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화 〉 232. 음모를 꾸미다
"하아..하아..하아.."
설향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호흡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점차 호흡이 안정되더니 이내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였다.
"후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그렇게 떡하니 마주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불속 사태의 눈물 간절한 부탁을 들은 그녀는 선우와 거리를 두기로 결심하였다.
마주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마음 또한 접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설향은 선우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친 후 객잔 일 층을 슬쩍 내려다보았던 그녀였다.
혹시나 마차로 향하는 길에 마주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우가 일 층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발걸음을 떼고 마차로 향하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설향은 뜻하지 않게 선우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선우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하였다.
분명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였거늘 어찌 이렇게 갑자기 출몰한단 말인가?
당황한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꾸벅 허리를 숙인 후 냅다 도망가버렸다.
두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두 눈을 마주하게 된다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후우....후우..후우.."
호흡을 정돈한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선우가 따라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쫓아오지 않는 선우에 대한 서운함이 드는 것을 느꼈다.
어제까지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는데 쫓아와 이유라도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녀는 선우의 무신경함에 불만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젓기 시작하였다.
거리를 두기로 작정하였으면서 쫓아오지 않는 그에 대한 서운함을 느끼다니 이 얼마나 모순이란 말인가?
"하아."
한숨을 내쉰 설향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터덜거리며 마차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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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덜컹
울퉁불퉁한 산길 때문인지 마차가 심각하게 덜컹거리기 시작하였다.
덜컹 덜컹
그리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선우는 온몸에 충격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상당히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민에 비하면 마차의 불편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고민은 바로 설향에 관한 것이었다.
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을 마주치자마자 도망치듯 달려간 설향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신경 쓰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말이다.
불속 사태를 따라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혹여 불허 사태에게 해코지를 당한 것은 아닐까?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오만 추측들이 그의 머릿속을 온통 휘젓기 시작하였다.
"흐으음"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내 선우는 결심한 듯 굳은 표정을 지었다.
`직접 물어보자.`
직접 물어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혼자 백날 머리를 굴려봤자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럴 바엔 차라리 직접 물어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마냥 속앓이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리라
선우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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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저.....아직도 무공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건가요?"
운혜는 걱정이 가득 서려 있는 얼굴로 설향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이제 필요 없게 됐어."
그녀의 물음에 설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하였다.
어차피 선우와 거리를 두기로 작정하였으니 딱히 무공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우울하신건가요?"
그녀의 대답에 운혜는 모르겠다는듯이 말을 이었다.
이제 필요가 없게 됐다는 말은 해결이 되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아직도 저렇게 우울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단 말인가?
"안 우울해."
운혜의 물음에 설향은 딱 잘라 말하였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설향의 대답을 들은 운혜는 단호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 쾌활하기 그지없는 사매가 죽상을 하고 두 시진이나 얌전히 가고 있는데 어찌 우울하지 않다고 하는 건가요?"
운혜는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며 설향에게 말하였다.
운혜는 자신이 제시한 것들이 나름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애초에 이 천방지축 사저는 수다를 떠는 것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한시도 입을 쉬지 않고 조잘대는 것이 특기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마차를 타고 두 시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일언반구조차 안 하고 있었다.
저 수다쟁이 사저가 말이다.
어찌 우울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피곤해서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거짓말 마세요. 피곤해도 입은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 게 사저였어요."
"나이 들었나 보지."
운혜의 말에 설향은 심드렁히 말을 이었다.
이제는 일일이 대답하는 것조차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고작 약관인 주제에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장로님들이 아시면 버릇없다며 불호령을 내리실 거예요!"
그녀의 성의 없는 답에 운혜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기껏 생각해서 말해줬더니 이 어찌 성의 없는 태도란 말인가?
"버릇은 원래부터 없어서 괜찮아."
운혜의 말에 설향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
"가끔 보면 사저의 그런 막무가내인 면모가 부러울 때가 있어요."
"칭찬이지?"
"물론이죠. 가끔 보면 배분 떼고 쥐어박고 싶을 때가 있다니까요?"
설향의 말에 운혜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누가 들어도 본심이 듬뿍 함유돼있는 발언이었다.
"운혜야, 배분은 언제든 떼줄 수 있단다. 뭣하면 지금이라도 떼줄까?"
운혜의 귀여운 반항에 설향은 속으로 피식 웃고는 그대로 맞받아쳤다.
"그건 사양할게요. 아직 죽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요."
설향의 말에 운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거절을 하였다.
말은 배분 떼고 쥐어박고 싶다는 말을 하긴 하였지만, 초절정에 이른 그녀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젠간 죽어."
설향은 살벌한 목소리로 운혜에게 속삭였다.
"그 언젠간 이, 지금이 아니길 빌게요. 이렇게 꽃다운 나이에 죽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요?"
"그래봤자 염불이나 외우는 비구니면서..."
그녀의 대답에 설향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왜 항상 그렇게 말꼬투리 잡아서 말하는 건가요! 저번에도........."
설향의 답변에 발끈한 운혜는 일장연설을 하며 그녀에게 설교를 하기 시작하였다.
설향은 그런 운혜의 설교를 한 귀로 흘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열심히 움직이는 목울대가 보였다.
`쿡`
설향은 그런 그녀를 보며 속으로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상심해 있는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운혜의 배려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향은 그저 가만히 운혜의 설교를 듣고만 있었다.
그녀 나름의 위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차 안에는 운혜의 목소리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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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그럭 덜그럭
산길을 달려가던 마차가 속도를 늦추기 시작하였다.
작게나마 눈앞을 비춰주던 노을이 완전히 저버렸기 때문이다.
가장 선두에 있던 마부는 재빨리 형광색 염료를 묻힌 깃발을 들었다.
그러자 뒤에서 따라오던 마차들이 일제히 멈춰 서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이곳에서 노숙을 해야 할 듯 싶습니다."
선두에서 멈춰선 마부가 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오!"
마부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발끈하며 말을 이었다.
마차가 멈춰선 곳은 원래 도착하기로 했던 장소가 아니었다.
화가 나지 않을 리 없었다.
"죄송합니다. 예상보다 해가 빨리 저무는 바람에 멈춰 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운적자의 질타를 들은 마부는 송구하다는 듯 그에게 말을 이었다.
그 말 그대로였다.
그들이 지나가던 산길은 생각보다 더욱 높았고 그만큼 해가 빨리 떨어지게 되었다.
야간 산행만큼 위험한 일도 없었기에 마부는 마차를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안되는 것이오?"
운적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
한시라도 빨리 북해에 들어가야 하건만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무리입니다. 이쪽 지역은 절벽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라 자칫 잘못하다간 마차가 그대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운적자의 말에 마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빠르게 손을 휘저었다.
그도 웬만하면 목적지까지는 강행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여건이 안되었다.
절벽이 워낙 많아 자칫 어두운 밤길에 마차를 몰았다간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쯔쯧, 하여튼 간에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군."
그런 마부의 태도에 운적자는 혀를 찼다.
자신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마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집애도 아니고 어찌 저리 겁이 많다는 말인가?
`젠장할`
운적자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마음 같아선 온갖 욕을 마부에게 퍼붓고 싶었지만, 그는 엄연히 당가 소속의 무인이었다.
만약 여기서 그를 함부로 대했다간 당가와 불화가 생길지도 몰랐다.
`하아`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정신적인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모든 뜻대로 되지 않으니 정신적인 피로가 폭발하는 것이다.
"후우...후우...후우.."
운적자는 몰려드는 정신적 피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기 시작하였다.
"후우우우우"
심호흡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머리를 지끈거리는 피로가 어느 정도 가시기 시작하였다.
두통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그는 속으로 다짐하였다.
오늘 밤엔 검이라도 한바탕 휘두르며 마음을 다독이자고 말이다.
다짐을 마친 운적자는 다시금 심호흡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내 마차에는 운적자의 숨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
청수는 하루종일 마차를 타고 오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청성삼검에게 수치를 준 선우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선우는 자신의 추악한 욕망 때문에 청성삼검에게 수치를 준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자였기 때문이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살던 청수는 누군가에게 머리 한 번 숙여본 적 없던 이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큰마음을 먹고 선우에게 머리를 꿇은 것이다.
오로지 사형의 사랑을 기원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성의가 무참히 밟혀버렸다.
그것도 정혼자를 냅두고 바람이 난 호색한에 의하여 말이다.
청수는 분노하였고 그에게 복수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장선우가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수치스러울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큰 수치를 느낄 때는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의 초라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였다.
그 말인즉슨 많은 이들 앞에서 장선우의 초라함을 내보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무공의 격차를 보여주어 그에게 수치를 주는 것이 가장 적법한 방법이긴 하였지만,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를 이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용봉이라 불리우는 차세대 중원의 지배자들을 홀로 제압한 이가 아니던가
청성삼검이 전부 달려든다해도 이기지 못할 것이 자명하였다.
더구나 그 스스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고 공공연히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 선우를 고작 절정 초입에 이른 자신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청수는 무공으로 그를 혼내주는 방법을 곧바로 폐기하였다.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청수는 다시금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를 혼내줄 수 있을 것인가?
돈?
하지만 이내 청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돈이 썩어 넘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금력을 가지고 있는 당가였다.
그런 곳의 사위인 선우가 돈이 궁핍할 것 같지는 않았다.
비록 자신이 유명 상가의 자제라지만 당가와 비교하기에는 많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청수는 골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몸으로 직접 부딪히는 방식을 선호하는 청수였다.
갑자기 머리를 쓴다 하여 쓸만한 꾀가 곧바로 나올 리가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용봉들조차 설설 기었던 초절정 고수
장선우가 아니던가?
마땅한 방법이 나올 리가 없었다.
청수의 표정이 더욱 침중해지기 시작하였다.
무공도 배경도 무엇하나 그를 앞서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망할 당가의 사위만 아니었어도........응?`
번뜩
그때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이는 것이 지나갔다.
그리고 눈을 감고 다시금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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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번쩍
이내 청수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청수는 생각하였다.
그의 배경이 문제라면 그 배경을 거둬들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흐흐흐흐흐`
청수는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하였다.
선우를 당가에서 내쫓을 계획을 말이다.
청수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욱 진해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