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 255.잔혈검귀殘血劍鬼 피상득
잔혈검귀殘血劍鬼 피상득
삼류왈패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 아비의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어미는 몸을 팔아 그와 아비를 부양하였는데 아비와 한 번 대판 싸운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피상득은 생각하였다.
아비의 폭력적인 행태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간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어미를 원망하였다.
이 지옥 같은 곳에 자신만 홀로 두고 도망간 어미를 말이다.
그리고 그는 생각하였다.
조금만 더 나이를 먹으면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나오자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배가 너무 고팠던 피상득은 쥐라도 잡아먹을 요량으로 집 뒤편에 오래된 창고를 들어갔다.
그의 아비가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였지만 배고픔에 눈먼 그에게 아비의 협박 따위는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창고에 들어섰을 때
그는 볼 수 있었다
잔뜩 부패되 있는 시체 한 구를 말이다.
그 모습을 본 피상득은 토악질이 절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시체는 어마어마한 악취를 내뿜었고 그 주위에는 수많은 날파리들이 날아다녔다.
피상득은 의아함을 느꼈다.
어찌 집 뒤편 창고에 사람의 시체가 있다는 말인가?
혹여 아비가 사람을 실수로 죽여놓고 은폐하려는 수작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상상을 하며 시체를 살펴보던 그는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체가 입고 있는 옷이 무척이나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아깝다면서 몇 번이고 기워입고 또 기워입은 낡아빠진 경장
피상득은 알고 있었다.
저 옷을 입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말이다.
피상득은 피눈물을 흘렸다.
어미가 어째서 모습을 감췄는지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살해당한 것이었다.
술이나 퍼먹을 줄 아는 주정뱅이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피상득은 그 길로 부엌으로 향하였다.
부엌으로 간 그는 식칼을 집어들고는 그대로 자고 있는 아비의 머리통을 쑤셔버렸다.
아비는 그대로 절명하였고 피상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비를 죽였을 때 알 수 없는 해방감과 쾌감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기 때문이었다.
극도의 쾌감을 느낀 그는 그대로 정액을 싸버렸다.
계집질이 아닌 살인으로 성적 쾌락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는 집을 불태워버린 뒤 곧바로 정도 문파로 이름을 날리던 정검문에 투신을 하였다.
살인을 마음껏 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무공의 재능은 있었던지라 그는 일취월장하였고 곧이어 정검문주마저 뛰어넘을 정도의 강함을 손에 넣게 되었다.
강함을 손에 넣은 그는 겉으로는 협을 숭상하는 무인 행세를 하였고 뒤편에서는 중원의 수많은 사람들을 별 이유 없이 살해하는 쾌락 살인마로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지만 그 아무도 범인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
피상득의 살해 수법이 워낙 교묘하여 범인을 특정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유명한 협객인 그가 쾌락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그 아무도 상상도 못 하였다.
그렇게 피상득은 십 여년이라는 세월 동안 쾌락 살인마로서 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하던가
어느 날 그는 뜻하지 않은 실수로 인해 실체가 온 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미처 죽이지 못한 피해자가 그의 실체를 까발린 것이다.
그의 정체가 드러나자 온 중원이 떠들썩하였다.
협객으로서 명망이 높았던 그였기에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그는 곧이어 공적으로 선포되었고 무림의 수많은 이들이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의 목에 걸린 현상금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어마어마하였는데 과거 피상득의 손에 손녀를 잃은 중원 오대 거부 손창벽이 그의 목에 가진 재산의 절반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이들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피상득을 잡는 이가 없었다.
피상득은 일개 살인마라고 치부하기에는 고강하기 그지없는 경지에 도달하였기 때문이었다.
피상득은 천라지망을 유유히 빠져나간 후 미련없이 북해로 떠나버렸다.
중원 땅에는 더 이상 발 디딜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북해에 자리를 잡은 피상득은 자신과 같이 북해로 도망쳐온 살인귀들을 모아 북풍대라는 단체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북해를 방문하는 중원의 상단을 대상으로 약탈과 살인을 일삼으며 악명을 떨쳤다.
"대주님, 멀지 않은 곳에서 상단 행렬이 보인다고 합니다."
험상궂은 외모를 가진 사내가 피상득에게 말을 하였다.
"거리는?"
피상득은 담담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대략 십 리 정도입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규모는 얼마나 크지?"
피상득은 수하를 바로 보며 되물었다.
"상당히 큽니다. 중형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피상득의 물음에 남자는 들은 바를 그대로 답하였다.
"흐음.....중형 규모의 상단이라...."
수하의 말을 들은 피상득은 짐짓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중형 상단이라는 것이 참으로 애매하였다.
보통 소규모 소형 상단일 경우에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덮쳐들어갔다.
소규모 소형 상단정도가 북풍대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대규모의 대형 상단의 경우에는 굳이 덮쳐들지는 않았다.
피해도 막심할뿐더러 북풍대입장으로서도 꽤나 부담스러운 고수들이 즐비해 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중형 규모의 상단은 그 처우가 애매하였다.
대형만큼은 아니더라도 피해가 상당할뿐더러 상당한 고수들이 껴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자니 저들이 들고 있을 수많은 물품들이 탐이 났다.
북해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은 식량이었다.
그리고 중원에서 들여오는 것들은 대부분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식량들이었다.
어찌 탐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흐음"
그는 더욱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습격을 하였을 시 얼마나 피해를 입고 이익이 되는지 손익 계산을 하고 있는 중이리라
"덮친다."
그리고 이내 부하를 바라보며 짤막이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피상득의 말을 들은 수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막사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마 다른 이들에게 결행을 알리리라
"이번에는 쓸만한 계집이 있었으면 좋겠군."
피상득은 가학적인 눈빛을 번들거리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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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덜컹
흔들리는 마차 안에 새하얀 면사를 쓴 이가 다소곳 앉아 있었다.
면사를 쓴 이는 머리 전체를 전부 가리고 있었기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풍만히 튀어나온 가슴 어림을 미루어보아 여인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상당히 고급스러운 금빛의 비단옷은 그녀가 보통 신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아."
면사를 쓴 여인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소하 아가씨."
그때 그녀의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남자, 마부장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구나."
마부장의 물음을 들은 능소화는 답답하다는 듯 그에게 말하였다.
그녀는 지금 상당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북경에서 북해로 오는 내내 마차 안에만 콕 박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정체를 제대로 숨겨야겠다는 생각에 굳은 결심을 하며 꼭 꼭 숨어있었지만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답답함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짐을 최소화하였기 때문에 읽을거리나 즐길 거리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어찌 답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명상이라도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마부장은 다른 제안을 하였다.
그녀가 비록 내력이 제한당했다고는 하나 그녀는 엄연한 무인이었다.
오랜 명상을 통해 자신을 관조하는 것만으로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을지도 몰랐다.
"명상은 충분히 할 만큼 했다!"
그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이미 명상은 차고 넘칠 정도로 하고 또 한 상황이었다.
즐길 거리가 전혀 없는 마차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북경에서 북해로 오는 동안 내내 명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명상도 하루 이틀이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명상을 하니 온몸에 좀이 쑤셔지는 것을 느꼈다.
괴로웠다.
그것도 상당히 말이다.
애초에 명상이라는 것도 하루하루 무공을 수련하며 달라진 자신에 대한 관조와 깨달음에 대한 정리가 있어야 소용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내력이 금제 당하여 무공조차 제대로 수련하지 못할뿐더러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슨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마차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그녀에게 명상은 시간 낭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아가씨께서는 워낙 외양이 특출나셔서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는 말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마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능소화의 외양은 이질적이다 못해 신비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특이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타는 듯한 붉디 붉은 적발과 적미 그리고 적안 때문이었다.
중원인으로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저 화려한 색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더구나 그 화려하기 그지없는 색들과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합쳐져 한 번 그녀를 본 이는 그녀를 절대 잊지 않았다.
때문에 마부장은 그녀가 별궁을 나오자마자 머리 전체를 가리는 면사를 씌웠다.
괜스레 일어날 잡음들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웬만하면 마차 밖으로 나오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그 방법만이 수많은 정적들의 이목을 속이고 북해로 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녀 또한 마부장의 의견에 동의하여 마차에만 틀어박힌 생활을 이어갔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온 듯 하였다.
"나도 안다. 그래도 답답한 걸 어쩌겠는가. 안 되겠다. 다음 점심 시간에는 마차 밖으로 나가 걷기라도 해야겠다."
그녀는 마부장을 바라보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러다 면사라도 벗겨지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마부장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이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아니, 걷기만 할 터인데 어찌 면사가 벗겨지겠는가?"
그녀는 마부장의 노파심에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박하였다.
그저 걷기만 하는데 어찌 면사가 벗겨진다는 말인가
"아가씨께서는 밖에 안가는 버릇을 해서 모르겠지만 지금 설풍이 어마어마합니다. 아가씨 면사 정도는 찢겨질 것입니다."
그녀는 양손을 쫙 벌리고 과장된 듯한 행동을 하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거짓말 말거라. 고작 바람 따위가 어찌 천잠사를 꼬아 만든 면사를 찢는단 말이냐!"
마부장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발끈하며 그의 말을 부정하였다.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은 천잠이라 불리우는 희귀하기 그지없는 직물로 만든 것이었다.
천잠은 무척이나 얇고 부드러운 주제에 강도만큼은 강철을 넘어서는 신비한 직물이었다.
제 아무리 북해의 설풍이 차갑고 시리다고는 하나 천잠을 찢어버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자신을 마차 밖으로 내보내기 싫은 마부장이 과장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니 면사는 찢어발기지는 못하더라도 날아갈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마부장은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면사자체는 천잠으로 만들어 튼튼하다고는 하나 고정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저 머리에 둘러쓰고 있는 것이 다일진대 어찌 매서운 설풍을 견딜 수 있겠는가?
"조심하면 된다. 걱정 말거라."
그의 걱정에 능소화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아니, 어떻게 걱정을 안 합니까? 면사가 날아가면 끝입니다. 끝!"
"어차피 이미 북해로 진입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 그리 부정적이더냐."
마부장의 과민 반응에 능소화는 모르겠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이미 북해에 진입하였거늘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여기서 정체가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정적들이 이 소식을 알기 위해서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미 그 시간이면 빙정을 찾고도 남을 시간이리라
"후우...아가씨께서는 아가씨의 외모에 대해서 좀 더 자각을 하셔야 합니다."
그녀의 물음에 마부장은 한숨을 살짝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것도 미치도록 말이다.
아마 어떤 남자든 그녀를 한 번 보게 된다면 어떻게든 수작을 부리기 위해 접근할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매력적인 여인이었으니 말이다.
"나도 안다. 내가 머리랑 눈이 붉다는 사실 정도는....."
그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침울한 듯 말을 이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다른 이들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말이다.
적발에 적미 그리고 적안까지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질만한 외모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외모에 대한 불만을 가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마부장의 말을 듣다 보니 너무 큰 장애물인 것 같아 괜스레 침울함이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외모가.....!"
마부장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덜컹
갑자기 마차가 크게 흔들리더니 그대로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쿵
"으윽"
천장에 머리를 그대로 박은 능소화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신음성을 뱉어내었다.
너무나 가벼운 그녀의 몸이 그대로 공중에 떠 천장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원독에 찬 눈으로 마부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