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257.북풍대의 습격-2
저릿 저릿
흉흉하기 짝이 없는 살기에 노출된 마부장은 온몸이 저릿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위험한 자다.`
그리고 그 저릿한 통증을 받은 마부장은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이가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남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살기만으로 이 정도 위압감을 줄 정도라면 아마 수없이 많은 자들을 살해한 경험이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상인의 목을 베어버린 한 수.
자신은 그 한 수를 놓쳐버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자신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고수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마부장은 긴장 어린 시선으로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쥐고 있는 검을 더욱 강하게 고쳐 쥐었다.
틈을 보이는 즉시 기습을 가할 요량이었다.
"반갑다. 나는 북풍대의 대주인 피상득이라고 한다."
흉흉한 살기를 뿜어대고 있는 남자, 피상득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피...피상득!?"
"잔혈마검殘血魔劍!"
"아니 어찌!?"
"그 악마가......"
그의 말을 들은 상인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탄식하였다.
잔혈마검殘血魔劍 피상득이라니
어찌 그 이름을 몰라볼 수 있겠는가?
피상득이라면 협객의 탈을 쓰고 십 여년동안 남녀노소랄 것 없이 모두 죽여버린 쾌락 살인마가 아니던가
게다가 그는 중원 역사상 최고의 현상금이 걸려있는 자였다.
피상득에 의해 손녀딸을 잃은 중원 오대 거부인 손무창이 재산의 절반을 그의 목에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유명 인사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망할`
그의 말을 들은 마부장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피상득이라면 그 또한 알고 있는 이였다.
과거 그를 쫓던 천무맹 측에서 최초로 관에게 협조를 요청했던 유일한 무림공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잡지는 못하였지만 수 십 명에 이르는 관군들을 학살하다시피 한 그의 잔혹성은 아직까지도 관군 사이에서 회자되는 일이었다.
분명 팔 년 전 무림공적으로 선포가 된 후 어디론 가로 자취를 감췄다고 들었는데 자취를 감춘 곳이 북해인듯 싶었다.
욕지거리가 절로 올라왔다.
하필 이런 상황에 어찌 저런 자를 만난단 말인가?
"오호, 나를 아는가?"
상인들의 반응을 본 피상득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누군가 보았다면 정갈하기 짝이 없는 미소라 여겼겠지만 상인들입장에서는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먹잇감을 본 범 한 마리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얘기가 쉽지. 선택해라. 어떻게 죽여줄까?"
미소를 짓던 피상득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마치 선택권은 없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발언에 상인들은 절망의 빛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피상득이 얼마나 살인을 좋아하는지 말이다.
유명한 일화가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피상득이 다녀간 살해현장에서는 꼭 정액이 발견되었는데 처음에는 수사관들은 피상득이 간살(奸殺)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다고 한다.
성욕을 푼 뒤 죽인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피해자의 성기 부분에서는 그의 정액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피해자의 옷이나 벽 천장같은 주변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의문을 품었다.
어찌 강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정액이 발견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의문은 죽이는 것을 실패한 마지막 피해자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다.
피해자는 말하였다.
피상득은 사람을 찌를 때마다 정액을 배출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양쪽 눈이 풀려버리고 쾌락에 젖은 얼굴로 바뀐다고 말이다.
피해자의 말을 들은 수사관들은 경악을 하였다.
그 말인즉슨 피상득은 살인을 할 때 성적인 만족감을 느낀다는 말이 아니던가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내 수사관들은 피상득의 살해 동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그저 성적인 욕구를 풀었을 뿐이었다.
남자가 계집을 안듯이 말이다.
살해 동기를 파악한 수사관들은 하얗게 질렸다.
수저 들 힘만 있어도 발기하는 것이 남자가 아니던가
피상득의 경우 수저 들 힘만 있어도 살해를 하는 남자인 것이다.
수사관들은 이러한 사실을 천무맹에 알렸고 곧이어 중원의 수많은 이들은 피상득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살인을 계집 안는 것처럼 좋아하는 쾌락 살인마라는 사실을 말이다.
덜 덜 덜 덜
상인들은 온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지금껏 북해를 오고가면서 단 한 번도 피상득에 대한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를 마주한 이들은 모두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눈에 절망이 서리기 시작하였고 몇몇은 눈물을 찔끔거리기 시작하였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피상득은 그들을 죽인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한 채 죽일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다.
공포심이 들지 않을 리 만무하였다.
"잠..잠깐!"
그때 그의 말을 얌전히 듣고 있던 대행수 석규가 입을 열었다.
"혹여 질문을 허가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는 더없이 정중한 태도로 피상득을 바라보며 공손히 말하였다.
"해봐."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피상득은 흔쾌히 허락을 하였다.
"저희를 살려줄 생각이 없으신 것입니까?"
그는 진지한 어조로 피상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맞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이유를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재밌으니까."
그의 물음에 피상득은 짤막이 답하였다.
그는 진심이었다.
물론 또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완전 범죄를 위해서이기도 하였고 한혈마와 식량을 확보할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해도 쾌락이었다.
피상득에게 살인이란 성욕과도 같았다.
살인은 그에게 계집을 안는 것으로는 전혀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를 선사해주었다.
전신이 떨리고 심장이 울렁거리며 호흡이 가빠지는 느낌을 말이다
그런데 어찌 자신이 이런 쾌락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살려주십시오."
석규는 피상득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하였다.
"싫은데?"
"가지고 온 모든 무역품들을 바치겠습니다."
"어차피 너희들을 모두 죽이면 내 것이 될 텐데 뭣 하러?"
석규의 말을 들은 피상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부로 돌아가게 된다면 더욱더 많은 식량과 식수들을 바치겠습니다."
"너를 뭘 믿고?"
"그럼 제가 인질이 되겠습니다. 다른 이들을 풀어주신다면 분명 식량과 식수들을 가져올 것입니다."
석규는 목숨을 구걸하였다.
그것도 무척이나 끈질기게 말이다.
그는 살리고 싶었다.
다른 이들 모두를 말이다.
그것이 상단을 이끄는 대행수로서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번 상행에 따라온 이들은 딸린 가족만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돈이 필요하였고 그렇기에 북해행이라는 머나먼 여정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 이들을 이곳에서 죽게 냅두고 싶지는 않았다.
"흐음"
그의 말을 들은 피상득은 짐짓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역시 안되겠어."
꽤나 끌리는 제안이기는 하나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하아....그런 올곧은 눈을 보니까 너무 죽이고 싶잖아?"
그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석규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죽이고 싶었다.
저런 올곧은 눈을 보며 특히 말이다.
저런 눈을 가진 자는 목을 베어내는 순간 올곧은 눈빛이 공포와 절망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피상득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을 선물해주었다.
보고 싶었다.
저 올곧은 눈빛이 망가지는 모습을 말이다.
공포와 절망감에 드러워질 눈빛을 말이다.
불끈 불끈
상상만 했을 뿐인데 아랫도리가 발기되기 시작하였다.
피상득은 참지 못하였다.
부우우웅
피상득은 석규를 향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부위는 전과 똑같이 목이었다.
석규에게 날아드는 검을 보며 피상득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머지않아 검이 닿게 될 것이고 저 올곧은 눈은 시시각각 돌변하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 차가운 금속의 감촉에 경악을 할 것이다.
그리고 살이 파고드는 느낌을 생생히 받으며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며 검이 목을 완전히 자르고 지나간 후에는 죽음을 기다리며 절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양물이 절로 들썩이기 시작하였다.
깡
하지만 그의 생각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가 휘두른 검이 예상치 못한 이에 의해 그대로 막혀버렸기 때문이었다.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여 화가 머리끝까지 난 피상득은 눈을 재빨리 돌려 검을 막아선 남자를 노려보았다.
"죽고 싶은가보군."
그는 살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죽일 생각 아니었나?"
그의 말을 들은 남자,마부장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챙
그리고는 그대로 검을 튕겨버렸다.
"제법 한 수가 있는 놈이로구나."
그 모습을 본 피상득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영 맹탕은 아니지."
피상득의 말에 마부장은 긴장 어린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감당할 수 있겠나?"
"무엇을 말이지?"
"나를 화나게 한 것을 감당할 수 있냐는 말이다."
"노력은 해보지."
그의 물음에 마부장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실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보다 윗줄의 고수가 확실한 저자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서는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최후미에 있는 이들 중 전력이 될 만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월적인 강자인 능소화의 경우 내공이 금제되어 있는 상태였고 상인들 중 무공을 익힌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음 같아선 잠깐이나마 능소화의 금제를 풀어버리고 싶었지만, 금제를 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특수한 구결에 따라 반시진 동안 끊임없이 내력을 주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피상득을 막아설 사람은 자신밖에 없는 것이었다.
"큭"
피상득은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는지 웃음을 흘렸다.
어쩜 저리도 귀여울 수 있겠는가?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과의 격차를 말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검을 치켜들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진정시킨 채 말이다.
어찌 귀엽지 않을 수 있을까
두려워 짖는 개새끼 같지 않던가
어찌 이렇게 귀엽고 애처로울 수가 있을까
쇄애애애액
피상득은 회수한 검을 그대로 찔러넣었다.
노리는 곳은 심장이었다.
마부장은 재빨리 검을 치켜들었다.
캉
그리고 검면을 가격하여 궤도를 바꾸려고 하였다.
피슉
하지만 그 힘이 모자랐는지 피상득의 검은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으윽!"
마부장은 옆구리에 느껴지는 진한 통증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자아, 감당해보거라."
그 모습을 본 피상득은 환한 미소를 짓고는 검을 회수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의 몸통을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부우우웅
살기가 잔뜩 담긴 피상득의 검이 마부장에게 쇄도하였다
마부장은 이를 악물었다.
정신을 번쩍 차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검을 들어 올려 몸통을 향해 쇄도하는 피상득의 검을 막아섰다.
깡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행히 가까스로 검격을 막은 듯싶었다.
하지만
부웅
마부장의 몸이 그대로 공중에 뜨기 시작하였다.
피상득의 검격에 담긴 힘을 감당치 못하고 그대로 떠오른 것이다.
피상득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어느새 회수한 검으로 다시금 그의 심장을 찔러 들어갔다.
쇄애애애애액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피상득의 검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순간 마부장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공중에 떠 있는 이상 마땅히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가라"
피상득은 마부장을 바라보며 짤막이 말하였다.
마부장의 눈에 절망감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깡
그때였다.
청명한 소리가 울리더니 마부장의 심장을 노리던 피상득의 검의 궤도가 그대로 틀어져 버렸다.
피슉
그리고 그의 검은 마부장의 심장이 아닌 왼쪽 어깨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으아아아악!"
마부장은 왼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비명성을 내질렀다.
피상득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자신의 계획이 방해받았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남자는 이번 한 수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날아든 돌멩이에 의해 검의 궤도가 꺾여버렸다.
피상득은 눈을 부라리며 돌멩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에 이채가 띠기 시작하였다.
돌멩이를 던진 인물이 의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휘두른 검의 궤도를 바꿀 정도의 힘이 서렸기에 어느 정도 힘을 가진 장한인줄 알았건만 돌멩이가 날아온 곳에는 여리여리한 여인이 오연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흥미가 돋은 피상득은 눈앞의 여인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여인은 머리 전체를 가리고 있는 면사를 쓰고 있었다.
면사를 짠 실이 어찌나 촘촘한 지 얼굴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고급진 금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신분이 범상치 않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피상득은 잔학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은 채 그녀에게 말하였다.
"하나의 생명을 구했지."
피상득의 물음에 여인은 담담히 말하였다.
"아니, 너는 지금 나를 방해한 것이다. 감히 말이야!"
그녀의 말을 들은 피상득은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었다.
살해를 실패한 것을 말이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여인은 그런 피상득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네놈이 뭐라고, 방해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냐?"
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피상득을 노려보며 말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피상득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