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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75화 (276/1,419)

〈 275화 〉 276.가끔은 단순하게 생각하게나.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더냐?"

능소화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느낌이 다르다."

"느낌?"

"그래, 어제까지만 해도 잡철로 만들어져있는 검 같았는데 오늘은 질 좋은 철로 만든 검처럼 바뀌었다."

"..............."

그녀의 신랄한 말에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화경 중경에 다다랐던 몸인데 비유가 어찌 저렇다는 말인가?

잡철이라니!?

"고맙다. 질 좋은 철이라고 해줘서."

"진심이다. 벽을 깬 것이더냐?"

그녀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선우에게 물었다.

"깨달음이 있었어."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짤막이 답하였다.

"축하한다. 이제는 어디서 맞고 다니지는 않겠구나!"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활짝 웃음을 지으며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기준이 이상한 것이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 어디서 맞고 다니지 않는 기준이 화경 상경이 되었단 말인가?

`악의는 없는 거겠지? 분명 그럴거야.`

부아가 살짝 치밀어올랐지만 능소화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선우였다.

분명 기쁜 마음에 저리 말하는 것이리라

"사실 어제만 하더라도 너무 약하여 맞고 다닐까 걱정이 되었느니라. 그런데 오늘 정도면 객사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능소화는 정말 기쁜 듯 해맑게 웃으며 말하였다.

"능소화."

선우는 그런 능소화를 바라보며 그녀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능소화는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너 재수 없어."

"뭐..뭣이!?"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충격 받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자신은 분명 칭찬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재수 없다니

별안간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찌 내가 재수가 없다는 말이더냐!?"

"아니, 취소할게."

그때 선우가 뒷말을 덧붙였다.

"그렇지? 본녀가 재수 없을 리가 없지 않느냐."

선우의 뒷말을 들은 능소화는 안심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완전 재수 없어."

하지만 다시 이어지는 선우의 말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쿠쿵

능소화는 머릿속에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억울함이 올라왔다.

경지에 올라선 것을 기껏 칭찬했더만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어째서냐!"

"이유를 모르는 게 특히 재수 없어!"

"말해다오! 이유가 무엇이더냐!"

능소화는 언성을 높이며 이유를 물었다.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어떻게 고친다는 말인가?

"스스로 생각해라."

선우는 그녀의 물음에 심드렁히 말하였다.

어차피 말해줘도 그녀는 이해 못 할 것이다.

그녀 같은 불세출의 천재가 자신과 같은 범재의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우우....그대는 나쁘다."

선우의 심드렁한 대답에 능소화는 울상이 되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해주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저지를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저렇게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니가 더 나빠."

"흥! 되었다! 본녀도 그대와 말하지 않겠다!"

선우의 짤막한 대답을 들은 능소화는 토라진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속이 상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듯하였다.

선우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요근래 설향과 놀다 보니 감정표현이 풍부해졌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재수없다는 말을 했을 때만해도 미안해서 어찌할 줄 모르더니 지금은 되려 토라져 고개를 돌려버린다.

꽤나 귀여웠다.

"삐졌어?"

선우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삐진 것이 아니다!"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언성을 높이며 부정하였다.

"삐진 것 같은데?"

"삐진 게 아니고 기분이 저조해진 것뿐이다!"

"그게 삐진 거야."

"됐다, 그대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화 풀어."

"말걸지 말거라!"

능소화는 단단히 토라졌는지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선우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설마 능소화에게 이런 일면을 볼 수 있을지는 상상도 못 하였다.

워낙 딱딱하고 예의를 중시하고 고풍적인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설향과 놀다 보니 그런 고풍적인 느낌이 많이 사라진듯하였다.

말투나 살짝 특이할 뿐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여인의 반응이 아니던가

선우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번 여정을 통해 변한 것은 자신만이 아닌듯했기 때문이었다.

선우가 토라진 능소화에게 사과를 건넬 찰나였다.

벌컥

갑자기 마차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안녕하세요!"

장난기 어린 눈매에 별빛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인,설향이었다.

"왜 또 왔느냐!"

그녀가 등장하자 안 그래도 심통이 나 있었던 능소화는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같이 타고 가려고 왔죠."

그녀의 거친 반응에도 불구하고 설향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착석을 하였다.

"그대는 아미에서 친우가 없는 것인가? 어찌 그렇게 이쪽 마차에만 올라타는 것인가?"

"이쪽 마차가 더 재밌어서요."

능소화의 물음에 설향은 방긋 웃으며 답하였다.

"나는 재미가 없다!"

"저는 능 소저랑 있는 게 재밌어요."

"..........."

순간 예상치 못한 설향의 대답에 능소화는 말을 잃었다.

예상한 반응은 이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저런 식으로 말하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순간 능소화는 미안함을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저 여인이 자신을 저리 생각해주는데 너무 거칠게 반응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나도..사실 재미.."

능소화는 설향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놀려 먹으면 얼마나 재밌다고요."

설향은 그런 능소화의 말을 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능소화의 고운 아미를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나는 그대의 놀림감이 아니다!"

"아니었어요!?"

능소화의 말을 들은 설향은 과장된 동작을 취하며 놀란 듯 되물었다.

누가봐도 놀릴 의도가 가득한 행동이었다.

"바보 취급하지 말거라!"

"바보라뇨. 제가 능소저를 그렇게 생각할 리 없잖아요."

"그런데 어찌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단 말이더냐!"

"원래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 아닐까요?"

"궤변이로다!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지 않느냐!"

"헤헤, 들켰네요."

설향은 마차에 타자마자 능소화와 다시금 전쟁을 치르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녀들의 언쟁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조용히 가기에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차 안은 이내 그녀들의 언성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

덜컹 덜컹

귓가에 마차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히이이잉

그다음은 말의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니까 능소저가....."

"아니 나는 잘못 없다!"

그다음은 설향과 능소화의 언쟁이 들려왔다.

선우는 찬찬히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앞을 보니 여전히 싸우고 있는 설향과 능소화가 보였다.

선우는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차 안이 어두운 걸 보면 잠든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그동안 계속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그녀들이 싸우고 있기는 하였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하루종일 언쟁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눈을 뜬 선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옆을 보니 퀭한 눈을 하고 있는 마 호위가 보였다.

아마 능소화가 깨어있으니 본인도 잠을 자지 못한듯싶었다.

선우는 살짝 연민이 드는 것을 느꼈다.

잠을 자지못했다는 것은 그녀들의 대화를 하루종일 들었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연민이 들 수밖에 없었다.

쭈우욱

눈을 완전히 뜬 선우는 기지개를 쭉 켰다.

잠을 완전히 깨기 위해서였다.

그때 갑자기 마차가 덜컹거리더니 쭉 뻗은 팔이 그대로 마차 천장에 닿았다.

"뭡니까?"

선우는 당황한 듯 마부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도착한 것 같습니다."

"도착이라면?"

"북해빙궁에 말입니다."

순간 선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북해빙궁에 도달한 것이다.

선우뿐만 아니었다.

능소화와 설향은 눈을 반짝였으며 마 호위는 감격에 찬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멀고 멀었던 북해빙궁에 말이다.

"와아 오라버니! 드디어 왔어요!"

설향은 신이 난 듯 비명을 지르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드디어 도착했군. 힘든 여정이었다."

능소화도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다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북해로 오는 과정이 상당히 고됐던 모양이었다.

모두가 화색을 띄고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멈춰 선 것입니까?"

그때 마부장이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응?"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아차 했다.

생각해보면 그러하였다.

북해빙궁이 보인다면 언질만 주면 될 것을 왜 멈춰 선다는 말인가

"왜 멈춘 것입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마부에게 물었다.

"그....아무래도 성벽을 열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벽을!?"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들어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듯싶었다.

*********

푹 푹 푹

선우는 푹 푹 꺼지는 눈밭을 헤치며 마차의 앞쪽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머지않아 선우는 수색대 선발 마차가 있는 곳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운적자와 불허 사태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 어서오게나 장 대협"

"어서오세요. 장 대협"

선우가 모습을 보이자 모여있던 이들은 하나둘씩 그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선우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은 후 앞쪽을 바라보았다.

앞쪽을 바라보니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성벽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허어"

그 광경을 본 선우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성벽이 쌓여져 있을 줄은 어림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리도 클 줄은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었다.

북해빙궁의 성벽은 그간 선우가 봐왔던 성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였다.

성벽은 거대하였다.

천월궁은 물론 당가의 고독관을 둘러싼 성벽보다 더욱더 말이다.

선우는 경외로움을 느꼈다.

어찌 이 춥디추운 북해에서 저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쌓아올릴 수 있단 말인가?

인류의 신비를 목도하는 듯하였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멍하니 성벽을 보던 선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빙궁측에서 성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청송이 답을 하였다.

"이유가 뭐랍니까?"

"내부에 문제가 생겨 당분간은 외부인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혹여 웃돈을 얹어달라는 말이 아닐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웃돈을 얹어준다고 했는데 완강히 거절하였습니다. 얼마를 주든 열어줄 수는 없다면서 말이죠."

"흐음"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민에 빠졌다.

북해빙궁은 드넓은 북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곳이었다.

무역을 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려야 할 정도로 길이 잘 정비돼있는 것은 물론이고 북해에서 가장 풍족한 곳이기 때문에 휴양지로서도 이름을 날리는 곳이었다.

게다가 돈만 쥐여준다면 누구나 입성을 허가내어주었기에 관광객이나 무역상뿐만 아니라 범죄자들까지 득실거리는 자유로운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북해빙궁에서 입성을 거절할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어떻게 설득이 안되겠습니까?"

"힘들 것 같습니다. 계속 설득을 하려고 하니 아예 귀를 막더군요."

"흐음"

청송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민에 빠졌다.

저리도 완강히 거절을 하니 설득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입성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제자들이 사라진 곳은 북해빙궁 근처였다.

북해빙궁을 거점 삼아 수색을 이어가야만 하였다.

노숙으로 버티며 수색을 이어가다간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식량 또한 떨어져 가는 상황이었기에 이대로 돌아설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청송이 선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명을 내려주세요."

불허사태가 선우에게 물었다.

"무슨 명이든 따르겠네,"

운적자 또한 신뢰어린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선우는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강제로 성문을 돌파해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북해빙궁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선우는 고개를 숙인 뒤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북해빙궁에 들어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선우의 귓가에 무언가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눈밭에 푹 푹 빠지는 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말이다.

아무렇게 자란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넓지막한 등을 가진 남자.

바로 검인劍人이었다.

"선배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크게 소리쳤다.

"하하하하 자네는 말이야, 생각이 너무 많아."

선우의 물음에 검인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가끔은 단순하게 생각하게나."

말을 마친 그는 더욱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그는 북해빙궁의 성문 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성문에 도달한 검인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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