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 216.흉마凶魔 주도산-2
흉마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변하였다.
충격적인 사실에 표정관리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북궁연은 고작 스물 여덟 정도 밖에 안되었다.
이립도 안된 나이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어찌 화경이라 불리우는 절대지경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인가.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말도 안 되오! 어찌 그런 어린 계집이 화경의 경지에 올라섰다는 말이오!"
"천무맹주와 검황 또한 비슷한 나이에 오르지 않았는가?"
그의 반응에 이연은 모르겠다는 듯이 답하였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다르오! 이재원은 천재였고 양태산은 구대문파의 모든 절기를 이어받은 공동전인이었소!"
그의 말에 흉마는 거칠게 반박을 하였다.
이재원은 무림사에 다시 없을 천재였고 양태산은 갓난아기때부터 벌모세수와 개정대법같은 시술을 통해 만들어진 정파의 결전병기였다.
태생부터가 남다른 괴물들이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어찌 무공을 가르쳐줄 아비는 물론 안전을 책임져줄 문파조차 잃어버린 그녀가 화경에 올랐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쯔쯧"
그의 말을 들은 이연은 혀를 찼다.
질투에 눈이 가려 현실을 부정하는 꼴이 한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다르지 않다. 그녀는 강했고 화경에 경지라 칭할만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젠장"
흉마는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그때 제대로 잡아 죽이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기 때문이다.
흉마는 북해빙궁을 멸문시켜버린 주범이었다.
그런 흉마를 북궁연이 가만히 냅둘 리 없었다.
물론 화경의 끝자락에 다다른 자신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성가신 일이 생긴 것은 확실하였다.
흉마의 표정은 더더욱 험악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녀로부터 빙정의 위치를 알아내라."
이연은 담담한 어투로 흉마에게 말하였다.
"순순히 말해주지 않을 것이오."
흉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빙정은 북해빙궁의 보물이다.
그런 빙정의 위치를 말해줄 리 없지 않은가?
"아무리 심지 굳은 무인이라도 고문에는 당해내지 못하는 법이지."
"애초에 그녀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아내라고 말하는 것이오?"
흉마는 이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북해호(北海湖)부근이다. 아마 그쯤 어디에 있겠지."
"어째서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오?"
흉마는 의문이 담긴 물음을 던졌다.
위치까지 알고 있다면 본인이 직접 가면 되는 것을 어찌 자신에게 명령을 한단 말인가
"닭 잡는 일에 어찌 용을 잡는 칼을 쓰겠는가?"
"뭐라?!"
이연의 오만한 말에 흉마는 저도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그 말인즉슨 자신이 닭이나 잡는 칼과 마찬가지라는 소리가 아니던가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본디 쓰임새에 맞는 일이 있는 법이지."
으득
그의 말을 들은 흉마는 이를 갈았다.
오만하지만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기에 반박할 말이 없었다.
현경에 다다른 그가 고작 화경에 불과한 북궁연을 잡으러 북해호까지는 가는 것은 심각한 전력 낭비였다.
이연은 혼자서 북방의 수많은 오랑캐들을 감당하고 있는 이였다.
그런 자가 북해에서도 제일 북쪽 끝자락에 있다는 북해호(北海湖)까지 갔다간 그대로 전선이 뚫려버릴 수도 있었다.
오늘 북해빙궁을 방문한 것도 상당한 무리를 한 것이리라
"그리고 네놈이라면 거절을 안 할 테니까."
"어찌 그리 생각하시오?"
"너는 그녀의 원수지 않느냐? 그녀가 더 강해지기 전에 싹을 제거해야 할 텐데?"
이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흉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발`
하지만 기분이 더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게 뭘 줄 것이오?"
"무슨 말이지?"
"만약 빙정을 가져다 드린다면 내게 뭘 주겠다 물었소."
흉마는 담담한 말투로 그에게 말하였다.
"살려주지."
흉마의 말에 이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뭐,뭣!?"
그의 말에 흉마는 당황한 듯 되물었다.
"중원에서 수백 수천의 민초들을 살해한 희대 살인마 주도산."
이연은 탁하기 그지없는 회색 빛의 눈으로 흉마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흉흉한지 흉마는 몸이 조금씩 떨리는 것을 느꼈다.
"특별히 살려주마. 대신 빙정을 가져오지 못하였을시에는 즉결 처분해주지."
부들 부들
이연의 말에 흉마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말 몇마디로 제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빙정을 손에 넣으려는 심보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개같은 새끼`
하지만 흉마는 그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 따위는 단숨에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거절을 한다면 그대로 목이 따여버리리라
흉마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흉마의 고분고분한 태도가 마음에 든 것인지 이연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의 미소를 본 흉마는 속으로 수천가지의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
"고생하셨습니다. 장군!""
이연이 진지로 복귀하자 부장인 강패가 그의 귀환을 반기었다.
"강 부장"
이연은 그런 강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명하십시오!"
"흉마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만약 그가 배신할 낌새가 보이면 그대로 목을 쳐버려라."
이연은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연은 애초에 흉마를 믿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도 없이 수많은 민초들을 살해한 그를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지금이야 협박에 굴하긴 하였지만, 막상 빙정이 손에 들어오게 되면 곧바로 안면을 바꿔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만일의 사태를 위한 대비가 필요하였다.
쿵
"명을 받들겠습니다!"
부장 강패는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더니 큰 소리로 소리쳤다.
그 모습에 이연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장인 강패정도라면 적어도 흉마를 견제할 정도의 실력은 되리라
그 또한 화경에 다다른 고수이니 말이다.
이연의 눈빛이 더없이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
북해 끝자락에 있는 북해호에는 눈이 오랜 시간 동안 녹지 않고 쌓여 단단한 얼음층을 형성하고 있는 빙하지대가 위치하고 있다.
이 빙하지대에는 수많은 얼음 동굴들이 있었는데 빙하의 일부가 여름 동안 녹으면서 생긴 물길이 빙하를 녹여 얼음 동굴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이 수많은 동굴 중 가장 깊고 가장 한기가 가득 한 동굴에는 한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여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는데 눈처럼 하얗기 그지없는 백설과도 같은 머릿결 그리고 백옥보다 하얀 피부, 오똑한 코 , 붉은 입술까지 마치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빼다 박은 듯한 여인이었다.
여인의 주위에는 눈처럼 하얀 기운들이 유영하며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구름 위에 있는 선녀를 연상케 하였다.
스스스스스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그녀 주위에 떠다니던 기운들이 그녀의 몸을 둘러싸기 시작하였다.
스스스스스
이내 몸을 둘러싸던 기운들은 그대로 그녀의 몸 안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번쩍
그리고 공중에 떠다니던 모든 기운들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눈을 곱게 감고 있던 여인의 눈이 번쩍하고 뜨여졌다.
눈을 뜬 여인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보았다.
우득 우득
그러자 뼈마디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너무 오랫동안 운기조식을 행한듯싶었다.
목을 어느 정도 푼 그녀는 이번에는 양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몸을 점검해보았다.
아귀힘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것을 느꼈다.
그다음 그녀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쩌쩌저저저적
그러자 손을 휘저은 방향에 따라 공기 중에 있는 수분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얼마지나지않아 얼어붙은 수분들은 끝이 뾰족한 얼음기둥이 만들어졌다.
그 모습을 본 여인, 북궁연은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빙정을 온전히 흡수해내었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힘을 더욱 시험해보고 싶다고 말이다.
그녀는 동굴 입구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사박 사박
그리고 천천히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힘을 제대로 시험하기엔 동굴이 너무나 비좁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녀는 동굴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휘이이이이이이잉
밖을 나오니 바다라해도 믿을 정도로 거대한 호수가 그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북해호(北海湖)였다.
그녀는 북해빙궁의 비전 무공인 천음빙백신공(天陰氷白神功)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녀의 주위에 어마어마한 냉기의 바람이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이내 냉기의 바람은 눈보라가 되어 주위에 모든 것을 뒤덮었다.
휘이이이이이이잉
세상을 뒤덮은 거센 눈보라가 북해호를 감쌌다.
북궁연은 손바닥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눈보라의 냉기를 손바닥에 압축하기 시작하였다.
쇄애애애애애애액
휘몰아치던 눈보라들이 그녀의 손바닥 안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북해호를 뒤덮고 있는 모든 눈보라가 그녀의 손바닥 안에 빨려 들어갔다.
그녀의 손바닥은 눈처럼 하얗기 그지없는 백색의 기운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내 그녀는 북해호를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쇄애애액!!!
그러자 손바닥에 있던 압축된 냉기가 순식간에 북해호를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적
그리고 뻗어 나간 냉기는 그대로 북해호를 얼려버리기 시작하였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적!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내뿜은 냉기는 웬만한 마을 정도 되는 면적을 얼리고 나서야 겨우 멈춰졌다.
"후우..후우..후우"
냉기를 쏘아 보낸 북궁연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빙정을 흡수한 그녀라지만 이만한 냉기를 한 번에 쏘아냈으니 몸에 무리가 안 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미소를 감추지 못하였다.
말도 안 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웬만한 마을 정도 되는 면적을 한 번에 얼려버릴 정도의 냉기라니
북해빙궁 사상 최고의 고수라는 북궁걸 또한 이만한 힘을 가지진 못하였을 것이다.
북궁연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사박 사박
힘을 얻었으니 이제 더 이상 이곳에는 볼일이 없었다.
이제 이 강대하기 그지없는 힘으로 처절한 피의 복수를 행할 것이다.
사박 사박
복수의 대상은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북해빙궁을 멸망시켰던 원흉인 흉마였다.
그는 빙궁의 주 전력이 빠져버린 틈을 타 빙궁을 그대로 집어삼켜버렸다.
그리고 그 집어삼키는 과정에서 남자들은 그대로 죽여버리고 여인들은 모두 간살해버렸다.
그리고 간살당한 여인 중에는 북궁연의 어미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으득
북궁연은 이를 으득하고 깨물었다.
상상만해도 어마어마한 분노가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미의 희생 덕분에 비밀 통로로 탈출한 그녀였지만 뒤편에서 울려 퍼진 어미의 신음과 비명소리가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았다.
북궁연은 흉마를 죽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말이다.
태어난 것을 후회할 정도로 말이다.
사박 사박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를 끝마친다면 또 다른 원수를 찾아갈 것이다.
수많은 북방의 이민족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학살자.
주관 따윈 없이 오직 황제의 명만을 따르는 황제의 개.
무림고수들조차 벌벌 떤다는 금의위나 동창조차 눈 아래로 보는 황궁 최고의 고수.
황궁제일검(皇宮第一劍)
이연을 말이다.
`기다려라.`
그렇게 복수자는 원수를 찾아 떠나갔다.
*************
두근 두근
설향은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킨 후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당가로부터 장선우가 수색대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였다.
심장이 두근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빨리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그녀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터업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뒷덜미를 잡은 한 손길에 의해 제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도끼눈을 뜬 상태로 고개를 뒤로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뒤편에는 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불허사태의 모습이 보였다.
"어딜 가려고"
"빨리 가서 인사드려야죠!"
설향은 불허사태를 흘깃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길을 알고?"
".............."
물론 몰랐다.
사천에 처음 온 그녀가 지리를 알 리가 없었다.
"길도 모르면서 어딜 앞장서서 간다는거니?"
불허사태는 그런 설향을 바라보며 얄궂은 미소를 지었다.
"물어보면 되죠, 설마 성도에 당가의 위치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그게 무슨 창피야!"
불허사태는 그녀의 반박에 콧방귀를 뀌었다.
"창피라뇨! 배움에 어찌 부끄러움이 있을 수 있겠어요!"
"아미의 제자가 당가가 어디있는지 모르는 것은 충분히 창피하거든?"
"초행이면 모를 수도 있죠!"
"됐어! 말대꾸하지 말고 뒤나 따라와!"
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설향은 무어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내 볼을 살짝 부풀린 채 그녀의 뒤꽁무니를 따라갔다.
앞서가다 헤매는 것보다는 길을 아는 불허사태를 따라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르르르
그리고 그녀들의 뒤를 따라 열다섯이나 되는 아미의 제자들이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모두 수색단에 뽑힌 인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