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 249.경화군주-2
한 여인이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앉아 가부좌를 트고 있었다.
여인은 무척이나 특이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 생김새만 보면 아무리 봐도 중원인이 분명하건만 여인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적발과 적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질적인 외모는 묘하게 시선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젠장!"
눈을 뜬 여인은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화르르륵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 주위에 불길이 피어오르더니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크아아아아악!!!"
여인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화르르륵
그리고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입고 옷들이 전부 불태워지더니 그대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벌컥
"경화군주님!"
그때 문이 열리며 중년의 여인이 다급히 들어왔다.
"월음초! 월음초를 가져오너라!"
경화군주는 그런 여인을 보며 다급히 소리쳤다.
"알..알겠습니다!"
여인은 재빨리 몸을 돌린 후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크아아아아악!"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이 더욱더 커지기 시작하였다.
"어서! 빨리!"
경화군주는 열린 문을 바라보며 더욱 크게 소리쳤다.
타타탁
이내 다급한 발소리 들려오더니 중년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의 손에는 조그만 자기병이 들려져 있었는데 여인은 그것을 곧바로 경화군주에게 건네었다.
달칵
자기병을 건네받은 경화군주는 재빨리 뚜껑을 열었다.
꿀꺽 꿀꺽
그리고 그대로 들어 올린 후 입에 털어 넣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 피어오르고 있던 불길이 차츰차츰 세를 줄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모든 불길들이 사라져버렸다.
"후우"
모든 불길이 사라지자 경화군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어찌 불길은 잡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내려 자신의 몸을 쳐다보았다.
백옥같은 피부와 도드라지게 융기되어 있는 가슴이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망할"
알몸이 된 자신의 몸을 확인한 경화군주는 그대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꽤나 마음에 들던 옷이었건만 모두 한순간에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옷을 가져오너라."
경화군주는 앞에 있는 중년의 여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명이 떨어지자 중년의 여인은 허리를 한차례 굽히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마 옷을 가지러 가는 듯 하였다.
방안에는 경화군주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경화군주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언제까지 이런 개같은 생활을 이어가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아아아아악!"
그녀는 비명성을 내지르며 집기들을 전부 부숴버리며 분풀이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손짓 발짓에는 상당수의 내력이 담겨있었기에 방 안은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건만 갑자기 올라온 양강지기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가부좌를 틀고 최대한 제어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몸에는 불길이 솟아올랐고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다.
"아아아아악!"
그녀의 분풀이는 옷을 가지러 간 여인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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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정을 구하러 간 이연 장군은 대체 무얼 한단 말이더냐!"
경화군주는 고압적인 목소리로 찌르듯 소리쳤다.
그녀는 지금 무척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빙정을 구해오겠다고 했던 이연이 깜깜무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북해가 워낙 넓은 터라...쉽사리 구하는 것이.."
앞에 있던 부장은 말을 더듬거리며 그녀에게 답하였다.
"변명 따위는 듣기 싫다! 어제도 내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기나 하는 것이더냐!"
경화군주는 부장의 말을 그대로 끊어버린 후 더욱더 성질을 부렸다.
지금 자신은 하루하루 초조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날 큰 깨달음을 얻어 현경을 목전에 두게 된 그녀였다.
그녀는 쾌재를 불렀다.
고작 스물 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반선半仙이라고까지 불리우는 전설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의 화기가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몸 주위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몸을 둘러싸고 있는 옷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불태우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극양염황마기를 제어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억누를수록 더욱더 반발하며 더욱 거센 불꽃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욕탕에 들어가 있었지만, 오히려 몸에서 뿜어나온 극양염황마기에 의해 증발하기 일쑤였으며 양기를 억제하고자 음기가 강한 약초나 영단을 먹어도 보았지만, 일시적인 진정만 될 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불이 치솟아 올랐다.
결국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극양염황마공의 부작용에 의해 별궁으로 구금되게 되었다.
황제가 기거하는 황궁을 몇 번이고 태워 먹을 뻔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연과 더불어 황궁을 지키는 방패라고 불리우던 그녀는 그대로 별궁에 처박히게 되었다.
물론 경화군주는 별궁에 구금당한 이후에도 자신의 상태를 고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디면 반선半仙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이깟 부작용 때문에 멈춰 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는 몇 번이고 의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서적들을 탐독하여 부작용에 대해 연구를 하였고 이내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을 억누를 수 있는 방법을 도출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북해에 있는 빙정氷精을 섭취하는 것이었다.
보통 극양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자에게는 독약보다 더한 물건이 바로 빙정이었지만 경화 군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역사서를 뒤져보던 중 염황炎皇이 북해를 다녀왔다는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당시 국토의 절반을 불태워버린 직후에 말이다.
그 기록을 본 그녀는 예측할 수 있었다.
염황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온몸에서 끊임없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고 그 불길을 제어하지 못하여 국토의 절반을 전부 불바다로 만들었다고 말이다.
분명 그는 불길을 제어하기 위해 북해로 떠났을 것이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모든 실마리는 북해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어떤 방식으로 불길을 제어하였을까
그리고 굳이 북해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내 그녀는 몇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북해에서만 존재하는 특수한 무언가를 섭취하여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을 가라앉혔거나 당시에도 북해에서 성세를 누리고 있던 북해빙궁의 도움을 받았거나 아니면 둘다거나.
가설을 세운 그녀는 머지않아 북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특수한 물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빙정氷精이었다.
오직 북해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북해빙궁에서 따로 관리하고 있는 보물 중에 보물을 말이다.
빙정을 떠올린 그녀는 이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과거 염황이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을 가라앉힌 것은 빙정이라는 확신을 말이다.
그녀는 곧바로 황제에게 서신을 한 통을 보내었다.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의 부작용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이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황제는 기꺼워하며 북방 최전선에 나가 있는 이연에게 서신을 보내었다.
당장 빙정을 구해오라고 말이다.
황제 입장에서도 경화 군주가 원래대로 돌아와 황실을 수호해주는 것이 마음이 놓였다.
진왕의 반란 이후 황실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고 수많은 병사들을 배치하였음에도 불안감에 시달리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경화 군주의 존재는 수천의 병사보다 믿음직한 존재였다.
결국 진왕의 반란군조차 홀로 진압해버린 전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황제의 명을 들은 이연은 명을 행하겠다는 답신을 보내었다.
그 답신이 도착한 지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반년이라는 시간동안 그저 빙정을 구해오길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경화군주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빙정은커녕 얼음조각 하나 도착한 것이 없었다.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화군주는 고운 아미를 있는 대로 잔뜩 찌푸렸다.
반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을 수도 있었지만 길다면 길다고 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동안 이연으로부터 그 어떤 서신을 받지도 못하였다.
더 이상은 한계였다.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이라는 극양의 무공을 익힌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경화 군주는 폭급하기 그지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더 이상의 인내는 무리였다.
"....면목 없습니다."
경화군주의 분노어린 고함을 들은 부장은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그는 억울하였다.
자신은 그저 경화군주와 같이 별궁에 머무르며 잡일이나 해주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이연 장군에게 화난 것을 자신에게 푼다는 말인가?
"면목이 없으면 단가! 어찌 이리 일을 어영부영 처리하는 것이더냐!"
그의 쭈글거리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경화 군주는 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 또한 부장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녀는 화가 풀릴 때까지 계속하여 언성을 높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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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경화 군주는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음을 느꼈다.
물론 모든 화가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분에 못 이겨 고함만 꽥꽥 질러댈 정도는 아니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는 천천히 부장을 바라보았다.
부장은 무척이나 쭈글거리는 모습으로 주뼛주뼛 서 있을 뿐이었다.
`후우`
경화 군주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도져 다시금 부장에게 화풀이를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이 그녀의 심성적인 부분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을 익혔을 때만 하더라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고 여겼건만 그건 오만에 불과한듯싶었다.
무엇하나 제대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극양염황마기는 물론 폭급하기 그지없는 난폭한 성정까지 말이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하구나."
그녀는 부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아닙니다!"
그녀의 사과에 부장은 송구하다는 듯 다급히 말을 받았다.
황족의 사과라니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아니다, 내 또다시 폭급한 성정이 치밀어오른 듯 싶구나."
"어찌 그것이 군주님의 잘못이겠습니까."
부장은 경화 군주가 마공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화를 내도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경화 군주는 그런 마부장을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운 입을 열어 그를 불렀다.
"마부장."
"하명해주십시오."
그녀의 부름에 마부장은 재빨리 답하였다.
"북해로 떠나야겠네."
그녀는 그런 마부장을 담담한 시선으로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북..북해 말씀입니까!?"
그녀의 말에 마부장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뜬금없이 북해라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애초에 내 일을 남한테 맡겨두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한 일이었어. 내가 직접 빙정을 구하러 가겠네."
경화 군주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단호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불..불가능합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마부장은 말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그녀는 모르겠다는 듯 마부장에게 물었다.
"그......군주께서는 주기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하게 불길이 치솟지 않으십니까? 그런 상태로 북해로 향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의 물음에 마부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언제 몸에서 불길이 치솟을지 알 수 없는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 치솟아 오르는 불길들은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부터 시작하여 내딛고 있는 바닥까지 말이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북해로 향하게 된다면 얼마 가지 못해 알몸으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 별궁에 묵고 있었기에 얼마든지 불태워 버려도 상관없었지만 북해로 향하게 된다면 말이 달랐다.
옷을 무한히 챙겨갈 수도 없을 것이고 마차나 말 또한 탈 수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치솟는 불길로 인하여 말이다.
"걱정말거라."
부장의 말을 들은 경화군주는 별거 아니라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 어찌 생각도 없이 그런 말을 하였겠느냐, 충분히 방법이 있느니라."
그녀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떤 방법을 쓰실 요량이십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마부장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간단하다. 내공을 강제로 금제하면 된다."
"금제 말씀입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마부장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을 이었다.
금제禁制라니
그 말인즉슨 무공을 전혀 할 수 없는 몸이 되버린다는 것이 아닌가?
어찌 그런 선택을 한다는 말인가?
"그래, 금제를 걸어놓는다면 북해로 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경화군주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