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화 〉 248.경화군주-1
경화군주
그녀는 현 황제의 셋째 아들인 연왕의 딸이자 황제가 가장 아끼는 손녀였다.
날 때부터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던 그녀는 현 황제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황제의 사랑은 그녀가 나이를 먹고 커갈수록 더욱더 커져만 갔는데 안 그래도 귀엽기 짝이 없는 외모가 더욱더 사랑스럽게 변모해갔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머리 또한 총명하기 이를 데가 없어 황제는 만약 그녀가 사내로 태어났더라면 황태자의 자리를 내렸을 것이라면서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정도로 그녀를 총애하였다.
많은 이들은 생각하였다.
만약 그녀가 원한다면 황제는 저 하늘의 별조차 따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만큼 그녀에 대한 황제의 사랑은 넘치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를 총애한 황제는 그녀의 생일 때만 되면 공공연히 물어보았다.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저 하늘 위에 찬란하게 떠 있는 별마저 가져다주겠다면서 말이다.
총명한 경화군주는 그런 황제의 물음을 언제나 유예하였다.
지금은 원하는 바가 없으니 언제고 생각이 난다면 요구를 하겠다면서 말이다.
황제는 그녀의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언제고 원하는 것이 생긴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며 굳게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녀가 열 살이 되던 해
경화군주는 황제에게 직접 찾아가 원하는 것이 있노라 말을 하였다.
그녀의 방문에 기꺼워하던 황제는 그녀에게 물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천금을 달라면 천금을 줄 것이고 광활한 대지를 달라고 한다면 대지를 줄 것이며 남편을 달라면 남편을 구해다 줄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하였다.
그리고 황제의 물음을 들은 경화군주는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황궁무고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파격적인 요구에 황궁은 뒤집히게 되었다.
황궁무고皇宮武庫가 대체 어떤 곳이라는 말인가?
상고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존재하였던 모든 무공들을 모아놓은 곳이 아니던가
뿐만아니라 각종 영약을 비롯하여 과거 존재하였던 수많은 영웅들이 썼던 무구들까지 보관되어 있는 역사적으로보나 실용적으로보나 중요하기 이를 데 없는 장소였다.
또한 황궁에서 가장 신비롭기 짝이 없는 장소였는데 각종 기관들과 진법들이 곳곳에 깔렸었기 때문에 함부로 접근조차 하기 힘든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을 이용하게 해달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황궁무고는 황실의 피를 이은 자들조차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역사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두려워 황손조차 출입을 제한하였기 때문이다.
황실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 감찰집단인 금의위나 첩보기관인 동창의 수장들조차 고작 세 시진정도만 허락되었던 곳이 바로 황궁무고였다.
그런데 그런 곳을 마음껏 이용하게 해달라니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수많은 대신들이 그녀의 요구에 반대하였다.
그런 귀중한 곳을 어리디 어린 경화군주에게 개방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그녀의 요구를 들은 황제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황궁무고의 대한 엄격한 제한은 황궁무고를 처음 만든 초대 황제가 만들어 낸 것이었기에 함부로 어기기 난감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았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커다란 책임을 지게 된다.
이는 황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커다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분명 그는 경화군주에게 어떤 요구도 들어줄 것이라는 약조를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내뱉은 말조차 지키지 못하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그는 도리질을 쳤다.
황제라는 존재는 천자天子라 불리우며 수많은 백성들의 경외를 받는 존재였다.
결코, 흠집이라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마친 그는 결국 대신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에게 황궁무고를 개방하였다.
대신 조건이 붙었다.
황궁무고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는 조건이 말이다.
한 번 나오게 된다면 다시는 들어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경화군주는 황제가 내건 조건을 수락하였고 그녀는 역사상 처음으로 황궁무고를 들어가게 된 유일한 여인이 되었다.
황제의 허락이 떨어진 후 경화군주는 그대로 황궁무고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후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황궁무고로 들어간 이후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걱정이 된 연왕부부는 몇 번이고 황궁무고로 찾아가 그녀를 애타게 불렀지만, 그녀는 묵묵부답일 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혹여 하나 뿐인 딸이 배를 곪을까 걱정이 되었던 연왕부부는 끼니때마다 황궁무고에 식사를 넣어달라고 간청을 하였고 황제는 이를 수락하였다.
그렇게 황실의 재녀이자 미래의 고금제일미라고 불리우던 경화 군주는 황실무고 안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존재는 자연스레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차츰 잊히는 듯 하였다.
경화군주는 무려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경화군주가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일이 있었으니
바로 현 황제의 배다른 동생이었던 진왕이 일으킨 군사정변 때였다.
황제의 자리를 오르길 염원하였던 진왕은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다.
몰래 군사를 모았고 대신들을 회유하였다.
또한, 당시 무림에서 떠오르는 신흥세력이라 불리우는 북검문이라는 무림세력까지 포섭하여 세력을 더욱더 강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얌전히 수면 아래에 숨어 호시탐탐 기회만을 엿보았다.
언제고 군사를 일으킬 수 있도록 말이다.
언제나 황제의 곁에는 이연이라고 불리우는 초월적인 강자가 존재하였기에 그는 신중하고 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염원하던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다.
황제를 지키는 검이자 황궁제일검이라고 불리우는 이연장군이 북방의 이민족을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자리를 비우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진왕은 곧바로 군사를 일으켰고 그대로 황실로 진격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병사들과 회유된 대신들이 양성한 사병들 그리고 북검문의 무인들까지 모두 황실로 진격을 하였고 황실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으며 그 피에는 황족의 피 또한 더러 섞여 있었다.
진왕 또한 몸소 검을 들고 황제를 죽이기 위해 황실을 들쑤셨다.
이연이 돌아오기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들쑤시고 다녀도 황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초조함은 더욱더 커져만 갔고 곧이어 불안감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찾아보지 않았던 장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로 황궁무고였다.
상고시대부터 이어져 온 수많은 무공서들과 영약 그리고 절세 병기들이 존재한다는 황실의 보물창고였다.
황궁무고를 떠올린 진왕은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내 그는 볼 수 있었다.
그곳에 대피해 있던 황제의 모습을 말이다.
진왕은 굉소를 터트렸다.
그 위엄 넘치는 황제라는 작자가 겁먹은 생쥐마냥 황실에서 제일 후미진 곳에 숨어있는 꼴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확신하였다.
곧이어 이 나라의 황제가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의 확신은 생각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황제의 곁에 있던 한 여인에 의해서 말이다.
진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제를 죽이기 위해 검을 든 그의 앞을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생긴 여인이 막아섰기 때문이다.
여인은 무척이나 특이하였다.
타오르는 불처럼 붉은 적발과 적미 그리고 붉디 붉은 적안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중원인으로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색들이었다.
또한, 그녀의 초월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는 가히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여신을 방불케 하였는데 그 외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권력욕에 미쳐있던 진왕마저 색욕이 올라올 정도였다.
진왕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누구인지 정체를 밝히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답하였다.
십 여년 전 황궁무고로 사라진 경화군주라고 말이다.
그의 말을 들은 진왕은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십 여년 전 황궁무고 안으로 사라졌던 연왕의 딸이 모습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매에는 음욕이 번들거리기 시작하였다.
이질적이면서 고혹적이게 자란 경화군주에게 음심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진왕은 그녀에게 말하였다.
자신의 앞에서 물러서라고, 그러면 첩으로 삼아주겠다고 말이다.
그의 말을 들은 여인은 경멸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진왕의 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휘감아지기 시작하였다.
진왕은 갑작스러운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전신에 불이 붙어있는 모습을 말이다.
진왕은 비명을 질렀으며 그를 따라온 북검문의 무사들은 그의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진왕의 몸에 붙었던 불이 그대로 북검문의 무사들에게 옮겨붙어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왕은 완전히 불에 타 시꺼멓게 변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황위를 노렸던 야심가는 그렇게 예상치도 못한 변수에 의해 죽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화군주의 모습을 본 황제는 경악을 하였다.
손을 한 번 휘저었을 뿐인데 사람 몸에 불이 붙어지는 요술과도 같은 일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조화냐고 말이다.
황제의 물음에 경화군주는 답하였다.
황궁무고에 있는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을 익혔노라고 말이다.
그녀의 말을 들은 황제는 놀라워하였다.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
세인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양기공을 묻는다면 많은 이들은 답할 것이다.
저 멀리 대막에 있는 태양신궁의 비전 무공인 태양열화신공이야 말로 중원 뿐만 아니라 천하제일의 양기공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태양열화신공은 최고의 양기공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무공이다.
그렇다면 이 태양열화신공은 처음 창시했을 때부터 지금처럼 완전무결에 가까운 무공이었을까?
결론은 아니었다.
무공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상태일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 경지가 높은 대종사가 창시해냈다고 하더라도 무공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었고 이런 허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후인들은 끊임없이 무공을 발전시켜 나간다.
완전무결이라는 상태에 가까워지기 위해 무공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변화되었고 수없이 많은 개량을 거치면서 발전하였다.
이는 태양열화신공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태양열화신공 또한 개량을 거치기 전 원류가 되었던 무공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이라고 불리우는 희대의 양기공이었다.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알 수도조차 없는 이 무공은 과거 상고시대 국토의 절반을 불태워버렸다고 전해지는 염황炎皇이라는 자의 무공이었다.
그는 비록 세력은 없었지만, 홀몸으로 국가전력과 맞먹는 힘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이런 일화만 봐도 그가 얼마나 강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염황은 수많은 제자들을 거두어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을 전수하였는데 체질이 맞지 않으면 그대로 불타죽어버렸기 때문에 수많은 제자들이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의 부작용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과 상성이 딱 알맞은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아이를 제자로 키우게 되었다.
그가 바로 초대 태양궁주이자 염제炎帝라고 불리우던 구양경이었다.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을 전수받은 구양경은 대막에 태양궁을 세웠고 안정이 된 이후 부터는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을 개량하기 시작하였다.
오직 특수한 체질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의 단점을 상쇄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수도없이 많은 시도를 하였고 인생의 대부분을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의 개량에 바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말년에 태양열화신공太陽熱火神功이라고 불리우는 희대의 신공을 만들게 되었다.
비록 끔찍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만은 못하였지만, 특수한 체질이 아니더라도 무공을 익힐 수 있도록 개량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태양궁에서는 구양경이 개량하여 만든 태양열화신공太陽熱火神功을 바탕으로 무공을 발전시키기 시작하였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최고의 양기공이라고 불리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국가전력과 맞먹었다고 전해지는 극양염황마공極陽炎皇魔功이라는 무공은 역사 속에서 잊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무공을 경화군주가 익힌 것이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을까
황제는 국토의 절반은 불태워버렸다는 염황炎皇의 비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무림인과 불가침을 해야 되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알려진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손녀가 최악의 무공을 익혔으니 말이다.
물론 경화군주는 그런 황제의 반응에 개의치 않아 하였고 그 길로 황궁으로 달려가 진왕의 잔당들을 그대로 쓸어버렸다.
잔당 중에는 초절정에 이르렀다는 북검문주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또한 그녀의 손짓 한 번에 온몸이 불살라지게 되었다.
또한, 불타고 있던 황궁의 불길들을 한순간에 거둬들이는 신위까지 보이며 수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게 되었다.
황제 또한 그녀의 업적을 치하하며 그녀를 정이품 금오장군(金吾將軍)으로 임명을 하였다.
황실의 재녀가 황실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황실의 많은 이들은 생각하였다.
이연 장군과 경화 군주가 있는 그 누구도 현 황실을 넘볼 수 없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