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68화 (269/1,419)

〈 268화 〉 269.그녀의 벗이 되다-2

능소화는 머릿속에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재수가 없다니!?

어찌 그런 망발을 자신에게 한다는 말인가?

태어나 처음 듣는 말이었다.

지금껏 그 누구도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생소함과 더불어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어떤 말이 그를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말인가?

능소화는 자신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살짝 좌우로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있는 발언을 한 기억은 없었다.

오히려 열패감에 빠져있을 그를 걱정하여 위로까지 해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망발을 내뱉는단 말인가?

화가 살짝 치밀어 올랐다.

격의 없이 대해주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나 납득되지 않는 비난을 들으니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무..무엄하다!"

능소화는 선우를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뭐가?"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재수가 없다니! 어찌 그런 망발을 한다는 말인가!"

"사실이니까."

"어디가 재수없다는 말인가! 해명 하거라"

"그걸 모르는 시점에서 이미 재수가 없는 거야."

선우는 그런 그녀를 보고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이 여자는 모르는듯했다.

그 어마어마한 재능조차 당연시하는 태도가 소인배에게 얼마나 박탈감을 주는지 말이다.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다시금 고민에 빠진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지 고운 아미를 있는 힘껏 찌푸렸다.

"역시 모르겠다. 가르쳐다오. 친우에게 같은 무례를 범하고 싶지 않다."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선우에게 다시금 물었다.

"아니야, 그냥 질투 좀 해봤어."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난삼아 내뱉은 말에 이렇게 진지하게 반응을 하니 오히려 미안했다.

잘난 게 어찌 죄가 되겠는가?

오히려 찬란한 재능조차 당연히 여기는 그녀의 태도는 어울리다 못해 찰떡같았다.

누굴 데려와도 재수 없다고 여기진 못하리라

"정말이더냐?"

선우의 말에 능소화는 반색하며 물었다.

"내가 뭣 하러 거짓말하겠어. 친구에게."

"후우...그렇구나...다행이다."

선우의 확답을 들은 능소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애 처음 사귄 친구에게 미운털이 박힌 줄 알고 불안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선우의 확답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게다가 친구라는 말까지 해주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반응 하나하나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척이나 진지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자신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무슨 반응이 저리도 좋은지

소위 말할 맛이 나는 여자가 이런 여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가 묻겠노라."

능소화는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어디가 가장 아름다웠느냐?"

"아까 말하지 않았어?"

선우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먼젓번은 내가 아름다운지 물었고 이번에는 어디가 가장 아름다운지 묻는 것이니라 무척이나 다른 말이지."

"허어 참"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어이없다는듯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름답다는 말이 저리도 듣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일 아름다운 건 역시 타는듯한 붉은 머릿결이지. 얼굴이 아름답다면 머릿결은 신비로움마저 주니까 말이야."

선우는 능소화를 바라보며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하였다.

살짝 뻘쭘한 느낌이 들긴 하였지만 그래도 저리 좋아하니 그저 있는 그대로 칭찬을 해주었다.

"후후후후후후"

그리고 선우의 칭찬을 들은 능소화는 흡족한듯한 미소를 지으며 우아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피식

그 모습이 귀여워 선우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생긴 것만 보면 평생을 예쁘다는 말만 듣고 살았을 것 같은 여자가 마치 칭찬에 목마른 것처럼 좋아하니 퍽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만족해?"

선우는 환하게 웃고 있는 능소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척 흡족하다."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내뱉었다.

그녀는 무척 흡족해하고 있었다.

평생을 저주하고 원망했던 붉은 머릿결이 눈앞에 남자에게는 그 무엇보다 아름답단다.

이질적이고 불길하다며 평생 부정만 당해왔던 붉은 머리였다.

그런 머리를 누군가 처음으로 긍정을 해주었다.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네?"

"마음껏 질문하거라."

그녀는 짐짓 가슴을 쭉 펴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 호위를 부탁한 거지?"

""뭐라?"

"현경에 가까운 경지에 이른 주제에 어째서 나한테 호위를 부탁한 거야?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화경을 뛰어넘어 현경에 닿기 직전의 경지였다.

그말인즉슨 굳이 피상득의 시체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호위를 부탁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된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녀는 자신에게 호위를 부탁한다는 말인가?

북풍대야 손쓰기 귀찮으니 죽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호위를 부탁한 것은 이해가 안 되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있는 그를 말이다.

"흐음"

선우의 물음을 들은 능소화는 살짝 고민된다는 듯 침음성을 흘렸다.

과연 그에게 무공을 쓸 수 없는 현 상황을 말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지금 난 금제가 되어있다."

"금제!?"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놀라 되물었다.

금제라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래, 내력을 쓸수 없도록 일시적으로 봉해둔 상태지."

능소화는 침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째서?"

선우는 궁금하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당장에라도 수련에 매진하여 현경에 도달해야해도 모자랄 판국에 어찌 금제를 가한단 말인가?

선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후우.....깊은 사정이 있느니라"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공에 문제가 생겼다."

"문제?"

"제어가 안 된다 무공이"

그녀는 선우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였다.

"제어가 안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선우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어가 안된다면 더더욱 제어하기 위해 수련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금제를 가한단 말인가?

"내가 익힌 것은 화공火功이니라."

"화공火功!?"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놀라 되물었다.

별안간 화공이라니!?

화공이라면 양강지기를 발화시키는 무기로 사용하는 최상의 양기공이 아닌가

그런데 그걸 여자의 몸으로 익혔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여자는 음의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이 대다수였다.

때문에 대다수 여인들은 양기공으로는 대성을 이루어낼 수가 없었다.

품고 있는 음의 기운이 양기공의 운행을 방해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화공이라는 극상의 양기공으로 현경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렀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선우는 그녀의 머릿결이 어째서 붉어졌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분명 극한의 양기공이 그녀의 머릿결을 붉게 만들어주었으리라

"그렇다, 체질적으로 양기를 품고 있던 덕택에 화공을 익힐 수 있었지."

그녀는 붉디 붉은 적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체질은 물론 재능까지 타고난 덕분에 화경을 넘어설 수 있었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녀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몸 안에 있는 화기가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제어가 되지 않는다면?"

"시도때도 없이 몸에서 발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불이 일어난다고?"

"그렇다. 몸에서 일어나 불길은 내 옷은 물론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우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제어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불길을 멈추기 위해서는 물속에 몸을 반시진정도 잠겨 있게 하거나 음기를 품고 있는 영초를 먹는 수밖에 없더군."

"스스로 의지로는 전혀 제어가 안 되는 거야?"

"그렇다. 몇 번이고 시도를 해보긴 하였지만 아까운 옷만 수백 벌은 날린듯 싶구나."

"주화입마인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닌듯하다."

"왜?"

"발화가 되지 않은 상태라면 얼마든지 제어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애초에 금제를 걸어놓은 거군."

"맞다, 내력을 봉해두면 발화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곤란하겠네."

"곤란을 넘어서 짜증이 치밀 정도다!"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화가 난다는 듯이 말하였다.

"꽤나 애지중지하게 여겼던 옷들이 전부 불타버렸고 사용인들이 모두 여자라고는 하나 그들에게 매번 알몸을 보여주었다. 내 어찌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선우에게 설토를 하였다.

인체 발화 현상은 그녀에게 상당한 불편함을 선사하였다.

본래 사치를 즐기지 않는 그녀였다.

하지만 발화할 때마다 불태워지는 옷 때문에 매일매일 새로운 옷을 사야만 했으며 모두 여자라고는 하나 사용인들에게 매번 알몸을 보여주는 수치를 겪었다.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확실히 그건 수치스럽긴 하겠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동조했다.

확실히 매번 옷이 불태워져 알몸을 보이게 된다면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수치다마다! 발화가 시작된 이후에는 언제나 별채에만 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북해로 왔군."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무..무슨 말이더냐."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었다.

"발화 현상을 막으려고 온 것 아니야?"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구나."

"아까 분명 음의 기운을 품고 있는 영초를 먹을 때 발화가 멈춘다고 하였으니까 극음의 기운을 가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겠지."

선우는 나름 유추한 바를 술술 말하기 시작하였다.

"빙정氷精이지?"

선우는 살짝 미소 지은 채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침묵을 하였다.

분명 긍정의 침묵이리라

그녀는 반성했다.

발화 상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 보니 쓸데없는 정보까지 술술 불어버린 듯 했기 때문이다.

그저 내공을 금제했다는 것만 말하면 될 것을 뭘 그리 줄줄이 말한다는 말인가

그녀는 재앙덩어리같은 입술을 탓하였다.

"........비밀이다.."

능소화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풋."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선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오래 겪은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당당한 위엄넘치는 모습을 유지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곤란하다는듯한 얼굴로 우물쭈물거리는 것을 보니 퍽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고."

선우는 장난기가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정말 말하면 안되느니라."

그녀는 애원하듯 선우에게 말하였다.

자신이 빙정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비밀 중의 비밀이었다.

만약 이 사실을 발설된다면 날파리들이 꼬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빙정은 중원에서도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로 취급되는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노린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많은 이들이 자신의 행보를 주목할 것이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아야 할 그녀 입장에서는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좋아."

선우는 재밌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이더냐. 말만 하거라. 천금을 달라 하더라도 주겠느니라."

"무공 좀 봐줘."

"무공 말이더냐?"

"응"

선우는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도 또래에 비하면 강대하기 짝이 없는 경지에 올라선 그였다.

하지만 그런 경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선우는 안주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상대해야할 적은 끝도 없이 강대했으니 말이다.

절대무신 이재원

그는 강했다.

화경 중경에 이른 자신보다 훨씬말이다.

용미연검과 패왕귀면갑 그리고 흑룡포덕택에 화경 상경을 필적하는 힘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런데도 부족하였다.

그는 신선의 경지를 코앞에 둔 음양마조차 죽이지 못한 절대강자였으니 말이다.

적어도 현경에 올라야 했다.

그래야만 이재원을 상대할만한 그릇이 완성되는 것이다.

앞으로 두 단계는 올라서야 하지만 그 격차가 너무나 컸기에 감히 엄두가 안 났다.

화경 중경과 상경 간의 격차는 절정과 초절정 간의 격차만큼 거대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화경과 현경간의 격차는 그보다 더욱더 컸다.

쉴 틈이 없었다.

계속해서 강해져야 했다.

그렇기에 선우는 능소화에게 부탁을 하였다.

비록 무공의 궤는 전혀 달랐지만 그 현경직전까지 오른 깨달음만큼은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대는 상당히 날강도 심보를 가지고 있구나. 어찌 깨달음을 공유해달라는 말을 그리 쉽게 한다는 말인가."

선우의 말에 능소화는 어이없다는듯 말하였다.

어찌 깨달음 공유를 이리도 뻔뻔이 요구한단 말인가?

"나도 양심이 없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나는 너를 만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선우는 올곧은 눈으로 그녀를 마주하였다.

"흐음"

능소화는 침음성을 삼키고는 고민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좋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반색을 하였다.

혹여 거절하면 어쩔까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