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223. 설향과 친분을 쌓다-3
"헤헤헤"
선우와 헤어진 설향은 입에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꿈에 그리던 선우와 만나 비무를 하는 것은 물론 단둘만의 비밀까지 가지게 되었다.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으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숨 쉬는 게 즐거웠으며 공기마저 달콤하였다.
"라라랄~"
또한,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이내 그녀는 자신에게 배정된 막사로 향하였다.
그리고 막사 입구에 가까워지자 그녀는 발소리를 죽였다.
지금쯤 모두가 자고 있을 것이다.
괜히 깨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금살금
그녀는 발뒤꿈치를 든 채로 천천히 막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어디 갔다 와?"
흠칫
그런데 갑자기 뒤편에서 날카롭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향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천천히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가 돌린 곳에는 무척이나 화가 나 있는 듯 보이는 비구니가 한 명 서 있었다.
"....불허..사저?"
"그래, 이 요 망아지같은 녀석아, 대체 어딜 갔다 오는 거야!"
그녀는 설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잠깐 산책을....."
그녀의 물음에 설향은 말끝을 흐리며 말을 이었다.
"너 때문에 잠도 못 자고 기다렸잖아!"
불허사태는 짐짓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당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먼저 자겠다고 들어간 인간이 회의가 끝난 지 한 시진이나 지나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화가 나지 않을 리 없었다.
"너는 무슨 산책을 한 시진이나 하니?"
"보름달이 어찌나 예쁘던지 절로 흥이 나서 말이에요."
"오늘 떠오른 건 초승달이거든?"
설향의 말에 불허사태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어멋, 언제 초승달로 바뀌었지?"
설향은 그녀가 가리킨 달을 쳐다보며 모르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장난하냐!"
불허사태는 그런 설향을 쳐다보며 언성을 높였다.
"설향, 장난은 아미파 내에만이다. 만약 자꾸 이런 식으로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한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녀는 으르렁거리며 설향에게 말을 하였다.
"에이, 죄송해요. 이제부터 어디 갈 때 말하고 가면 되는 거죠?"
불허사태의 으르렁거림에 설향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으득
그런 설향의 능구렁이 같은 태도에 불허사태는 이를 갈았다.
반발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넉살 좋게 사과까지 하니 또 할 말이 없었다.
"그게 사과하는 태도야!?"
불허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며 그녀에게 말을 이었다.
꾸벅
"심려를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그러자 설향은 재빨리 허리까지 숙여가며 그녀에게 사과를 하였다.
`망할`
불허사태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불자로서 옳은 행동은 아니었지만, 건수를 주지 않는 설향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향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잘못이 작다 싶으면 농담하듯 넘겼고 잘못이 크다싶으면 빠른 사과와 빠른 반성으로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후우, 알면 됐어."
설향의 사과에 불허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마음같아선 더욱 쪼아대고 싶었으나 여기서 더 쪼아대 봤자 한귀로 듣고 그대로 흘려버릴 것이 뻔하였기에 그녀는 마무리하였다.
"감사해요."
설향은 그런 불허의 태도에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고마움을 표하였다.
"흥"
설향의 말을 들은 불허는 콧방귀를 뀌고는 그대로 막사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후훗"
설향은 그런 불허사태의 뒷모습을 보더니 그대로 따라 들어갔다.
**********
선우와 설향이 비밀을 공유하게 된 이후
선우의 일상이 조금 달라졌다.
"장소협~ 같이 먹어요."
평소라면 혼자 먹거나 당가의 무사들 사이에 껴서 밥을 먹던 그였다.
그런데 그날 이후 자꾸만 설향이 그를 챙기기 시작하였다.
"혼자가 편합니다. 소저."
선우는 나름 예의를 담아 거절을 하였다.
혹여 염문에 휩싸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에이, 밥은 같이 먹어야 맛있죠!"
하지만 설향은 그런 선우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듯하였다.
털썩
그는 일부러 선우의 주위에 앉아 배식받은 식량을 먹었다.
"장 소협 오늘은 감자가 실해요."
그녀는 선우에게 감자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후우`
선우는 그녀의 안하무인격인 태도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그녀의 주위에 앉았다.
그래도 혼자 먹는다고 챙겨주는 마음씨가 예뻤기 때문이다.
사실 선우는 이번 수색단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청성과 아미에게는 주도권을 잡아야 할 경쟁 대상이었고 당가의 무사들에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상전이었다.
그런 곳에 제대로 녹아들 수 있을 리 없었다.
청성과 아미는 그를 그리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고 당가의 무사들은 일면식도 없는 상전에 대해 경계를 하였다.
외톨이가 된 것이다.
그러던 차에 설향이라도 자신을 챙겨주려고 하니 고마운 마음이 올라왔다.
물론 염문에라도 휩싸일까 걱정되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냠 냠 냠
자리에 앉은 선우는 배식받은 찐 감자를 씹어먹었다.
담백한 맛이 의외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 소협, 어제 저 완전히 혼났다니까요?"
그때 옆에서 설향이 말을 걸어왔다.
"혹여 늦게 들어가서 그런 겁니까?"
"맞아요, 불허 사태가 어찌나 불호령을 내던지 아직도 귀가 따갑다니까요!"
그녀는 짐짓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불허사태를 흉내 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설향은 선우의 옆에서 조잘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선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조잘거림을 받아주었다.
투정 어린 말투조차 귀여우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우와 설향의 수다는 아침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
"사저, 마차 출발한대요!"
운혜는 저 멀리에 있는 설향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출발할 때가 다되었거늘
설향은 여전히 선우 곁에서 조잘대고 있었다.
"앗, 출발하나 봐요."
운혜의 말을 전해 들은 설향은 선우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가.보십시오.."
선우는 그녀의 재잘거림에 지친 것인지 지친 기색으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럼 좀 이따 저녁에 봬요!"
설향은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잇고는 그대로 마차로 가버렸다.
"저..녁에도?"
선우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되뇌더니 이내 창백해졌다.
저녁에도 저 재잘거림을 들을 생각에 두려움이 든 것이리라.
타타타탁
선우와 작별인사를 한 설향은 그대로 마차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후 재빨리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차지했다.
"창가 쪽은 내 자리!"
재빨리 자리에 앉은 그녀는 선언하듯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응?"
그리고 이내 의아함을 느꼈다.
마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거기 앉으렴."
그때 마차 밖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싹
순간 설향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속 사저?"
"그래, 점심때까지는 나랑 단둘이 가자꾸나."
그녀의 말을 들은 설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혀버리는 불속과 같이 간다면 아침에 먹던 것도 체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전 다른 마차로.."
"아쉽게도 다른 곳은 만석이란다."
"그럼 마차 지붕 위에 타고 갈게요!"
"헛소리 말고 앉거라."
불속의 말에 설향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았다.
"다른 애들은요?"
"점심 전까지만 불허와 같이 타고 가라고 말해놨단다."
"다들 죽어 나가겠네."
그녀의 대답에 설향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꼬장꼬장한 불허와 간다면 다들 수명이 십 년쯤 단축되고 말리라
"출발하겠습니다!"
그때 앞쪽에서 마부의 언성이 들려왔다.
덜커덩 덜커덩
그리고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무슨 생각이더냐?"
마차가 움직이기 무섭게 불속은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이라뇨?"
설향은 모르겠다는 듯 그녀에게 답하였다.
"무슨 생각으로 장선우와 친해졌냐는 말이다."
"같은 사천연맹원에다 수색대의 일원으로서 친해질 수 있는게 아닌가요?"
"그런 것치고는 너무 친밀해 보이더구나."
"그럼 안되나요?"
설향은 방긋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연히 안되지."
그녀의 물음에 불속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왜요?"
"그는 독서시라는 정혼자가 있다. 그런데 어찌 그와 친밀하게 지내냐는 말이더냐."
"에이, 제가 설마 연모의 정을 느끼고 그에게 다가갔겠어요? 그저 친애의 감정이랍니다."
설향은 너스레를 떨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거짓말이 서툴구나."
하지만 그녀의 너스레에도 불속은 차가운 눈빛으로 설향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너를 십 년이라는 세월 간 봐온 나다. 그런 감정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더냐."
"진짜 아니라니까요! 억울해요!"
설향은 항변하듯이 소리쳤다.
그에게 호감이 간 것은 사실이나 연모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몰아간다는 말인가?
억울하게 말이다.
"그런데 어찌 그에게 다가간다는 말이냐."
"그저 더 친해지고자…."
"왜 친해지고 싶지?"
"멋지니까요!"
그녀의 물음에 설향은 속내를 드러내었다.
"그거 어디가 멋지다는 게냐?"
설향의 말에 불속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에게 말하였다.
"멋지지 않나요?"
"내가 보기엔 영 아니구나."
불속은 선우에 대한 속내를 스리슬쩍 밝혔다.
생긴 것은 그리 모나지 않았지만 처음 봤을 때 그 멍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눈빛은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건 사저가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그래요."
"뭐라?!"
그녀의 말에 불속은 발끈하며 반문하였다.
불속은 태생부터 아미에서 태어난 자들과 다르게 속세에서 이른 나이에 결혼까지 했던 전적이 있던 이였다.
그런데 남자 보는 눈이 없다니?
남자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주제에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이립도 안된 나이에 그 오만하기 짝이 없는 용봉들을 단숨에 제압할 정도로 실력에다가 생긴 것도 나쁘지 않고 가슴 근육도 옹골차게 튀어나왔고 팔근육도 선명하기 그지없게 쫙쫙 갈라져 있는 데다 허벅지마저 튼실한데 어찌 멋지지 않을 수가 있나요?"
설향은 눈을 반짝이며 선우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뱉어내었다.
그리고 이내 얼굴마저 붉히기 시작하였다.
그의 모습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불속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누가봐도 연모의 정에 빠진 소녀이건만 저 혼자만 그 사실을 인지 못한듯싶었기 때문이다.
"후우..."
불속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해도 어찌 정혼자가 있는 자를 좋아하는 설향에 대한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향아."
불속은 침중한 표정을 짓고는 그녀를 불렀다.
"왜요?"
"포기하거라."
"아이, 정말 연모하는 게 아니라. 동경하는 거라니까요!"
"동경도 하지말거라."
설향의 말에 불속은 단호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네!?"
"연모도 친애도 동경도 아무것도 하지말거라. 그 어떤 마음도 품지 말거라."
"그게 무슨 말이죠?"
"관심 자체를 두지 말라는 말이다."
"어째서죠!"
그녀의 말에 설향은 발끈하며 물었다.
"상처받는 것은 너만 될 터이니 말이다."
불속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장선우는 최고의 후기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였다
설향이 그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다면 분명 집안에서 그녀를 밀어줄 것이다.
정혼자인 당서윤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말이다.
아쉽게도 장선우에게는 당서윤이라는 정혼자가 있었다.
애초에 성립이 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중원오대거부 중 하나인 설씨세가에서 아끼고 아끼는 고명딸을 둘째 부인으로 들일 리 만무하였고 장선우 또한 당가에서도 데릴사위가 부인을 하나 더 들이는 것을 반겨할 리 없었다.
그렇기에 불속은 설향에게 그 어떤 감정조차 품지 말라며 명을 내렸다.
결국, 상처받는 것은 그녀 자신이 될 테니까 말이다.
불속은 딸과 같은 설향이 상처받고 아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단호한 태도를 고수하였다.
"싫어요."
불속의 말에 설향은 고개를 저으며 거부를 하였다.
동경조차 품지 말라니 친애의 감정조차 품지 말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찌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저는 본산제자가 아니에요. 제 감정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 마세요!"
"본산제자는 아니지만, 여전히 아미의 제자지. 그리고 이 수색대는 아미의 제자로서 참가하였고 말이야."
불속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 이건 수색대에 파견된 아미의 책임자로서 말하는 것이다. 그와 가까이하지 마라."
"싫다면요?"
"너를 강제할 수밖에 없겠지."
"저를 이길 수 있으신가요?"
불속의 말에 설향은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
불속이 비록 장로 신분 이긴 하나 절정 상경에 불과하였다.
초절정 중경에 다다른 자신을 강제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너를 이길 수 없겠지만, 불허라면 얘기가 다르지."
그녀의 말에 설향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확실히 불허라면 지금의 설향으로서는 버겁기 그지없는 상대였다.
불허는 화경을 목전에 두고 있는 자로 그 무공만 따지자면 장문인인 구월신니보다 위였다.
그런 불허를 고작 초절정 중경에 이른 설향이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흥! 마음대로 하세요!"
화가 난 설향은 언성을 높이고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더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조만간 불허에게 부탁을 해야겠군.`
그런 설향의 태도를 본 불속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불허에게 고개를 숙여야 될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