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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69화 (270/1,419)

〈 269화 〉 270. 두 여인의 기싸움-1

"조건?"

선우는 의문스럽다는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 조건."

"조건에 조건을 거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야?"

선우는 불평인 듯 말을 이었다.

애초에 입을 다물어준다는 조건이 있지 않았는가?

"싫으면 말도록 하라. 본녀는 정당한 등가교환을 원할 뿐이다."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당당히 말하였다.

본래 무인은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누군가에게 공유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죽도록 고생해서 얻을 깨달음을 누군가가 쉽게 얻어가는 것은 원치 않았을뿐더러 그 공유를 통해 자신의 무공이 까발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깨달음을 공유해달라는 선우의 부탁은 무림인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무례한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입을 다물어준다는 조건을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다.

"뭘 원하는데?"

선우는 고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별거 아니다."

선우가 수긍한 듯 보이자 능소화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부탁 하나만 들어주거라."

"부탁이라니?"

그녀의 말에 선우는 의문 담긴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은 말할 수 없구나. 하지만 그대에게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흐음"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짐짓 고민에 빠졌다.

무슨 부탁을 할지 모르는데 선뜻 공수표를 남발하는 것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좋아."

하지만 이내 선우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그녀의 깨달음이 너무나도 탐이 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깨달음은 정체되어있는 자신에게 큰 활력이 될 것이다.

쓰윽

선우의 반응을 본 능소화는 흡족한 듯 작은 미소를 지은 뒤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선우는 그녀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그녀의 보드라운 손의 감촉이 전신에 자르르 퍼져나갔다.

"그대의 말에 거짓은 없어야 할 것이다."

"당연하지."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둘 사이 거래가 성립되었다.

**********

"흐음"

설향은 다리를 꼰 채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침음성을 내뱉었다.

"으으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풀더니 이번에는 턱을 괸 채 다시금 침음성을 내뱉었다.

"사저, 무슨 일 있어요?"

그때 옆에 있던 운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 차린 설향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인상을 살짝 찌푸린 운혜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 일 없는데?"

`거짓말 마세요. 아까부터 계속 이런 상태였잖아요."

그녀는 불만인듯 설향에게 말하였다.

운혜는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가뜩이나 좁은 마차에서 쉴새 없이 몸을 움직이니 온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아니라니까."

운혜의 추궁에 설향은 시치미를 뚝 떼었다.

"거짓말."

그녀의 시치미에 운혜가 단호히 말하였다.

"장 대협때문이죠?"

그녀는 은근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아..닌데?"

그녀의 물음에 설향은 당황한듯 말을 이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얼굴은 시뻘개져가지고."

운혜는 설향을 바라보며 놀리듯 말을 이었다.

"........티나?"

"엄청요."

"........"

그녀의 단호한 말에 설향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름 숨긴다고 숨겼는데 이리 들통 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사저, 고민이 있으면 가감없이 말해주세요. 제가 해결을 해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공감은 해줄 수 있어요."

운혜는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설향이 무엇 때문에 고민을 하는지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분명 장선우와 같이 마차에 오른 여인이 신경쓰이는 것이리라

언제나 천방지축 말썽만 부리던 어린 사저가 남자때문에 전전긍긍 앓으며 사랑의 고민을 하니 퍽 귀여워 보였다.

"난 해결책을 원하는데....."

"........"

취소였다.

역시 귀엽지는 않았다.

"그럼 계속 그러고 있어요!"

그녀의 말을 들은 운혜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기껏 걱정해준 사람한테 이게 무슨 태도란 말인가

"아니야. 말할게. 아니 말하게 해줘."

운혜가 발끈하자 설향은 그녀를 달래듯 말을 이었다.

"흠흠 그럼 말해보세요."

운혜는 설향의 달램에 헛기침을 하더니 못 이기는 척 말을 이었다.

"신경쓰여!"

"뭐가요?"

운혜는 모르는 척 그녀에게 되물었다.

"장 대협과 같이 들어간 여자말이야!"

설향은 흥분한듯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왜 굳이 장 대협에 마차에 따라탄거지? 이상하잖아!"

"북경상단을 믿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거라면 청성이나 아미의 제자들이 타고 있는 마차에 타도되잖아!"

"장대협이 가장 믿음직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아니 이상해!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남자가 타고 있는 마차에 단둘이 탄다고 말할 리 없잖아."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거칠게 저으며 말하였다.

"분명 호위무사도 태운다고..."

"호위무사는 이미 기절해있잖아! 단둘이 있는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라고!"

"............."

설향의 말을 들은 운혜는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하든 답이 정해져있다는 생각을 말이다.

"분명 무슨 흑심이 있는 것이 분명해! 장 대협의 잘생긴 외모에 반했다던가! 장 대협을 유혹하려고 한다든가!"

설향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말을 이었다.

언뜻 보면 화가 잔뜩 나 있는 듯 보였다.

"그런건 아닌것 같은데요..."

"어째서!?"

"장 대협이 무공이 엄청 뛰어난 건 맞지만 절세의 미남인건 아니잖아요. 아까 그 소저는 척보기에도 엄청난 미인이던데 뭐가 아쉬워 장대협에게 반하나요?"

설향의 비약에 운혜는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하였다.

장선우가 모나지 않게 생기긴 하였지만 송옥이나 반안에 비견할 정도의 절세미남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선우에게 한눈에 반한단 말인가

비약도 이런 비약이 없었다.

"무슨 소리야! 장 대협이 어디가 어때서!"

운혜의 말을 들은 설향은 언성을 더욱더 높였다.

그녀의 반응은 마치 부모 욕을 들은 것처럼 과민하기 그지없었다.

"얼굴이 그 정도면 됐지! 무슨 남자 얼굴 뜯어먹고 살것도 아니고! 게다가 장 대협이 얼마나 멋진데! 균형 잡히게 발달한 가슴 근육이랑 튼실하기 그지없는 하체 근육, 오밀조밀하게 압축되어있는 팔 근육까지! 게다가 그것뿐이야? 무공은 또 얼마나 강하다고! 저번에 한 번 검을 섞을 기회가 있었는데........."

설향은 발끈하며 선우의 장점을 쉴 새없이 나열하기 시작하였다.

"아"

그리고 이내 운혜는 깨달았다.

자신이 크나큰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씐 설향 앞에서 말이다.

`하아`

운혜는 속으로 크나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설향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얌전히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듯싶었기 때문이다.

.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알겠어?"

설향은 말이 끝난 것인지 운혜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

하지만 설향의 끊임없는 선우에 대한 찬양에 지친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정신적으로 피로가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르겠어?"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설향이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안되겠다. 다시 한 번 설명해줘야겠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 알아들었어요! 장 대협 너무 멋진 것 같아요! 제가 출가를 하여 남자 보는 눈이 없었어요!"

운혜는 혹여 설향이 다시금 찬양을 이어갈까 두려워 재빨리 대답을 하였다.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의 찬양이었다.

만약 두 번이나 듣게 된다면 기절하고 말리라

"의심스러운데?"

그런 운혜의 반응에 설향은 미심쩍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에요!"

그녀의 반응을 본 운혜는 억울하다는듯 소리쳤다.

"흠흠, 쨌든 그 여자가 장 대협에게 반했을까 신경쓰여."

설향은 헛기침을 하여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저...근데 사저."

설향의 말을 들은 운혜는 은근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왜?"

"근데 사저랑 상관없는 일 아닌가요?"

"아니 나랑 왜 상관없어!"

"사저가 장 대협과 사귀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정혼자도 아니고."

"그...같은..수색대의..동료로서 걱정이.."

"걱정치고는 반응이 너무 과한데요?"

"............"

운혜의 말을 들은 설향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자신은 장선우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에게 호감을 품고 있기는 하나 그건 자신만의 생각일 뿐

선우에게 자신은 그저 같은 수색대의 동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런 자신이 선우의 여자관계를 걱정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치만.."

그때 설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경 쓰이는걸.."

그녀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우물쭈물 거리며 말을 이었다.

".........."

그런 그녀를 보며 운혜는 생각하였다.

이 인간이 귀여울수도 있구나하고 말이다.

언제나 귀엽고 예쁜 얼굴과는 상반되는 대형사고만 쳤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부끄러움에 못 이겨 몸을 배배 꼬는 모습을 보니 색다르면서 귀여웠다.

"사저."

운혜는 설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장 대협은 정혼자가 있는 몸이에요."

"나도 알아.."

"힘든 사랑이 될 거예요."

"상관없어. 둘째 부인 자리라도 나는 좋아."

설향은 얼굴을 더욱더 빨갛게 물들이며 말을 이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운혜는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설향이 누구란 말인가

중원 오대 거부 중 하나인 석가장주의 하나뿐인 고명딸이 아니던가

어디 그뿐인가 찬란한 재능으로 속가의 신분으로 아미파의 장문인인 구월신니의 제자로 들어간 몸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그녀가 뭐가 아쉬워서 정혼자가 있는 남자의 둘째 부인으로 들어간다는 말인가?

말리고 싶었다.

더 상처받기 전에 당장에라도 그 마음을 접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무도 그녀의 사랑을 응원해줄 리 없을 테니까 말이다.

설가장주는 미쳤냐며 길길이 날뛸 것이고 구월신니는 역정을 낼 것이다.

그만큼 고난하고 힘든 사랑이었다.

운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설향을 바라보았다.

옥용이 마치 홍시처럼 잔뜩 붉어져 있었다.

"후우"

운혜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저리도 사랑에 깊게 빠진 여인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신경 쓰이면 사저도 장 대협의 마차에 같이 타는 건 어때요?"

"그래도 될까?"

운혜의 말에 설향은 걱정스러운듯 되물었다.

안 그래도 염문설때문에 수색대가 뒤집힌 것이 몇 주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어찌 선우의 마차에 올라탈 수 있겠는가?

"괜찮을거에요. 마차에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전에도 종종 장 대협의 마차에 올라타서 가셨잖아요."

"그렇겠지?"

운혜의 말을 들은 설향은 화색을 띄었다.

이성적인 운혜마저 권할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마워 운혜! 해결 된 것 같아."

설향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운혜는 그런 설향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사랑에는 고난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우`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속으로 빌었다.

설향이 큰 상처를 받지 않기를 말이다.

************

덜컹 덜컹

마차가 거침없이 덜컹거리며 눈길을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덜컹 덜컹

선우는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그는 지금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빠져있었다.

"우와아 그것도 모르시나요? 생각보다 아는게 많지는 않으시네요?"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는 걸 활용하는 지혜가 중요한 것이지. 너는 아는 것은 많지만, 지혜는 없는듯하구나."

"제가 보기엔 소저는 활용할 지식조차 없는 것 같은데요?"

"무례하다. 언행이 무척이나 불손하구나."

"무슨 황족이라도 되시나요? 언행 불손이라니 참나."

"뭐라!"

바로 눈앞에 있는 두 여자의 기 싸움 때문이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이 일의 발단은 설향의 갑작스러운 합석때문이었다.

그녀가 별안간 선우의 마차에 끼어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물론 선우는 그런 그녀를 좋은 말로 거절을 하였다.

마차에는 능소화와 호위무사가 타 있으니 비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설향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녀자를 남자들만 있는 곳에 홀로 냅두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이유였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선우는 난감함이 들었다.

딱히 거절할만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듯 본래 남녀는 유별해야 한다는 사상이 깊게 박혀있는 중원이었다.

아무리 개방적인 무림인이라고 하더라고 여자 혼자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마차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은 여러모로 보기 안 좋으리라

그렇게 선우가 고민하고 있던 찰나

능소화의 입에서 의외로 긍정의 대답이 나왔다.

같이 타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능소화마저 그리 말하니 선우는 딱히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하였다.

결국, 설향은 선우의 마차에 올라타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마차에 올라탄 설향이 능소화와 대립각을 세운 것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노골적으로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당황하였다.

그녀와 친해지고 싶다 해서 온 사람이 어찌 그녀와 대립각을 세운다는 말인가

설향은 중원의 지식이 살짝 부족한 능소화를 놀려먹었고 능소화 또한 지지 않고 받아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마차는 두 여인의 기 싸움으로 시끌벅적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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