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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67화 (268/1,419)

〈 267화 〉 268.그녀의 벗이 되다-1

"화경 중경에는 언제 도달하였느냐?"

능소화는 궁금하다는 듯 선우에게 물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내력 한 줌 느껴지지 않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어찌 자신의 경지를 그리 상세히 꿰뚫고 있다는 말인가?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침묵을 택하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었다.

"곤란한 질문이더냐?"

선우가 말이 없자 능소화는 다시금 그에게 물었다.

"그렇소."

"그럼 되었다. 다른 질문을 하지."

곤란하다는 선우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말을 바꾸었다.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의아함이 들었다.

반응을 보니 무언가 노리고 한 것이 아닌 순수한 궁금증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질문을 내가 해도 되겠소?"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물어보거라."

"혹여 반선의 경지에 이르렀소?"

선우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화경인 자신의 경지를 꿰뚫어볼 정도의 눈을 가진 주제에 내력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현경에 올라 반박귀진返璞歸眞에 이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닿지 못하였다."

선우의 말에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녀의 답을 들은 선우는 놀라 되물었다.

현경에 달하지 못한 그녀가 어찌 자신을 꿰뚫었다는 것인가?

"그건 비밀이니라."

그녀는 손가락 하나를 쭉 펴 빨갛고 고운 입술에 가져다대었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다시금 멍하니 볼뿐이었다.

행동 하나 하나가 고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어디를 보는 것이더냐."

능소화는 그런 선우를 보며 불만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뭘 말이오."

그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선우는 그녀에게 답하였다.

"아까부터 얘기를 하다 보며 초점을 흐리면서 허공을 응시하지 않더냐. 어찌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무례를 범한단 말이더냐."

그녀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 모습조차 아름답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내 잘못이 아니오."

선우는 고개를 도리질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내 잘못이란 말이더냐?"

"어찌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소."

"궁금하구나.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이다."

"비밀이오."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단호하게 답하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니 가는 내내 민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치사하다!"

선우의 말에 능소화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뭐가 말이오?"

선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한껏 기대를 높여놓고 아무 말도 안해주는 것은 무슨 심보란 말이더냐!"

"말해준다고 해준 적은 없소만."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능글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아무래도 토라진 듯 싶었다.

선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처음에는 고압적이고 위엄 어린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살짝 어려움을 느꼈으나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상당히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고압적이고 위엄이 넘쳤지만 의외로 권위적이지는 않았다.

말투만 보자면 분명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건만 누군가를 낮추거나 명령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으으으으"

이내 그녀는 고개를 다시 선우가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역시 안 되겠다."

그리고는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뭐가 말이오?"

능소화의 말을 들은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말이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선우에게 물었다.

"내가 어찌하면 알려주겠는가?"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소?"

"말해보거라."

"서로 질문을 하나씩 해서 답해주는 것이오."

선우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사실 선우는 그닥 숨길 것이 없긴 하였다.

북해빙궁에 온 목적이나 신분이야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도 좔좔 불 것이고 무공 경지야 이미 눈치채고 있는듯하니 거리낄 게 없었다.

선우는 궁금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의 정체가 말이다.

"흐음"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뒷말이 궁금하기는 하나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는 길에 심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조건이 있다."

이내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무엇이오?"

"내 신분과 북해로 온 목적에 대한 질문은 금하지."

그녀는 못 박듯 선우에게 말하였다.

아무리 뒷말이 궁금하다고 해도 약점까지 노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쩝"

그녀의 단호한 말에 선우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좋소."

하지만 이내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어차피 신분과 목적 이외에도 물어볼 것은 잔뜩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먼저 묻거라."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화경 중경인 것은 어찌 아셨소?"

선우는 궁금하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꿰뚫어봤다."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냥 보였다.

화경 중경은 자신 또한 거쳐 갔던 경지였기에 더욱더 잘 볼 수 있었다.

"궤..궤뚫었다고!?"

한 편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반적인 무인이 누군가의 경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동급의 경지에 올라서야만 하였다.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같은 눈높이에 있는 게 아닌 이상 경지를 정확히 맞출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런 자신을 꿰뚫어보았다고 한다.

그말인즉슨 이 여자는 적어도 화경 중경이상의 경지를 이룩한 고수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어떤 경지에 올라선 것이오?"

선우는 진중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가 아니던가?"

선우의 물음에 그녀가 반문하였다.

"말하거라. 어찌하여 날 볼 때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것이더냐."

그녀는 올곧은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선우는 살짝 고민했다.

여기서 사실대로 말했다간 괜스레 뻘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예뻐서 그렇소."

선우는 이내 느낀 바를 그대로 가감 없이 말하였다.

"농이 지나치다."

그녀는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선우가 농을 건넨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농이 아니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선우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답소. 그대는."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너는 내 붉은 머릿결이 불길하지도 않더냐?"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자신의 머릿결은 붉다.

머릿결뿐만이 아니었다.

눈썹 또한 붉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이 붉음은 수많은 이들에게 불결함을 선사해주었다.

수많은 황실의 친인척들은 물론 대신들마저 그녀를 불길하다 여기며 기피를 하였다.

그리고 휘하에 둔 수하들마저 그녀의 머릿결이 불길하다며 쉬쉬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 겸양이 아닌 순수하게 아름답다는 말을 익숙지 않았다.

"세상에 불길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아름다운 적발을 불길하다 하겠소?"

그녀의 말에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반문하였다.

불길하기로는 독마의 독기가 수백 배는 불길하였다.

그런데 어찌 저렇게 아름다운 머릿결을 불길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해가 안 되었다.

선우의 말이 끝나자 능소화는 눈을 반짝이더니 이내 선우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런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슬쩍 시선을 회피하려고 하였다.

"피하지 말거라."

그런 선우의 행동을 눈치챈 것인지 능소화는 고압적인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였다.

움찔

그녀의 고압적인 말에 선우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고는 돌리려던 시선을 원상 복귀하여 그녀의 시선과 마주하였다.

"다시 묻겠다."

그녀는 올곧은 눈으로 선우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 붉은 머릿결이 아름답더냐?"

"아름답소. 그것도 무척 말이오."

선우는 그녀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답하였다.

"내가 아름답더냐?"

"아름답소. 넋을 잃고 그저 바라볼 만큼 말이오."

그녀의 계속되는 물음에 선우는 거침없이 답하였다.

둘은 말없이 한동안 서로를 응시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씨익

능소화의 입에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거짓은 아니구나."

그녀는 기쁜 듯 선우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선우는 그녀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또다시 넋이 나가버렸다.

미소만 지었던 그녀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나름 적응하였다고 여겼던 생각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예뻐서 멍해진 것이더냐?"

끄덕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유쾌하구나."

선우가 긍정하자 능소화는 정말 기분이 좋은 듯이 웃었다.

그녀는 지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선우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실로 자신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었다.

친족들조차 불길하다고 기피하던 붉은 적발조차 말이다.

머리가 물들여진 이후 모두에게 외면만 받던 그녀였다.

그런 자신을 긍정해주는 남자를 만난 것이다.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아까 말을 편히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더냐?"

능소화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말하긴 했소."

"허 하겠노라."

그녀는 인심 쓴다는 듯한 말투로 선우에게 말하였다.

"그게 정말이오?"

그녀의 말에 선우는 놀란 듯 되물었다.

아까전만 하더라도 예의를 차리며 뻣뻣하게 굴던 그녀였다.

그런데 별안간 무슨 심경 변화란 말인가?

"물론이고말고. 그대는 본녀가 중원에서 사귄 최초의 친구이니라. 영광으로 알도록 하라."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선언하듯 말하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한다더니...`

그녀의 반응을 본 선우는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예쁘다는 말 몇 마디에 이렇듯 태도가 극명하게 바뀔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과연 예쁘다는 말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대답이 없느냐?"

"그렇게 하겠소."

"말을 편히 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녀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알았어."

"그래, 이제야 마음에 드는구나."

선우가 말을 놓자 능소화는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난 이제 되었다. 이제는 그대가 다시 물어볼 순서다."

능소화는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좋아, 이번엔 내가 물어보지."

그녀의 말에 선우는 눈을 반짝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어느 경지에 도달해 있지?"

"애매하다."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난감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답하였다.

"애매하다니?"

그녀의 말에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하였다.

화경이면 화경, 현경이면 현경 이렇게 답하면 되는 것이 무엇이 애매하다는 것인가?

"화경 상경은 넘어섰다. 하지만 현경에는 완전히 닿지는 못하였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현경에 닿지 못했다면 그냥 화경 상경이 아니던가

"분명 화경 상경의 경지는 넘어섰다. 화경 상경에 이른 이와 맞붙는다면 백이면 백 다 이길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현경 초입에 이르렀다고 하기엔 경지가 애매하다. 말하자면 닿을듯 안닿을듯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경지로만 따지자면 그녀는 화경 상경의 경지는 아득히 초월해있었다.

같은 상경이라고 불리우기 애매할 정도로 말이다.

또 그렇다고 현경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모자란 감이 있었다.

닿기 직전 느낌이랄까

그렇기에 정확히 말하기 애매하였다.

"그럼 그냥 현경 초입 아니야?"

"말하지 않았더냐 온전히 닿지는 못했다고."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말하자면 화경과 현경의 중간 경계에 서 있는 거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선우의 말에 능소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허어"

선우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녀가 강하다는 것은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자신을 한 번에 꿰뚫어볼 정도니 적어도 자신과 동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화경과 현경의 중간이라니

전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이 여자의 재능은 검황 양태산정도가 아닌 주인공 보정을 잔뜩 받은 이재원과 동급인 것이다.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스물 여덟에 반선에 가까운 경지라니 상상도 안 되었다.

선우가 말이 없자 능소화는 그런 선우를 슬며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너무 박탈감 가지지 말거라. 본녀가 뛰어난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는 것과 같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녀는 선우에게 나름의 위로의 말을 전하였다.

자신은 천자天子의 피를 이어받은 몸이었다.

뛰어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큭"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는 것이더냐?"

선우가 웃음을 터트리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었다.

"무슨 위로가 그래?"

선우는 어이없다는 듯 그녀에게 말하였다.

"내가 뭘 잘못한 것이더냐?"

그녀는 모르겠다는 듯 선우에게 물었다.

"어디 가서는 그런 말 하지 마라"

"어째서냐?"

"재수 없으니까."

선우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생 처음 듣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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