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2화 〉 273.검인劍人과 재회하다-2
덜컹
마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멈춰섰다.
"마을 어귀에 도착했습니다. 장 대협."
마차가 완전히 멈춰서자 마부는 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오늘은 마을에서 묵을 것 같습니다. 다들 채비를 하고 나가시지요."
"허허허 역시 마차를 타니 금방 오는구만."
선우의 말을 들은 검인은 즐거운듯 싱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선배님은 마차를 타면 울렁거린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설향은 그런 검인을 보며 물었다.
탈 것에 익숙치 않다며 북해까지 걸어왔던 그였다.
그런데 오는내내 울렁거리기는 커녕 멀쩡한 모습만 보였기에 의아함이 들었다.
"지금도 울렁거린다네. 참고 있는 게지. 좀 있다 내려서 한바탕 쏟아낼듯 싶군."
그녀의 물음에 검인은 아무렇지 않은듯이 말을 이었다.
"으으으 더러워요."
검인의 말을 들은 설향은 상상이 된듯 표정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허허허허 자연현상을 어찌 더럽다고 하는가"
검인은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 아무래도 마차에 있는 짐을 빼야할 것 같아서요."
"나도 먼저 나가보겠네. 한 바탕 비워야할듯 싶네."
덜컹
말을 마친 두 사람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마차 안에는 선우와 능소화 그리고 마일권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선우는 슬쩍 시선을 올려 능소화를 바라보았다.
능소화는 여전히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났어?"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화 안났다."
"화난것 같은데?"
"잘못 본 것 같구나."
"에이.."
"화나지 않았다고 하지 않더냐!"
선우의 계속되는 불신에 능소화는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화 났구만 뭘."
"그대가 자꾸 나를 자극하지 않더냐!"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나름의 반론을 하였다.
"솔직히 말해봐."
선우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뭘 말이더냐!"
"설향이 너는 뒷전에 두고 검인 선배하고만 놀아서 삐졌지?"
"그런 것 아니다."
"아니긴 무슨, 하루종일 아무말도 없더만."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어찌 신경써주지 않았다고 토라진단 말이더냐!"
선우의 계속되는 추궁에 능소화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토라진 것 아니었어?"
"아니다!"
"그래? 그럼 내일도 검인 선배와 동석해도 상관없겠네?"
"............."
선우의 물음을 들은 능소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자와 동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가 불편하다면 다른 마차로 가달라고 부탁할 요량이었는데 상관 없나 보네."
선우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빙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잠,.잠깐!"
그러자 능소화가 선우를 다급히 불렀다.
"왜?"
"생각해보니 처음보는 이와 함께가는 것은 역시나 불편하다. 따로 갔으면 한다."
"상관없다면서?"
"나는 상관없으나 마 호위가 초면인 사람에게 무척 낯을 가린다."
능소화는 뜬금없이 마부장에게 화살을 돌려버렸다.
"네?!"
그리고 화살이 돌려진 마부장은 깜짝 놀라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낯을 가린다니?
마부장은 검인이 있든 말든 별상관없는 이였다.
애초에 말도 잘 안섞는데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닌거 같은데?"
선우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진짜래두! 생각을 해봐라. 그자가 탄 이후 마 호위가 어떤 말도 하지 않지 않았는가? 다 불편해서 그런 것이다."
선우의 미심쩍은 표정을 본 그녀는 다급히 반박을 하였다.
"마 호위님은 원래 말 없지 않았어?"
"정 그리 못미더우면 직접 물어보거라! 분명 불편하다고 답할 것이다!"
"흐음"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민하는듯 침음성을 한 번 내뱉은 후 마부장을 돌아보았다.
"마 호위님 진짜인가요?"
그리고는 마부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저..그러니까.."
선우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들은 마부장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더듬었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 감이 안잡혔기 때문이다.
마부장은 시선을 슬쩍 올려 능소화를 바라보았다.
능소화는 무척이나 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표정을 본 마부장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말을 잘못했다가는 상당히 곤혹스러워질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불..불편했습니다! 역시 처음 보는 사람과 동석하는 것은 힘들더군요! 내일부터 따로갔으면 합니다. 암 그렇고 말고요."
마부장은 재빨리 선우에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부장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만족스러운듯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의도를 잘 파악한 것이 기특했기 때문이었다.
"정말입니까?"
선우는 의심스럽다는듯 그에게 되물었다.
"정말이고 말고요."
선우의 물음에 마부장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곧바로 답을 하였다.
"그리 불편하면 어쩔 수 없지요."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선우의 반응을 본 능소화는 화색이 되었다.
선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는 게냐?
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능소화가 궁금하다는듯이 물었다.
"백년만년 있으려고? 너도 적당히 짐 챙겨서 내려. 객잔으로 들어가야지."
"알았다. 준비 되는 대로 나가지."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말을 마친 선우는 그대로 마차밖으로 나갔다.
휘이이이잉
밖으로 나가자 시리디시린 설풍이 몸을 에워쌌다.
'망할 존나 춥네.'
선우는 온몸을 에워싸는 설풍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화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올랐건만 추위가 파고드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한서불침寒暑不侵에 이르던가해야지.'
선우는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객잔에 빠르게 자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
"하하하하하 술을 더 가져오게!"
객잔 중앙 탁자에 자리를 잡은 검인은 즐거운듯 웃음을 터트리며 호쾌하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대협 그렇게 드시다간 큰일 납니다."
옆에 있던 당가의 무사가 놀란듯 그에게 말하였다.
"어찌 사내가 술을 마다한단 말인가? 걱정말게!"
벌컥 벌컥
당가 무사의 걱정에도 검인은 아무렇지 않다는듯 말을 이으며 술병을 들어올려 그대로 들이켰다.
"캬하아 죽이는구나."
검인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역시 영웅은 풍모부터가 다릅니다."
그때 옆에 있던 청성의 도사가 감탄한듯 입을 열었다.
북해의 독주는 중원의 그 어떤 독주보다 독하기로 유명한 독주였다.
그런데 그런 독주를 고민할 새도 없이 단숨에 마셔버리니 감탄이 안 나올수가 없었다.
"영웅이라니? 아닐세 나는 그저 한자루의 검일 뿐이라네."
도사의 말을 들은 검인은 웃음꽃을 피우며 말을 이었다.
"호오 멋진 말이로다. 한 자루의 검이라니"
그때 옆에 있던 운적자가 그의 말에 동조하며 감탄하였다.
오직 한 자루의 검이 되겠다니
신검합일身劍合一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하하하하하 도장께서 뭘좀 아시는구려."
"나 또한 평생을 검에 바쳤다네. 어찌 그런 멋진 말을 못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크하하하하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군요. 이리도 멋진 벗들을 사귀었으니 말입니다."
운적자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검인은 다시금 술병을 들어올렸다.
"우리의 만남을 위해 잔을 듭시다 여러분."
""좋습니다!""
""좋네!""
그가 잔을 들자 탁자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일제히 잔을 들어올렸다.
"북해에서 만난 소중한 연을 위하여~"
벌컥 벌컥
검인은 건배사를 외치고는 그대로 술을 들이켰다.
"위하여!"
벌컥 벌컥
다른 이들도 그의 건배사를 연호하여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즐겁기 그지없는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허어"
살짝 떨어진 탁자에 앉아있던 선우는 그런 검인의 모습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가 가진 어마어마한 친화력 때문이었다.
그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수색대는 물론 상단의 무사들까지 술잔을 들게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찌나 친화력이 좋으면 꼬장꼬장한 운적자마저 저 자리에 껴서 기분좋게 술잔을 걸치고 있겠는가
호쾌한 사내라고 여기긴 하였지만 저 정도일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어딜 보는 것이냐."
그때 뒤쪽에서 뾰로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선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능소화가 보였다.
"그냥 잘어울린다 싶어서."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대도 저곳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녀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왜 또 화났대?"
"화나지 않았다!"
선우의 물음에 능소화는 발끈하며 답하였다.
"난 여기서 먹는게 편해."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왁자지껄하게 노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였지만 능소화를 냅두고 싶지는 않았다.
"흐음"
그런 선우의 대답이 마음에 들은 것인지 능소화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저도 장 대협이랑 먹는게 편하답니다."
그때 옆쪽에서 설향의 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락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미소를 짓던 능소화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대는 아미의 제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찌 여기서 식사를 한단 말인가?"
설향을 본 능소화는 시비를 걸듯 그녀에게 말하였다..
"아미의 제자들이랑 먹으면 고기를 못 먹거든요."
"그대도 아미의 제자일진데 어찌 고기를 먹는 것인가?"
"저는 본산 제자가 아닌 속가제자라서 고기를 먹어도 된답니다."
능소화의 시비에 설향은 귀엽다는듯 웃으며 답하였다.
"능소저야 말로 그렇게 많이 드셔도 되나요?"
"그게 무슨 말이더냐?"
"사람이 나이가 들면 나잇살이라는게 찐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마구잡이로 드시다보면 금방금방 불어나고 말거예요."
"우스운 말이구나. 본녀에게 군살따위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에이 그건 모르는거죠. 혹시 아나요? 군데군데 살들이 숨어있을지?"
"당장 확인 해보거라! 본녀는 결백하다!"
설향의 도발에 발끈한 능소화는 당장에라도 옷을 벗을 심산으로 언성을 높였다.
"우우, 능소저의 몸은 보고 싶지는 않은데요.."
그녀는 못보겠다는듯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나도 보여주기 싫다!"
"결국 군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는거네요?"
"확인해보라고 하지 않았더냐!"
"보기 싫다니까요?"
"대체 어찌하라는 것이냐!"
설향과 능소화는 다시금 언쟁을 하며 기싸움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쪽 탁자도 검인이 있는 탁자 못지 않게 왁자지껄하게 변하였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이 싸움 구경과 불 구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벌컥
선우는 그녀의 싸움을 안주삼아 술을 들이켰다.
알싸하기 그지없는 주향이 올라오며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선우의 입가에 지어졌던 미소가 더욱더 진해졌다.
**********
취기가 어느정도 오른 선우는 자리를 대충 마무리한 후 방으로 올라갔다.
"흐으응....흐흥...흐흐흥.."
적당한 취기에 기분이 좋아진 것일까
선우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방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깔끔하게 정돈된 침상이 보였다.
가격에 비하면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독방 중에서는 가장 좋은 곳이었다.
선우는 비척거리며 침상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웃차"
침상을 본 선우는 그대로 그곳에 뛰어내리듯 몸을 날렸다.
푹
그러자 침상이 그대로 꺼지면서 선우의 온몸을 감쌌다.
"하아아아"
온몸을 감싸는 보들보들한 느낌에 선우는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북해에서는 침상을 만들 때 늑대의 털을 가득 채운다고 하던데 그 보들보들함은 상상이상인듯 하였다.
따뜻하고 푹신한 침상과 적당히 오른 취기 그리고 배부른 뱃속까지
선우는 생각하였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완벽하였다고 말이다.
스르르
선우는 천천히 눈을 감기 시작하였다.
지금 잠들면 아마 깊고 깊은 숙면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우는 그대로 눈을 완전히 감았고 정신이 끊어지게 되었다.
.
.
.
.
.
.
.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섬뜩
갑자기 섬뜩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선우의 몸을 휘감기 시작하였다.
"으...으...으.."
그 기운을 감지한 선우는 신음성을 간간이 내뱉기 시작하였다.
오싹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섬뜩함이 오싹함으로 바뀌더니 선우에게 압박을 가하였다.
번쩍
그 거대한 압박에 선우는 눈을 번쩍 뜰 수 밖에 없었다.
스르르
눈을 뜬 선우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온통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잤을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잠들어있는 깊은 밤이라는 것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오싹 오싹
선우는 온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운에 집중을 하였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 기운의 주인이 자신이 잘 아는 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날 부르고 있어.'
두근 두근
선우의 심장이 쉴새없이 뛰기 시작하였다.
단잠을 방해받았다는 짜증보다는 검을 마주할 수 있다는 설렘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몸을 완전히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탁자 위에 대충 던져 놓았던 검을 챙겼다.
'부른다면 가줘야지.'
선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