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 264.댓가를 받다.
"거짓말"
능소화가 선우를 바라보며 짤막이 입을 열었다.
`망할`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설마 한놈 놓친 것을 봤다는 것인가!?
"거짓말을 하는구나."
능소화는 귀엽다는 듯이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보였소?"
선우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궤도가 바뀌어 팔만 자르고 지나가더군."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알 수 있었다.
모든 상황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는 경악하였다.
대체 어떻게 된 눈을 가지고 있길래 그 먼 거리를 저리도 상세히 본다는 말인가?
놓친 북방대원의 팔이 잘린 곳은 이곳과 적어도 상당한 거리의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는 경지에 올라 안력이 더욱 좋아진 선우 조차 사람이 점처럼 보일 정도로 먼 거리였다.
그런데 어찌 그 광경을 이리도 선명히 볼 수 있다는 말인가?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침묵을 하였다.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 나니 뻘쭘함이 밀려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설마 본녀가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냐?"
그녀는 그 반응이 귀여운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귀엽구나."
"미안하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럴 때는 그저 남자답게 인정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변명이나 억지를 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 본질마저 꿰뚫어 볼 것 같은 신비한 눈을 보니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인정이 빠르구나. 과연 사내로다."
선우의 사과를 본 능소화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 정도 무력을 소유한 이라면 억지를 부리거나 변명을 늘어놔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변명도 없이 그저 고개를 숙여 사과하였다.
천한지 귀한지 알 수도 없는 한낱 계집에게 말이다.
생각해보건대 이 남자의 고개를 움직이는 것은 신분의 고하가 아닌 자신의 신념일 것이다.
어찌 갸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능소화는 천천히 선우에게 다가갔다.
착
그리고 선우의 뺨 위에 손을 올린 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인정이 빠른 것은 사내답고 멋진 일이나 선뜻 고개를 숙이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선우의 고개를 들어 올린 신비로운 적안으로 선우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좀 더 무게를 갖도록 하라."
말을 마친 그녀는 선우의 뺨에서 천천히 손을 떼었다.
그리고 선우는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처음 뺨에 손이 닿았을 때 선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상치도 못한 부드러운 감촉과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개가 들어 올려진 후 마주한 그녀의 신비로운 눈동자에서는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감성이 자극되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칠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였다.
"피상득의 시체는 넘겨주겠다."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저는 약속을..."
그녀의 갑작스러운 말에 선우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이었다.
"본녀는 본디 상벌이 정확하다. 한 명 놓쳤다고는 하나 어찌 그대가 노력한 것을 송두리째 없던 것으로 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마적들을 토벌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은 댓가를 받아야 한다."
능소화는 선우를 바라보며 단호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능소화의 말을 들은 선우는 속으로 감탄성을 내뱉었다.
그녀의 등 뒤로 후광이 서려 있는듯한 착각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을 저리도 고압적으로 이쁘게한다는 말인가
아름다운 것은 외모만이 아닌듯하였다.
안그래도 빠르게 뛰던 심장이 더욱더 빨리 뛰기 시작하였다.
"대신 다른 조건을 달겠다."
"..........말씀하시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멍하니 답하였다.
"혹여 그대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그녀는 타는듯한 뜨거운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북해빙궁이오"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막힘없이 답하였다.
"그렇다면 혹여 상단과 같이 이동해줄 수 있겠는가?"
"상단 말이오?"
"그렇다. 지금 상단은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태다. 지금 상황에서 다른 마적들이 들이닥친다면 쉬이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호위를 부탁하는 것이다. 길이 갈린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목적지가 같다면 충분히 혹할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흐음."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짐짓 고민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들과 동행하여 북해빙궁으로 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목적지도 같았으며 어차피 가는 길은 한 방향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피상득의 시체라는 좋은 보상이 있지 않은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단에서도 그대가 동행을 해준다면 큰 돈을 지급할 것이다."
그때 능소화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였다.
"뭣이!?"
"아니 어째서!?"
"아니 소저, 그게 무슨 소리요!"
그때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상인들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대행수도 아닌 여인이 어찌 그런 일을 마음대로 정한단 말인가?
"가치에 걸맞은 댓가를 치루는 것이 상인이 아니던가?"
능소화는 그런 상인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댓가는 피상득의 시체가 아닙니까!"
"이상한 말을 하는구나. 피상득의 시체는 분명 내가 저자에게 전하는 대가일진데 어찌 그대들마저 묻어가려고 한다는 말인가?"
능소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다같이 사는 세상이 아니오! 어찌 그리 이기적으로 군다는 말이오!"
"아무리 그래도 도의가 있지 않소!"
상인들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능소화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대들은 도의를 중요시해서 본녀를 팔아넘기려고 하였는가?"
"그...그건....다들..살기위해서."
"....대를...위해 소를..희생하는 생각으로..."
그녀의 물음에 상인들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이었다.
"추하구나. 어찌 사내가 그리도 혓바닥이 길단 말인가?"
능소화는 경멸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미 끝난 일을 뭣 하러 들먹인다는 말이오!"
그때 한 상인이 언성을 높이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팔아넘기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 끝난 일을 들먹인단 말인가?
과거는 과거로 흘려보내야 하고 현재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끝나지 않았다. 그때 느꼈던 내 분노와 배신감은 여전히 가슴속 깊은 곳에 살아있거늘 누구 마음대로 끝낸다는 말이더냐!"
능소화는 차가운 눈빛으로 상일을 바라보며 일갈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녀의 위엄 어린 일갈에 겁을 집어먹은 상인은 몸을 움츠렸다.
그녀의 몸에서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호를 받고 싶다면 댓가를 지불하라. 피상득의 시체는 나와 내 호위가 저자에게 지불하는 댓가이니 눈독 들이지 말도록 하라."
능소화는 상인들을 둘러보며 선언하듯 소리쳤다.
".........."
"..........."
".........."
그리고 그녀의 위엄에 압도된 상인들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또한 "
그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선우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에 동의하오. 보호를 받고 싶으시면 댓가를 지불하시오."
선우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얼마를 주겠소?"
그리고 선우의 말을 들은 상인들은 사색이 되었다.
***********
상인들은 사색이 되었다.
댓가로 얼마를 쥐여줘야 할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었다.
"저...그...혹여..얼마나 생각하셨는지요?"
그때 대행수 석규를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얼마까지 가능하오?"
"...그렇다면...그....낭인시장의 시세를.."
"실망이오. 고작 낭인과 비교하다니 말이오."
선우는 도매가로 후려치려는 석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낭인시장에서는 특급으로 대우받는 이들도 고작 절정 정도 수준에 그쳤다.
그런데 어찌 자신을 그들과 같은 취급을 한다는 말인가?
"..........."
선우의 말을 들은 석규는 말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은 돈을 어떻게든 아껴야 했다.
상단 인력 중 절반이 날아간 그들이었다.
죽은 이들에 대한 위로금과 보상금만해도 어마어마하게 나갈 것이다.
게다가 북해에서 호위를 다시 모집해야 했다.
지금 남은 전력으로는 마적들의 먹잇감이 되기 일수였으니 말이다.
"저...그렇다면 혹여..중원에 돌아갈 때까지 동행이 가능한지요?"
"불가하오. 동행은 북해빙궁까지오."
그들의 물음에 선우는 단호히 말을 이었다.
애초에 지금 동행을 허락한 것도 방향이 같았을 뿐이었다.
만약 방향이 달랐더라면 아무리 피상득의 시체를 넘겨준다고 해도 동행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우의 말을 들은 대행수 석규는 울상이 되었다.
꼼짝없이 돈이 나가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두두두두두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상인들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잔뜩 움츠렸다.
혹여 마적 떼들이 다시온 것일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수많은 마차들의 행렬을 말이다.
두두두두두
덜컹 덜컹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수많은 마차들은 상단 행렬이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되었다.
덜컥
그리고 그중 선두에 있는 마차에서 문이 열리고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앗!"
그리고 그 중년인을 본 대행수 석규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운적 도장!"
대행수 석규는 화색이 된 얼굴로 그를 반겼다.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던 청성제일검이 모습을 드러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북문상단의 석행수가 아니오?"
그의 외침을 들은 운적자는 놀란 듯 되물었다.
북문상단은 과거 청성파가 한창 빚에 쪼들리고 있을 때 흔쾌히 돈을 빌려주었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 친분을 빌미로 빚을 전부 청산한 아직까지도 상호간의 좋은 교류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연히 북문상단의 대행수인 석규와 운적자 또한 친분이 없지는 않은 사이였다.
나이대도 비슷하였거니와 각 각 문파와 상단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적자는 놀랐다.
갑자기 북문상단의 대행수인 석규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운적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의 물음을 들은 석규는 서럽다는 표정을 지은 채 그간 있었던 일을 전부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운적자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
"그렇군, 장 대협이 그대들을 구해줬구려."
그의 말을 경청하던 운적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저분의 성이 장씨입니까?"
운적자의 말을 들은 석규는 물음을 던졌다.
안그래도 저 청년에 대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자네를 구해준 이는 장선우 대협이라고 한다네. 독왕의 제자이지."
그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짤막이 선우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당가의 가주인 독왕 말씀입니까!?"
그의 말을 들은 석규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독왕이 누구란 말인가
현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가지고 있는 중원의 절대자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런 독왕의 제자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네."
석규의 물음에 운적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허어."
운적자의 확답을 들은 석규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독왕의 제자라면 정파의 동량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정파의 동량이라는 작자가 돈을 요구한다는 말인가?
이내 석규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무래도 독왕이 무공을 잘 가르쳤을지는 몰라도 협의를 가르쳐주진 않은 듯싶었다.
`인성이 무공을 따라가지 못하는구나!`
그는 속으로 선우를 씹어대고는 눈을 빛내며 운적자를 바라보았다.
"북해에는 어쩐 일로 오신 것입니까?"
"제자들이 실종되어서 찾으러 왔다네."
그의 물음에 운적자는 담담히 말하였다.
새삼 숨길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장 대협께서는 어째서?"
그는 궁금하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제자가 실종된 것은 청성뿐이 아니었다네. 당가와 아미의 제자들도 실종이 되었지."
"아"
그의 말을 들은 석규는 안타깝다는 듯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단번에 이해하였다.
이들이 청성과 당가 그리고 아미에서 파견한 수색대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한 석규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비싼 댓가를 지불하지않고 북해까지 호위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수색대의 책임자는 청성제일검인 운적자일 것이다.
그리고 청성과 북경상단은 상당한 친분을 쌓고 있었다.
북해빙궁까지만 동행을 부탁한다면 그는 거절치 않을 것이다.
"운적 도장, 마적대의 습격으로 북경상단의 안전이 위협되고 있습니다. 혹여 북해빙궁까지 동행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대행수 석규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고 간곡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는 확신하였다.
운적자가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말이다.
"그에 관해선 장 대협과 상의를 하도록 하게나."
"네?!"
하지만 그의 확신은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수색대의 책임자는 장 대협이라네. 그러니 그와 상의해야 하지 않겠나?"
이어지는 운적자의 말에 대행수 석규는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