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화 〉 274. 그에게 가르침을 받다.
푹 푹 푹
잠들었던 사이가 또 다시 눈이 내린 것인지 발이 푹 푹 빠졌다.
하지만 선우는 개의치 않고 눈길을 헤치며 기운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기운은 갈수록 더욱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와 더더욱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듯이 빨리 뛰기 시작하였다.
분명 그와의 재대결을 기대하고 있는 마음이리라
언제나 목숨을 건 싸움만을 했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즐거운 싸움을 가르쳐준 이였다.
또한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단서를 준 은인이기도 하였다.
만약 그와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은 황보강의 무지막지한 주먹에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설레었다.
마치 오래토록 연모한 첫사랑을 만나러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푹 푹 푹 푹
설렘으로 가득한 선우에게 푹 푹 꺼지는 눈 밭따위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선우는 음양조화기를 운용하였다.
우우우우우웅
이내 그의 몸에 상당한 내력이 일렁이더니 그대로 용천혈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쾅
선우는 용천혈에 몰려든 내력을 일제히 터트려버렸다.
그리고는 풍진보를 밟으며 쉴새없이 내달렸다.
선우의 신형이 빛살처럼 쏘아져나가기 시작하였다.
푹 푹 폭 폭 탓 탓
머지 않아 푹 푹 빠지던 다리가 조금씩 빠지더니 종국에는 밟은 흔적조차 안남기기 시작하였다.
경공의 상승 지경이라고 불리우는 답설무흔(踏雪無痕)이 펼쳐진 것이다.
선우는 답설무흔 (踏雪無痕)을 발휘하여 더욱더 빠르게 내달렸고 그 신형은 저 멀리 사라지게 되었다.
탓
탓
탓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오싹
마을 외곽까지 나온 선우는 오싹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극대화되는 것을 느꼈다.
거의 다 온것이다.
선우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공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공터를 본 선우는 알 수 있었다.
도착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타탁
공터에 발을 디딘 선우는 재빨리 발을 멈추었다.
발을 멈춘 선우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공터 중앙에 오연히 서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선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둡고 어두운 밤이었지만 선우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거대한 기운을 품고 있는 중년인의 모습을 말이다.
"검인劍人 선배님."
선우는 중앙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이제 왔는가?"
선우의 부름에 검인은 살짝 미소 지으며 그를 반겼다.
"내 기다리다 얼어죽을 뻔 했다네."
그는 가벼운 농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귀뜸이라도 해주지 그러셨습니까?"
"내 말하지 않았나? 다음에 같이 검무나 추자고 말일세."
"그게 설마 오늘일 줄은 몰랐지요."
"하하하하하 미안하네. 내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일세."
선우의 말을 들은 검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내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못 본새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다다른 자네를 보았으니 말일세."
검인은 이채가 띄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찌 아시는 겁니까?"
그의 말에 선우는 모르겠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어찌 자신을 그리 속속히 꿰뚫어볼 수 있다는 말인가
검인은 능소화와는 달리 자신의 무공을 직접 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자신이 신검합일에 이른 것을 알아챌 수 있다는 말인가
"그저 그렇게 느껴졌네."
선우의 물음에 검인은 담담히 답하였다.
"그렇군요."
그런 검인의 답을 들은 선우는 납득한듯 수긍을 하였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러하였다.
그는 처음부터 모르는 것이 없었다.
마치 전지全知의 경지에 이른 점쟁이처럼 말이다.
"대체 이런 곳은 어떻게 찾으신겁니까?"
선우는 주위의 공터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공터는 무척이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분명 밤사이 설풍이 휘몰아쳤음이 분명한데도 눈이 쌓이긴 커녕 흙바닥만 보일 뿐이었다.
"물론 다 준비하였지."
선우의 물음에 검인은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걸 전부 말입니까?"
선우는 놀라 그에게 되물었다.
"그정도 값어치가 있는 일이니까."
선우의 물음에 검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는 진정으로 그리 생각하였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는 그 어떠한 변수도 없어야했다.
실력이 아닌 지형때문에 승패가 갈린다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선배님은 검에 미친 사람이 분명합니다."
"크하하하하 고맙네."
선우의 말을 들은 검인은 다시금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인 것 같네만?"
검인은 눈을 반짝이며 선우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선배님 만큼은 아닌듯 싶습니다."
선우는 살짝 미소를 짓더니 이내 검대에 손을 대었다.
스르르릉
그리고 자루를 쥐어잡고 천천히 검을 빼 들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검을 빼 든 선우는 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 생각도 그렇다네."
검인은 재밌어 죽겠다는듯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늘어뜨렸다.
"당시 저는 선배님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아무리 내력을 끌어모아도 말이지요."
선우는 검을 천천히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겁니다."
선우는 음양조화기를 극성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검인이 강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경지에 올라선 지금도 털끝은 댈 수 있을지 장담조차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선우는 처음부터 최선을 다할 심산이었다.
그에게 닿을 수 있도록 말이다.
머지 않아 몸에 음양조화기가 퍼지더니 어마어마한 활력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신체능력이 극대화된 것이다.
"오호"
그 모습을 본 검인은 감탄하였다.
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해졌다는 사실이 체감되었기 때문이다.
"오시게."
검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쾅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우는 검을 세운 뒤 그대로 검인을 찔러들어갔다.
노리는 곳은 그의 목이었다.
챙
검인은 목을 노리는 선우의 검을 여유롭게 받아쳤다.
"빠르구나."
그리고 감탄한듯 내뱉었다.
선우는 재빨리 검을 회수한 후 보법을 밟았다.
신법과 보법이 하나가 되있다는 풍진보風進步의 묘리가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신형이 쉴새 없이 이동하며 그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우의 발걸음에서 바람이 뿜어져나왔다.
바람마저 초월한 그의 걸음걸이에 바람이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뿜어져나온 바람은 그대로 검인의 주위를 에워쌌고 검인은 쉴새 없이 몰아치는 바람의 장벽에 갇히게 되었다.
"오호"
그 모습을 본 검인은 감탄한듯 탄성을 내뱉었다.
바람마저 초월한 보법이라니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쇄애액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검인의 가슴에 검이 날아왔다.
챙
재빨리 검을 든 검인은 그대로 검을 튕겨내었다.
튕겨져나간 검은 그대로 회수가 되더니 다시금 바람의 장벽으로 사라져버렸다.
쇄애애액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편에서 검이 날아왔다.
챙
검인은 몸을 돌린 후 가볍게 검을 휘둘러 검을 막아내었다.
그러자 검은 재빨리 회수되어 장벽으로 들어가버렸다.
"장벽 뒤에 숨어서 검을 찌를 셈인가?"
검인은 장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쇄애애애액
하지만 검인의 물음에는 대답대신 검만이 날아들 뿐이었다.
챙
챙
챙
검인은 날아오는 검을 어렵지 않게 막아내었다.
그리고 막아내는 틈틈이 눈알을 돌려 선우의 움직임을 파악하였다.
챙
검인은 다시금 날아온 검을 그대로 튕겼다.
그리고 그대로 횡으로 크게 베어들어갔다.
검인의 검이 바람의 장벽을 가르자 모든 바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바람에 가려진 선우의 모습이 드러났다.
"찾았다."
퍽
검인은 악동같은 미소를 짓더니 그대로 선우를 발로 차버렸다.
"으윽"
검인의 발재간에 가슴을 얻어맞은 선우는 그대로 뒤편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꽤나 재밌는 기술이었지만 나한테는 안통한다네."
"통할거라고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툭 툭
흙이 묻은 가슴을 몇 번 털어낸 선우는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그에게 달려들었다.
챙
이내 선우의 검과 검인의 검이 투명한 금속음을 내며 부딪혔다.
선우는 그대로 오른 발을 들어 올리려고 하였다.
검인의 복부를 걷어찰 심산이었다.
꾸욱
하지만 발은 들어 올려지기도 전에 봉쇄당하고 말았다.
검인의 왼발이 자신의 왼발을 꾸욱 밟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수가 읽힌 것이다.
카앙
선우는 재빨리 검을 튕기고는 그대로 검인의 품속에 파고 들었다.
자루를 쥔 손으로 얼굴을 내려찍을 심산이었다.
퍽
"커억"
하지만 그런 선우의 계획은 마음먹은 것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검인이 왼팔꿈치로 안쪽으로 파고드는 선우의 명치를 찍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명치가 가격당한 선우는 몸을 살짝 숙이더니 그대로 신음성을 내뱉었다.
명치를 가격당하니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퍽
"으윽!"
검인은 주먹을 들어 그런 선우의 턱주가리를 그대로 가격하였다.
부웅
선우의 몸이 살짝 공중에 뜨게 되었다.
"으윽"
선우가 공중에 뜨자 검인은 왼발을 들어 선우의 복부를 그대로 밀어차버렸다.
콰콰쾅
복부를 차인 선우는 그대로 날아가더니 이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동그라졌다.
"별로 바뀐 것은 없는듯 하네만?"
검인은 바닥에 나동그라진 선우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으득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이를 갈았다.
탁
선우는 양손을 들어 땅을 짚었다.
그리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상체가 어느정도 일어나자 이번에는 다리에 힘을 주어 땅을 디뎠다.
"크으으윽!"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세웠다.
"아프면 그만해도 되네만?"
검인은 그런 선우를 보며 놀리듯 말하였다.
"....아직 값어치를 증명하진 못했습니다."
그런 검인의 물음에 선우는 투쟁심 가득한 눈빛으로 답하였다.
"너무 무리하지 말게나."
"무리가 아닙니다. 이 정도 고통은 익숙하다 못해 간지럽습니다."
선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거짓말이다.
무통無痛이 아닌 이상 고통에 익숙해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 싸우기 위해 거대한 공터까지 만든 검인이었다.
그런데 검 몇 합 나눴다고 쓰러져버린다면 그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자네는 바보로군. 고통이 익숙해질 리 없지 않은가?"
선우의 말을 들은 검인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은 선우를 괜스레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냥 넘어가 주십시오"
그의 신랄한 말에 선우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하 미안하네. 미안해."
웃음 짓던 검인이 선우에게 사과를 하며 말을 이었다.
"난 그래도 자네의 바보같은 말이 마음에 드는군. 호승심이 드니 강한 척하는게 아니겠는가?"
검인은 아까의 웃음과는 상반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말했지 않았나? 검을 즐기라고 그게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말일세."
검인은 올곧은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없다네."
말을 마친 검인은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재밌는 것을 보여주지."
우우우우우웅
말을 마친 검인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기운들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렁이던 기운들은 그의 검에 전부 스며들었다.
그러자 그를 둘러싼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하였다.
폭발적인 기운을 뿜어내던 전과는 달리 무척이나 정련되고 세련되며 제련되있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마치 한 자루의 명검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두근 두근
그 모습을 본 선우는 가슴이 미친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어찌 사람의 몸에서 검과도 같은 기세가 느껴진다는 말인가
신검합일身劍合一과는 달랐다.
검과 몸이 하나가 되는 게 아닌 그저 검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알 수 있었다.
검인劍人이 추구하는 한 자루의 검이란 이런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검을 들게."
검 자체가 되어버린 검인이 선우에게 말하였다.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홀린듯 검을 들어올렸다.
"자네의 최선을 보여주게나."
검인은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짤막이 말하였다.
검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음양조화기를 검에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단전에 있는 모든 내력을 오로지 검에만 집중하였다.
뿐만 아니라 몸속에 내재되어있는 독기마저 검으로 집중하였다.
그러자 이내 녹빛의 강기가 선우의 검에 치솟아올랐다.
선우는 강기를 더욱더 키우고 키우고 또 키웠다.
키워진 강기는 마치 하늘에 닿을 것과도 같이 높이 치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치솟아오른 강기들을 그대로 응축하고 또 응축하고 또 응축하였다.
그러자 강기들이 검 끝에 동그란 구체를 형성하더니 이내 녹빛의 강기 구슬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이 녹빛의 검환이 자신의 최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좋구나."
그때 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의 녹빛 검환을 본 검인은 만족스러운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게나."
쾅
검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우는 그대로 검환을 내질렀다.
공간마저 일그러뜨리는 강기의 구체가 그대로 그에게 날아들었다.
검인은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는 아무런 기운이 서려있지 않았다.
검기도 검강도 검환도 말이다.
그저 검을 내질렀을 뿐이었다.
서걱
그리고 이내 절삭음이 들려왔다.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 절삭음이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자신의 검이었다.
검인이 가벼이 휘두른 검이 검환은 물론 자신의 검마저 베어버린 것이었다.
선우는 경악 어린 시선으로 검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강의 기술이 단 번에 베어진 것이다.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가? 재미는 좀 있었나?"
검인은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