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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71화 (272/1,419)

〈 271화 〉 272.검인劍人과 재회하다-1

"생각보다 그렇게 배움이 깊진 않구나."

능소화는 비웃음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벼슬길이 열려있는 것도 아닌데 사서삼경정도만 떼면 됐죠."

"어찌 학문을 벼슬을 오르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가? 학문은 자고로 모르는 것을 깨닫게되고 알던 것을 새로 알게 되는 즐거움의 연속이니라."

"에이, 그건 너무 틀에 박힌 사고라고 생각해요. 학문에 대하는 자세에 정답이 어디있겠어요? 순수하게 깨달음 얻는 과정을 즐길 수도 있고 벼슬을 오르기 위한 수단으로 여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목적지향적인 생각은 삶을 피폐하게 만드느니라."

"이루고자 하면 인생은 더 허무할 것 같은데요?"

능소화와 설향은 오늘도 어김없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오늘의 주제는 학문인듯 싶었다.

'잘노네.'

선우는 그녀들의 기싸움을 보며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능소화가 수색대에 합류한지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설향은 그 일주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의 마차에 동석하였다.

처음에는 점심식사 이후에 마차에 올라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제는 아침부터 제자리인냥 마차에 냉큼 올라타버렸다.

마차에 동석하는 것이 일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마차에 동석한 그녀는 여지없이 능소화와 언쟁을 벌이며 기싸움을 이어갔다.

그녀들의 기싸움은 일주일이 지나도 승패가 나오지 않을만큼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둘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찌나 대단한지

엥간하면 조롱과 비꼼따위는 귓등으로도 안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의 그런 모습을 본 선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존감이 높은 애들의 기싸움이 쉽사리 끝나지 않는구나하고 말이다.

그녀들은 오늘도 기 싸움을 벌이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녀들이었다.

그때였다.

"오라버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한창 언쟁을 벌이던 그녀들이 동시에 선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뭐가?"

상념에 빠지느라 제대로 듣지않았던 선우는 당황스러운듯 되물었다.

"목적지향적인 삶이 좋으시죠?"

"목적보단 과정을 중시하는 삶이 좋지 않는가?"

"..............."

갑작스러운 그녀들의 물음에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철학적인 걸 자신에게 물으면 어떻게 답을 한단 말인가

"그....나는 둘다 좋은데?"

고민 끝에 낸 결론은 둘다였다.

"그런게 어딨어요!"

"그런 것은 없다. 하나를 고르거라!"

선우의 답을 들은 그녀들은 언성을 높이며 반발하였다.

선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녀들은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니들끼리 놀아!'

선우는 속으로 성토를 하였다.

지들끼리 잘놀다가 갑자기 왜 자신을 끌어들인단 말인가

"나보다는 마 호위한테 물어보는게 어때?"

선우는 재빨리 대상을 옆에 앉아있는 마 호위로 바꾸었다.

"그..그런!"

옆에서 선우의 말을 들은 마 호위는 원망 섞인 얼굴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뜬금없이 왜 가만히 있는 자신을 끌어들인다는 말인가

"마 호위님은 능소저의 호위잖아요. 객관성이 떨어져요."

"마 호위는 내편을 들 것이다."

선우의 말에 들은 그녀들은 나름의 이유를 대며 거절을 하였다,

요는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별걸 다따지네.'

그리고 그녀들의 말을 들은 선우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묘한데서 고집이 있는 그녀들이었다.

선우는 고민에 빠졌다.

둘 중 한명을 고르라니 못할 짓이 아닌가

"빨리요!"

"어서 말하거라!"

선우가 말없이 고민에 빠지자 설향과 능소화는 그를 닥달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닥달에도 선우는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였다.

마치 명절날 엄마랑 아빠 중 누가 더 좋냐는 물음을 들은 상황이 아니던가

물론 엄마가 더 좋긴하였지만 아빠를 상심하게 할 수는 없었다.

선우의 사색이 더욱더 깊어졌다.

덜커덩

그때 갑자기 마차가 덜컹거리며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뭡니까!"

선우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옳다구나하면서 재빨리 화제전환을 하였다.

"갑자기 앞쪽에 있는 마차가 멈췄습니다."

선우의 물음에 마부는 당황스러운듯 말을 이었다.

".저..적일까요?"

그때 마일권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혹여 먼젓번처럼 마적의 습격일까 걱정되는듯하였다.

"그건 아닐거에요. 이정도 행렬이면 마적들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거든요."

그의 물음에 설향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하였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수색대와 상단이 합쳐져있는 그들의 행렬은 커다랗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대규모 행렬을 습격할 간큰 마적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럼 대체 뭘까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마일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적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이유로 마차가 멈춰선단 말인가

그렇게 모두가 의문을 표하고 있을 때였다.

쾅 쾅

누군가 선우의 마차를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씀하세요."

그 소리를 들은 선우는 차분히 말하였다.

"잠깐 나와보셔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마차밖에서 청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사람을 주웠습니다."

"사람이요!?"

선우는 놀라듯 되물었다.

눈길만 펼쳐져있는 이곳에서 별안간 사람이라니!?

"아무래도 조난자인 것 같습니다."

"상태는 어떤가요?"

"멀쩡합니다. 대로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더군요."

"허어"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보통 북해로 상행을 떠나는 경우 대부분 상단들은 대로라고 불리우는 마찻길을 이용한다.

어딜가나 눈 밭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대로의 경우 땅이 고르고 평탄하여 짐마차들이 오고가기 편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대로 한가운데 누워서 잠을 잤다고 한다.

선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대로에서 자는 것은 자칫 잘못하다간 마차에 치여 생을 마감할 수도 있을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강심장이라는 말인가

"가는 길이 같다며 동행을 요청하시더군요."

"북해빙궁으로 간다고 합니까?"

"네, 목적지는 북해빙궁이라고 하더군요."

"흐음"

청송의 말을 들은 선우는 짐짓 고민에 빠진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만나봐야겠습니다."

선우는 일단 만나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금 어디있습니까?"

"앞쪽 마차에 있습니다."

덜컥

대답을 들은 선우는 그대로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곧바로 마차 밖으로 나왔다,

"다녀오겠습니다."

마차 밖으로 나온 선우는 안을 둘러보며 짤막이 말하였다.

선우의 말을 들은 이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을 마친 선우는 곧바로 마차 앞쪽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대로에서 누워자던 간 큰 인간을 보기위해서 말이다.

청송은 그런 선우의 꽁무니를 천천히 따라갔다.

************

마차 앞 부분에 도착한 선우는 놀란듯 눈을 휘둥그래떴다.

대로에 누워서 자던 간 큰 인간을 보러왔건만 낯이 익은 중년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칠게 자란 머리를 질끈 동여맨 야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남자.

입가에는 감출 수 없는 장난기를 가득 담고 있는 남자.

선우는 이 남자를 잘 알고 있었다.

만난것은 단 하루에 불과했지만 다시 없을 깨달음을 전해준 남자.

언제고 다시 만나길 고대하고 있던 남자.

이름따윈 없다며 그저 검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던 남자.

그는 백화봉을 가기전에 만났던 검인劍人이었다.

"하하하하하 인연이란 정말 모를 일이구만 어찌 자네가 여기있다는 말인가"

그런 선우를 본 남자는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어..어찌 선배님께서 이곳에 있는 것입니까!?"

선우는 반가움과 경악의 감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사실 그때부터 북해로 향하고 있었다네. 해메느라 조금 시일이 걸리긴 하였지만 말일세.하하하하"

남자는 선우의 물음에 호탕함 웃음을 터트리며 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답을 들은 선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얼마나 길을 해멨길래 이제와서 북해에 도착한다는 말인가

"설마 걸어오셨습니까?"

"아무렴 그렇고 말고, 내가 말을 타면 속이 울렁거려서 말일세."

"..........."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중원에서 북해까지 거리는 어마어마하였다.

그런데 그런 거리를 말도 타지 않고 걸어왔댄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잘 지냈나? 못 본새 경지가 더욱더 올랐구만."

남자는 선우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고 선우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무공을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경지가 오른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같이 검무나 한 번 춥세. 자네를 보니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구만."

"....그..러시지요."

남자의 물음에 선우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전광석화처럼 화제를 이끌어가는 남자에게 적응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

"하하하하하하. 이쪽 마차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미녀들이 많구만."

선우의 마차에 올라탄 남자는 마차 안을 둘러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반가워요. 아미파의 제자인 설향이라고 합니다."

"능소화다."

"능아가씨의 호위무사인 마일권이요."

그가 마차에 올라타자 안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인사를 하였다.

"반갑네. 나는 그저 검이라고 불러주게나."

"검이요?"

"검?"

그의 말을 들은 설향과 능소화는 의문에 담긴 표정을 지었다.

"이름이 검인건가요?"

설향은 궁금하다는듯이 그에게 물었다.

"그런건 아닐세. 그저 내 마음가짐과 같은거지."

설향의 물음에 남자는 친절히 답해주었다.

"마음가짐이요?"

"한자루의 검이 되겠다는 마음가짐 말일세. 이름 같은건 버린지 오래라네."

"그렇군요! 그래도 부르기 힘들 것 같아요."

그의 대답을 들은 설향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무에 힘들겠는가"

"선배님을 부를 때마다 한 자루의 검 선배님! 이러면 너무 말이 길어지지 않나요?"

"크하하하하 그도 그렇군."

설향의 반박에 남자는 되려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였다.

"간단하게 검인劍人선배님이 어때요?"

"가명이 생기는 것인가? 뭐 나쁘지 않을 것도 같군."

"그럼 검인 선배님이라고 부를게요."

남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설향은 냉큼 못을 박아버렸다.

"하하하 소저가 원하는대로 하게나. "

그 모습이 귀여웠던 것인지 검인은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설향은 검인과 죽이 잘맞는 것인지 만나자마자 애칭마저 지어주었다.

검인 또한 설향의 그런 살가움이 싫지는 않은지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마차 안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검인 선배님은 왜 북해로 향하는 건가요?"

설향은 궁금한듯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을 들은 선우는 귀를 쫑긋 세웠다.

자신도 궁금하던 차였기 때문이었다.

"검에 불과한 내가 어찌 북해에 왔겠는가? 검을 휘두르러 온것이지."

그녀의 물음에 검인은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정말요? 무슨 일인데요? 은원? 아니면 비무? "

"하하하하하 비밀일세."

설향의 물음에 검인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였다.

"에이, 말해주세요."

설향은 그런 검인을 보며 조르듯 말하였다.

"원래 남자는 비밀을 품을수록 매력적으로 변한다네."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요?"

그의 말에 설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당연히 모를걸세."

"왜요?

"방금 내가 지어냈거든."

"뭐예요! 그게!"

검인과 설향은 말장난을 하며 곧잘 놀기 시작하였다.

둘 사이에서는 웃음꽃이 떠나가질 않았다.

똑닮은 부녀사이라 해도 믿을 만큼 둘의 조합은 상당히 잘맞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머리를 살짝 긁적였다.

아무래도 북해로 향한 목적을 자세히 말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좀 이따 따로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다짐을 한 선우는 말없이 그들의 대화를 감상하였다.

의외로 재밌는 말장난이 능소화와 설향 간의 기싸움과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응?'

순간 선우는 무언가 깨달은듯 능소화를 쳐다보았다.

검인이 설향과 말장난을 시작한 이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능소화는 무언가 불만인듯 뚱한 표정을 지은 채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절로 웃음이 났지만 선우는 꾹 참았다.

괜스레 창피를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화야."

선우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무엇이냐."

"왜 말이 없어?"

"말하고 싶지 않은 것 뿐이다."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까지는 말도 많더만."

"갑자기 지금부터 말을 줄이고 싶어졌다."

"갑자기?"

"그래, 갑자기 말이다."

그녀는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심기가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선우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심기가 좋지 않은 이유가 검인이 탄 이후 능소화와 기 싸움보다는 그와 말장난을 하고 있는 설향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싫다고 싫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막상 신경을 안써주니 삐진 것이다.

선우는 그녀의 귀여운 반응에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검인과는 따로 마차를 타고가야할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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