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217. 북해로 떠나다-1
채비를 마친 선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옆을 보니 옥령이 잠들어 있었다.
선우는 옥령의 입가에 입술을 맞췄다.
쪽
그리고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이제 가시는 건가요?"
그때 뒤편에서 옥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잠이 깬듯싶었다.
"미안 나 때문에 깼어?"
"아니요. 사실 깨어 있었어요."
그의 물음에 옥령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깨 있으면 말하지... 한 번 더할 걸 그랬네."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지금도 늦지 않았답니다."
옥령은 은근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구미가 당기긴 하는데, 역시 안 되겠어."
선우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왜죠? 벌써 제가 질리신 건가요? 흑흑"
옥령은 짐짓 우는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알면서 왜 그래. 지금 준비해도 상당히 늦었다고."
그녀의 장난에 선우는 옅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아침부터 출발하기로 한 수색단이었다.
지금 당장 씻고 나가지 않으면 늦어버리리라
"그럼 같이 씻어요."
"욕탕이 좁다고 싫어하지 않았어?"
선우는 의아한 듯 그녀에게 물었다.
같이 씻자고 하면 언제나 욕탕이 좁다며 거절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같이 씻자고 권유를 한다.
"이제...반년은 보지 못하잖아요.....그리고 배웅도 할 수 없고요."
선우의 물음에 옥령은 상당히 슬픈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아까 거짓으로 우는 척을 하던 때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선우는 가슴이 아파져 오는 것을 느꼈다.
옥령은 그 존재가 알려져서는 안 되었기에 선우를 배웅할 수 없었다.
드물긴 하겠지만, 만약 수색단으로 온 이들 중 그녀를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옥령의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옥령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면 당가에는 재앙이 찾아오리라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선우는 옥령에게 말하였다.
배웅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이다.
물론 그녀는 그 설움에 펑펑 울긴 했지만,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낸 탓인지 어느 정도 설움이 가라앉은 듯하였다.
저벅 저벅
선우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와락
그리고 그녀를 품 안에 쏙 안았다.
따뜻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옥령,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마"
선우는 그녀를 더욱 끌어당기며 말을 이었다.
"너무...오래 기다리게 하진 말아주세요…."
옥령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받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은 채 오래도록 서 있을 뿐이었다.
**********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이오!"
운적자는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인상은 무척이나 찌푸려져 있었다.
벌써 집합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장선우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화가 난 탓이었다.
"사람을 보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당서윤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망할새끼 진짜`
물론 속으로는 선우에 대한 욕을 한바가지 쏟고 있었지만 말이다.
독왕의 제자이자 자신의 정혼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행동 하나하나가 당가의 얼굴이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제대로 인지를 못 한 듯싶었다.
`후우`
하지만 이내 그녀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마냥 욕할 수 없다는 마음 또한 올라왔기 때문이다.
지금 가면 반 년 동안은 얼굴을 못 볼 텐데 어찌 그리 쉽게 헤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두리번 두리번
한편 설향은 주위를 열심히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였다.
혹여 선우의 모습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사저 뭐 하세요."
그때 옆에 있던 삼대제자 운혜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말 걸지 마 바빠."
설향은 운혜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버리고 더욱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 어디서 장선우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탁 탁 탁
그때였다.
어디선가 그녀의 귓가에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설향은 재빨리 발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수색단을 향해 뛰어오고 있는 젊은 남자의 모습을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습니다."
이내 수색단의 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한 남자는 재빨리 사과하였다.
"자네가 혹시 장선우 소협인가?"
남자의 사과를 들은 운적자는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장선우입니다."
운적자의 물음에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수색단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기 시작하였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최고의 후기지수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설향 또한 눈을 빛내며 장선우를 쳐다보았다.
선우는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그저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
설향은 눈을 빛내며 선우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가 왔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일 먼저 확인해본 것은 그의 얼굴이었다.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예측을 해볼 요량이었다.
`일단 생긴 것은 나쁘진 않네.`
그녀는 선우의 얼굴을 흘겨보며 깊은 생각을 해보았다.
절세미남은 아니나 딱히 모난 구석 또한 없는 얼굴이었다.
얼굴을 확인해본 그녀는 슬며시 목아래로 시선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가슴쪽으로 시선을 내리니 적당히 튀어나온 그의 흉곽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탄탄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흉곽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어 잡념을 없앤 후 이번에는 팔을 살펴보았다.
선우의 팔은 마치 쇠줄을 꼬아서 만든 듯한 탄탄한 근육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쫙쫙 갈라져있는 모습이 그녀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들었다.
두근 두근
`나대지 말랬지!`
그녀는 심장에게 소리를 한 번 지르고는 다시 시선을 찬찬히 아래로 내렸다.
이번에 그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튼튼한 허벅지였다.
너무 굵지도 그렇다고 얇지도 않은 탄탄하기 그지없는 허벅지였다.
저 하체에서 뻗어나오는 힘은 분명 어마어마하리라
꿀꺽
설향은 저도 몰래 침을 꿀꺽 삼켰다.
육체적으로 완성형에 가까운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아아아`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에 온통 선우의 몸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
한편 선우는 자신의 몸을 훑듯 쳐다보는 여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옆으로 살짝 휘어 있는 장난기 가득한 눈매 , 곱게 빗은 묵빛의 머릿결 그리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오똑한 코, 제철 사과처럼 반짝이는 입술까지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선우조차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녀는 음흉한 시선으로 선우를 훑었는데 그 시선을 느낀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선우와 그녀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선우는 그녀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녀 또한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그녀의 귓불은 무척이나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이제 올 사람은 온 것 같으니 출발하도록 하겠네."
선우가 수색단의 사람들과 어느 정도 인사를 마친 것을 확인한 운적자는 그렇게 선언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버렸다.
더 이상 지체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 알겠습니다."
선우는 그에게 대답한 후 그대로 몸을 돌렸다.
가기 전에 모두와 작별 인사를 할 요량이었다.
마차 근처에는 당서윤을 비롯한 요랑 ,금적화, 당대부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올게."
선우는 그녀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요랑은 천천히 손을 든 후 선우에게 살랑살랑 흔들었다.
지금 선우는 대외적으로 당서윤의 정혼자인 신세였기 때문에 다른 여인들의 과한 배웅을 삼가해야 하였다.
그렇기에 선우는 요랑과 당대부인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평소처럼 행동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말이다.
다행히 요랑은 어제 한 약속을 제대로 기억한 것인지 평소처럼 안기기는커녕 손만 열심히 흔들 뿐이었다.
선우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녀가 얼마나 포옹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던 그였다.
그런 그녀에게 포옹 한 번 제대로 못 해준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당대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내색하고 있지는 않지만, 무척이나 슬픈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속으로는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다.
`후우`
선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된 이별조차 못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선우는 금적화를 보았다.
그녀 또한 선우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선우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없는 동안 다른 이들을 부탁한다는 신호였다.
그녀 또한 선우를 마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는 그제야 안심하였다.
분명 금적화라면 상심한 당대부인을 충분히 달래주리라
선우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당서윤을 바라보았다.
무림에 떨어지고 처음으로 친애의 정을 느꼈던 유일한 친구
힘들 때면 항상 힘이 되어주었던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선우는 나름 애틋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뭘 봐"
그러자 당서윤은 그런 선우의 시선이 민망했는지 불퉁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피식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하나도 바뀐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뻐서."
선우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알아."
그런 선우의 말에 당서윤은 새침하게 말을 이었다.
순간 선우는 유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와 대화를 하니 당가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막막하던 감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서윤아."
선우는 당서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뭐."
"항상 고맙다."
"흰소리할 거면 꺼져."
"왜 그렇게 매정하냐?"
"넌 왜 그렇게 실없는데?"
당서윤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가볼게."
"다치지 말고 와."
"응"
대답을 마친 선우는 그대로 뒤를 돌아버렸다.
더 이상 말을 이었다가는 헤어지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우`
선우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그대로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당서윤은 그런 선우의 뒷모습을 그저 슬픈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수색단을 태운 마차는 빠르게 대로변을 달려나가기 시작하였다.
늦은 만큼 서둘러야 한다는 운적자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마부들은 최선을 다해 마차를 몰았고 마차는 빠르게 북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덜컹 덜컹
"우웁"
한편 덜컹 거리는 마차가 익숙지가 않는지 삼대제자인 운혜는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평생을 산에서만 보냈던 그녀였다.
마차따위를 타본 적이 있을 리 만무하였다.
"아앗, 토할 거면 밖에 보고 토해!"
그리고 그런 운혜의 모습을 지켜보던 설향은 몸서리치며 그녀에게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혹여나 토사물이라도 묻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우....사저 너무해요."
설향의 소스라치는 반응에 운혜는 상처를 받은듯 눈물을 글썽였다.
사제가 멀미때문에 힘들어하면 등이라도 두드려줘야 하건만 설향은 혹여 자신에게 토사물이 튈까 두려워 운혜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운혜에게 상처가 되었다.
"너야말로 너무하다. 대체 마차를 얼마나 안 타봤으면 한 번 타봤다고 멀미를 해?"
"우읍...한..번도요.."
"진짜!?"
운혜의 대답에 설향은 놀랍다는 듯 되물었다.
오대거부 중 하나인 설씨세가의 고명딸로 태어난 그녀였다.
아미에 입문하기 전까지 외출할 때면
자신의 발로 걸을 거리보다 마차로 굴러간 거리가 더욱 많을 정도로 마차만을 타고 다녔던 그녀였다.
오죽하면 어릴 적 별명이 삼보도 못 가 마차를 탄다 하여 삼보마차라 불리웠겠는가
그런 그녀에게 마차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았다는 운혜의 말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 멀미를 하는 운혜가 가여워 보이기 시작하였다.
`불쌍하게도 팔두마차가 없었구나....팔두마차가 없으면 육두마차를 타면 되거늘...`
안타까움이 든 그녀는 운혜에게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등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고..고마워요 사저."
운혜는 그런 설향의 행동이 감동을 받은 것인지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움을 표하였다.
토닥 토닥 토닥
그녀의 토닥임은 운혜의 상태가 진정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
한편 청성에는 삼대제자이자 청자배 항렬의 막내인 청수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흐흐흐흐흐흐"
그 모습을 보던 청자배 항렬의 맏형인 청송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리도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도 좋더냐?"
"당연하지요! 사형! 방금 보셨지 않습니까! 여자라고요! 여자!"
청수는 청송을 바라보며 흥분한 듯 말을 이었다.
"도사로서 품위를 지켜라 청수"
그때 옆에 앉아있던 깐깐한 성격의 청길이 청수를 타박하였다.
"청성이 비록 세속적인 성향이 강하다고는 하나 엄연한 도문이다. 어찌 여색을 멀리해야 할 도사라는 놈이 여자를 보며 정신을 못 차린단 말이더냐!"
청수를 노려보는 청길의 눈빛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네에.."
청길의 타박에 기가 죽은 청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들떴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청길아, 너무 청수를 타박하지 말거라. 십 년만에 처음으로 본산을 벗어났을 텐데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때 맏형인 청송이 청수의 편을 들며 말을 하였다.
"하지만 사형, 어찌 도사라는 녀석이 품위 없게 여색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청성의 얼굴입니다. 행동 하나하나 언행 하나하나 전부 중요시해야 합니다."
청길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청송에게 말을 이었다.
"그러는 너도 아까 아미파 여제자들을 흘깃거리며 훔쳐보지 않았더냐?"
그런 청길의 말에 청송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제...제가! 언제 그랬다고 하십니까!"
청송의 짓궂은 말에 청길은 발작하듯 답하였다.
"이거 화내는 걸 보니 수상한데?"
그리고 그런 청길의 반응에 청송은 더욱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놀렸다.
그러자 청수는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활짝 웃음꽃을 피웠다.
마차 안에는 화기애애한 기운이 흘러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