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 227. 인내심이 바닥나다-2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
선우는 항상 이 말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살았다.
어떤 개같은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인생사였기에 그는 항상 인내라는 덕목을 최우선적으로 생각을 하였다.
뭐든 감정적으로 대응하다 보면 결국 사단이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 참을 인이라는 글자가 세 번이나 새겨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로 눈앞의 여자 때문에 말이다.
"왜 말이 없으신가요? 지금 저를 무시하는 건가요?"
선우는 불허사태의 말을 듣고 다시금 침중한 고민에 빠졌다.
이 좆같은 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마음같아선 대가리를 후려치고 얼굴을 짓밟아 주제를 파악시키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지금 자신은 당가를 대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감정적으로 대응하였다가는 큰 사단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최악의 경우 아미파에서 수색대의 인원을 빼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선우는 고심을 하였다.
그리고 이내 결정하였다.
한 번만 더 참자고 말이다.
여기서 감정적으로 대응했다가는 죽도 밥도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이제 막 참을 인이라는 글자가 다 채워지지 않았던가?
이번만 넘기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이 말하면 제대로 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아미를 무시하는 건가요? 정말 어처구니없군요. 어쩌자고 당가에서 당신 같은 사람을 수색대에 보냈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애초에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요.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지각을 하는 것은 물론, 정혼자가 있으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여인 꼬드겨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개수작까지.......당신을 정혼자로 택한 당가는 물론 독서시의 수준도 알만하군요."
저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빠지직
선우는 이마의 핏줄이 너무 치솟기 시작하였다.
이건 선을 넘었다.
자신에 대해 욕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물론 그녀가 생각하는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지만 정황만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빌미로 당가와 정혼자인 당서윤까지 욕하는 것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짓이었다.
당가가 대체 어떤 가문이란 말인가?
청성과 아미에게 호황기를 가져다준 주역이 아니던가
게다가 이번 북해행 관한 모든 경비와 물품까지 지원한 곳이었다.
그런데 저런 태도로 나온다니?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저 여자가 대놓고 싸움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선우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불허 사태를 노려보았다.
"불허 사태."
선우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짓고는 그녀를 불렀다.
한눈에 봐도 불편이 가득 차있는 어조였다.
"왜 그러시죠?"
"저를 욕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의도와는 다르지만, 정황상 불허 사태께서 저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다고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를 넘어서 뒤에 있는 당가와 정혼자에 대한 모욕은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선우는 째려보듯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당가와 정혼자를 욕 먹이기 싫다면 본인 행실부터 똑바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행실이 똑바르지 못하니까 본인의 가문과 정혼자까지 욕먹는 겁니다. 그리고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요? 소협처럼 무례하고 호색한 이를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당가와 독서시가 판단이 좋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그말...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불허사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불허사태는 그 모습에 쾌재를 불렀다.
그를 도발한다는 계획이 성공적으로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터로 나오기 전 불 속으로부터 선우에게 위협을 가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설향에게 접근하는 그의 행태를 원천에 차단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불허는 그녀의 부탁을 수락하였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묵사발을 만들어 수색대의 주도권까지 갖고 오자는 생각을 하였다.
선우가 순순히 작전 통제권을 넘긴다면 청성에도 어쩔 수 없이 아미를 따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도발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자신에게 덤벼들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파에서 싸움은 명분이었다.
만약 여기서 그가 분을 못 참고 달려든다면 불허는 그와 싸울 명분을 가질 수 있었고 동시에 수색대의 작전 통제권까지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계획은 정확히 들어맞게 되었다.
도발을 참지 못한 선우는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그녀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쿡`
불허사태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불세출의 천재이긴 하나 수양이 부족한 애송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흥, 책임질 수 있다면 어쩌겠습니까?"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럼 책임을 물어야겠죠."
선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어떻게 물으실 생각이죠? "
"사과를 받아낼 생각입니다."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역정을 내며 화를 내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훗, 어리군요. 제가 사과를 할 것 같나요?"
불허는 그런 선우의 행태가 우스운지 코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사과를 못 하시겠다면 강제로 받아야지요."
선우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소협이....저한테요?"
"네"
"오호호호"
선우의 말을 들은 불허사태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객기를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화경을 목전에 둔 초고수이자 아미파에서 가장 강한 이가 아니던가
그런 자신에게 강제로 사과를 받겠다니
귀엽기 짝이 없는 객기가 아닐 수 없었다.
같은 초절정 경지라해도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불세출에 천재라해도 고작 중경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자가 자신에게 덤벼든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소협이야말로 그 말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저 또한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선우는 흉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뭐 좋아요. 후배에게 가르침을 내려주는 것도 선배의 덕목이니까요."
그녀는 팔을 뒤로 보내더니 이내 등에 매어져 있는 창을 쥐어틀었다.
부웅
그리고 그대로 앞쪽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길다란 창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을 뽑으세요. 장 소협. 수준 차라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스르릉
선우는 옆구리에 매여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를 향해 겨누었다.
"용미연검은 안 드는 것인가요?"
선우가 평범한 철검을 뽑아들자 불허사태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천봉에게 용미연검을 빼앗았다는 소문은 이미 구파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선우가 용미연검이 아닌 평범한 철검을 드니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말을 이었다.
"뭐라고요!?"
그리고 선우의 말은 호승심 강한 불허 사태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었다.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니!?`
그 말인즉슨 자신 따위는 용미연검같은 기물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상대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던가
불허사태의 얼굴이 시뻘겋게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오만하군!"
"보통은 자신이라고 하지요."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유들유들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태도는 그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노오옴!!! 용미연검을 뽑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파팟
말을 마친 불허사태는 그대로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아미의 절세 신법인 부동명왕보(不動明王步)가 그녀를 통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쇄애애애액
그녀의 창이 바람을 가르며 그대로 선우에게 쇄도하였다.
선우는 검을 뻗었다.
그리고 창대 쪽에 슬며시 검을 갖다 댄 후 천천히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선우의 목을 향해 날아오던 창이 궤도가 그대로 허공 쪽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검이 창대를 타고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퍽
선우는 검을 옆으로 세웠다.
그리고 검 면으로 그녀의 얼굴을 후려쳤다.
"으윽!"
갑작스레 얼굴을 강타당한 불허사태는 저도 모르게 비명성을 내질렀다.
콰쾅
그리고 그대로 날아가더니 이내 땅에 처박히게 되었다.
"크으으윽!"
땅에 처박힌 불허사태는 고통에 찬 신음성을 내뱉었다.
검 면에 강타당한 얼굴이 화끈거렸기 때문이다.
"이제 사과할 마음이 듭니까?"
그리고 이내 그녀의 귓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으득
그 목소리를 들은 불허 사태는 이를 갈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기 때문이다.
벌떡
그녀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선우를 죽일듯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방심하였다.
설마 이 정도로 검기(劍技)가 뛰어날 줄은 예상치 못하였다.
"제법 한 수가 있는 놈이구나!"
그녀는 핏발 선 눈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 한 수를 허용한 것은 자신이 한껏 방심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방심하였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리 방심하여 일 수를 허용하다니 수치심이 올랐다.
"제법 한 수라고 하며 넘기기엔 너무 꼴사납지 않소?"
선우는 그런 불허사태를 바라보며 조롱기 있는 말을 이었다.
"이익!"
그의 말을 들은 불허 사태는 이를 악물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꼴사납기 그지없는 추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운 좋게 한 방 먹인 걸로 자만하지 말거라!"
그녀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정말 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제대로 인지조차 못할 만큼 빠른 검속에 한방 거하게 먹어놓고 운이라니
변명조차 고집이 드러나는 여자였다.
"그렇다면 네놈이 나보다 강하기라도 한단 말이더냐?"
선우의 말에 그녀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태께서 이렇게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시진 않으셨겠지요."
"노오오옴!"
선우의 말을 들은 불허사태는 더욱 광분하며 창을 들어 올렸다.
고작 운 좋게 한 방을 먹인 것 가지고 실력을 운운하는 저자에게 본때를 보여줄 심산이었다.
타타타탁
그녀는 다시금 명왕부동보를 밟기 시작하였다.
명왕부동보는 오직 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보법이었다.
그렇기에 변화가 적어 쉽게 간파당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 단점을 상쇄할 정도의 장점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빠르기였다.
명왕부동보는 움직임은 없지만, 그 어떤 보법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고 자부하는 보법이었다.
쾌속하게 상대의 목을 꿰뚫는 칠살창과 무척이나 어울리는 보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쇄애애애액
그녀의 신체가 바람을 가르며 그대로 선우에게 날아들었다.
먼젓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기 그지없는 속도였다.
불허 사태는 지척에 가까워지자 그대로 손을 뻗었다.
이번에 노리는 곳은 왼쪽 어깨였다.
그녀의 창이 선우의 어깨를 향해 날아들었다.
선우는 안력을 집중하였다.
그러자 자신에게 날아드는 창의 궤적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왼발을 뒤로 뺐다.
그리고 뒤로 뺀 왼발을 축으로 삼아 그대로 반 바퀴 돌았다.
펑
얼마 지나지 않아 불허사태의 창이 왼쪽 어깨가 있던 곳을 훑고 지나갔다.
만약 피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어깨가 꿰뚫려 버렸으리라
반 바퀴를 돈 선우는 그대로 오른 팔꿈치를 들어 올렸다.
퍽
그러자 어깨를 찔러 들어 왔던 불허 사태의 얼굴이 그대로 팔꿈치에 찍히게 되었다.
피하고자 하였으나 쾌속하기 그지없는 명왕부동보가 제어가 되지 않았기에 그녀는 그대로 얼굴이 찧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악!"
얼굴이 찍혀버린 불허사태는 비명성을 내질렀다.
명왕부동보로 인한 속력이 붙어버리면서 얼굴에 가해진 충격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왼손으로 팔꿈치에 가격당한 얼굴을 매만졌다.
이내 그녀의 손에는 뜨듯하고 끈적이는 액체의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손에 묻어 있는 액체를 바라보았다.
손에 묻어 있는 액체는 피였다.
그것도 엄청난 양의 피 말이다.
으득
그 피를 확인한 불허사태는 이를 갈았다.
초절정에 이른 이후 제대로 된 상처 하나 입어본 적 없는 그녀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피를 흘리게 된 것이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개같은 자식!`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뒤 고개를 들어 올리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아쉽게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눈앞에 선우의 발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퍽
"끄악!"
다시금 얼굴을 가격당한 그녀는 그대로 몸이 공중에 살짝 떠버렸다.
부웅
선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발을 빠르게 회수한 뒤 다시금 그녀의 단전 쪽에 발을 내질렀다.
퍽
그대로 선우의 발에 가격당한 그녀는 저 뒤편까지 날아가게 되었다.
콰콰쾅
불허사태의 신체가 벽을 뚫고 외벽 안에 그대로 처박혀 버렸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무덤덤한 시선으로 노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