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화 〉 239. 사태가 심각해지다-2
"그게 무슨 말이오!"
운적자는 좌중을 둘러보며 큰소리를 쳤다.
그는 못 들을 것을 들은 것마냥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수색대의 작전 통제권을 장소협이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을 들은 불허 사태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불속도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 또한 처음 듣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찌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선뜻 꺼낸다는 말인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얼굴을 잔뜩 붉힌 운적자는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소리를 낮추시지요. 다른 이들이 들으면 어찌하려고 그리 언성을 높이신단 말입니까."
운적자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불허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어차피 기막을 쳐놨거늘! 무슨 걱정이란 말이오!"
운적자는 그녀의 말에 반문하며 더욱 소리를 높였다.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라는 말이오. 다짜고짜 장 소협에게 작전통제권을 넘긴다니!"
운적자는 이해가 가지 않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작전통제권을 차지하기 위해 당가를 배척하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요며칠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길래 이렇게 말을 바꾼단 말인가?
"그럴만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뭐가 그렇다는 것이오!"
운적자는 되려 소리치며 그녀에게 물었다.
"애초에 저희가 북해행으로 가는 모든 경비를 지불한 곳이 어디입니까? 당가가 아닙니까? 거기다 어디 경비뿐입니까? 청성과 아미의 제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각종 편의마저 봐주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많은 것을 희생한 당가입니다. 그런 당가에게 그만한 권리는 있다고 봅니다."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운적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원 인력이 빈약한 당가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오!"
"빈약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고수는 어중이떠중이 수십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법이지요."
"뭐라! 지금 청성의 무인들이 어중이떠중이라는 소리오!?"
불허 사태의 신랄한 말에 발끈한 운적자가 소리쳤다.
"당가를 얕보지 말라는 겁니다. 저들 또한 결코 청성과 아미에 뒤지지 않을 전력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고작 초절정 고수 하나 일류 고수 하나 나머지는 이류로 구성되어 있는 이들이 어찌 청성과 아미에 비견할 수 있다는 말이오!"
운적자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함을 질렀다.
어찌 그런 빈약하기 짝이 없는 전력으로 청성제일검이라고 불리우는 자신이 있는 청성과 초절정 고수를 두 명이나 파견한 아미파와 맞먹는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장 소협이 있기 때문이지요."
"뭐라!?"
운적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물음을 반문하였다.
언제부터 그를 그리 높게 평가했다고 저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가 가진 무력이라면 충분히 비견될 만 합니다."
불허사태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을 이었다.
"허허허허"
그녀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저 말이 진심인지 농인지 구분이 안 갔기 때문이다.
이제 이립도 안된 핏덩이 같은 애새끼가 자신과 맞먹을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진심이오?"
운적자는 정색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물론이지요."
그녀는 단호한 음색으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녀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한쪽 구석퉁이에 있는 선우를 바라보았다.
"저 말이 정녕 사실이오?"
그는 눈을 번뜩이며 선우에게 물었다.
그의 물음을 들은 선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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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적자의 물음에 선우는 당혹스러운 감정에 휩싸였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전혀 상의 된 내용이 아니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작전 통제권을 넘기라는 말을 한 적 없었으며 탐을 낸 적도 없었다.
애초에 무공이 강한 것과 전술적으로 뛰어난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게다가 작전 통제권이라는 것 자체가 수십 명의 목숨을 홀로 책임지는 중책이었기에 애써 사양하고 싶었다.
그럴 깜냥도 안될뿐더러 누군가를 책임지는 것은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별안간 작전 통제권을 넘겨주겠다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선우는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불허사태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불허 사태가 눈을 껌뻑이며 신호를 보내었다.
마치 칭찬을 해달라는 것처럼 말이다.
선우는 골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왜 부탁하지도 않은 것을 멋대로 처리한단 말인가?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오? 사실이냐고 묻지 않았소!"
그때 운적자가 시뻘게진 얼굴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하였다.
".......불허 사태께서 후한 평가를 내려주신 듯싶습니다."
선우는 운적자의 물음에 담담히 답하였다.
원치도 않는 작전 통제권 때문에 굳이 무공을 드러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또한 작전 통제권에 대한 생각 또한 없습니다. 부디 말씀을 거두어주십시오."
선우는 불허를 쳐다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자신에게는 수십 명의 목숨을 책임질만한 깜냥이 없었다.
그 생명의 무게를 전부 감당하기엔 자신은 연약하기 그지없었으니까 말이다.
"거보시오! 당사자가 저리 말하지 않소! 당장 철회하시오!"
"그리 말한다하더라도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장 소협 외의 인물이 작전 통제권을 갖는 것은 인정할 수 없으니까요."
"뭐라!?"
그녀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안 그래도 붉어진 얼굴을 더욱 붉히며 말하였다.
저말인즉슨 청성제일검이라고 불리우는 자신이 장선우에게 밀린다는 소리가 아닌가?
부들 부들
운적자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수치심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평생을 자라온 청성에서 언제나 천재라고 불리우던 그였다.
또한 나이가 들어 경지에 오르고 나서는 청성제일검이라고 불리우며 수많은 청성의 제자들의 동경과 존경을 한몸에 받던 그였다.
그런 그가 언제 이렇게 무시를 당해봤겠는가?
그것도 아직 이립도 안된 핏덩이와 비교까지 당하면서 말이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불허 사태.....그 말인즉슨 내가 장 소협보다 부족하다는 말이오?"
그는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맞아요.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
그의 살기어린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불허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을 아우를 수 있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는 무조건 자신보다 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그녀였다.
그런 그녀였기에 선우 이외의 사람이 내리는 명령은 듣고 싶지가 않았다.
청성제일검이라고는 하나 그는 자신과 동급의 고수였다.
그런 주제에 누구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때 막사 전체에 어마어마한 기운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불허 사태!"
이 기운들의 근원지는 분노에 가득 찬 운적자였다.
"왜 그러시죠."
"내가 그런 모욕을 듣고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였소!"
운적자는 불허를 향해 분노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넘어가지 않으면 어쩌실 건가요?"
그의 말을 들은 불허 또한 내력을 끌어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우우우우우우웅
두 사람의 기운이 막사 전체를 가득 채우기 시작하였다.
"그만! 그만하세요!"
불속은 그런 그들을 보며 소리를 쳤다.
분위기가 과열을 넘어 폭발 직전까지 치달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장 두 사람 모두 내력을 기운을 거둬들이세요! 이게 지금 무슨 추태입니까!"
불속 사태는 엄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꾸짖기 시작하였다.
"저희는 실종된 제자들을 찾기 위해 나선 수색대입니다! 상호 간에 도움은 주지 못할 망정 어찌 권력 다툼으로 반목을 한다는 말입니까! 분명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꼭 실종된 제자들을 구해오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 북해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단을 내려고 한단 말입니까!"
"................"
"................"
그녀의 꾸짖음을 들은 운적자와 불허는 말없이 기운을 거둬들였다.
틀린 말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우....바람 좀 쐬고 오겠소."
기운을 거둬들인 운적자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불허 사태의 면상을 더 봤다간 화만 날 것 같았기에 자리를 피할 요량이었다.
밖에 나가 찬 바람좀 쐬며 과열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올 생각이었다.
저벅 저벅
운적자는 그대로 뒤로 돌아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막사 안에 있는 이들은 가만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
저벅 저벅
막사 밖으로 나온 운적자는 무작정 걷기 시작하였다.
조금이라도 불허 사태와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망할"
운적자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정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검을 처음 잡은지 벌써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직 검만 바로보고 검만 생각하며 살아온 그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이립도 안된 핏덩이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진정이 쉽사리 될 리 없었다.
물론 그 어린 나이에 초절정에 오른 그의 재능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다.
충분히 대단한 재능이라고 내심 인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갓 초절정에 이른 이와 화경을 바라보는 자신의 경지는 천지 차이가 아니겠는가?
불허 사태또한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딴 망발을 지껄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대놓고 자신에게 망신을 주겠다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혹은 자신 몰래 당가와 손을 잡고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계획이 분명하였다.
운적자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이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불허!`
운적자의 머릿속에는 온통 불허에 관한 분노뿐이었다.
언제나 마음에 안 드는 여자였지만 이번에는 도를 넘어도 완전히 넘어섰다.
완벽히 자신을 무시한 처사가 아니겠는가?
운적자는 그녀의 법명을 곱씹으며 그저 걸어갈 뿐이었다.
이 수모를 갚아줄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저벅 저벅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그의 귓가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뭐지?`
운적자는 의아함이 들었다.
벌써 이리 밤이 깊었거늘 다들 자지 않고 뭣들 한다는 것인가
의아함이 든 운적자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방향을 보니 막사 중앙에 있는 공터인듯하였다.
`흐음`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그대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웅성 웅성
중앙 공터에 가까워질수록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더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아니 어찌!!]
[일어나십시오!]
[일어서십시오!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사형은 청성의 미래입니다! 그런데 이 무슨!]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욱더 선명해졌고 그 내용을 들은 운적자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이게 대체 무슨 개같은 소리란 말인가
별안간 청성이라니!?`
그는 더욱더 청력을 끌어올려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제발.....제발...일어나십시오.]
[사형...이런데서...무릎을 꿇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형...사형!]
그리고 청력을 끌어올리자 울먹이는 청성의 제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운적자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대체 누가 함부로 무릎을 꿇는다는 말인가?
그것도 대청성의 제자가 말이다.
분개한 운적자는 신법을 발휘하여 중앙 공터로 달려나가기 시작하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함부로 무릎을 꿇어 사문의 명예를 더럽힌 제자를 처벌할 요량이었다.
타타탁
운적자의 신형이 빛살처럼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적자는 중앙 공터에 도착할 수 있었고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쿵
쿵
쿵
쿵
청성의 수많은 제자들이 단체로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충격적인 상황을 말이다.
`저...저..`
운적자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그저 입을 턱 하니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청성은 구파에 소속된 명문대파이다.
그렇기에 청성의 문하에 있는 이들은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본산제자가 되었든 속가제자가 되었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모두 머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미의 제자들에게 말이다.
운적자는 눈앞에 펼쳐진 말도 안되는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굴려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청성의 자랑스러운 제자들이 모두 머리를 박고 있단 말인가?
이해가 안 되었다.
그가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듯하였다.
"청성을 용서해주시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그의 상념을 완전히 깨버렸다.
상황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청성의 제자가 용서를 빌고 있었다.
아미의 제자들에게 말이다.
당황스러움이 분노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어찌 청성이
어찌 아미 따위에게
머리를 숙인단 말인가!
휘이이이이이잉
그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방출되더니 이내 중앙 공터 전체를 휘감기 시작하였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더냐!!!"
그리고 이내 중앙 공터를 바라보며 쩌렁쩌렁한 호통을 내질렀다.
그의 호통에는 극심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