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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74화 (275/1,419)

〈 274화 〉 275.충분히 닿았다네.

"어.....어떻게 된겁니까?"

선우는 떨리는 음색으로 검인에게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경악이라는 감정이 온전히 서려 있었다.

"뭐가 말인가?"

검인은 살짝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찌....제 검환劍環이...베어진 겁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선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검환이 베어진 이유를 말이다.

검환이 무엇이란 말인가

검강압환(劍罡壓丸)의 준말로

강기공의 최상위 경지 이른 기술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검환이 베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단전에 축적된 내력을 신체나 병장기에 밀어 넣어 기운을 발산하는 것을 검기라고 하고 이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루어 사람을 해하는 경지를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검기를 육안으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도록 선명하게 뭉치고 또 뭉쳐 유형화된 형태를 만드는 경지를 검기성강劍氣成罡 즉 검강劍罡이라 부른다.

검기가 절삭력에 중점을 둔 기술이라고 한다면 검강은 절삭력뿐만 아니라 파괴력까지 겸비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닿는 것만으로 절삭과 파괴를 동시해버리니 말이다.

그렇다면 검환劍環은 무엇일까?

검환劍環 즉 검강압환劍罡壓丸은 이렇게 절살력과 파괴력 겸비한 검강을 동그란 구체 형태로 압축하여 밀도와 파괴력을 극대화시키는 강기공의 정점에 있는 기술이었다.

그런데 그런 검환이 단숨에 베어진 것이다.

아무런 내력도 두르지 않은 검에 의해서 말이다.

어찌 이런 기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베고자 했을 뿐이라네."

선우의 물음에 검인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어찌 베고자 한다고 벨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선배님의 검에는 어떠한 기운도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선우는 말도 안 된다며 언성을 높이며 말하였다.

아무리 검에 극의에 다다른 자라고 하더라도 내력도 없이 어찌 검환을 베어낸다는 말인가

"내력을 항상 두르고 있을 필요는 없다네."

선우의 말에 검인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저 베려는 의지에만 반응해주면 충분하다네"

"........"

검인의 말을 들은 선우는 말없이 그의 검을 응시하였다.

그리고 이미 베어져 버린 자신의 검을 쳐다보았다.

두 검의 차이는 무엇일까

선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검인이 휘두른 모든 검들을 일제히 떠올리기 시작하였다.

그의 검법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심산유곡에서 수십 년 동안 검을 갈고 닦은 무당의 제자와 같이 현묘하고 부드러웠으며 어떤 때는 전장을 전전하며 살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낭인처럼 거칠고 난폭하였다.

고정된 특색이나 개성 따위는 없었다.

상황에 따라 원하는 대로 바뀌어버리는 그의 검법은 마치 쥐는 이에 따라 어떤 형태로도 바뀔 수 있는 검과도 같았다.

그렇다.

그는 그저 한 자루의 검이 될 뿐이었다.

순간 선우는 머릿속이 갑자기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깨달음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검인이 누누이 말한 한 자루의 검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한 한 자루의 검은 단순히 신검합일身劍合一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극에 이르러 종국에는 그 어떤 검도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경지를 뜻하는 것이었다.

만류귀종萬流歸宗

그렇다.

그가 말한 한 자루의 검은 만류귀종을 뜻하는 바였다.

선우는 끄트머리가 베어져 있는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휘두르는 검에는 초식 따위는 없었다.

그저 마음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휘두를 뿐이었다.

그리고 마음 가는 대로 휘둘러지는 선우의 검에는 수많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부웅

검이 휘둘러졌다.

검에는 심산유곡에서 수십 년 동안 검을 갈고 닦은 도인의 현묘함과 부드러움이 녹아들어 있었다.

부웅

검이 휘둘러졌다.

검에는 수십 년 간 전장을 전전하며 살기 위해 내지르고 죽이기 위해 갈고닦은 낭인의 잔혹함과 난폭함이 녹아들어 있었다.

부웅

검이 휘둘러졌다.

검에는 오직 복수를 위해 수십 년을 수련한 복수자의 처절함과 분노가 녹아들어 있었다.

선우의 검은 휘둘러질 때마다 그 검의 모습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부웅

부웅

선우는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세상의 모든 검술을 휘두르겠다는 일념 아래 말이다.

.

.

.

.

그렇게 얼마나 검을 휘둘렀을까

검을 휘두르던 선우는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다.

챙그랑

그러자 손에 쥐어져 있던 검이 바닥에 그대로 떨어지게 되었다.

선우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천천히 올려 검인을 바라보았다.

검인은 선우를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배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심검心劍이었군요."

검인을 바라보던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제야 알았는가?"

선우의 말을 들은 검인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좀 더 위로 올라가니 보이더군요."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벽을 깬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말인가?"

"이전과는 다른 검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크크큭 그거 기대되는구먼."

선우의 말을 들은 검인은 더더욱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만류귀종萬流歸宗에 다다른 것인가?"

"그저 한 발만 걸쳤을 뿐입니다."

"자네 나이에 그 정도만 돼도 대단한 것이라네."

검인은 입가를 빙글거리며 그를 칭찬하였다.

"그래도 욕심이 납니다."

"어떤 욕심이 나던가?"

검인은 궁금하다는듯 선우에게 되물었다.

"선배님을 뛰어넘고 싶다는 욕심이 말입니다."

"크크큭 영광이구나. 자네의 목표가 되다니 말일세."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선우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선우에게 검인은 검에 관해서 만큼은 스승이나 다름없는 자였다.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분명 자신은 여기까지 성장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갈망이 생겼다.

그를 뛰어넘고 싶다는 갈망이 말이다.

"호승심은 좋은 동기부여가 되지."

말을 마친 검인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오시게나."

그리고는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휘리리릭

선우는 허리에 두르고 있던 용미연검을 풀어헤쳤다.

그러자 낭창거리는 용미연검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선우는 용미연검에 내력을 주입하였다.

그러자 낭창거리던 용미연검에 힘이 들어가더니 꼿꼿하게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전과는 다를 겁니다."

말을 마친 선우는 그대로 검인에게 달려들었다.

검인은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희열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즐거운 검무의 시작이었다.

콰쾅

선우와 검인의 검이 부딪히며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

.

.

.

.

.

털썩

선우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챙그랑

그리고 검을 놓아버렸다.

검을 들 수 있는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완벽히 져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벽을 부수고 더 위로 올라갔건만

그가 말한 한 자루의 검이 되라는 의미를 깨달았건만

아직도 그에게 닿기는 요원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분명 분하였지만 그래도 자신은 검인에게 모든 것을 내보였다.

이이상 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내보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선우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검인을 응시하였다.

"죄송합니다. 결국, 닿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닐세."

그때 검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충분히 닿았다네."

검인은 베어져 있는 소매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선우 또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선우는 이날 처음으로 검인에게 닿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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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막사 안

한 남자가 의자에 등을 기대어 가만히 앉아있었다.

단정하게 묶어올린 머리와 정돈된 수염을 가진 남자는 무척이나 깔끔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묵빛의 멋들어진 갑주를 입고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남자의 정체는 황실의 수호자이자 북방의 학살자라고 불리우는 황궁제일검 이연이었다.

이연은 눈을 감은 채 그저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장군! 부장인 규도이옵니다!"

그때 막사 밖에서 거대한 외침이 들려왔다.

"들어오라."

그 외침을 들은 이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터벅 터벅

이연의 허락이 떨어지자 험상궂게 생긴 남자 하나가 막사 안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북방군의 부장인 규도였다.

"무슨 일인가?"

이연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규도에게 물었다.

"황궁에서 급보가 날아들었습니다."

"급보라?"

규도의 말에 이연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규도의 말을 들은 이연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이연이 손을 내밀자 규도는 재빨리 서신을 그 위에 올려두었다.

스르르

서신을 넘겨받은 이연은 천천히 내용을 훑기 시작하였다.

"흐음"

그리고 머지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아마도 서신에 쓰여져 있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은듯하였다.

화르륵

이연은 그대로 삼매진화를 일으켜 서신을 불태워버렸다.

"나가보거라."

그리고 규도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장군!"

이연의 말을 들은 규도는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를 한 후 그대로 막사 밖으로 나가버렸다.

"흐음"

그리고 규도가 나가자 막사 안에 있던 이연은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 침음성을 흘렸다.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별궁을 나왔을 줄이야."

서신에 쓰여져 있는 내용은 간단하였다.

경화 군주가 별궁 밖으로 나왔으니 그녀를 잡아오라는 명이었다.

그녀는 분명 북해로 향했을 테니까 말이다.

"경화군주라.....경화 군주...."

이연은 경화군주를 몇 번이고 불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명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이연은 경화군주가 싫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말이다.

그녀가 모습을 나타낸 것은 고작 팔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명성과 위엄은 황궁을 수십 년 간 홀로 지켜낸 자신과 비견되었다.

이연은 그런 경화군주의 등장이 반갑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말하였다.

자신과 경화군주는 황궁을 수호하는 두 마리의 용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연은 그런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궁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자신 뿐이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연은 황궁의 유일한 수호자라는 말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이였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고작 이립도 안되는 계집에 의해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무공은 물론이고 전공까지 자신을 따라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연은 그녀에게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수십 년 간 자신이 이룩한 것을 고작 팔 년의 세월 만에 따라잡은 그녀에게 말이다.

그런 그였기에 경화 군주가 화기를 제어하지 못하였을 때 쾌재를 불렀다.

다시금 황궁제일이 누구인지 세인들에게 깨닫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치유를 위해 빙정을 구하라는 황제의 명이 떨어졌을 때도 이연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었다.

빙정을 찾는 즉시 없애 버릴 생각을 말이다.

그녀가 영원히 치료될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별궁을 떠나 북해로 왔다고 한다.

어찌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을까

이연은 생각하였다.

어쩌면 세상에 다시 없을 최고의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그녀가 빙정을 구하게 되고 주화입마를 치료하게 된다면 그녀는 다시금 황궁을 지키는 수호자로서의 입지를 다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젊었다.

앞으로 더욱더 강해질 것이고 종국에는 자신조차 뛰어넘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그녀에게 황궁제일이라는 명예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싫었다.

평생 홀로 황궁을 지켰다는 자부심을 품고 있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황궁제일이라는 명예를 빼앗긴 다는 사실은 죽는 것보다 더욱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죽여야한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죽여야 했다.

이미 이연의 머릿속에는 그녀가 천자天子의 피를 이어받은 혈족이라는 생각 따윈 저 멀리 사라져 있을 뿐이었다.

오직 열등감의 대상을 죽이고 말겠다는 추한 생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연은 생각하였다.

불의의 사고라는 것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지 말이다.

농민이 되었든

상인이 되었든

관리가 되었든

군주가 되었든 말이다.

순간 이연의 눈빛에는 깊은 살기가 아른거리기 시작하였다.

경화군주는 죽을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말이다.

생각을 마친 이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막사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일단 그녀가 있을 만한 곳으로 이동할 심산이었다.

빙정에 대한 단서가 있을 만한 장소.

북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어디로든 이동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장소.

북해에서 가장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어 정보를 취득하기 쉬운 장소.

북해빙궁을 말이다.

이연은 눈을 빛내며 걸음걸이를 더욱 빠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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