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211. 속가제자 설향-1
"이번 수색대에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운적자는 슬퍼하는 장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더 이상은 마음이 아파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일찍이 홧병으로 죽어버린 적허자를 스승으로 두고 있던 그에게 운송자는 장문인이기 이전에 스승과도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런 장문인이 자책하는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보고 싶지 않았다.
"안된다! 내 어찌 너를 그 먼 곳까지 보낸다는 말이더냐."
그의 말에 적송자는 화들짝 놀라며 거부를 하였다.
운적자가 누구란 말인가
청성을 대표하는 검이자 전대 장문인이 남긴 하나뿐이 제자가 아니던가
그런 운적자를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북해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럼 누구를 보낼 것인지 정하셨습니까?"
"그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생각해둔 이가 있습니까?"
운적자가 적송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
운적자의 물음에 적송자는 아무런 말도 못하였다.
사실 누구도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그의 속마음이었다.
적송자에게 문파내 제자들은 모두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찌 자식 같은 제자들을 그 먼 길로 보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마찬가지로 실종된 제자들 또한 자식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결국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보내기 싫지만 보내고 싶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리라
"거보십시오. 결국 장문인께서는 그 누구도 선택지 못할 것입니다."
"..........."
"그러니 제가 직접 자원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북해로 찾아가 제자들을 구해내겠습니다."
"내 어찌 너를 보낼 수 있겠느냐?"
적송자는 애틋한 눈빛으로 운적자를 바라보았다.
적송자는 느낄 수 있었다.
슬퍼하는 자신을 위해 먼저 자원하고 나선 운적자의 배려를 말이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이미 실종된 본산 제자는 절정 중경의 경지에 이른 이였습니다. 적어도 그보다 강한 이가 나서야 합니다."
"너무 위험하다. 북해는 수많은 마인들과 공기조차 얼릴정도로 차가운 날씨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가야지요. 어찌 장로가 된 입장으로서 청성의 제자들을 외면하겠습니까?"
"네가 아니어도 된다."
"아니요. 저여야만 됩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더더욱 저 여야만 합니다. 오직 저만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요."
운적자는 확신에 찬 얼굴로 적송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오직 자신만이 북해에 가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
그의 확신에 찬 말을 들은 적송자는 할 말을 잃었다.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사실을 느낀 탓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나선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면 아미파도 당가도 그에 걸맞는 지원을 보낼 것입니다."
"당가는 사람이 없지 않으냐?"
운적자의 말에 적송자는 의아한 듯 물었다.
당가에 운적자와 비견되는 고수는 당 서윤정도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당가의 직계혈족이었기에 북해로 떠날 확률이 무척이나 낮았다.
"그럼 적어도 물자라든가 여비라도 지원해주지 않겠습니까?"
적송자의 물음에 운적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또한 적송자와 마찬가지로 당가에서 직계가 직접 나설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 상당수의 방계 혈족들이라도 보내주리라
그 정도면 되었다.
어차피 이번 북해행의 최고 고수는 자신이 될테니까 말이다.
"나는 아직도 두렵구나. 또다시 제자들을 잃을까 너무나도 두렵구나."
적송자는 우울한 목소리로 운적자를 향해 진심을 토로하였다.
"걱정마십시오. 장문인. 제가 누구입니까? 청성제일의 검객이 아닙니까. 두고 보십시오. 북해에서 돌아올때 쯤이면 북해제일의 칭호까지 추가될테니까요."
운적자는 그런 적송자에게 농이 섞인 말로 너스레를 떨며 입을 열었다.
"크크큭"
그리고 적송자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살며시 웃음을 흘렸다.
운적자는 그런 적송자의 모습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린듯하였다.
`걱정마십시오. 장문인 , 제자들은 꼭 제가 구해오겠습니다.`
운적자는 눈에 결연의 의지가 서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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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회의용 탁자에 수많은 여인들이 둘러 앉아있었다
그들은 파르르 깎은 머리에 회색 바탕의 가사의를 입고 있었는데 행색만을 보더라도 정체가 무엇인지 쉬이 짐작이 가는 행색이었다.
그녀들은 무척이나 침중한 얼굴로 넓디 넓은 탁자 주위에 앉아있었다.
그 공기가 어찌나 무거운지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때 중앙에 앉아 있던 아미파의 장문인 구월신니가 입을 열었다.
"오늘 모이게 된 이유는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혹여 모르는 이가 있을 수 있으니 다시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북해로 표물 운송을 떠났던 제자들과의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북해로 갔던 본산제자는 세 명 그리고 속가제자는 열두 명입니다. 총원 열 다섯의 제자들이 실종된 것입니다."
구월신니는 자애로운 표정을 조금씩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 큰 문제는 그들이 실종된 원인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납치를 한 것인지 습격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차가운 눈보라에 고립되어버린 것인지 무엇하나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월신니는 인상을 더욱 와락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이에 저희 아미를 비롯한 청성과 당가로 구성되어있는 사천연맹은 이 사태를 결코 묵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수색단을 파견하기로 의견을 조율하였습니다."
구월신니는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누구를 보내면 좋을 것 같습니까?"
구월신니는 의문이 담긴 물음을 내뱉었다.
"발이 빠른 불속 사태가 어떠십니까?"
그 때 한 장로가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불속 사태요?"
구월신니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아무래도 수색단이다보니 가장 빠른 이가 적합할 것이라 사료됩니다."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으십니까?`
구월신니는 짧게 대답한 후 말을 이었다.
그때 또다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저는 저를 추천합니다."
손을 든 이는 불허사태였다.
그녀는 스스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에 탁자에 앉아있던 장로들이 이마를 짚었다.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장난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습니까?"
구월신니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실종된 제자들 중에는 이미 절정에 이른 불화사태 또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그녀들이 습격이나 납치를 당한 것이라면 무공이 가장 강한 제가 도움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불허사태는 장난기 따위는 일절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구월신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반대합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고 반대의 의견을 내었다.
구월신니는 고개를 돌려 반대 의견 낸 이를 쳐다보았다.
반대 의견을 낸 이는 아까 추천을 받았던 불속사태였다.
"불허사태께서는 불화사태와 무척 친분이 깊은 사이였습니다. 그녀는 지금 개인감정에 치우쳐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그녀를 수색단으로 보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여겨집니다."
불속사태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불허사태는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개인감정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력집단에 의해 제압당한 상태라면 누가 그들을 구해낼 수 있겠습니까? 발만 빠른 불속이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녀 또한 붙잡히는 신세가 되겠지요."
불허사태는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불속사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에 몇 몇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본 불속사태는 인상을 찌푸렸다.
난데없이 모욕을 들었기 때문이다.
"수색단에 힘만 센 멍청이는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그대로 세심하게 단서를 찾고 분석하는 수색에는 불허사태와 같이 감정적인 이는 맞지 않는다 사료됩니다."
불속사태는 차가운 눈빛으로 불허사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몇 몇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 또한 일리가 있다고 느낀 탓이었다.
물론 불허사태의 표정은 똥 씹은 듯이 변하였지만 말이다.
"불속사태, 말이 심합니다? 힘만 센 멍청이라뇨?"
불허사태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불속사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불허사태야 말로 발만 빠르다뇨? 그리고 꼼짝없이 붙잡히다뇨? 어찌 그리 사람을 무시한다는 말입니까!"
불허사태의 말을 들은 불속사태의 언성이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쾅
그때였다.
짜르르르
탁자가 울리며 그 진동이 앉아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졌다.
고개를 돌리니 장문인인 구월신니가 단단히 화가난 표정으로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제 앞에서 뭐하는 짓입니까?"
구월신니는 무척이나 고압적인 태도로 그녀들을 압박하였다.
그러자 불허사태와 불속사태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자신들이 감정에 휩싸여 장문인 앞에서 무례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시가 급한 일입니다. 하루 빨리 수색인원을 모집해도 모자랄 판국에 싸움이라뇨? 어찌 그리 생각들이 짧다는 말입니까!"
구월신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크게 호통을 쳤다.
"죄송합니다. 장문인"
"죄송합니다."
그녀의 호통에 기가 죽은 불허사태와 불속사태는 재빨리 그녀에게 사과를 하였다.
길게 볼 것도 없이 그녀들의 잘못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후우 다음부터는 자중하세요."
그녀의 사과에 구월신니는 차갑게 말을 내뱉고는 이내 신색을 회복하였다.
혼낼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한 태도였다.
"들어보면 불허사태와 불속사태의 말 모두가 일리가 있습니다. 실종된 제자들이 어떤 이유로 실종될지도 모를 판국에 발빠른 불속사태만 보내는 것도 무공이 강한 불허사태만 보내는 것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구월신니는 좌중을 둘러보며 찬찬히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본 장문인은 불허사태와 불속사태 둘 모두를 북해에 보낼 생각입니다."
"장문인!"
"안됩니다! 어찌 장로를 둘이나 보낸다는 말입니까?"
"전력 낭비입니다!"
"둘이나 보내는 것은 너무나 큰 손실입니다."
구월신니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반발이 일어났다.
그들 또한 수색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동의하나 장로급 전력을 그 먼 북해까지 보내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쾅!
그때 다시금 탁자가 울리기 시작하더니 진동이 퍼져나갔다.
구월신니가 탁자를 내리친 것이다.
"조용"
그녀는 농밀한 내력이 담긴 음성으로 말을 내뱉었고 난리를 치던 장로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열 다섯이나 되는 제자가 실종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리 인색하게 군다는 말입니까? 물론 장로급 전력이 반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자리를 비운다면 그만큼 문파에 손실이 발생하겠지요. 장로가 마냥 노는 자리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월신니는 차가운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돈 따위는 얼마든지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종된 제자들은 오직 세상에 하나뿐인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들을 구하는데 손실을 따진단 말입니까? 어찌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따진단 말입니까!"
구월신니는 목에 핏줄마저 세운 채 장로들에게 호통을 쳤다.
생명은 존귀하거늘 어찌 그들 앞에서 이익을 따진단 말인가?
그것도 불제자의 신분으로서 말이다.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 의견은 변함없습니다. 불허와 불속 모두 수색대에 참가시키겠습니다. 더불어 설향 또한 수색대에 참가시키겠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설향이라뇨! "
"안됩니다!"
"그녀는 이제 막 약관이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녀는 너무 어립니다!"
그녀의 말에 여기저기서 격한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불허와 불속을 둘다 보낸다고 했을 때보다 더욱 격한 반응이었다
"장문인! 설향은 속가의 신분입니다!"
그때 한 장로가 그녀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북해는 본산의 제자들도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어찌 환속도 안한 속가 제자를 보낸다는 말인가?
"그녀가 비록 환속을 하지 않았다지만 그녀 또한 아미의 제자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능력이 누구보다 수색에 적합하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장로의 말에 구월신니는 담담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하지만...."
구월신니의 말을 들은 장로는 말끝을 흐렸다.
장문인의 말대로 설향의 능력이 누구보다 수색에 적합하다는 것을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를 보내야한다는 것에는 회의를 느꼈다.
아미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우는 그녀지만 아직 무림으로 출두하기에는 나이가 어릴뿐더러 아직 정신적으로도 미성숙하였다.
그런 그녀를 어찌 머나먼 북해까지 보낸다는 말인가?
아미의 미래라며 장로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던 설향이였기에
그녀를 보낸다는 구월신니의 말은 장로들에게 무척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저는 설향을 보낼 것입니다."
구월신니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설향을 보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 또한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을 본 수많은 장로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구월신니가 이미 마음을 굳힌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