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 261.위기를 감지하다.
마차 안
"그거 아는가? 도道의 시작은 말일세. 오두미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오두미도가 무엇인지 아는가? 오두미도는 장천사(張天師)라 불리우게 되는 장릉이 서천에 있는 명산중 하나인 학명산(鶴鳴山)에서 도를 닦고 경전을 정리하여 청성산에서 만든 도파인데 오두미도라고 불리던 이유가 입교를 위해서 다섯 두의 쌀을 내야 했기 때문이라네."
운적자는 선우를 바라보며 쉴새 없이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런 운적자의 말을 대충 끄덕이며 반응을 해주고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장천사의 손자인 장로가...."
선우가 반응을 보이자 운적자는 더욱더 신이 난 듯 입을 열었다.
`망할`
선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운적자의 끊임없는 수다가 끝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그는 후회의 감정이 들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 상황을 만든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본래라면 홀로 마차를 쓰는 자신이었다.
처음에는 남의 눈치를 볼 필요 없다는 생각에 기뻐하였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심심함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에야 명상을 통해 무공 수련을 이어가던 그였지만 그것도 한 달 정도 되니 온몸에 좀이 쑤셨다.
그 후부터는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만 기다릴 뿐이었다.
그나마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유일한 시간도 북해에 들어오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설풍이 워낙 강하였고 날씨도 쉴 새 없이 바뀌는 북해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운 일이었다.
때문에 전과는 달리 점심은 건량으로 때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상은 선우에게 참을 수 없는 심심함을 선사해주었다.
그나마 유일한 대화상대였던 마부가 있었기에 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긴 하였지만, 그조차 이제는 할 말이 떨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선우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다른 이들을 자신의 마차에 데리고 오는 일이었다.
눈치를 살짝 봐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였지만, 무료함과 심심함은 그 단점을 넘어섰다.
그리고 초대한 이가 바로 운적자와 설향이었다.
말 많은 두 사람이라면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우의 제안을 들은 두 사람은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그리고 선우는 지옥을 맛보게 되었다.
마차에 들어서자마자 운적자의 어마어마한 수다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운적자는 말이 많았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말이다.
선우와 설향은 도가의 사상에 대해 쉴새 없이 들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청성의 원류부터 시작하여 청성을 빛낸 백 한명의 위인들의 일화까지 전부 말이다.
선우는 눈이 절로 퀭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관심도 없는 남의 문파의 역사만큼 듣기 싫은 것도 없으리라
정신이 저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설향을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였는지 눈을 퀭하게 뜨고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선우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왔다 청성의 역사를 듣고 있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겠는가?
선우는 고개를 살짝 내리며 그녀에게 사과의 마음을 표하였다.
물론 정신이 나가 있는 그녀에게는 제대로 인식 된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말일세. 청성 12대 손에는 광명자라는 선배님이 계셨는데....."
그런 선우와 설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적자는 그저 청성의 역사를 읊을 뿐이었다.
선우는 그 모습을 보고 다짐하였다.
그냥 다음부터는 조용히 명상을 하면서 가자고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응?!"
갑자기 설향이 귀를 쫑긋거리더니 의문성을 내뱉었다.
"잠시만요."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운적자를 바라보더니 양해를 구하였다.
그녀의 양해에 운적자는 하던 말을 그대로 멈추었다.
운적자가 말을 멈추자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만물의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바퀴가 구르는 소리, 설풍이 부는 소리, 눈토끼가 뛰는 소리 , 마차 안에 들려오는 대화 소리 등 온갖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더더욱 감각을 확장하였다.
그러자 꽤나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반갑다. 나는 북풍대의 대주인 피상득이라고 한다]
"피상득!"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설향은 크게 소리쳤다.
"뭐라!? 피상득!?"
그녀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놀라 되물었다.
과거 무림을 뒤흔들던 희대 살인마의 이름이 갑자기 왜 튀어나온다는 말인가?
"피상득이라고요!?"
선우 또한 놀라 되물었다.
피상득이라면 선우 또한 모르는 이가 아니었다.
애초에 장삼과 기억이 완전히 동화 돼 있는 그였다.
엥간한 무림사 정도는 꿰뚫고 있었다.
더구나 피상득은 과거 천무맹의 천라지망을 뚫은 자였다.
천무맹 소속이었던 장삼이 모를 리 없었다.
"네, 북풍대 대주 피상득이라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설향은 그들의 물음에 들은 바를 말하였다.
"어떤 상황인 것 같아?"
"대치하고 있는 상황 같아요."
설향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역시 안되겠어.]
[하아....그런 올곧은 눈을 보니까 너무 죽이고 싶잖아?]
"큰일 났어요! 습격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피상득의 말을 엿들은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뭐라!"
그녀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옆에 있던 검을 잡았다.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모양새였다.
"잠시만요."
선우는 그런 운적자를 바라보더니 가만히 말을 이었다.
"멈추세요."
"지금 한시가 급하오!"
"어디를 가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선우는 그런 운적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안됩니다."
"뭐라?!"
선우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찌 자신을 말린단 말인가?
"지금 저희 목적은 실종된 제자를 찾는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구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선우는 차가운 음성으로 운적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극악무도한 살인자라는 말일세!"
"그렇다한들 저희의 목적과는 하등 관계없는 자입니다."
"아니...어찌 협을 숭상하는 정파로서 불의를 참는단 말인가!"
"정파이니까 중요한 것은 명분입니다. 지금 저희는 피상득을 죽이러갈 이유가 없습니다."
"어째서요!"
운적자는 이해가 안 간 듯 그에게 물었다.
" 첫째 저희는 피상득이 습격을 가한 이를 알지 못합니다. 선량한 양민인지 같은 마적인지 말이지요. 둘 째 상대가 얼마만큼의 전력을 갖추고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전력 낭비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선우는 운적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협이!!"
"운적자, 정신 차리세요. 지금 저희는 두달이라는 시간이 걸려 북해에 진입하였습니다. 여기서 수색대의 전력을 낭비하게 된다면 극심한 손해라는 말입니다. 협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제자들의 안위도 생각해주셔야죠."
선우는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만약 여기서 자칫 전력을 낭비했다간 낭비된 전력만큼 수색에 차질을 빚을 것은 자명하였고 수색인원을 다시금 북해에 보내야 할 불편함이 생길 것이다.
"..........."
선우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의 말이 틀린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목적은 피상득을 토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전력 낭비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피상득이 누구와 싸우는 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이내 운적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선우의 말이 납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선우는 그런 운적자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 납득 못하고 튀어나갈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는 자신의 말에 납득한 듯 보였다.
"만약..저들이 무고한 자들이라면 어쩌겠소?"
운적자는 떨리는 음색으로 선우에게 물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온전히 저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겠지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정이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은 발언이었지만 선우는 개의치 않았다.
협이니 대의니 뭐니 하면서 끌려다니는 것은 질색이었다.
자신만의 사람을 챙기는 것도 힘든 판국에 누구를 돕는단 말인가?
측은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수십 리의 거리를 뛰어가 정체도 모르는 이를 구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찌 남의 싸움에 끼어든단 말인가?
명분도 없이 말이다.
"저기,장 소협"
그때 설향의 목소리가 선우에게 들려왔다.
"말하시오."
"자세히 들어보니까 상행을 습격한 것처럼 들려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이 온전히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그녀의 말에 선우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의 목적은 실종된 제자를 무사히 찾고 당가에 귀환하여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협객놀이나 하면서 여유부릴 생각은 없었다.
"소협, 저도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우의 말을 들은 설향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말하지 않았소, 우리가 저곳에 갈 명분이 없다고."
"명분은 있어요."
선우의 말에 설향은 눈을 빛내며 말하였다.
"무슨 명분 말이오!?"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첫 째 지금 저희 마차가 향하는 방향과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방향은 같아요. 저희는 필연이 그곳을 지나가게 될 것이고 피상득과 마주할 거에요.
그녀는 선우를 또랑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둘 째 전력 손실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라도 상단의 무사들과 협력을 도모 해야되요. 적의 숫자가 얼마인지 가늠조차 잡히지 않을 때 한 사람이라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편이 좋을 테니까요.
숨을 한 번 고른 그녀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셋 째 피상득의 목에는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있어요. 중원 오대 거부 중 하나인 손무창이 재산의 절반을 걸었으니까요. 이번 북해행에는 상당한 금액이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금액을 피상득의 목으로 충당한다면 좀더 북해행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을 최소화 시킬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단호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넷 째 실종된 제자들을 습격한 것이 피상득이라는 가정도 무시 못 해요. 무림공적으로 선포되어 북해로 도망온 그는 분명 중원 무림인에게 원한을 품고 있을 거예요. 이 드넓은 북해에서 그런 유력한 용의자를 언제 또 만나겠어요."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짐짓 고민에 빠졌다.
그녀의 말은 의외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운적자처럼 협의 타령을 할 줄 알고 대충 걸러 들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측은지심이나 협의와 같은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은 일제히 배제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리라
"좋소."
곰곰히 고민하던 선우는 이내 입을 열었다.
"내 그럼 당장 갔다 오겠네!"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운적자는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몸을 돌렸다.
"안됩니다."
선우는 그런 운적자를 만류하였다.
"어째서!"
그의 만류에 운적자는 발끈하며 되물었다.
좋다고 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막는단 말인가?
"저들은 저 혼자 구하러 갔다오겠습니다."
선우는 그들을 바라보며 단호히 말을 이었다.
"위험해요!"
선우의 말을 들은 설향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어찌 위험한 일을 자처한다는 말인가?
"괜찮습니다. 제 강함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녀의 걱정에 선우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는......."
그녀는 끝말을 흐리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애초에 제가 위험할 정도면 같이 간다고 한들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
"..........."
선우의 말을 들은 운적자와 설향은 그 어떤 말을 하지도 못하였다.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화경 초입에 이른 운적자조차 단 한 수만에 제압하는 선우였다.
그런 선우가 위험하다면 그들 따윈 도움조차 되지 않으리라
벌컥
"그럼 갔다오겠습니다."
그들의 침묵에 가벼운 미소를 지은 선우는 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휘이이이잉
차갑기 그지없는 설풍이 그를 반겼다.
`춥네.`
차가운 설풍을 맞은 선우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매서운 한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북동쪽이랬지?`
선우는 음양조화신공을 운용하여 내력을 끌어모았다.
머지않아 그의 주위에 어마어마한 내기가 휘몰아치더니 이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몸속에 스며든 음양조화기는 선우의 신체능력을 극도로 활성화시켰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선우는 혈류를 가속시키기 시작하였다.
피가 더욱더 빠르게 돌며 신체능력을 더욱더 끌어올렸다.
이내 선우의 온몸이 뻘겋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든 것이다.
"후우우우우"
선우는 호흡을 내뱉은 후 내력을 모두 용천혈에 흘려보내었다.
선우는 상체를 활처럼 휘었다.
이내 선우는 땅을 박참과 동시에 용천혈에 흘려보냈던 내력들을 일시에 폭발시켰다.
쾅
그러자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지더니 선우가 서 있던 곳은 흙먼지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선우는 활처럼 휘었던 상체를 앞으로 튕겨 그대로 신형을 쏘아 보냈다.
순간 선우의 신형이 잔형만 남기고는 그대로 앞으로 사라져버렸다.
전설적인 신법의 경지인 이형환위移形換位가 발휘된 것이다.
선우의 신형은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운적자와 설향은 입을 턱하고 벌렸다.
강한 줄은 알고 있긴 하였지만 설마 이형환위移形換位의 경지에 올랐을 줄은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저 계속 울려 퍼지는 폭음을 들으며 선우의 존재를 확인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