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57화 (258/1,419)

〈 257화 〉 258.북풍대의 습격-3

"이봐, 계집 정말 죽고 싶은 것이냐?"

피상득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살기 어린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세상에 죽고 싶어하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살기 어린 물음에 능소화는 오히려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이상하군. 죽고 싶지 않다는 년이 죽여달라고 애원을 하니 말이야."

그녀의 말을 들은 피상득은 으르렁거리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나야 말로 이상한군. 그런 애원은 한 적이 없는데?"

능소화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피상득을 더욱더 열 받게 하였다.

"말조심이라는 개념이 없는 년이구나."

"어떤 조심을 해야 하지?"

"내 신경에 거슬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피상득은 살기 어린 시선을 번들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

그녀는 궁금하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뭐라!?"

그녀의 물음에 피상득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대는 황제인가?"

"무슨 개소리냐!"

"아니면 천하에서 가장 돈이 많은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천하제일인이라도 되는가?"

"계집이!!!"

그녀의 말을 들은 피상득은 발끈하며 폭발적인 살기를 쏘아 보냈다.

하지만 능소화는 태연한 표정으로 살기를 받아넘기며 말을 이었다.

"그 무엇도 아닌 그대가 어찌 다른 이들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가?"

능소화는 피상득을 노려보며 차가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이해가 안 되었다.

그 무엇도 가진 것 없는 이가 감히라는 말을 쓸 줄은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다.

"그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대접받을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하라."

능소화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능소화의 거침없는 말을 들은 상인들은 입을 턱 하니 벌렸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상대가 누구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너무 무서워 실성해버린 것인가?

수많은 상념들이 그들의 머릿속에 지나가기 시작하였다.

"허어"

한 편 그녀의 말을 들은 피상득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반 평생을 유명한 협객으로서 지내왔고 그 후에는 쾌락 살인마로 지내고 있는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언제 이런 하찮은 취급을 받아봤겠는가?

그것도 한낱 계집 따위에게 말이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하찮은 취급을 받게 된 것은 말이다.

어릴 적 손수 목숨을 끊어버린 아비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자신을 이렇게 대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

아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아....하아..하아.."

순간 피상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과 열락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저 여인에게 하찮은 취급을 받았다는 생각에 첫 살인의 대상이었던 아비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사람에게 첫 경험이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 특별하고 미화되는 법이었다.

이는 피상득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여인을 죽인다면 처음 아비를 죽였을 때만큼 극도의 쾌락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하아...하아."

호흡은 더욱더 거칠어졌고 발기된 자지가 더욱더 승천하기 시작하였다.

저 위엄이 잔뜩 서려 있는 말투를 앙앙대는 울음소리로 바뀌게 만들고 싶었다.

"하아...네년은 곱게 죽여선 안되겠구나.."

스윽

잔뜩 흥분한 피상득이 마부장의 어깨에 박혀있는 검을 빼내었다.

"크으윽!"

어깨에서 검이 빠지자 마부장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극심한 고통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얼마나 잘난 면상을 하고 있는지 볼까?"

피상득은 그녀에게 가벼이 검을 휘둘렀다.

파삭

그러자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가 그대로 들리더니 뒤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불꽃처럼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썹이었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도도한 눈매와 칼날처럼 날이 서 있는 오똑한 콧대였다.

가히 절색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자태였다.

"아닛!!!!"

"허어!!"

"이런..!"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본 이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연호하였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평생토록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특히 중원은 고사하고 북해에서조차 보기 힘든 그녀의 붉은 적발은 이질감을 넘어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살짝 올라간 도도한 눈매는 위엄이 서려 있었는데 그 도도함이 남자의 정복욕을 절로 자극하였다.

그리고 입술은 또 어떻던가 붉으면서 매혹적으로 반짝이는 입술은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꿀꺽

상인들은 죽음의 공포마저 잊은 채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평소에 굴곡진 몸매를 언뜻 봤을 때만 해도 음심이 동하던 여인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얼굴마저 드러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였다.

".........하아."

그리고 심장이 뛰는 것은 피상득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얼굴을 본 피상득은 극도의 흥분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아름답다.

이런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그녀는 초월적인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름다움과 더불어 그녀에게 은근히 풍기는 고귀함과 도도함은 피상득을 더욱 미치게 하였다.

"허어....무엇을 믿고 있나 했더니 반반한 얼굴을 믿고 있었구나."

피상득은 헛웃음을 내뱉은 채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녀의 얼굴을 본 피상득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녀가 자신이라는 어마어마한 강자를 앞에 두고 오만하면서 도도한 이유를 말이다.

저 정도로 초월적인 미모를 겸비한 여인이라면 그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을 통해서만 쾌락을 느끼는 자신조차 음심이 들 정도니 말이다.

처음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을 죽였고 그 안에는 미녀라고 불릴 만한 이들도 수두룩하였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강간을 한 적이 없었다.

막대기를 구멍에 넣는 것보단 칼을 쑤셔 넣는 것을 선호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막대기를 넣고 싶었다.

그것도 맹렬하게 말이다.

"계집, 네년은 특별히 내 육노예로 삼아주겠다."

피상득은 그녀를 바라보며 인심 쓰듯 말하였다.

무조건적인 살인만 추구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호의이리라

지금껏 그 누구도 피상득과 잠자리를 한 여인은 없었으니 말이다.

"거절한다. 네놈 따위가 뭐라고 본녀를 노예로 부린단 말이더냐."

그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도도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피상득에게 말하였다.

"하아.......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계집이로다."

그녀의 거침없는 매도를 들은 피상득은 더욱더 흥분하였다.

그녀가 거칠게 굴면 거칠게 굴수록 후에 있을 쾌락이 더욱 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성큼 성큼

피상득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점혈을 시킨 후 소굴로 데려갈 요량이었다.

"멈추시오!"

하지만 그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뒤편에 한 남자의 외침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총표두!"

"곽만 총표두!"

"칠성검!"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상인들은 반색하며 그를 반겼다.

칠성검 곽만은 이번 상행에서 표두를 총괄하는 총표두였다.

또한 칠성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고수이기도 하였다.

그런 최고의 전력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어찌 반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상인들의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서려 있었다.

"간악한 녀석!"

어느새 후미로 도착한 그는 피상득을 노려보며 일갈을 내질렀다.

그 목소리가 마치 천둥번개처럼 울려 절로 위엄이 느껴졌다.

"하아....오늘 왜 이렇게 방해꾼들이 많은지 모르겠구나."

그를 본 피상득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말을 내뱉었다.

벌써 세 번째였다.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횟수가 말이다.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더러운 마적 녀석들! 내 직접 검으로 네놈을 결단내버리겠다!"

그런 피상득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곽만은 주저리주저리 그를 바라보며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선발대는 전부 당한 것이냐?"

피상득은 그런 곽만을 바라보다 툭 하고 말을 내뱉었다.

"하하하하하 한낱 마적 따위에게 당할 칠성표국이 아니다!"

그의 말을 들은 칠성검 곽만은 호기롭게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북풍대를 상대하면서 표두 한 명과 표사 다 섯 그리고 쟁자수 아홉이 죽어버리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기는 하였지만, 곽만은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는 마적 따위에게 패배하지 않았다는 명예가 중요하였기 때문이었다.

"호오, 그래도 영 맹탕은 아닌듯하군."

그의 말은 들은 피상득은 살짝 감탄성을 내뱉었다.

"그럼 이제 죽어라."

쇄애애액

그리고 그대로 검을 쑤셔버렸다.

"켁."

피상득에 검에 목이 꿰뚫린 곽만은 비명성을 내뱉었다.

그는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눈으로 목을 꿰뚫고 있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믿기지가 않은 눈이었다.

절정 상경에 도달한 자신이 반응조차 못 하고 목이 뚫려버리다니 말이다.

"미안하다, 너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의 믿기지 않은 눈빛을 본 피상득은 사과의 말을 건네었다.

눈앞의 가볍기 그지없는 남자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이렇게 허세와 명예욕에 찌든 인간일 경우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구걸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부장이나 석규처럼 올곧은 눈으로 신념을 관철하는 이들을 좋아하였다.

그 신념이 죽음의 공포에 의해 서서히 꺾이는 모습을 볼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그런 이들을 죽일 때 힘을 조절하였다.

최대한 오래토록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눈앞 남자의 경우는 달랐다.

명예만을 중시하는 허세 가득 찬 남자는 질색이었다.

그렇기에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꿰뚫을 뿐이었다.

"꺼억..꺼억...끄르르륵"

추욱

피상득의 검에 의해 목이 꿰뚫려 버린 곽만은 연신 피 끓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축 늘어져 버렸다.

죽음을 맞이한 것이리라

"흥"

그 모습을 확인한 피상득은 그대로 검을 빼내었다.

목에 검이 빠진 곽만의 시체가 그대로 땅에 나동그라졌다.

"............"

"............"

"............"

"............"

그 모습을 본 석규를 비롯한 상인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북경 최고의 표국인 칠성표국 최고의 고수인 칠성검 곽만이 단 한 수만에 허무하게 당한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곧이어 그들의 눈에 절망이라는 감정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어떤 짓을 하더라도 지금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상행 최고의 전력이 단 일 수만에 나동그라졌는데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아, 그럼 하던 것은 마저 할까?"

검을 거둔 피상득은 몸을 돌린 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오싹

그 모습을 본 상인들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저벅 저벅

피상득은 천천히 능소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슬며시 잡았다.

능소화는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그의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과연 절색이로다."

가까이에서 그녀를 다시 본 피상득은 다시금 감탄성을 내뱉었다.

멀리서 볼 때조차 아름다웠던 그녀는 가까이에서는 그 미모가 더욱 빛을 발했다.

"놓아라."

피상득에게 턱을 붙잡히 능소하는 위엄 어린 말을 내뱉었다.

"여전히 도도하구나."

그녀의 반항 어린 모습을 본 피상득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멍청한 것인지 어리숙한 것인지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존심을 세우는 그녀가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철컥

그때였다.

아래쪽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쇳소리가 그의 귓가를 울려 퍼졌다.

쾅아아아앙

그리고 이내 천둥번개와도 같은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이내 아랫배 쪽에 어마어마한 격통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피상득은 재빨리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는 거대한 충격파를 상쇄를 시키지 못하였는지 그대로 뒤로 날아가게 돼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악!!!!!"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충격파에 피상득은 비명성을 내지르며 그대로 뒤에 있는 마차에 처박히게 되었다.

쾅 쾅 쾅

상반신 전체가 마차에 처박힌 그는 양다리만 밖으로 내놓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상인들은 입을 턱 하니 벌렸다.

뭘 믿고 저리도 당돌하게 구는지 궁금하던 차였다.

그런데 설마 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남자를 단 한 수만에 날려버릴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으윽!"

그때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능소화의 신음성이 울려 퍼졌다.

피상득이 마차에 처박힌 모습을 본 상인들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능소화는 땅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왼손으로 벌겋게 부어오른 오른손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생전 처음 보는 괴상한 물체가 놓여져 있었다.

호기심이 든 상인들은 그 물건을 더욱더 유심히 보았다.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크기의 손잡이가 달려있는 쇳덩이였다.

쇳덩이 앞쪽에는 손가락 두 개정도 들어갈 정도의 크기를 가진 구멍이 나 두 개 나 있었는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폭발이 일어난 것은 저 곳인듯싶었다.

상단 대행수인 석규 또한 그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내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쇳덩이 중간에 天이라는 글자를 봤기 때문이었다.

"천뢰天雷!?!?!"

그리고 이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모든 상인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