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크크크큭"
선우의 물음에 검인은 재밌다는듯이 웃음을 흘렸다.
"음양마도 좋은 스승은 못 되는구먼,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빼먹다니 말이야. "
"선배님! 답답합니다. 속시원하게 말씀 좀 해주십시오."
선우는 답답하다는듯이 가슴을 두드리며 그에게 물었다.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아무런 말도 안 하니 답답함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꿀꺽 꿀꺽
선우의 말에 검인은 다시금 술병을 입에 댄 후 그대로 목을 축였다.
"자네는 화경이라는 경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신체적인 개념의 심(心), 기(技), 체(體)는 물론 정신적인 개념의 정(精),기(氣), 신(神) 이 조화를 넘어서 극에 달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지고한 경지가 아닙니까? "
"클클 뭘 그리 장황하게 설명한단 말인가?"
선우의 말을 들은 검인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화경의 경지는 말일세.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한계점이라네."
"한계점 말입니까?"
"그렇지,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그것을 바로 화경이라고 부른다네."
"말도 안 됩니다."
그의 말에 선우는 말도 안 된다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 말이 안되지?"
"흔치는 않지만 현경에 오른 이가 분명하게 존재할진대 어찌 화경의 경지를 인간의 한계로 지칭한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었다.
검인의 의견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현경의 경지는 흔치 않지만 그 경지에 도달한 이는 분명히 존재하였다.
이십여년 전 중원을 구한 영웅이자 각종 주인공버프를 독식한 절대무신 이재원
그런 이재원조차 어린애 다루듯이 상대했던 천하제일마 음양마 이호선
이십여년 전 중원 무림을 침략한 마귀들의 왕이자 독보적인 무공으로 주인공 버프를 잔뜩 받은 이재원조차 수세에 몰리게 했던 무협지 속의 최종 보스인 천마대제
혹한의 설풍조차 마음대로 다루며 믿기지 않는 신위를 보였던 북해빙궁주
마지막으로 그 혹한의 설풍마저 단번에 베어버렸던 검인까지
이들 모두가 화경을 뛰어넘어 현경에 다다른 이들이었다.
그런데 어찌 화경이 인간의 한계점이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클클클..이거 믿지를 않는구먼"
선우의 말에 검인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 눈앞에 뻔히 증거가 있는데 어찌 믿겠습니까?"
선우는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인간이 아닐세."
선우의 말에 검인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뭐라고요!?"
검인의 말에 선우는 놀란 듯 되물었다.
그리고 그런 선우의 반응을 보며 검인은 재밌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