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 260.위기일발
두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
땅을 뒤흔드는 굉음이 더욱 크게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능소화와 마부장 그리고 남은 상인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굉음이 들려오는 곳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지축을 뒤흔들던 굉음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멀지 않은 곳에서 완전히 멈춰 서게 되었다.
쿵
그리고 가장 선두에 있었던 한혈마에서 한 남자가 땅을 내디뎠다.
땅에 발이 닿자 상당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대기하도록"
남자는 뒤를 살짝 돌아보고는 짤막이 말을 이었다.
쿵 쿵 쿵
말을 마친 남자는 천천히 마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쿵 쿵 쿵
남자는 상당한 거구였는데 걸을 때마다 커다란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커다란 발소리는 상인들이 겁을 집어먹기에는 충분한 위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마차 최후미 근처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 거대한 모습을 완전히 보이게 되었다.
남자는 대머리에 텁수룩한 수염이 나 있는 거한이었는데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고개를 끝까지 올려야 겨우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거창을 들고 있었는데 창날의 크기만 따져도 웬만한 성인 남성의 허벅지만큼 거대하였다.
그 덩치에서 주는 위압감에 상인들은 기가 눌려버렸다.
최후미에 도착한 거한은 주위를 대충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들의 상태가 너무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분명 살인에 미쳐있던 대주가 이곳을 먼저 방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저들이 살아있을 수 있겠는가?
벅벅
거한은 파르르 깎은 머리를 몇 번 긁고는 찬찬히 그들을 둘러보았다.
"오!"
그리고 이내 감탄성을 내뱉었다.
중원은 물론이고 북해에서조차 찾기 힘든 타는 듯한 적발과 적미 그리고 절세의 외모까지
초월의 미美가 담겨 있는 여인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거한은 침을 줄줄 흘리며 호색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몸매 또한 굴곡진 것이 양물이 절로 들썩였다.
`다행히 대주가 건들지는 않았나보군.`
아무래도 미치광이 대주가 저 여인은 건들지 않은듯싶었다.
저렇게 고혹적인 계집을 가만히 냅둔 것을 보니 말이다.
"응?"
그녀를 품에 안을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리던 그는 무언가 이질적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 뒤편에 있는 축 쳐진 시체였다.
뒷모습 밖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저 늑대가죽으로 만든 옷은 거한이 익히 알고 있는 옷이었다.
성큼성큼
의아함을 느낀 거한은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걸어오자 능소화를 비롯한 상인들은 더욱 뒤편으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쿡 쿡
어느새 시체에 도달한 거한은 창대로 시체를 몇 번 찔러보고는 그대로 옆으로 굴렸다.
쿵
시체가 옆으로 굴려지더니 이내 시체의 앞모습이 거한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거한은 경악하였다.
시체의 정체가 바로 잔혈마검殘血魔劍 피상득이었기 때문이었다.
피상득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름난 살인마이자 천무맹의 천라지망을 벗어나 북해로 도망칠 정도로 고강하기 짝이 없는 무공을 가진 괴물이 아니던가
게다가 북해로 도망쳐온 이후 안 그래도 고강하기 짝이 없던 무공이 더욱더 깊어져 현재 북해빙궁에 거주하고 있는 흉마凶魔와 북방의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황궁제일검皇宮第一劍 이연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막아설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이가 바로 피상득이었다.
그런데 그런 괴물이 죽어있었다.
그것도 시퍼렇게 눈을 부릅뜬 채 말이다.
거한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고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몇 번을 끔뻑여도 땅에 누워져 있는 이는 피상득이 확실하였다.
오싹
거한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북풍대의 대주인 피상득이 죽을 정도라면 아무리 자신들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거한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빠져야 하는지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북풍대는 피상득의 무력 아래 복종하는 살인마집단이었다.
그런 피상득에게 충심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손익을 계산해볼 뿐이었다.
삼킬 수 있는 먹이인지 아니면 독이 든 먹이인지 말이다.
거한은 슬며시 몸을 돌려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배불뚝이 상인 다섯 ,무인처럼 보이는 자가 하나 그리고 절세의 미녀
이렇게 총 일곱 명의 인원이 보였다.
"흐음"
그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상상 이상으로 너무나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피상득을 죽였을지 상상이 안될 만큼 말이다.
그나마 쓸만한 무인은 대주에게 당한 것인지 검을 지지대 삼아 간신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일 수만 내질러도 바로 고꾸라지리라
게다가 이대로 포기하기엔 저 초월적인 미를 품고 있는 여인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그녀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은 평생을 살아간다 해도 또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웠고 아름다웠다.
그런 그녀를 놔줘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저 계집의 붉은 머리채를 붙잡고 뒤에서 개처럼 박아대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거한이 고민에 빠지고 있을 때였다.
타타타타탁
상인들 뒤편에서 여러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고민에 빠졌던 거한은 발소리에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발소리의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발소리의 주인들은 가슴팍에 칠성七星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무복을 입고 있는 이들이었다.
칠성표국의 표두들과 표사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피를 칠갑하고 있었는데 다들 흥분된 상태인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하아..하아..괜찮으십니까?"
선두에 서 있던 남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행수 석규에게 말을 이었다.
"조 표두!"
그의 목소리를 들은 석규는 반색하며 그를 불렀다.
절체절명의 순간 표두인 조칠의 등장은 그 어떤 것보다 반가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괜찮네. 그보다 자네들 피가...."
대행수 석규는 걱정된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몸에 묻은 피들 모두 적들의 피입니다."
석규의 걱정에 조칠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안심하십시오."
말을 마친 조칠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거한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늠름한지 상인들 모두 감탄을 하였다.
마부장 또한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고 여겼건만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듯싶었기 때문이었다.
`망할`
그 모습을 본 거한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지원군의 등장에 짜증이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거한은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원군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모두 호흡은 거칠기 짝이 없었으며 군데군데 얕고 깊은 자상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분명 선발대를 상대하다 다친 것이리라
그렇기에 고민에 빠졌다.
지지는 않겠지만 피해가 커진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서자니 저 계집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저런 여인을 자신 같은 북방의 촌놈이 언제 안아볼 수 있겠는가?
쿵
거한은 창대로 바닥을 강하게 내려쳤다.
그러자 땅이 울리며 진동이 그대로 상인들과 표사들에게 전해졌다.
"나는 장광이라고 한다! 북풍대의 부대주이지!"
창대를 내리친 남자,장광은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너희들이 상대한 것은 선발대이다. 상대적으로 북풍대에서 약한 이들로 구성돼있는 자들이지."
그는 목소리에 내력을 담아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리게 하였다.
그리고 그 울림은 모든 이들의 귓가에 선명히 전해졌다.
"그리고 내 뒤에는 너희들이 상대한 선발대보다 더욱 강하고 더욱 많은 북풍대의 살귀들이 대기를 하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너희들 따위는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을 전력이지."
장광은 무척이나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너희들에게 자비를 베풀까 한다. 대주와 달리 나는 살인에 미쳐있는 인간이 아니거든"
그는 상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저 계집과 마차에 실려있는 식량의 절반을 통행료로 바친다면 북풍대를 물러주겠다."
장광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아, 어떻게 할 심산이냐?"
"..........."
"..........."
"..........."
장광의 말을 들은 상인들은 하나같이 침묵을 하였다.
이는 표두와 표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상황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라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웃기지마!"
그때 뒤편에 있던 마부장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시뻘게진 얼굴로 장광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아? 아가씨는 못 넘긴다!"
그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들을 가치도 없는 개소리입니다. 당장에라도 습격하시지요!"
마부장은 표두와 표사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
"............"
"............"
하지만 그 누구도 마부장의 말에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다.
순간 마부장은 전신이 싸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표두님?"
".........."
"대행수님?
".........."
그는 상행의 책임자들을 하나 둘씩 불렀지만, 그들은 침묵만을 지킬 뿐 그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혹한 것이다.
저 달콤하기 그지없는 제안에 말이다.
지원군이 합류했다고는 하나 후발대를 상대하기에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전력이었다.
선발대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전력을 잃었다.
만약 후발대가 더욱더 강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전멸을 면치 못하리라
그렇기에 이들은 장광이 건넨 달콤한 제안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명예를 목숨보다 중시하는 칠성검 곽만이 살아있으면 모를까
남아있는 이들은 그저 손익만을 계산할 뿐이었다.
"대답을 하란 말입니다!"
마부장은 상인들을 둘러보며 소리 질렀다.
"당신들 모두 아가씨가 목숨을 구해주지 않았습니까!"
".........."
"........."
하지만 그의 물음에도 누구 하나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그저 침묵만을 느낄 뿐이었다.
마부장은 화가 났다.
이들 모두 아가씨에게 목숨을 빚지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헌신짝처럼 아가씨를 희생시킨단 말인가?
"대행수! 무슨 말을 해보시오!"
"..........미안하네."
마부장의 분노어린 일갈에 대행수 석규는 그저 사과를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이 마부장을 더욱더 화나게 만들었다.
이미 결정된 듯이 사과를 하는 그 행태에서 말이다.
"사과를 하지마십시오!"
"미안하네."
"사과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마부장은 언성을 더욱 높이며 소리를 질렀다.
어찌 이렇게 배은망덕하다는 말인가?
목숨을 걸고 그들을 구해주었던 아가씨에 대한 일말의 고마움도 없다는 말인가?
화가 났다.
너무 화가나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내력 한줌없는 아녀자가 피상득이라는 괴물을 직접 상대할 동안 이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멀리서 돌이나 던지며 벌벌 떨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구명의 손길을 내어준 것이 아가씨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 아가씨를 넘긴단 말인가!
"크크큭 결정됐나 보군."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장광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헛소리마라! 아가씨는 못 넘긴다!"
마부장은 덜덜 떨리는 다리로 땅을 지탱한 채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장광에게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퍽
그때 갑자기 마부장은 뒷목에서 커다란 충격을 느꼈다.
"꺼억"
쿵
뒷목을 가격당한 마부장은 눈깔이 뒤집히더니 그대로 땅에 처박히게 되었다.
"조 표두. 어찌 이런..."
석규는 마부장을 기절시킨 조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모두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물음에 조칠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자신에게는 딸린 식구만 다섯이 넘었다.
그는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표국의 명예도 중요하긴 하나 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소저 미안하오. 이 죄는 죽어서 받도록 하겠소."
조칠은 양심에 찔렸는지 능소화를 바라보며 사죄 어린 말을 하였다.
"............."
능소화는 그런 그를 말없이 무감정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크하하하하하 현명한 판단을 했구려!"
그의 말을 들은 장광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세상에 다시 없을 미인을 얻게 되었다.
게다가 북풍대의 대주 자리까지 차지하게 되었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장광은 능소화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녀를 채가기 위함이었다.
그는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살 떨리기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절로 떨렸기 때문이다.
장광의 손이 그녀에게 닿기 직전이었다.
콰쾅
갑자기 그의 뒤편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놀란 장광은 재빨리 고개를 뒤로 돌렸다.
뒤편을 보자 멀지 않은 곳에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콰쾅
머지않아 커다란 굉음이 다시 울려 퍼졌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흙먼지는 점점 더 북풍대가 있는 곳과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다.
콰쾅
다시금 굉음이 터졌고 이내 흙먼지는 북풍대를 에워싸기 시작하였다.
`뭐야!?`
그 모습을 본 장광은 당황하여 눈이 휘둥그레졌다.
콰쾅
북풍대의 중앙에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잔뜩 피어오른 흙먼지가 순식간에 뚫려버렸다.
솨아아아아
그리고 자신의 옆쪽으로 어마어마한 풍압이 스쳐 지나갔다.
순간 장광은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스쳐지나간 풍압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야"
그리고 그의 귓가에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장광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싸늘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한 사내를 말이다.
"네가 피상득이냐?"
장광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