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30화 (231/1,419)

〈 230화 〉 231. 부탁을 받다-2

선우는 고심에 빠졌다.

설향과 자리를 마련해달라는 청송의 갑작스러운 부탁 때문이었다.

`흐음`

선우는 시선을 살짝 올려 청송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 없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으`

선우는 그런 청송의 눈빛에서 부담감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부탁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간의 비무를 통해 설향과 상당히 친해지기도 하였고 청송은 남자인 선우가 봐도 잘생기고 재능있는 후기지수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남의 애정사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찝찝함이 청송의 부탁을 수락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뭐지?`

선우는 의아함을 느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당장에라도 거절하라는 외침이 계속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 앞에 있던 청길이 조용히 입을 떼며 말을 이었다.

"평생을 여자한테 관심 한 번 안 주던 사형입니다. 사형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말을 마친 청길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저..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사형이 짓궂긴 해도 되게 착해요!"

옆에 있던 청수 또한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에게 부탁을 해왔다.

"너..너희들.."

그리고 그들의 부탁에 청송은 감동을 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발`

그 장면을 본 선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청성 본산의 제자들이 직접 고개를 숙였다.

평생 무공만 파고든 사형의 사랑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정성에 감복한 청송은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거절한다면 누가 봐도 개새끼가 되는 상황이 아니던가

선우의 고민이 한층 더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냥 좋게 거절하려고 하였건만 이렇게까지 하니 쉽사리 거절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다시금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아미파의 제자와 청성파의 제자간의 만남이라

일단 둘의 만남은 제약이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설향의 경우 속가제자였기에 연애를 하든 혼인을 하든 본인 소관이었고 청송 또한 도사지만 혼인이 허락된 청성의 소속된 도사였기에 연애나 혼인에 대해서는 제약이 없었다.

거기다 둘다 구대문파라는 명문대파의 제자들이었고 잘생기고 아름다운 선남선녀였다.

`잘...어울리네?`

순간 선우는 번뜩이며 깨달았다.

생각보다 그들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내 결정하였다.

둘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로 말이다.

한 두 번 만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좋아하는데 찬물을 뿌리기도 뭐했기 때문이다.

선우는 청송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떼려고 하는 그때였다.

[반할 만큼 매력적인가요?]

[그럼 오라버니도 저에게 반했나요?]

[대답해주세요....오라버니는.....저를..어떻게..생각하세요?]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어젯밤 설향이 속삭였던 말들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젯밤 그녀가 내뱉었던 말들이 가슴을 쿡 쿡 찔렀기 때문이다.

`끄으응`

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금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눈을 살짝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을 해봤다.

그녀를 청송에게 소개시켜줘도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번쩍

그리고 이내 눈을 번쩍 뜬 그는 머릿속을 다시금 정리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선우는 청송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습니다."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하였다.

"어찌 안된다는 말입니까?"

선우의 말에 청송은 모르겠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그저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의 물음에 선우는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하였다.

어젯밤 설향은 꽤나 진지한 어조로 선우에게 감정을 토로하였다.

워낙 장난기가 많은 성격이라 농담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만약 그녀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그녀에게 청송을 소개시켜줄 수는 없었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였으니까 말이다.

"허허, 참으로 이상합니다. 어찌하여 그런 마음이 든단 말입니까?"

선우의 말에 청송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러지만, 청송은 스스로가 꽤나 잘난 인물이라고 생각하였다.

대제자라는 신분과 잘나가는 상가의 둘째라는 뒷배 거기다 고작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절정이라는 경지에 오른 재능까지

선우나 설향과 같은 괴물들만 아니었다면 무림에서 충분히 이름 날릴 정도의 인재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소개해주길 꺼려하다니 의아함이 들었다.

"장 소협, 혹여 설 소저에게 다른 마음이 있는 것입니까?"

청송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개소리이긴 하였지만 그래도 완강한 그의 거절에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인위적인 만남은 꺼려지는군요."

그의 물음에 선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분명 그녀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볼 때마다 귀엽다든가 같이 있으면 즐겁다는 생각을 하긴 하였지만, 그녀를 연모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저 마음이 내키지 않을 뿐이었다.

"후우...그렇게 완강히 거부하니 어쩔 수 없군요. 죄송합니다. 괜스레 곤란하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

선우의 거절에 청송은 그대로 고개를 살짝 숙여 사과를 하였다.

괜스레 그에게 부담을 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오히려 도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선우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그대로 손사래치며 그에게 사과를 하였다.

서운할 법도 한데 되려 사과를 하니 미안함이 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

:............"

다시 그들 사이에 침묵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대충 깨작거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있다간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먼저 일어서 보겠습니다."

선우는 청성의 도사들을 바라보며 살짝 목례를 하였다.

"가보십시오."

"들어가십시오."

"즐거웠습니다."

뭔가 미묘하게 차가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선우는 애써 무시하며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마차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청성의 도사들은 그런 선우의 뒷모습을 얌전히 바라볼 뿐이었다.

************

선우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질 때 쯤이었다.

"사형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지 않습니까?"

청수가 청송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수상하다니?"

청송은 그런 청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아니, 어찌 정혼자도 있는 자가 소개 한 번 시켜주는 것을 그리 거절한단 말입니까!"

청수는 화가난듯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을 내뱉었다.

그는 지금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미래에 청성을 이끌어갈 인재라고 불리우는 자신들이 직접 고개까지 숙이며 부탁한 일이었다.

게다가 사형은 그런 사제들의 행동에 감동을 받아 눈시울마저 붉히고 있었다.

누가 봐도 감복하여 부탁을 수락해줘야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깟 계집을 소개해주는 일이 뭐 그리 어렵다고 그렇게 매정하게 거절한 단말인가

화가 나지 않을 리 없었다.

"청수야 진정하거라. 어찌 그렇게 감정적으로만 생각한단 말이더냐. 장 소협도 분명 사정이 있겠지."

청송은 그런 청수를 다독이며 선우를 변호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합니다! 어찌 사람이 그리도 정이 없다는 말입니까."

청송의 다독임에도 불구하고 청수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성을 내었다.

"막내야, 그가 우리와 말을 섞은 것은 오늘 아침이 처음이란다. 그런데 뭔 놈의 정을 바란단 말이더냐."

"그렇게 큰 부탁도 아니지 않습니까? 한낱 계집 따위를 소개시켜주는 일이 무에 어렵단 말입니까!"

청수는 이해가 안 되었다.

고작 계집따위 때문에 청성삼검이라고 불리우는 자신들과의 친분을 포기한 선우의 행태에 대해서 말이다.

`제놈이 잘났다면 얼마나 잘났다고!`

청수는 속으로 선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다.

"청수야.."

청송은 그런 청수를 달래기 위해 골머리를 썩였다.

언제나 쾌활하고 싹싹한 막내였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말리기 곤란한 녀석이었다.

`후우`

청송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괜한 말을 해서 사제가 화가 잔뜩 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형."

그때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청길이 입을 열었다.

"말하거라."

청송은 그런 청길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이상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는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장 소협이 설 소저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굳이 사형의 부탁을 거절할 리 있겠습니까?"

"그거야 설 소저가 곤란한 상황을 염두에 둔 거겠지."

"사형, 저희는 그에게 고개까지 숙이며 부탁하였습니다. 그런 저의 성의를 무시할 만큼 그녀를 걱정한다면 그 또한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그거야.."

"제 생각도 사제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장 소협은 설 소저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서시라는 아름다운 정혼자를 두고서 말이죠."

청길은 단언하듯 그에게 말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향에게 마음이 없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청길 사형도 제 의견이랑 같군요!"

청길이 말을 거들어주자 청수는 옳다구나 하며 그의 말을 받았다.

항상 구박만 하던 청길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니 그는 더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진짜 개자식이네."

청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선우를 욕하였다.

"어허! 청수가 그게 무슨 말버릇이더냐!"

그의 거친 언행에 청송은 화들짝 놀라며 그를 질타하였다.

"죄송합니다. 사형, 하지만 욕을 안하고는 배기지 못하겠습니다. 정혼자도 있는 자식이 이제 갓 약관이 될법한 여인에게 마음을 품는다는 말입니까?"

청수는 무척이나 화난 듯 거칠게 인상을 쓰며 말하였다.

"그저 추측에 불과하다. 언행을 가벼이 하지 말거라."

"추측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청송의 말에 청수는 더욱 언성을 높였다.

청수는 답답하였다.

정황상 이렇게 증거가 가득하거늘 이 착해빠진 사형은 그저 장선우를 믿을 뿐이었다.

청수는 다시금 분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감히 청성삼검의 부탁을 지나가는 개똥 취급을 하다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까드득

청수는 선우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언제고 복수해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

"에효"

황급히 객잔을 빠져나온 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 한마디에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어버린 자신에 대한 한탄이었다.

분명 동네 친구들을 만난 것마냥 즐겁기 그지없는 시간이었건만 자신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다.

방실거리며 농담을 하던 청송과 딱딱하지만 적절한 딴지를 걸어주던 청길 그리고 엉뚱하지만 놀리는 맛이 있던 청수까지 일순간에 표정이 굳어버렸다.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에 말이다.

선우는 좋은 분위기를 망친 것 같아 죄책감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만약 거기서 자신이 제안만 수락했어도 이렇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쫓겨나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냥 소개시켜줄걸 그랬냐?`

그냥 부탁을 수락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이내 선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 편하자고 설향을 상처 주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면 자신의 선택은 그녀에게 더없는 큰 상처가 될 테니까 말이다.

"하아"

선우는 한숨을 마저 쉬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아직 배는 고팠지만, 다시 객잔에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터덜 터덜

선우는 터덜터덜 걸으며 마차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어?"

그리고 머지않아 선우는 익숙한 인영을 마주하게 되었다.

적당한 키와 상큼한 외모 그리고 장난기 어린 눈빛까지

아미파의 속가제자인 설향이었다.

선우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주위에는 그 어떤 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선우는 안도하며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주위에 사람도 없겠다.

아는 척을 할 요량이었다.

"설 소저~"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선우는 그녀를 불렀다.

흠칫

그러자 선우의 목소리가 들린 것인지 설향이 몸을 흠칫 떨고는 고개를 돌려 선우를 마주 보았다.

"간밤에 잠은 잘.."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안부 인사를 건네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안부 인사는 끝맺음을 맺을 수 없었다.

꾸벅

타다다다닥

설향이 선우를 바라보며 그대로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 달려가 버렸기 때문이다.

"어?"

순간 선우는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반응과는 전혀 상반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뭐야?`

선우는 고개를 천천히 올려 그녀가 달려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앞을 보니 이미 점이 되어 선우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있는 그녀의 인영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당황하였다.

언제 저기까지 달려갔단 말인가?

게다가 자신을 왜 피한단 말인가?

선우는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에는 그 어떤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자신을 피하는 모습이었기에 선우는 의아함이 들었다.

무슨 잘못을 했다고 별안간 자신을 피한단 말인가?

선우는 의구심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그녀가 떠나간 방향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