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213. 속가제자 설향-3
결단을 내린 구월신니는 설향에게 본산제자 중에서도 재능이 빼어난 이에게만 전수해준다는 난피풍검법(亂披風劍法)을 전수해주었다.
다른 이가 채가기 전에 미리 침을 발라두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속가제자에 불과한 설향에게 아미의 진산절기를 전수한 것은 질타받는 것은 물론 심할 경우 장문인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희생으로 아미의 영광이 서리게 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락보다는 용서가 더 쉽다고 했던가
어차피 그녀가 건의를 해봤자 고루하기 짝이 없는 장로들의 허락이 쉽게 떨어질 리 만무하였고 그럴 바엔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향이 난피풍검법(亂披風劍法)을 익히게 된 사실이 아미파 전역에 퍼지게 되었고 아미파는 난리가 나게 되었다.
속가제자와 본산제자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바로 무공이었다.
그런데 이런 무공을 탈속도 안한 제자에게 멋대로 전수해 버린 것이다.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구월신니를 비판하였고 그녀를 장문인의 자리에 끌어내려야 한다며 소리를 높였고 아무리 몰랐다 하더라도 난피풍검법(亂披風劍法)을 멋대로 익힌 설향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일각에서는 설향이 중원 오대 거부 중 하나인 설씨세가의 자식이라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조차 나오기 시작하였다.
구월신니의 섣부른 판단이 수많은 이들에게 분노를 야기한 것이다.
그런 수많은 비판들이 구월신니를 압박하였지만 구월신니는 한치의 후회도 없다고 주장하였고 그녀의 말은 아미의 장로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게 되었다.
장문인이라는 작자가 어찌 저리 생각이 없다는 말인가?
그들은 물었다.
어찌 설향에게 본산의 무공을 전수한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구월신니는 답하였다.
저 아이가 아미의 영광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이다.
말을 마친 구월신니는 그들에게 제안하였다.
설향의 무공을 직접 보게 된다면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아미의 장로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제 막 난피풍검법(亂披風劍法)을 입문한 아이가 무엇을 보여준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녀들의 생각은 설향의 검무를 보고 단번에 바뀌게 되었다.
그녀들이 느낀 것은 경악이었다.
고작 열 네 살 밖에 안되는 아이가 휘두르는 검무에서 경악을 느낀 것이다.
검이 울렸다.
그것도 맹렬하게 말이다.
저 모습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고작 열 네살의 나이에 일류경에 들어섰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도 속가제자만 익힌다는 소청기공만으로 말이다.
거기다 그녀가 휘두르는 난피풍검법(亂披風劍法)은 이제 막 익혔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미의 장로들은 온 몸이 전율하는 것을 느꼈다.
열 네살이라는 나이에 일류경에 도달한 아이였다.
그것도 소청기공이라는 하급심법으로 말이다.
만약 저 아이에게 아미의 진산절기를 전수해준다면 얼마나 강해지겠는가?
찬란한 미래가 보이는 듯하였다.
아미파의 장로들은 설향에게 환속을 요구하였다.
무공을 몰래 익힌 것은 불문으로 부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하지만 설향은 그녀들의 제안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어찌 멀쩡한 아녀자에게 멋대로 무공을 가르쳐놓고 비구니를 만든단 말인가?
장로들은 그녀를 협박도 해보고 어르고 달래도 봤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국 그녀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속가의 신분으로 본산의 진산절기를 익히는 것을 말이다.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나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이 장로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대신 조건이 붙었다.
향후 무림에서 활동할 경우 아미의 이름을 달아야 한다는 조건과 비록 속가 제자의 신분이나 대우는 본산제자와 똑같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이 제시한 조건에 설향은 한참을 고민하였지만 이내 수락을 하였다.
속가의 신분으로 본산의 무공을 익힌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을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미파에는 규범 외의 존재가 탄생하게 되었다.
**********
"설향!"
불허사태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설향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녀를 데려오라는 장문인의 지엄한 명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설향!"
그녀는 다시금 목이 터져라 설향을 불렀다.
설향을 찾아돌아다닌지도 벌써 한 시진이나 되었다.
그런데 설향은 땅에 꺼진 것인지 아니면 하늘로 솟은 것인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불허사태는 더욱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껏 찾아다녔는데 안 나오는 것을 보면 어딘가 숨어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눈치만 빨라가지고.`
불허사태는 속으로 혀를 찼다.
무슨 일을 시킬라치면 귀신같이 숨어버리는 설향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허사태는 골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설향은 타고난 감각이 무척이나 발달되 있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이 모든 것들이 말이다.
그녀가 작정하고 숨는다면 아무리 불허사태라 해도 찾을 방도가 없었다.
"설향! 정말 중요한 일이다! 장문인께서 너를 직접 불렀어!"
불허사태는 허공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설향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불허사태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장문인의 명임을 말했음에도 나오지 않는 그녀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후우"
하지만 이내 그녀는 치밀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혔다.
만약 여기서 화를 낸다면 설향은 더더욱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란 것을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본산을 내려갈 일이 생겼다! 그리고 장문인께서 너를 추천하셨지! 지금 안 나오면 너 말고 다른 아이를 보내겠다."
그녀는 다시금 허공을 향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설향이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말을 마친 불허사태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장문인이 기거하고 있는 불연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불허사태는 머지않아 불연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불연각에 도착한 그녀는 거침없이 장문인이 머물고 있을 집무실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리 머지않아 집무실 문 앞에 들어설 수 있었다.
"후우"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내쉬고는 그대로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누구더냐?"
문을 두드리니 구월신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허입니다."
`들어오거라."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불허사태는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문을 밀어 넣었다.
끼이이익
낡은 경첩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불허사태는 시선을 돌려 내부 전경을 살펴봤다.
그리고 불연각 내부에 구월신니외에 다른 손님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흑단처럼 고운 머릿결과 장난기 가득한 눈매 그리고 오똑한 코와 앵두같은 입술
불허사태는 저 앙큼하게 생긴 여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어멋, 사저 어쩐 일이신가요?"
설향이었다.
빠직
불허사태는 이마에 핏줄에 서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찾아 한 시진이나 돌아다닌 것이 상기되었기 때문이다.
"사매, 어디가 있던 거야?"
그녀는 속으로 화를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어디라뇨? 저는 쭉 사부님 곁에 있었는데요?"
설향은 모르겠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말고 한 시진 전에 말이야."
"아아 그때요?. 제가 선잠이 많아서 깜빡 잠들고 말았답니다."
설향은 앙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저만의 비밀 장소가 있어요. 제가 잠버릇이 고약해서 남한테 보여주기 좀 그렇거든요."
그녀는 부끄러운 듯 몸을 배배꼬며 말을 이었다.
누군가 본다면 그 귀여움에 현혹되고 마리라
"거기가 어딘데?"
"비밀 장소라니까요? 사저한테 말하면 비밀이 아니게 되잖아요?"
설향은 방긋 웃으며 불허사태에게 입을 열었다.
으득
그리고 불허사태는 뻔뻔한 설향의 모습에 이를 갈았다.
웃는 낯으로 약을 올리니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화를 천천히 가라앉혔다.
장문인이 있는 자리에서 함부로 언성을 높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으득
`나중에 보자.`
물론 속으로는 후일을 기약했지만 말이다.
똑 똑
그때 갑자기 집무실 문이 두드려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더냐."
"불속입니다."
구월신니의 물음에 불속사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거라"
끼이이익
구월신니의 명이 떨어지자 집무실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회색 가사의를 입은 불속사태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불속은 전경을 살폈다.
그리고 고운 아미를 찌푸리게 되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신색을 곧바로 회복하고 장문인이 앉아있는 책상 앞에 섰다.
장문인 앞에서 사적인 감정은 배제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모두 모였구나."
구월신니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어찌하여 너희들을 불렀는지 아느냐?"
"본산을 내려갈 일이 있어서 부른 것이 아니던가요?"
그녀의 물음에 설향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맞다, 그럼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아느냐?"
"제대로 듣지는 못하였으나 예상가는 바가 있어요."
구월신니의 물음에 설향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북해라고 생각해요."
사부의 물음에 설향은 공손한 자세로 답하였다.
"호오,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별안간 사저들과 제가 본산으로 내려갈 정도의 일이라면 북해에서 일어난 실종사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오"
설향의 말을 들은 구월신니는 감탄성을 내뱉으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통찰력마저 완벽한 제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누가되었든 예상할만한 일이긴 하였지만,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 구월신니에 눈에는 세상에 다시 없을 천재처럼 보였다.
"그래서 네 의견은 어떻더냐?"
"당연히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 비록 속가제자의 신분이기는 하나 엄연히 아미파의 은혜를 입은 몸이에요. 어찌 은혜를 갚을 길을 마다하겠어요?"
사부의 물음에 설향은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구월신니는 그녀의 말에 감격한 듯 촉촉한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냥 어린아이인줄 알았건만 이렇듯 사문에 대한 애정이 짙게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구월신니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설향에게 다가간 후 그녀를 품 안에 꼬옥 안아주었다.
누가봐도 따스한 사승관계로 보이는 장면이었다.
물론 불허 사태와 불속 사태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장면이었지만 말이다.
그녀들은 설향이 이타심이 넘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착하기만 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그런 그녀가 사문이 어쩌고 은혜가 어쩌고 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을 수 밖에 없었다.
"사..부님..숨..막혀요오오."
구월신니에게 안긴 설향은 숨이 막힌듯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미안하구나. 내가 너무 세게 안았구나."
"헤헤, 그래도 사부님 품이 아늑해서 좋았어요."
그녀의 사과에 설향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말이라도 고맙구나."
설향의 말에 구월신니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는 제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크흠, 아무튼 너희들은 수색대에 참가를 하게 될 것이다. 실종된 아미의 제자들을 찾기 위해서 말이지. 그리고 가기 전에 당부의 말이 있어. 이렇게 너희들을 부르게 되었단다."
구월신니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전할 말은 하나다. 만약 실종된 이유에 외부세력이 개입되어 있다면 손속을 아끼지말거라."
"손속을 아끼지 말라면...?"
"살계를 범하여도 된다는 것이다."
구월신니는 굳은 표정으로 그녀들에게 말하였다.
"............"
"..........."
그녀의 충격적인 발언에 장내에 있는 제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어찌 아미파라는 거대 불문의 장문인이라는 사람이 살계를 범해도 된다고 허락한단 말인가?
"녹록한 태도로 살아남을 정도로 북해 무림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곧바로 검을 꺼내 들고 적의를 보이는 자가 있으면 죽음으로서 갚아주거라."
구월신니는 단호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
깐깐한 성격의 불속은 뭐라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장문인의 눈빛이 워낙 살벌하여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하였다.
"알겠느냐?"
구월신니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명을 따릅니다.""
구월신니의 물음에 그녀들은 일제히 답을 하였다.
"좋구나."
그녀들의 답을 들은 구월신니는 그제야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들의 대답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운듯하였다.
"내 말을 이만하면 되었다. 뭐 궁금한 것은 없더냐?"
구월신니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부님."
그때 설향이 손을 들고 구월신니를 불렀다.
"그래, 뭐가 궁금하더냐?"
"혹여 북해행으로 가는 경비는 어떻게 책정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경비 관련된 부분은 고맙게도 당가쪽에서 부담해준다고 하더구나. 아마 가는 내내 돈 걱정은 없을 것이다."
"그럼 당가와 청성에서는 어떤 이들이 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직은 확답을 들은 게 없구나. 일단 기별을 보내놨으니 그들도 걸맞은 자들을 보낼 것이니라."
"그렇다면 혹여 장선우 대협이 올 수도 있는 건가요?"
설향은 눈을 반짝거리며 구월신니에게 물었고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