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화 〉 262.능소화와 만나다.
쾅
선우는 발을 구르고는 그대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상당히 떨어진 곳에 다시금 나타나게 되었다.
쾅
다시금 발을 굴렀다.
그러자 충격파가 퍼지며 흙먼지가 일더니 이내 그의 몸 주위에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 반발력을 이용하여 다시금 앞으로 튀어나갔다.
시원함을 넘어 추위마저 느껴지는 바람이 온몸을 강타하였다.
하지만 선우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최대한 빠르게 피상득이 있는 곳에 닿는 것이었다.
선우는 내력을 아끼지 않고 더욱더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휘이이이이이이잉
갑자기 어마어마한 설풍이 선우를 그대로 관통하였다.
"크으윽!"
갑작스러운 설풍에 휘말린 선우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눈에 얼음조각들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휘이이잉
한 차례 설풍이 지나가자 선우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뜬 선우는 당황을 하였다.
자신이 어느 방향을 달렸는지 헷갈렸기 때문이었다.
온통 새하얀 설원만이 펼쳐져 있으니 뛰어온 방향조차 헷갈렸다.
선우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뒤편을 돌아보았다.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보고 파악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뒤편에는 이미 흙먼지가 걷어졌는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망할`
선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방향을 모르니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고민에 잠겼다.
별도 보이지 않아 방향을 찾기가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우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였다.
콰콰콰쾅
갑자기 천둥번개 내려치는 듯한 폭음이 선우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선우는 반색을 하였다.
분명 상단이 있는 곳이리라
`저기다!`
선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쾅
그리고는 그대로 궁신탄영을 이용하여 몸을 튕겨 그대로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선우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쾅
쾅
쾅
.
.
.
,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선우는 멀지 않은 곳에서 무리 지어 말 위에 타고 있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내심 놀랐다.
북해에 존재할 수 있는 말이라면 분명 한혈마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한혈마를 한 두필도 아니고 수십필은 타고 있었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을까
쾅
선우는 다시금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속도를 높인 것이었다.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이내 선우의 신형이 그들의 코앞까지 닿게 되었다.
선우가 만들어낸 굉음을 들은 것인지 말을 타고 있던 이들은 일제히 선우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각자 무기를 들어 선우를 경계를 하기 시작하였다.
쾅
이내 다시금 땅이 터져나갔고 선우의 신형이 순식간에 그들이 있는 곳 중앙까지 닿게 되었다.
중앙까지 닿게 되자 선우는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앞쪽에 있는 상단 행렬을 말이다.
그리고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거한 또한 보였다.
선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대로 땅을 내딛고 몸을 튕겼다.
콰쾅
굉음이 울렸고 선우는 흙먼지를 뚫고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솨아아아아아
앞으로 쏘아져 나간 선우는 그대로 거한을 지나쳤다.
타탁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착지한 선우는 몸을 돌린 후 입을 열었다.
"네가 피상득이냐?"
움찔
선우의 목소리를 들은 장광은 몸을 움찔하면서 떨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자신에게 말을 건 선우를 바라보았다.
"..........."
선우를 본 장광은 말없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저 남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적인가
아군인가
갑자기 어떻게 자신의 뒤에 나타난 것인가?
어째서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인가
피상득과 무슨 관계인 것인가
저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 의문들이 장광의 머릿속을 한껏 복잡하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누...누구냐!"
머리가 아파진 장광은 선우를 노려보며 가장 궁금한 의문을 던졌다.
"질문은 내가 했는데?"
선우는 그런 장광의 물음에 가벼이 답하였다.
"나는 북풍대의 부대주인 장광이다!"
"쯧, 피상득이 아니네."
장광의 이름을 들은 선우는 아쉬운듯 혀를 차며 말하였다.
"이제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장광은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건 알 것없고 피상득이 어디 있는지나 말해봐."
"뭐라!"
자신을 무시하는듯한 선우의 태도에 장광은 발끈하며 소리쳤다.
"잔챙이한테 할애할 시간 따윈 없어."
"개자식이!"
선우의 계속되는 무시에 장광은 거창을 들어 올렸다.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는 아이도 울음을 뚝하고 그치게 한다는 북풍대의 부대주 장광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자신을 이렇게 길가는 벌레 대하듯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이곳에는 자신이 점찍어둔 여인이 있지 않은가?
여인이 있는 자리에서 한껏 무시를 당하니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이라도 정체를 밝히고 용서를 구한다면 고통 없이 보내주겠다!"
거창을 든 장광은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결국 어떻게하든 죽인다는 말 아니야?"
"감히 내게 치욕을 주고도 살아남기를 바랬더냐!"
선우의 물음에 장광은 한껏 위엄섞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네가 뭔데?"
선우는 그런 장광을 보며 말을 이었다.
"뭐..뭐라?!"
"네가 무슨 황제야? 뭔데 감히라는 말을 쓰냐. 웃긴새끼일세."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신랄하게 그를 쏘아부쳤다.
"앞에 없으면 황제도 욕할 판국에 네놈이 뭐라고 치욕 운운하고 자빠졌냐?"
"이이이익!"
그의 말을 들은 장광은 더욱더 광분하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던 능소화의 눈에는 이채가 띄었다.
부우웅
장광은 그대로 거창을 들어 올린 후 선우에게 쏘아 보냈다.
쇄애애액
장광의 창이 바람을 가르며 선우에게 도달하기 시작하였다.
`허어`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다 보였기 때문이었다.
창을 움직이는 어깨의 움직임, 힘을 싣는 근육의 움직임, 창을 잡은 손의 움직임까지 전부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내 장광의 창의 촉 부분이 선우의 손바닥에 그대로 닿았다.
선우는 건곤대나이를 운용하였다.
그러자 장광의 공격이 그대로 되돌아갔다.
빠지직
그러자 손바닥에 닿았던 창촉 부분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빠지직
창 촉 부분만이 아니었다.
창촉에서 시작된 금은 창두를 지나 창대까지 전부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파삭
그리고 머지않아 그의 창이 완전히 전부 바스러져 버렸다.
"어..어?"
한 수만에 병장기를 잃어버린 장광은 커다란 눈을 몇 번이고 꿈뻑 꿈뻑 뜨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공격을 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것도 최고의 한 수를 담아서 말이다.
그런데 어찌 자신의 창이 그대로 바스러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이해가 안 되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장광은 깊은 상념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상념은 오래가지 않았다.
퍽
턱주가리를 강타하는 거대한 충격에 정신이 혼미해졌기 때문이었다.
`......시발.`
장광은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쿵
장광의 신형이 그대로 땅에 처박혀버렸다.
"어디서 연장질이야."
선우는 그런 장광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
쿵
장광이 쓰러지자 상인들과 표사들은 입을 턱 하니 벌렸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북풍대의 부대주인 장광이 단 한 수만에 당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눈은 화등잔만 하게 커졌고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흐르기 시작하였다.
"뭐좀 물어도 되겠소?"
그때 정체불명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물..물어보시오!"
"뭐든 답해주겠소!"
그의 물음에 상인들과 표사들은 너도나도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피상득은 어딨소?"
"..........저기이이"
그가 피상득에 대해 묻자 한 상인이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선우는 사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중년인의 시체가 보였다.
"저게 피상득이오?"
"...맞습니다!"
"저자는 피상득임이 틀림없습니다!"
선우의 물음에 그들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죽였소?"
".........."
"........."
그가 다시금 묻자 상인들과 표사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피상득을 죽여준 능소화를 팔아먹으려고 했던 자신들의 추함이 상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저..피상득은..."
그때 대행수인 석규가 창피를 무릅쓰고 입을 슬며시 열기 시작하였다.
비록 자신들의 허물이 드러날지도 모른다지만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죽였다."
그때 선우는 옆쪽에서 꽤나 고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저도 모르게 감탄성을 내뱉었다.
그곳에는 너무나도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절색의 미녀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는듯한 붉은 머리와 매력적인 붉은 아미 그와 어울리는 환상적인 얼굴까지
완벽했다.
지금껏 자신이 만나온 여인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당서윤과 요랑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순번이 바뀔듯싶었다.
눈앞의 여인은 그 순번마저 뒤집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그 타는듯한 적발에서 풍기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그녀를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선우는 멍하니 그녀를 뚫어져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무례한 행위였지만 분위기에 압도된 선우는 무례라고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그저 멍하니 신이 만든 조각 같은 미모를 감상할 뿐이었다.
"뭘 그렇게 보지?"
그런 선우의 시선을 눈치챈 것일까
능소화는 불쾌한 듯 말을 이었다.
자신의 머리와 눈썹 색깔이 이질적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오죽하면 황실의 친인척들마저 불길하기 그지없는 홍모귀 같다며 쉬쉬거릴까
그런데 선우가 그런 자신의 머리를 뚫어져라 보니 불쾌함이 올라왔다.
아무리 불길하다고해도 그렇지 어찌 저리 무례하다고 느낄 정도로 쳐다본다는 말인가
"예뻐서."
멍하니 있던 선우는 그녀의 물음에 느낀 그대로 주절거렸다.
저 여인을 보고 예쁘다는 말 이외에 대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훗"
그말을 들은 능소화는 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노골적인 말인데도 이 남자가 말하지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구나."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그 미소를 본 선우는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였다.
외모만으로 심장이 뛰는 느낌은 당서윤 이후는 처음이었다.
선우는 천천히 음양조화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내력이 빠르게 온몸을 돌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차분함을 선사하였다.
`후우`
마음을 어느정도 진정시킨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얼굴을 다시 보니 심장이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정...정녕 그대가 피상득을 죽였소?"
선우는 말을 살짝 더듬으며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내가 죽였다."
"쯧, 아쉽게 됐구려."
선우는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다.
현상금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가 아쉽지?"
그녀는 모르겠다는 듯 선우에게 물었다.
"그대가 피상득을 죽였으니 현상금을 받지 못할 것이 아니오?"
"넘겨주지."
선우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에 능소화가 답하였다.
"정말이오?!"
선우는 놀라 되물었다.
중원 오대 거부인 손무창의 재산 절반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그냥 줘버린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내겐 필요 없는 것이다."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짤막이 답하였다.
그녀는 진실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은 뭐든 얻을 수 있는 그녀였다.
돈 따위에 미련을 가질 리가 없는 것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다."
그때 갑자기 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조건을 덧붙였다.
`그럼 그렇지.`
선우는 역시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 어마어마한 기회를 그냥 넘길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해보시오."
"저자들을 처리해다오"
그녀는 저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북풍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자들은 수많은 살인과 약탈을 저지른 마적들이라고 하더군. 내 저런 자들이 활개 치는 것은 도저히 보지 못하겠구나. 저들을 처리해다오. 그렇다면 네게 피상득의 시체를 주마."
그녀는 올곧은 눈으로 선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올곧은 눈에는 왠지 모를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반색하였다.
안 그래도 저들을 정리하려던 참이었다.
그렇데 이렇게 피상득을 조건부로 걸어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무르기는 없소이다."
"내 비록 계집이긴 하나 두 번 말하지는 않는다."
선우의 말에 그녀는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씨익 웃었다.
그녀의 고압적이면서 위엄 어린 말투는 스승인 음양마를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저벅 저벅
선우는 천천히 북풍대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선우가 걸어들어오자 북풍대는 그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분명 기절해버린 부대주를 구하기 위함이리라
두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
수많은 말발굽소리들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콰쾅
머지 않아 북풍대와 선우는 충돌하였고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