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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211화 (212/1,419)

〈 211화 〉 212. 속가제자 설향-2

구대 문파에서는 일정한 주기로 제자를 모집하는데 이 모집된 인원들을 골격과 성품 오성에 따라 두 가지 분류 작업을 거친다.

골격과 오성이 뛰어난 아이들의 경우 문파의 본산에 올라 문파의 절기를 이어받는 본산제자로 분류하였고 상대적으로 골격과 오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의 경우 문파의 본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문파의 무공을 수련하는 속가제자로 분류하였다.

그 잠재력에 따라 등급을 배정받는 것이다.

뜻만 보자면 속세에서도 문파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속가제자가 본산제자보다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와는 전혀 반대였다.

속가제자의 경우 문파의 무공을 익힐 수는 있으나 그 한계가 명확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문파의 진산절기의 경우 속가제자에게는 전수해주지 않았다.

세속과 연을 이어가는 대신 무공의 한계를 그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본산 제자가 되는 것이 속가제자가 되는 것보다 좋을까?

이는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무공의 성취를 최우선으로 삼는 무인이라면 본산 제자가 되어 문파의 절기를 마음껏 습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반대로 무공의 성취가 아닌 개인의 영달과 안락한 삶이 목표라면 속가제가가 되어 문파의 이름을 내걸고 사업을 하거나 인맥을 통한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처럼 본산제자와 속가 제자는 가장 먼저 오성과 골격으로 나눠지게 되고 그다음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또다시 나눠지게 된다.

그렇기에 보통은 재능의 한계를 보여 어쩔 수 없이 속가 제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충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본산 제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도 존재하였다.

본산제자가 될 경우 심산유곡에 틀어박혀 주구장창 무공만 익혀야 한다는 인식이 박혀있기에 재능이 있어도 무공에 대해 큰 가치를 두지 않는 경우 본산제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아이가 있는 것이다.

아미파의 속가제자인 설향 또한 그런 경우이다.

그녀는 중원 최대의 부자 중 하나로 꼽히는 황금충 설수범의 고명딸로 어렸을 때부터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이 자라온 여인이었다.

아들만 셋이던 설수범의 입장에서 설향은, 그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칙칙한 아들들만 보던 설수범입장에서는 어찌 어여쁘지 않을 수 있으랴

또한 그녀가 어여쁘기는 그녀의 오라버니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들과 달리 딸이었기에 후계자 경쟁에 엮일 일도 없었고 나이 차이도 상당히 났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 풀어졌기 때문이다.

설수범과 오라버니들은 설향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구해다 주었고 설향은 손만 뻗으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가정환경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무엇이든 다 가졌던 그녀였기에 원하는 바가 뜻대로 되지가 않으면 성질을 부리며 떼를 쓰는 떼쟁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떼를 쓰는 모습마저 귀여웠던지라 설가의 남자들은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그녀가 떼를 쓸 때면 무리한 일이라도 들어주기 마련이었고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녀가 열 살이 되던 해였다.

어느 날 설향은 설수범에게 생일선물로 서우(犀牛)를 가지고 싶다며 부탁을 하였다.

그녀의 부탁에 설수범은 난감해 하더니 이내 좋은 말로 거절을 하였다.

서우는 무척이나 난폭한 동물이었기에 함부로 세가에 데려다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설향은 입이 댓발 튀어나왔고 서우가 보고 싶다며 떼를 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떼에도 불구하고 설수범은 단호하였고 설향은 다른 방도를 찾게 되었다.

그건 바로 오라버니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설향은 쪼르르 오라버니들에게 달려가 갖은 애교를 부리며 부탁을 하였고 그녀의 오라비들은 헤벌쭉한 미소를 지으며 서우를 구해주겠노라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생일이 되던 날 세 명의 오라비들은 각 각 한 마리씩 세마리의 서우를 구해왔고 서우를 직접 본 설향은 꺄르륵 거리며 오라비들에게 감사인사를 건네었다.

그리고 그녀의 오라비들은 흐뭇함을 느끼며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면 좋겠건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축하연에서 터진 폭죽 소리에 놀란 서우들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깜짝 놀란 세가의 무사들이 재빨리 서우를 제압하려고 하였지만, 무게만 수천 근에 육박하는 서우의 갑작스러운 돌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세가의 벽을 뚫고 바깥까지 탈출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세가를 탈출한 서우는 주위에 있던 민가들을 박살내며 난동을 피웠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다행히 지나가던 무림 고수에게 제압을 당한 덕분에 사상자는 발생하진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 사태에 설수범은 서우가 난동을 부려 부숴버린 건물에 대한 복구비용은 물론 피해보상금까지 쥐여주면서 깊게 사과하였고 큰 인명피해를 막아준 무림 고수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큰 사례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 사태의 원인이 된 자식들을 모두 불러세우고 매질을 하였다.

평소 결코 매를 드는 법이 없던 그였다.

잘못이 있을 때면 언제나 좋게 말로 풀거나 벌을 주어 스스로 깨닫게 만들던 그였다.

그런데 그런 설수범이 매를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분노가 엄청났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다행히 지나가던 무림고수 덕분에 사상자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운이 나빴다면 어마어마한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좌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상단의 생명은 신뢰와 인망이었다.

이번 일로 잃게 된 인망은 더욱 크게 돌아올 것이 분명하였다.

그의 아들들은 종아리가 터져 피고름이 맺힐 때까지 차례대로 매질을 당하였고 설향의 차례가 왔다.

애초에 원인은 설향이었기에 그녀 또한 호되게 혼낼 작정이었던 그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매질을 하려니 차마 손이 나가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어여쁜 딸이 아니던가

이제 고작 열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게다가 종아리가 터져 피를 철철 흘리는 와중에도 아들들이 제발 설향에게 매질을 하지 말아 달라며 그에게 빌고 또 빌었다.

또한, 그 곱디고운 설향마저 눈물을 흩뿌리며 잘못을 빌었다.

그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어찌나 애처로운지 그의 마음을 살살 녹이기 시작하였다.

결국, 마음이 약해진 설수범은 천천히 회초리를 내려놓았다.

어찌 연약하기 그지없는 딸을 아들과 같은 취급을 한단 말인가?

더구나 열 살짜리가 뭘 알고 떼를 썼겠는가?

모두 팔불출인 오라비들이 잘못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비의 자기합리화에도 불구하고 설향은 결국 매질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회초리를 뺏어든 어머니인 안씨부인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안씨부인은 설수범이 회초리를 내려놓자 그것을 그대로 빼앗아 설향의 종아리를 두드렸다.

설수범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말리려고 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설향의 눈물 어린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더욱더 단호하게 매질을 가할 뿐이었다.

그리고 회초리가 부러졌을 때 비로소 설향에 대한 매질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하였다.

잘못에 성별 따위는 없다고 말이다.

체벌은 공정해야 하거늘 딸 아이라고 봐주려고 했던 남편을 비난한 것이다.

그녀의 말에 설수범은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근원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딸을 어리고 귀엽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려고 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씨부인은 진지한 어조로 설수범에게 말하였다.

설향의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씨부인은 남편인 설수범에게 아미파의 속가제자로 설향을 맡기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세가에서 교육을 해봤자 저 팔불출 오라비들이 협조를 안 해줄 것이 뻔하였고 비슷한 또래와 있다 보면 저 떼쟁이 같은 성격 또한 고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설수범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였다.

이미 응석받이 떼쟁이로 자란 설향을 교육시키기에는 세가의 환경이 좋지 않다고 느낀 탓이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설향은 제발 자신을 보내지 말아 달라며 착한 딸이 되겠다며 애원하였지만 안씨부인의 매서운 눈초리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한없이 자애로운 안씨부인이었지만 설향이 떼를 쓸 때면 그 누구보다 매서워지는 것이 안씨부인이었다.

결국, 설향은 엉엉 울면서 아미파의 속가 제자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마침 아미파에서 제자를 모집하던 기간이었기에 설향이 속가 제자로 들어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속가제자가 된 설향은 생각하였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있다. 기간만 채우고 나가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그녀의 재능에 있었다.

열 살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무공에 입문하게 된 설향의 성취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또래와는 비교조차도 안 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설향이 열 네살이 되던 해 그녀의 검에서 검명劍鳴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본산 제자들은 경악하였다.

검명이 무엇이란 말인가?

적어도 일류의 경지는 들어서야 비로소 일으킬 수 있는 현상이 아니던가

사년 남짓한 세월 동안 설향이 일류경에 다다른 것이다.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산제자들은 이 사실을 본산에 알렸고 이내 구월신니의 귀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호기심을 느낀 구월신니는 설향을 직접 보러 수련동으로 향하였다.

얼마나 잘났길래 본산의 제자들이 입이 마르지 않도록 칭찬을 하는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련동에 도착하여 설향의 검무를 보았을 때

구월신니는 거대한 쇠망치로 머리를 강타당한 듯한 충격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선보인 검무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속가제자가 보일만 한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검술만 놓고 본다면 본산의 제자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지경인 것이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속가제자와 본산제자는 같은 제자이긴 하나 골격과 오성부터 차이는 물론 그에 걸맞은 무공마저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런데 설향은 속가제자에게 전해지는 소청검법만으로 어마어마한 신위를 보인 것이다.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구월신니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아미를 영광의 길로 이끌만한 인재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월신니는 곧바로 설향에게 다가가 본산 제자가 될 것을 권유하였다.

어린 설향을 제자로 받는다면 배분이 꼬이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설향을 제대로 가르쳐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월신니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상념들이 오갔다.

그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이고 어떤 식으로 성장시킬 것이며 어떻게 무림에 위명을 날릴지까지 전부 말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천하제일인을 배출한 영광을 얻게 되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그만큼 설향의 재능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구월신니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설향이 본산 제자가 될 것을 거부한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들은 구월신니는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

거절 따위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다.

아미파의 장문인인 구월신니는 주소양이나 강하윤만큼은 아니지만 현 중원에서 손꼽히는 여고수였다.

그런데 그런 구월신니의 제자로 들어올 기회를 발로 차버린 것이다.

구월신니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이유를 물어봤고 그녀는 간단히 답하였다.

속세가 더 좋다고 말이다.

설향의 대답을 들은 구월신니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착각을 깨달았다.

설향이 무공에 대한 향상심이 높아 이 정도 성취를 이룬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저 타고난 천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구월신니는 그녀에 대한 욕심이 더욱 나는 것을 느꼈다.

타고난 천재성에 노력까지 곁들이게 된다면 얼마나 강해지겠는가

천하제일인은 물론 고금제일인도 꿈이 아니리라

그후 구월신니는 수많은 감언이설을 내뱉으며 설향을 꼬여내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설향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아쉬울 것 없이 태어난 그녀가 뭣 하러 비구니가 된다는 말인가?

설향은 어리지만 자신이 속세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알았고 절밥을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결국 구월신니는 그녀의 완고한 고집에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대신 그녀의 부모인 설수범과 안씨부인을 설득하려고 나섰지만 이 또한 소용없었다.

엄한 딸을 비구니로 만들겠다는데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설수범은 길길이 날뛰며 당장에라도 설향을 데리고 가겠다며 호통을 쳤다.

그 반응에 구월신니는 기겁하며 공손히 사과를 하였고 어찌 어찌 설수범의 화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결국 당사자와 부모 모두가 본산제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구월신니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저 정도 재능을 갖춘 인재를 이대로 놓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설향의 재능을 알아보게 된다면 무슨 짓을 써서라도 제자로 들이고 말리라

그만큼 설향의 재능은 압도적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구월신니는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 허무하게 그녀를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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