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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52화 (253/1,419)

〈 252화 〉 253.설향, 연모를 품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어찌 도사라는 작자들이 그런 것도 모른 체 일방적인 호의를 강요한다는 말이더냐!"

운적자는 청성의 제자들을 둘러보며 호통을 쳤다.

그 기세가 어찌나 매서운지 청성의 제자들은 아무런 말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만 돌아가거라. 만약 또 장 소협 앞에서 드잡이질을 하며 청성의 명예에 누가 되는 짓을 한다면 내 엄히 다스리리라!"

운적자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청성의 제자들은 잔뜩 움츠러든 채 몸을 돌려 제 자리를 찾아갔다.

말을 마친 운적자는 몸을 돌려 선우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장 소협, 청성의 제자들이 결례를 범하였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 그에게 사과의 말을 건네었다.

"아..아닙니다. 고개를 들어올려주십시오."

그의 과한 사과에 당황한 선우는 놀라 그를 말렸다.

분명 고개를 숙일만큼 잘못한 일이 아닐진대

어찌 이렇게 과하게 반응을 한다는 말인가

"아닐세, 제자들의 허물은 곧 그들을 이끄는 나의 실책이라네, 나를 욕하여도 되네."

별거 아니라는 선우의 말에도 불구하고 운적자는 숙인 고개를 들어올리지 않았다.

그런 꿋꿋한 태도에 선우는 더욱더 난감해지는 것을 느꼈다.

'왜 이래!?'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상반된 운적자의 태도에 선우는 괴리감을 느꼈다.

이거 사람이 바뀌어도 너무 바뀐 것이 아닌가.

"정말 괜찮습니다. 어서 고개를 들어주십시오. 제가 너무 불편합니다."

선우는 운적자를 바라보며 속내를 말하였다.

"고맙네."

선우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실 좀더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으나 선우를 곤란케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보다 장소협."

고개를 든 운적자는 은근한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뒤적 뒤적

그리고는 품 속에 무언가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헝겊주머니를 하나 꺼낸 뒤 선우에게 건네었다.

"이거 받게나."

"이게 뭡니까?"

헝겊주머니를 받아든 선우는 의아한듯 그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웅담일세."

운적자는 목소리를 한껏 낮춘 뒤 그에게 말하였다.

"웅담이요!?"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놀라 되물었다.

별안간 웅담이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쉬이이쉿! 조용히하게 누가 듣겠네."

선우가 언성을 높이자 운적자는 검지를 입에 댄 후 조용히하라는 행동을 취하였다.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하신겁니까?"

그의 행동을 본 선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그에게 물었다.

"물론 잡았다네."

그의 물음에 운적자는 별것 아니라는듯 말을 이었다.

"아니 무슨 도사가 이렇게 살생을 밥먹듯이 한다는 말씀입니까!?"

선우는 그런 운적자를 어이없다는듯이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청성의 제자도 그렇고 운적자도 그렇고 생명을 죽이는데 참으로 거침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허허, 청성은 육식을 금하지 않는다네. 오히려 권장을 하지."

선우의 딴지에 운적자는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허어."

그의 당당한 태도에 선우는 실소를 내뱉었다.

도사가 육식을 권한다는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꼭 혼자 먹게나. 이게 남자에게 그리 좋다고 하더군."

선우의 실소를 본 운적자는 씨익 웃으며 말하였다.

"아직은 팔팔한 나이라서 말입니다."

운적자의 말을 들은 선우는 농을 건네었다.

"허허, 다다익선이라는 말도 모르나?"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요."

"정력은 과유불급이 해당되지 않는다네."

"그건 또 그렇지요."

운적자와 선우는 서로 농을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운적자가 먼저 자리를 뜨기 시작하였다.

"꼭 혼자 먹어야되네!"

그는 가는 길에도 몇 번이고 강조하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선우는 작은 미소를 지은 채 답하였다.

썩 유쾌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운적자와 대화하는 것은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고루하기 짝이 없다고 여겼던 운적자는 생각보다 유쾌한 인물이었기 떄문이었다.

꼬장꼬장한 꼰대라고 여겼던 첫인상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약간 푼수기질이 있는 유쾌한 아저씨로 말이다.

선우는 떠나가는 운적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감탄을 하였다.

비록 은혜를 입혔다고는 하나 운적자를 땅에 처박아버린 선우였다.

그런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운적자의 대인배적인 면모가 무척이나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자신이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렇게 가식 하나없이 스스럼없이 행동할 수 있을까하면서 말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자신은 저만큼 정신적인 수양을 쌓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인기가 많네요."

그때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리따운 여인 하나가 선우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설소저."

선우는 걸어오고 있는 설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멀리서 봤는데 인기가 아주 많더라고요."

그녀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하였다.

"인기는요, 그저 청성의 제자들이 호방한 것이지요."

그녀의 말에 선우는 겸양을 떨며 말하였다.

"겸손하실 필요없어요. 충분히 이런 대우를 받을 만큼 은혜를 베푸셨잖아요."

"은혜랄 것도 없습니다. 그저 수색 하기 앞서 전력 낭비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것이 싫었을 뿐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말하였다.

수색대의 목표는 실종된 제자들과 세가원들을 수색하는 것이다.

수색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고되고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전력이 필요하였다.

또한 제삼의 세력이 간섭하였을 경우 무력적인 충돌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각 문파의 정예라고 불리우는 자들이 북해로 파견된 것이다.

좀더 안전성과 신속성을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때문에 북해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부 분열로 인해 전력이 낭비가 되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일이 더욱더 커지는 것 또한 원치 않았다.

만약 이번 일로 청성과 아미가 전쟁이라도 치루게 된다면 사천연맹의 두 축이 한 번에 결단 날수도 있는 것이다.

그 꼴을 두고볼 수는 없었다.

이제 막 날개를 달아 날아가고 있는 사천 연맹이었다.

그 날개를 중간에 꺾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전쟁이 시작된다면 수많은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대량학살자도 아니고 그 꼴을 어찌 두고볼 수 있겠는가

"친절하네요."

선우의 말을 들은 설향은 방긋 웃으며 그에게 말하였다.

"친절하다뇨?"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합리적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건만 도대체 어디가 친절하다는 말인가

"친절하시니 그렇게 관용을 베푸신게 아닌가요?"

그녀는 오히려 선우에게 반문하였다.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딱 잘라 말하였다.

친절이라는 말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떄문이다.

오히려 합리적이라거나 실속있다거나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아니요, 친절해요. 이건 확신할 수 있어요."

선우의 말에 설향은 올곧은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마주한 선우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저는 제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선우는 나름의 반론을 펼쳤다.

" 그럴 리가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번 일을 빌미로 청성에게 수많은 것들을 요구했겠죠. 그들은 명분 싸움에서 밀렸으니까요."

선우의 말을 들은 설향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당가는 청성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그 요구를 받아낼 능력마저 갖추고 있었죠. 그런데 장 소협은 그 무엇도 요구하시지 않으셨어요. 그저 모르겠다며 넘어가셨잖아요. 이걸 어찌 친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나요."

설향은 선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였다.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정파는 명분 싸움이에요. 그리고 당가는 명분 싸움에서 우위에 서 있었죠. 게다가 명분을 관철할 만한 무력마저 갖추고 있었어요. 그런 우위에 서 있는 입장에서 관용을 베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녀는 존경어린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런 장 소협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설향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말해놓고 부끄러움이 몰려들었기 떄문이다.

"............저는...친절했군요."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쿡쿡, 친절했군요는 뭔가요?"

선우의 말을 들은 설향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해주시는데 계속 부정하기도 좀 그래서요."

선우는 머쓱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아직도 친절을 베풀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멋대로 행동한 것 뿐이었다.

그녀 말대로 자신은 청성에게 수많은 것들을 요구할만한 위치에 서있었다.

또한 그걸 받아낼만한 능력마저 갖추고 있었다.

청성에서 제일 강하다는 운적자마저 자신에게는 전혀 상대가 안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운적자와 청성의 제자들이 모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박는 모습을 보니 그들에게 무언가 요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저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했다간 마음 한구석이 계속 걸렸을 것 같았다.

분명 스승인 음양마가 이런 자신을 본다면 물러텨진 자식이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겠지만 그렇다해도 자신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그런 자신의 선택 덕분에 누구보다 호의적인 연맹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찌보면 명분을 더욱 심화시켜 물질적인 것을 뜯어내는 것 보다 더욱 나은 선택이라고 할수도 있으리라

"장소협은 역시 이상해요."

설향은 그런 선우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꿀이 떨어지는듯 달콤하기 그지 없었다.

선우의 겸손 아닌 겸손을 보니 그에 대한 마음이 더욱더 커져가는 것을 느끼는 설향이었다.

만약 자신이 선우와같은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명분을 빌비로 청성을 공격하여 수많은 이권들과 이익들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달랐다.

그런 자질구레한 이익과 이권을 뒤로 하고 청성에게 관용을 베푸는 선택지를 택하였다.

세상 어떤 이가 그런 선택의 기로에서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선우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불속 사태는 선우와 거리를 벌리라고 말을 하였지만 그녀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선우와 같은 매력적인 남자를 거부할 수 있을까?

이립도 안된 나이에 세상을 뒤집을만한 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저런 대인배적인 성정을 가진 그를 어떤 여인이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생각하였다.

상대가 선우라면 둘째 부인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말이다.

선우를 바라보는 설향의 눈빛이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

저벅 저벅 저벅

선우는 천천히 밤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나름 풍취가 느껴졌다.

또한 드넓은 풀내음이 그의 코를 간질였고 녹빛 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절로 흥이 나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선우는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며 풍경을 눈에 담아두었다.

만약 북해에 진입하게 된다면 이 광경도 낯설어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번뜩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익숙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허허허허 산책 중이였는가."

익숙한 인영의 정체는 운적자였다.

그는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고는 그대로 선우에게 다가왔다.

"잠이 안와서 말이죠. 운적자께서는 어인 일입니까?"

운적자의 물음에 답한 선우는 되려 그에게 물었다.

"허허 나 또한 잠이 오지 않아서 말일세."

선우의 물음에 운적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잘됐군요. 마침 말동무가 필요하던 차였는데 말이죠."

그런 운적자의 말에 선우는 기꺼워하며 그를 반겼다.

"그럼 같이 걸어볼까?"

선우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재빨리 선우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 둘은 녹음을 헤치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

"............."

말동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원래라면 조잘거리며 유쾌하게 말을 이어갈 운적자가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침묵에 불편을 느낀 선우는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침묵하고 있는 운적자가 부담스러워 선뜻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고맙네."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운적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어조는 무척이나 진지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짦은 말에는 수많은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져 있었다.

사실 운적자는 선우에게 더욱더 멋들어진 말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아집을 꺾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

자신의 죄를 모른 척 넘어가준 것에 대한 고마움

심마心魔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

청성에게 은혜를 베푼 후에도 생색 한 번내지 않는 배려에 대한 고마움

등 셀 수도 없는 수 많은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그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밖에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외에 그의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운적자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개를 한 번 주억거렸다.

그의 고맙다는 말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있는지 눈치 챈 탓이었다.

"경지에 오른거 축하드립니다."

선우는 앞을 바라보며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후 두 남자는 말없이 밤길을 산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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