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화 〉 246.저는 천하제일검이 될 것입니다.
모락 모락
흙먼지가 걷히며 한 사람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꿀꺽
장내에 있는 수많은 이들이 침을 삼키며 그곳을 응시하였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눈에는 경악성이 담기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앙공터에 오롯이 서 있는 이가 운적자가 아닌 선우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몇 번이고 비비며 다시 봤다.
하지만 몇 번이고 다시 봤음에도 여전히 선우가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내 그들은 깨달았다.
운적자가 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은 시선을 돌려 운적자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땅바닥에 박힌 채 처참히 뒹굴고 있는 운적자의 모습을 말이다.
청성의 수많은 제자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왔다.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불명예를 감수하고 나선 사숙이었다.
그런 사숙이 볼썽사납게 나뒹구는 모습은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하였고 너무나도 가슴 아픈 모습이었다.
운적자가 가진 청성제일검이라는 칭호는 그저 운적자 개인의 무력에만 국한되는 칭호가 아니었다.
그 칭호는 수많은 청성의 제자들에게 자부심이 되었고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운적자가 져버렸다.
그것도 처참하게 말이다.
어마어마한 정신적 충격과 박탈감이 그들을 휘어감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움찔 움찔
운적자의 몸이 움찔거리며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쿨럭 쿨럭"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적자가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내었다.
선우의 검환과 맞부딪히며 내상을 입은 탓이었다.
"퉷`
운적자는 피가 섞인 가래를 그대로 땅바닥에 뱉어내었다.
목이 타는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였다.
탁
이내 그의 손이 움직이더니 재빨리 땅을 짚었다.
땅을 짚은 운적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후두두
몸을 일으키자 몸에 잔뜩 묻어있던 흙먼지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운적자는 개의치 않고 몸을 완전히 일으켜 세웠다.
"이제 검을 거두시죠. 눈에 흙이 충분히 들어간 것 같습니다."
선우는 운적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농이 섞이긴 하였지만 이제 그만 검을 거두라는 권유가 담긴 물음이었다.
"자네......경지에 다다른 것인가?"
운적자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저 깨달음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의 물음에 선우는 담담히 말하였다.
"어찌....."
그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놀라움에 경악하였다.
어찌 저 젊은 나이에 화경이라고 불리우는 절대지경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인가?
절대지경이 어떤 경지인가?
중원에 있는 수많은 무림인들 중에서도 열 명이 채 안 되는 이들만이 도달한 지고하기 그지없는 경지가 아니던가
그의 눈에 불신이 서렸다.
자신이 사십 평생을 검에만 바쳐 겨우겨우 이룩한 경지였다.
그런데 그런 경지를 이립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미 내딛게 되었다니
그의 가슴속에 오만감정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질투였다.
어찌 저 젊은 나이에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인가?
질투가 났다.
그리고 든 감정은 열등감이었다.
이제 막 화경에 오른 자신조차 압도해버리는 그의 무력과 재능에 대한 열등감이 치솟았다.
마지막으로 든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모든 불명예를 감수한 채 달려들었던 그였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가 휘두르는 일 검에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졌다.
청성의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씻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치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크으으으윽!"
운적자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자신이
청성제일검이라고 불리우는 자신이
패배를 한 것이다.
그것도 삼대 제자뻘 정도 밖에 안되는 한참이나 어린 후기지수에게 말이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마음이 쉴 새 없이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청성에 입문하였을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었고 그 후에도 언제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던 자신이 아니던가
그런데 패배를 하였다.
화경이라고 불리우는 절대지경에 도달하고도 패배한 것이다.
지독한 열패감과 열등감이 그의 온몸을 뒤덮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온몸을 뒤덮은 열패감과 열등감이 그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아직 안 졌어!!!!!!"
그는 남아있는 모든 기운들을 일순간에 폭사시켰다.
만상귀일기와 살기가 섞여 복합적인 기운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크아아아아아악!!!!!!!"
안그래도 강했던 그의 기운들이 더욱더 강대해지기 시작하였다.
운적자는 생각하였다.
이 모멸감과 치욕을 모두 씻어내기 위해서는 눈앞의 남자를 꺾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의 남색강기가 더욱더 진해지더니 이내 검게 변색되기 시작하였다.
"청성은! 패하지 않는다!!!"
그의 외침과 함께 검게 물든 흑색 강기들이 검에서 폭사 되었다.
"흐읍!"
그리고 그 강기에 그대로 노출된 선우는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마교의 장로인 독마가 연상될 정도로 지독하기 짝이 없는 살기였다.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운적자의 상태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심마心魔"
선우는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렇다.
운적자는 심마心魔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 마魔를 품고 있다.
평생토록 불법을 설파한 고승이건 평생토록 도를 닦던 도사건 예외 없이 말이다.
보통의 경우 그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지에 오른 무인의 경우 그 존재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운적자는 지금 그런 심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제 막 절대지경에 다다른 상태에서 선우에 대한 지독하기 짝이 없는 패배감과 열등감에 의해 마음이 불안정해졌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운적자는 선우를 바라보며 살기 어린 비명성을 내질렀다.
쏴아아아아아아아
그와 함께 중앙 공터 전체로 소름 돋을 정도의 살기가 퍼져나갔다.
그다음 검게 물든 검을 치켜들었다.
부웅
그리고 선우를 향하여 그대로 휘둘렀다.
선우를 향해 검게 물든 강기가 날아들었다.
선우는 재빨리 호신강기를 둘러 그의 강기를 튕겨내었다.
콰앙
"흡"
그의 강기를 그대로 받은 선우는 눈쌀을 찌푸렸다.
그의 흑색강기에서 불쾌하기 짝이 없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흑색강기에 담겨 있는 기운은 살육과 파괴의 기운이었다.
선우는 이 기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과거 선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었던 독마가 품고 있던 기운이었다.
선우의 대한 열등감과 패배감이 그의 검에 살육과 파괴의 기운을 서리게 한 것이다.
"운적자! 정신 차리세요!"
선우는 운적자를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마라는 것은 마음의 병과도 같았다.
만약 제때 해소시키지 않으면 더욱더 커져 종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선우가 보기에 운적자의 상태는 무척 위험한 상태였다.
푸른 하늘의 기운이 담긴 절정의 검공에 파괴와 살육의 기운이 담기다니
그것도 마교종자와 같은 종류의 기운이 말이다.
만약 그를 이대로 놔둔다면 중원무림은 최악의 검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한테!!!!!!명령하지마라!!!!"
선우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살기 어린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선우의 모든 것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의 행색
그의 성격
그의 말투
그의 무공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가 숨을 쉰다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그가 명령을 했다.
감히 자신에게 말이다.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 리 없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운적자의 검의 어미어마하게 커다란 흑색강기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먼젓번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
"크아아아아아아!!!!"
흑색강기들이 순식간에 검 끝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청운적하검의 위용을 보여주마!!!!!"
그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운적자의 검 끝에는 검은색 구체가 형성되었다.
이번에는 뒤틀린 형태가 아닌 완전한 형태의 구체였다.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심마에 든 운적자가 형성시킨 구체가 불완전했던 먼젓번과는 달리 완전한 검환劍環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청성제일검이니라!!!"
운적자는 선우를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고 입에는 잔인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운적자의 모습을 본 선우는 천천히 검을 치켜들었다.
지금 운적자의 상태가 말로 해서는 안될 정도로 처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후우"
선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음양조화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단전에 있던 내력들이 요동치며 선우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하였다.
온몸을 감싼 내력들이 순식간에 선우의 검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기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강기들이 뿜어져나왔다.
선우는 그 강기들을 압축하고 또 압축하였다.
이내 선우의 검 끝에는 동그란 구체 모양의 강기가 형성되었다.
검환을 만들어낸 선우는 올곧은 눈으로 정면에 있는 운적자를 바라보았다.
선우는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심마에 든 까닭을 말이다.
분명 운적자의 심마는 청성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빚어낸 심마일 것이다.
청성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였지만, 그 앞을 막아선 선우를 넘어설 수 없음을 느꼈기에
저렇게 뒤틀린 마음이 심마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을 것이다.
선우는 그에 대한 연민이 드는 것을 느꼈다.
분명 아집을 부리며 열등감에 빠져든 어리석은 인간이기는 하였으나 결국 그의 모든 것들은 사문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사문을 위해 불명예를 선택한 후 아집을 부렸다.
그는 사문의 명예를 회복할 수 없게 하는 선우에 대한 열등감을 느꼈다.
결국, 모든 것은 청성에 대한 사랑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어찌 연민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분명 뒤틀린 사랑이긴 하였지만 청성에 대한 일편단심만큼은 선우에게 충분히 전해졌다.
그리고 선우는 그를 구하고 싶었다.
비록 어리석은 선택을 하긴 하였지만 사문에 대한 깊고도 깊은 사랑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선우는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들어 올린 검을 그대로 운적자를 향해 겨누었다.
처참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압도적인 힘으로 깨부술 작정이었다.
열등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격차로 말이다.
오로지 그 방법만이 운적자를 심마에서 벗어나게 할 방법이리라
"저는 천하제일검이 될 것입니다."
선우는 운적자를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소리쳤다.
"천하제일검!? 이 오만한 개자식이!!!!!!!"
그 말을 들은 운적자는 격분하였다.
천하제일검이라니
도대체 천하제일검을 뭘로 여긴다는 말인가?
중원에 검으로 일가를 이룬 이는 수두룩하였다.
검황 양태산을 비롯하여 천검후 주소양 그리고 검제 패도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대무신 이재원까지
이렇게 수많은 검객들이 중원에서 천하제일검을 노리고 있거늘
어찌 고작 이립도 안된 애송이가 함부로 그런 말을 입에 담는다는 말인가?
"웃기지마라!!!!!!"
운적자는 그대로 흑빛 강기가 가득 압축된 검환을 휘둘렀다.
우우우우웅
그 안에 담긴 기운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검환 주위에 공기마저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선우 또한 운적자를 향해 그대로 검환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우의 검환과 운적자의 검환이 맞닿으며 어마어마한 굉음과 충격파가 발생하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운적자는 검을 타고 전해져 오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비명성을 내질렀다.
아팠다
손목이 시큰거렸고 손바닥이 전부 까져 핏물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는 굳게 쥔 검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이기고 싶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를 꺾고 싶었다.
자신의 청운적하검으로 말이다.
운적자는 손을 더욱더 강하게 쥐었다.
이내 단전에 있는 모든 내력을 집중시켜 검환을 더욱더 크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검 끝에 모인 흑빛의 검환이 더욱더 크기를 키워가기 시작하였다.
고작 구슬정도였던 검환의 크기가 사람 머리통만큼 커졌다.
"죽어어어어어어어!!!!!!!"
그는 감히 도가의 제자로서는 차마 담아서는 안 될 말을 입에 담은 채 검을 내질렀다.
운적자는 승리를 예감하였다.
이미 검환의 크기부터 어마어마한 차이가 났다.
선우가 불세출의 천재이기는 하나 자신에게는 안되었다.
분명 자신이 이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였다.
쩌적
그때 어디선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쩌저저적 쩌저저적
그리고 그 이질적인 소리가 더욱더 크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운적자는 의아함을 느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운적자는 시선을 돌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쩌저적
그리고 그는 알 수 있었다.
이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말이다.
소리의 정체는 금이 가는 소리였다.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이 말이다.
쩌저적
파스스스
그가 소리의 정체를 눈치챈 순간
절묘하게 검이 전부 부서져 나갔다.
수많은 검의 파편들이 허공을 흩날리기 시작하였다.
운적자는 경악어린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어찌 자신의 검이 부서진다는 말인가
분명 검환의 크기는 자신이 더욱더 크지 않았던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남자는 힘이 다가 아닙니다. 기술이지요."
선우는 그런 운적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운적자는 멍하니 그런 선우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