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 218. 북해로 떠나다-2
덜커덩 덜커덩
갑자기 마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으아아아"
운혜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당황한 것이다.
"무슨 일 인가요!?"
하지만 이내 신색을 바로 한 그녀는 마차를 몰고 있는 마부에게 소리를 쳤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갑자기 토끼가 튀어나와서 말이죠."
그녀의 타박에 바깥에 있던 마부가 송구스럽다는 듯 그녀에게 말하였다.
"토끼요?"
그때 옆에 있던 운혜가 그에게 물었다.
"예, 갑자기 마차 앞으로 뛰어들더군요."
"어떻게 됐는데요?"
"그냥 밟고 갔죠. 뭐"
"우웁"
마부의 말을 들은 운혜는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으로 토끼가 터지는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듯 했기 때문이다.
"피해야지, 그걸 왜 밟고 지나가요!"
그녀는 나름의 항변을 내뱉었다.
비록 환속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불자의 신분이었다.
그런데 어찌 살생을 방관할 수 있겠는가
"허허, 아가씨 원래 마차 운전 중에 동물이 튀어나오면 그대로 밟고 지나가야 합니다. 괜히 피하겠다고 고삐를 틀었다가는 마차가 전복됩니다."
그녀의 말에 마부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치만."
운혜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토끼 하나 살리자고 마차를 전복시킬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사매, 그만해."
그때 옆에서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있던 설향이 그녀에게 말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토끼 하나 살리자고 마차를 전복시킬 수는 없잖아."
"그치만.....너무 안타까워요."
설향의 말에 운혜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죄책감이 들었다.
자신들이 애초에 마차를 급히 몰지만 않았더라면 죽지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안타까워, 저걸 잡아먹었어야 하는데 그냥 냅두고 가네."
설향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운혜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설향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심이야, 사매는 토끼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지?"
설향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갓난 아기때부터 아미산에 틀어박혔던 운혜와는 달리 속세의 때를 듬뿍 묻은 채로 아미파로 입문한 설향이었다.
그런 설향에게 육식을 금하는 아미파의 식단은 지옥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창 골고루 먹고 클 나이에 어찌 육식을 금하고 채식만을 고집한다는 말인가?
자신이 여물이나 먹는 송아지도 아니고 말이다.
입문부터 식단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아미였다.
식단에 대해 큰 반감을 품게 된 설향은 개인 수련시간만 되면 산을 쏘다니기 시작하였다.
오로지 육식만을 행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걸리게 된다면 큰 벌을 받겠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그녀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애초에 마음도 없이 들어온 아미였기에 육식을 하다 쫓겨나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산을 쏘다니던 그녀는 어느 날 토끼를 발견하게 되었고 하루종일 뜀박질을 하며 토끼를 쫓았다.
하지만 그녀는 하루 온종일을 달려도 토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고작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잡기에는 토끼는 너무나도 노련한 상대였던 것이다.
설향은 절망하였다.
언제올지 모를 육식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 절망감은 설향에게 좋은 원동력이 되어버렸다.
다음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마친 그녀는 미친듯이 무공에 빠져들었고 이내 한달이 채 되지 않아 토끼 정도는 손쉽게 잡을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마침내 토끼를 잡은 그녀는 대충 손질을 마친 뒤 불을 피운 후 그대로 구워버렸다.
곧이어 노릇 노릇하게 익은 토끼고기가 그녀의 눈앞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녀는 입을 크게 벌려 토끼고기를 음미하였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설향은 눈물을 머금었다.
무려 입문한지 세 달만에 먹게된 고기였다.
더구나 한달이라는 시간 동안 오로지 토끼를 잡아 먹기 위해 쏟은 노력들이 조미료가 되어 토끼 고기의 맛을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들었다.
그 후에도 그녀는 시간이 날 때면 산을 쏘다니며 토끼를 잡아먹었고 항상 구워먹으며 행복에 몸부림을 쳤다.
물론 후일에는 사부인 구월신니에게 걸려 볼기짝을 흠씬 두들겨 맞았지만 말이다.
그런 설향에게 토끼는 오랜 추억이 서려있는 맛있는 음식일 뿐
그런 토끼를 그냥 냅두고 간다니 아까움이 묻어나는 것을 느꼈다.
"우우..사저....잔인해요."
운혜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찌 불문의 제자가 고기의 맛을 논한단 말인가?
그것도 귀엽고 깜찍한 토끼를 말이다.
"사매, 나는 속가제자라 괜찮아."
그런 운혜의 말에 설향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하였다.
"사저는 본산제자랑 같은 대우를 받잖아요."
운혜를 나름 항변하듯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러니까, 얼마나 좋니? 권리는 있는데 책임은 없잖아."
설향은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모습에 운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지었다.
언제봐도 제멋대로인 사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덜커덩 덜커덩
다시금 마차가 흔들렸고 운혜와 설향의 몸이 공중으로 살짝 부웅 떴다.
탁
"아얏"
엉덩이를 세게 부딪힌 것인지 운혜가 비명을 질렀다.
"괜찮아?"
그녀의 비명에 설향은 걱정스러운듯 그녀에게 물었다.
운혜는 고통이 가시지 않았는지 연신 엉덩이를 주물렀다.
"히잉.....마차를 타지말고 말을 타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말은 탈줄 알고?"
그녀의 말에 설향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마차도 처음 타보는 애가 말이 낫다는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차를 타는 것보단 낫지않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운혜는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를 말하였다.
"게다가 수색을 하려면 최대한 빠르게 가는 게 낫잖아요. 그런데 왜 굳이 마차를 타고 가기로 한 거죠?"
"짐을 실어야하니까."
"짐이요?"
"이번 수색 인원이 몇 명인지 알아? 자그마치 오 십에 가까운 인원들이야. 이 많은 사람들이 먹을 식량과 북해의 눈보라를 막아줄 천막과 침낭까지 모두 챙기려면 마차가 있는게 나아."
그녀의 물음에 설향은 담담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그럼 차라리 큰 수레를 끌고 가는 게 낫지 않나요?"
"표물 운송도 아니고 수레를 끌 정도로 짐이 많지는 않아."
설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였다.
"후우"
그녀의 말에 수긍한 운혜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으나 싫으나 마차를 타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사매가 봤을 때는 어땠어?"
"뭐가요?"
"있잖아, 그 장선우 대협말이야.."
설향은 운혜를 바라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냥 평범했는데요?"
그녀의 물음에 운혜는 별 생각 없이 말을 이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선우에 대한 인상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소문으로는 구척이 넘는 거구에 온 몸이 근육으로 꽉 들어차있는 거친 인상을 가진 남자라고 들었건만 실상을 보니 어디서든 볼 것 같은 평범한 인상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뭐 그렇다고 크게 못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출나게 생긴 것 또한 아니었다.
"평범하다니! 사매는 그 현묘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못 본거야!?"
그녀의 말에 설향은 발끈하며 소리를 쳤다.
운혜는 기억을 더듬으며 선우의 대한 인상을 떠올려보았다.
피곤에 쩔어있는 눈과 축 처진 몸 그리고 시무룩한 표정까지
어디가 현묘하다는 말인가?
"현묘하다기 보단 피곤에 절어 있던데요?"
"그럼 그 선명하게 잘 갈라져 있는 팔 근육과 잘 발달 된 튼실한 허벅지는!?"
"보통 그런데를 유심히 보지는 않지 않나요?"
그녀의 물음에 운혜는 당황한 듯 되물었다.
불문의 제자의 신분으로 대체 어딜 그렇게 보고 다닌단 말인가
".............."
그녀의 물음에 설향은 할 말이 없었는지 눈을 데굴하고 옆으로 굴렸다.
"후우...사저, 아무리 속가신분이라지만 사저는 아미의 제자예요. 남자를 그렇게 밝혀서야 되겠어요?"
운혜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밝힌게 아니야. 그냥 멋지다고 한거지."
"그게 그거죠. 세상천지 어떤 여자가 처음 보는 남자를 그렇게 낱낱이 훑어보나요?"
"대부분 여자는 그래."
"거짓말 하지마세요!"
그녀의 말에 운혜는 큰소리를 질렀다.
누굴 바보로 안단 말인가?
비록 어릴 때부터 출가한 몸이라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설향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눈치챌 수 있었다.
처음부터 사람을 훑어보다니 남녀를 떠나서 무척이나 예의 없는 짓이었다.
"사제는 아직 속세의 경험이 없잖아. 원래 한창때의 남녀가 서로를 훑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짝인지 확인해보는 거지."
설향은 확신에 찬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말도 안 돼요!"
"정말이라니까? 생각을 해봐. 서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야 연애를 하고 나중에 가서는 혼인까지 할 수 있지 않겠어?"
"그건..그렇지만.."
운혜는 설향의 말이 묘하게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을 느꼈다.
"입장을 바꿔서 사매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평생 같이 살면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목욕도 가고 다 할 수있겠어?"
"불제자한테 무슨 말을 하는거예요!"
"그러니까 가정이지, 만약 사매가 평범한 아낙이라고 가정하고 생각해봐. 어때?"
"........."
그녀의 말을 들은 운혜는 순식간에 얼굴을 붉혔다.
남자의 면역이 없는 불제자인 그녀에게 그런 가정은 너무나 자극적이었기때문이다.
"못..할..것..같아요."
운혜는 말을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그녀의 대답에 설향은 만족스러운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장소협을 그런 식으로 보는 건 잘못된 것 같아요."
"왜?"
"장 소협은 당서윤 여협과 정혼한 사이잖아요."
운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괜찮아, 나도 호기심이 든거지. 그를 어떻게 해보려는 게 아니니까."
운혜의 말에 설향은 대수롭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
물론 운혜는 의심스러운듯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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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아아암"
한 편 마차에 앉아있던 청수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연신 하품을 하였다.
하루종일 달렸건만 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졸리더냐?"
그 모습을 본 청송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잠이 오네요.....저희 언제쯤 쉴 수 있을까요?"
그는 힘이 빠진듯 말을 이었다.
"말도 쉬어야 하고 온밤중 산행은 위험하니 머지않아 쉬어갈 것 같구나."
"후우"
청송의 말을 들은 청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몇 달은 이리 가야 하거늘 벌써부터 엄살이더냐."
그때 옆에 있던 청길이 딴지를 걸었다.
앞길이 구만리건만 벌써부터 앓는 소리를 내는 청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였다.
"으으..끔찍해."
청길의 말을 들은 청수는 끔찍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의 말대로 이제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상태로 몇 달은 가야한다고 하니 끔찍함이 몰려들었다.
"차라리 말을 타고 가면 안되는 겁니까?"
청수는 사형제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엉덩이만 딱 붙인 채 풍경만 바라보는 것이 지친 탓이었다.
적어도 말을 타고가면 지루함은 덜하리라
"그건 힘들게다. 애초에 북해의 외풍은 맨몸으로 견딜만한 것이 아니다. 마차가 없으면 진입조차 힘들게다."
그의 물음에 청송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의 말대로 북해의 추위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몇 달을 북해에서 죽치고 지낼지 모를 판국에 이동수단이자 외풍을 막아줄 막이 역할을 할 마차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에휴"
청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마차를 타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그나저나 장 소협을 보았느냐?"
청송은 화재를 돌릴 겸 장선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장선우 소협이요?"
그의 물음에 청수가 의아한듯 되물었다.
"그래, 용봉을 홀로 격퇴한 장선우 소협말이다."
"보긴 봤는데.....그렇게 엄청 강하다는 느낌은 못받았어요."
청수는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거리더니 이내 느낀 그대로를 말하였다.
"그래?"
청송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본산을 떠나기 전만 해도 가르침을 받을거라면서 기대에 차있던 모습과는 전혀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청길은 어떠했느냐?"
청송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청길에게 물었다.
"저 또한 특출나게 강하다는 인상은 못 받은 것 같습니다."
"으음"
그들의 말을 들은 청송은 턱끝을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선우에 대한 기억을 상기하기 시작하였다.
모나지 않은 얼굴 탄탄한 대흉근, 쇠줄을 꼬아 만든듯한 촘촘한 근육 그리고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튼튼한 대퇴근까지
겉모습만 봐도 상당히 단련된 무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에게서는 엄청난 위압이나 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공의 고수인가?`
하지만 청송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남만야수궁의 궁주라면 모를까.
외공만으로 용봉들을 전부 압도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청송의 표정이 더욱 한없이 진지해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선우에 대한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