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화 〉 254.북해에 진입하다
북해
대륙 최북부에 위치해 있는 지역으로 일년 내내 눈과 얼음이 녹지 않을 정도로 냉랭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모든 것들이 얼어붙어 있기 때문에 북해는 척박하기 이를 데가 없었고 농사 따윈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오죽하면 중원의 황제를 포함한 북방의 이민족들조차 북해를 정벌하는 것을 포기하였을까
북해는 추웠다.
그것도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말이다.
일낸 삼백육십오일 눈보라가 몰아쳤으며 언제나 낮은 온도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이 추위는 비교적 따뜻한 곳에 살던 중원인들에게는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솜옷을을 겹겹이 껴입어도 동상이 걸리기 일수였고 보급이 잠시라도 끊길 경우 그대로 배를 곪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중원을 비롯한 수많은 이민족들은 북해를 정벌하지 않았다.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도 혹독하고 처참한 추위가 몰아쳤고 대지가 얼어붙어 있기 때문에 자급자족 또한 어려워 보급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가지고 있을 곳을 뭣하러 지배한다는 말인가
모두가 꺼릴 정도의 환경을 가진 곳이 바로 북해였다.
북해에는 국가라는 체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작은 마을들이 곳곳에 흩어져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발전시켜나갔다.
농경지를 확보할 수 없는 북해였기에 북해의 사람들은 주로 사냥을 하여 고기를 섭취하거나 무역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였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인지 북해의 지하에는 상당한 양의 자원들이 매장되어 있었는데 이를 얻기 위해 수많은 상단들이 북해의 가혹한 추위를 뚫으며 몸소 찾아왔었다.
그저 장기보관용 식량 몇 근이면 희귀한 광물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으니 어찌 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북해에서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독한 독주를 만들어 먹는 음주문화가 발달되었는데 그들이 빚는 독주毒酒는 중원에서 일품一品이라고 칭송을 받으며 너도나도 맛보기위해 천금을 아끼지 않을 정도의 맛을 자랑하였다.
특히 그 목구녕을 태워버릴듯한 화약과도 같은 중독적인 목 넘김은 중원인이라면 한 번쯤은 느껴봐야 할 별미로 여겨졌다.
"크으으으으으"
선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감탄성을 내뱉었다.
독주가 목 아래로 넘어가면서 타는듯한 고통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선우는 재빨리 안주를 찾았다.
이 독함과 올라오는 취기를 가라앉혀줄 최상의 안주를 말이다.
"이거 드세요."
그때 옆에서 고운 미성이 들려왔다.
시선을 살짝 돌리자 그곳에는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는 설향이 육포를 들어 올린 모습이 보였다.
"압"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재빨리 입을 벌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육포를 그대로 받아먹었다.
질겅 질겅
꿀꺽
선우는 입 안에 털어 넣은 육포를 몇 차례 씹고 난 후 그대로 삼켜버렸다.
"후우우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하디 독한 취기와 타는듯한 고통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는 것이 느껴졌다.
"고맙소....소저.."
선우는 안주를 건네준 설향을 바라보며 고마움을 표하였다.
"헤헤..아니에요."
선우의 말을 들은 설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독공의 달인이신 장 소협도 북해의 독주는 해독이 안되나 봐요?"
"애초에 독이 아니지 않소? 게다가 내력으로 술기운을 해독한다면 마시는 의미가 없지 않겠소?"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맞아요. 술은 취해야 의미가 있죠!"
선우의 말을 들은 설향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새하얀 토끼를 보는듯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한 잔 주세요."
설향은 선우에게 잔을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소저, 이거 엄청 독하다오."
그녀가 잔을 들이밀자 선우는 걱정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북해의 독주는 어마어마하게 독하였다.
중원의 독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말이다.
선우는 과연 이 독주를 갓 약관이 된 그녀가 견딜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에이, 어찌 무인이 술 마시는 것을 두려워하겠어요."
그런 선우의 걱정에 그녀는 호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술은 먹어본 적 있소?"
선우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연하죠!"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당당한 목소리로 답하였다.
"에이, 거짓말."
그때 그녀의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운혜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 아니야!"
그녀의 말에 설향은 발끈하며 말을 이었다.
"십 여년 동안 아미산문을 벗어난 적이 없는 사저가 언제 술을 먹어봤다고 그러세요."
운혜는 발끈하는 설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방문객들을 위해 곡주라도 만들어내는 소림과는 달리 철저하게 술과는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이는 곳이 바로 아미였다.
술은 인간의 정신을 혼란케 하고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킨다고 여긴 선대의 뜻을 이어받은 결과였다.
그런 아미에 십여 년 동안이나 있었던 설향이 언제 술을 맛봤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딴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분명 북해의 독주를 얻어먹으려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리라
"진짜야!"
그녀의 말을 들은 설향은 억울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언성을 높였다.
"언제 드셨는데요?"
설향의 억울하다는 듯한 항변을 들은 운혜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
운혜의 물음에 설향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운혜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거봐요. 거짓말 맞잖아요."
".......사매."
운혜의 말을 들은 설향이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하기로 약속해줄 수 있어?"
그녀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뭔데요?"
설향의 심각한 표정을 본 운혜는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사실 저번 석가탄신연때 사부님한테 섬서에 있는 추가장에서 술 선물이 들어온 적이 있었거든…."
"섬서의 추가장이라면 중원 최고의 양조장을 가진 곳이잖아요?"
그녀의 말을 들은 운혜는 놀라듯 그녀에게 물었다.
섬서의 추가장은 아미산문 밖을 벗어나 본적 없는 운혜마저 알 정도로 유명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추가장은 중원 최고의 양조술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였는데 그들이 만든 술은 황제에게도 진상 될 정도로 깊은 맛을 자랑하였다.
그런 추가장에서 술 선물이 들어왔다면 필시 보통의 술이 아닐 터였다.
"맞아, 사부님께서 극구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놓고 가셨거든 하지만 알다시피 아미에서는 금주령이 내려진지라 처치 곤란해 하셨지."
운혜의 말을 들은 설향은 술에 대한 비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오랜 친우이자 술이라면 환장하는 취걸개 선배님께 보내고자 하였어."
"취걸개 선배님이라면!?"
"그래, 개방의 방주님이지."
그녀의 물음에 설향은 담담히 답하였다.
그녀의 말대로 구월신니는 갑자기 들어온 술 선물을 어떻게 처치할까 무척이나 곤란해 하였다.
아미파는 엄격한 금주령이 내려진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썩 좋은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버릴 수도 없는 것이 나름 마음이 담긴 성의였던지라 그들의 마음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같은 이유로 팔 수도 조차 없었다.
한 마디로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그녀는 고민하였다.
추가장의 명주를 처치할 방법을 말이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꽤 괜찮은 묘수를 찾아내었다.
오랜 친우이자 술이라면 환장을 한다는 개방의 방주 취걸개에게 주는 것이었다.
물론 워낙 비싸고 귀한 명주라 아깝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들기는 하였지만, 그녀는 선택을 굳혔다.
술이란 마셔야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마시지도 않는 자신이 가지고 있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을뿐더러 추가장의 명주는 상당한 가치가 있었기에 취걸개에게 빚을 지워둘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추가장의 명주는 취걸개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취걸개는 반색하며 구월신니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다.
"그렇다면....혹시?"
그녀의 말을 들은 운혜는 갑자기 안색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설향이 한 말들을 대충 조합해보니 어떤 말이 나올지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맞아, 그거 몰래 마셨어."
설향은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걸 마시면 어떻게 해요!"
그녀의 말을 들은 운혜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추가장의 명주는 천금을 주고도 사기 힘들다고 여겨질 정도로 귀하디 귀한 술이었다.
그런 술을
그것도 취걸개에게 줄 술을 어찌 홀라당 먹어버린단 말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이왕 선물 들어 온건데 맛도 안 보고 넘기긴 아깝잖아."
"전부 다먹은 거에요!?"
"아니, 한 반병만 마시고 나머지는 물 타놨어."
"............"
그녀의 말을 들은 운혜는 말없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제멋대로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이런 사고를 쳤을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어찌 명사에게 선물로 줄 술에 손을 댄다는 말인가?
다른 이도 아니고 사부의 술을 말이다.
그녀의 말 대로하면 취걸개는 물탄 술을 받고 기뻐했다는 말이 아니던가
"비밀이야."
그녀의 반응을 본 설향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댄 후 눈을 찡긋거리며 말하였다.
"소협도 비밀이에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선우를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하..하..하"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만치 않은 성격이라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긴 하였지만 이렇듯 말괄량이 일 줄 상상도 못 하였다.
물론 그 모습이 더없이 귀여워 보이긴 하였지만 말이다.
선우는 천천히 술병을 들었다.
"잔 받으시지요."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독주를 한 번 얻어먹겠다고 이런 비사까지 말해주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헤헤, 고마워요."
선우의 말을 들은 설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쪼르르르
술병 속에 있는 맑은 술이 그녀의 잔에 가득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잔이 가득 채워졌고 선우는 술병을 거두어들였다.
술이 가득 찬 잔을 받아든 설향은 신기하다는 듯 투명한 술을 바라보았다.
꿀꺽
이내 술잔을 한입에 털어 넣어버렸다.
"으으으으으"
술을 그대로 삼킨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음성을 내뱉었다.
속이 타는듯한 화끈함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으으으으"
북해의 독주는 먼젓번에 먹었던 추가장의 독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화끈함이었다.
"우우우우"
그녀는 괴로운지 시뻘게진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이며 고통을 토로하였다.
"훗"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잘먹을 수 있다며 자신하던 그녀가 한 잔 만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니 무척이나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자... 안주를 먹으면 조금 나을 것입니다."
선우는 설향을 바라보며 육포를 하나 건네주었다.
"와압"
그러자 설향은 입을 벌려 재빨리 육포를 받아들었다.
질겅 질겅 질겅 질겅
꿀꺽
그리고 빠르게 씹고는 그대로 넘겨버렸다.
그러자 속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죽는 줄 알았네."
속이 안정된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또 드시렵니까?"
선우는 독주가 든 술병을 들이밀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괜찮아요!"
선우의 권유에 설향은 화들짝 놀라며 답하였다.
더는 목이 타오르는듯한 고통을 맞이하기 싫었다.
"쩝"
그녀의 강력한 거절에 선우는 아쉬운듯 침음성을 내뱉었다.
반응이 상당히 귀여워 몇 번 더 볼 요량이었건만 아무래도 그건 포기해야 할 듯싶었다.
"장 소협!"
그때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 돌려보니 그곳에는 운적자의 모습이 보였다.
"슬슬 출발해야할 것 같네. 설풍이 더욱더 거세지고 있어."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처음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할 때보다 더욱더 거세진 설풍이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너무 여유를 부린듯합니다."
선우는 운적자를 바라보며 사과를 하였다.
당장 출발해도 모자를 판국에 너무 여유를 부린듯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닐세, 날씨가 이런 것을 어찌 자네를 탓하겠는가?"
선우의 말에 운적자는 고개를 도리질하며 말을 이었다.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얼마나 걸린답니까?"
선우는 운적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빠르면 저녁쯤에 도착할 것이고 늦으면 오늘이 지나도 도착 못 한다고 하더군."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출발하도록 하지요."
"알겠네. 내 그럼 다른 이들에게 그리 전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별거 아닐세."
말을 마친 운적자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빠르게 소식을 전할 심산이었다.
선우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먼저 출발 준비를 하고 자신에게 통보해도 될 터인데 작전 통제권을 넘겨준 이후부터는 이렇게 일일이 보고를 하였다.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긴 하였지만 그만큼 책임감이 들었기에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후우`
선우는 한숨을 내쉬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거센 설풍이 불고 있는 순백의 대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설풍이 거세면 거세질수록 북해빙궁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곧이다.`
눈 덮인 순백의 대지를 바라보고 있는 선우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