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 209.서열 정리-2
옥령의 말을 들은 당대부인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천명이라면 오십이 아니던가?
그런데 아무리 뜯어봐도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옥령이 어찌 지천명에 다다랐다는 말인가
당대부인은 곁눈질로 옥령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잡티 하나 없는 백옥과도 같이 하얀 피부는 늘어짐 하나 없는 탱탱한 탄력이 엿보였다.
거기다 상대적으로 주름이 지기 쉬운 눈가나 입꼬리 쪽 또한 탱탱하기 그지없었다.
거기다 옷태는 어떠한가
커다랗지만 처지는 감이 전혀 없는 가슴과 군살 하나 보이지 않는 잘록한 허리에 탱탱하기 그지없는 둔부까지
그 모습을 본 당대부인은 고개를 도리질 쳤다.
어찌 이런 여인이 지천명에 이르렀다는 말인가
지천명이라면 자신보다 윗 연배가 아니던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정말인건가요?. 아무리봐도 옥령 소저는 이십대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무공을 익혀서요..."
"아무리 무공을 익혔다 한들 어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정도로 어린 외모를 유지한다는 건가요."
옥령의 말에 당대부인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그녀에게 따졌다.
당대부인 또한 무공을 익힌 몸이었다.
그것도 여자치고는 상당히 높은 경지인 절정 상경에 이르는 경지를 말이다.
그런 그녀 또한 고작 십년 남짓정도 어려보이는 것이 한계이건만 어찌 삼십년은 젊게 보일 수 있다는 말인가?
"환골탈태를 하고나니 몸이 살짝 어려져서요..."
그녀의 믿기 어렵다는 반응에 옥령은 차근차근 답을 하였다.
"환..골탈태요!?"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당대부인은 다시 한 번 놀랐다.
환골탈태換骨奪胎라니
환골탈태가 무엇이라는 말인가?
절대지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이들 중에서도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이 겪을 수 있는 현상이 아니던가
환골탈태의 시작은 불균형이다.
보통 무공을 익힌 세월이 길면 길수록 그 성취는 더욱 깊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육체의 경우 아무리 강건하게 단련된 신체라고 한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노쇠해지기 마련이다.
뼈의 강도는 연약해질 것이고 근육은 줄어들 것이며 강건했던 힘은 더욱 약해질 것이다.
아무리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의 힘을 견딜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체와 무공 간의 불균형이라는 것이 발생하게 돼버린다.
그리고 이 불균형이 극에 달하였을 때
비로소 환골탈태라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절대지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이른 무공이 신체를 뒤바꾸는 것이다.
신체와 무공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말이다.
환골탈태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몸안에 있는 노폐물들이 걸러지게 된다.
이때 몸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작은 노폐물조차 놓치지 않고 전부 배출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고약한 악취를 풍기게 된다.
모든 노폐물을 배출 한 후에는 재생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근육은 증가하게 되고 뼈는 단단하게 변하며 혈도는 더욱 튼튼하게 변하게 된다.
무공을 최대의 효율로 사용할 수 있는 육체적 전성기로 바꾸어주는 것이다.
옥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십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신체는 옥령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 최고 전성기의 모습이라는 소리였다.
옥령의 충격적인 말에 입을 벌리며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무언가 그녀의 머리에 번뜩이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옥령이라는 이름과 환골탈태를 겪을 정도로 지고하기 그지없는 경지에서 무언가 떠올린 것이다.
당대부인은 신색을 재빨리 회복한 후 옥령을 바라보았다.
"옥..령...소저...정체가 무엇입니까?"
당대부인은 더듬거리며 옥령에게 물었다.
"그저 낭군을 사모하는 아녀자입니다."
그녀의 물음에 옥령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경지를 이룬 여인이 어찌 한낱 아녀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대부인은 말도 안 된다는 말투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혹여 무림에서 활동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이십여년 전 딱 한 번 출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별호를 하나 얻긴 하였습니다."
"혹여 별호를 알 수 있을까요?"
"어디서 밝힐 만큼 자랑스러운 별호는 아닙니다."
그녀의 물음에 옥령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알고 싶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옥령의 거절에 당대부인은 정중한 태도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자신의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녀에 대해 알아야 했다.
"세인들은 저를 혈검향(血劍香)이라고 부르더군요."
말을 마친 옥령은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레 말하였다.
"............"
그리고 당대부인은 그저 멍하니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혈검향이 누구란 말인가?
수십 년 전 절강성에 나타난 거대한 사파집단이었던 거악방을 홀로 멸문시켰던 여고수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 혈검향의 정체가 눈앞에 있는 여인이라니
전혀 예상치도 못하였다.
그저 동명이인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넘길 뿐이었다.
수십 년 전 자취를 감춘 절대고수가 별안간 당가에 나타날 것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당대부인은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하기 시작하였다.
외관만 보고 나이를 지레짐작하고 깔아뭉개려고 했던 자신에 대한 오만함을 말이다.
어찌 대선배를 몰라보고 이런 추태를 벌였다는 말인가?
"....정말..거악방을 멸문시킨 혈검향 선배가 맞으신가요?"
"네, 맞아요."
그녀의 물음에 옥령을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자 당대부인은 재빨리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였다.
"네!?"
"제가 선배님을 몰라보고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그녀는 저자세로 옥령에게 말을 이었다.
사실 무례하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은연 중 나이가 어리다고 여겨 하대했던 적이 없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괜찮아요. 그리고 무례랄 것도 없었는데요.."
그녀의 사과에 옥령은 당황한듯 말을 이었다.
설마 별호를 밝힌 것만으로 이렇게 저자세로 나올 줄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으로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당서윤도 그렇고 당대부인도 그렇고 자신을 기억해주는 이가 많다는 사실이 기뻤기 때문이다.
한 편 사과를 마친 당대부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그녀를 압도할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는 물론 무공 거기다 이십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주름 하나 없는 아름다운 얼굴과 탱탱한 몸매까지
옥령은 모든 것이 우월하였다.
그렇기에 당대부인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저 여인을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설움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기선제압을 위해 화려한 치장까지 전부 마치고 위풍당당하게 걸어들어왔던 그녀였다.
하지만 옥령의 화려한 전적 앞에서는 달빛 아래 반딧불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옥령 선배님"
당대부인이 옥령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 말씀하세요."
"저는 상공을 사랑합니다."
"........."
"그와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그가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사랑합니다."
당대부인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이가 저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또 있다고 하더군요."
당대부인은 슬픔이 서려 있는 눈빛으로 옥령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화가났어요. 세상 어떤 여자가 자신의 정인이 또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을 달가워하겠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두 사람의 사랑에 끼어든 것이 저인 것을 알게 되었죠."
".........."
"비참하고 슬펐어요. 결국 두 번째 밖에 되지 않는 제 자신에 대해서 말이죠."
당대부인은 옥령에게 자신의 속내를 낱낱히 드러내었다.
"그래서 결정했죠. 만난 것은 비록 두번 째지만, 그에게는 첫 번째 정인이 되자고 말이죠.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요."
"..........."
"선배님을 처음 본 날부터 깨달을 수 있었거든요. 저 여인에게는 안 되겠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런데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나 봐요. 이렇게 서열정리를 하려고 일부러 불러낸 것을 보면 말이에요."
당대부인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 선배님에 대해서 듣고 깔끔하게 인정할 수 있었어요. 저따위는 감히 비교조차 못 할 만큼 대단한 분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선배님과 경쟁하려고 했던 제 자신이 절로 부끄러워져요."
당대부인은 씁쓸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선배님 죄송해요."
당대부인은 허리를 숙인 후 옥령에게 사과를 하였다.
"아니에요. 당대부인. 저에게는 오히려 이렇게 솔직한 심정을 말해준 당대부인이 오히려 고맙답니다. 고마워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요."
그녀의 말에 옥령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괜한 질투로 불화를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그건 사랑하는 이에 대한 배려가 아니니까요."
옥령의 말에 당대부인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그 모습에 옥령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선우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했기 때문이다.
"선배님, 저는 상공을 사랑해요. 이런 저를 허락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당대부인은 긴장된 얼굴로 옥령에게 물었다.
그녀는 지금 첫 번째 정인으로 인정한 옥령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 마음속으로 옥령 밑의 서열로 들어가겠다는 증거이리라
"사랑하는 마음에 어디 허락이 필요하겠어요. 그리고 당대부인이라면 전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녀의 물음에 옥령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감사해요. 선배님."
그녀의 말에 당대부인은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인사에 옥령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서열정리는 어떻게든 일단락이 된듯하였다.
선우는 웃음꽃을 피우는 그녀들의 모습을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들끼리 알아서 서열을 정할 거면 자신은 왜 불러앉혔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또 마음 한켠에서는 해결이 잘된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둘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일은 없으리라
***********
"아니,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하는 자리에 나는 왜 부른거야? 꿔다놓은 보릿자루인 줄 알았다니까?"
"그래"
"뭐 그래도 좋은게 좋은거라고 해결이 잘돼서 다행이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들어. 그 자리에 과연 내가 필요했을까 하고 말이야."
선우는 옥령과 당대부인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는지 쉴 새 없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그리고 그런 선우의 말을 듣고있던 당서윤은 귀찮은듯이 단답을 이어갔다.
"반응이 왜 그렇게 미적지근해?"
선우는 그런 당서윤의 반응에 딴지를 걸고 물었다.
사람이 기껏 일부러 찾아와서 말을 걸고 있건만 반응이 영 시원치않으니 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일하는 거 안 보여?"
당서윤은 선우를 보며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그리고 그를 향해 서류더미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좀만 쉬었다 하는 게 어때?"
"이 분량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선우의 말에 당서윤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힘이 들 땐 잠시 눈을 감고 쉬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더라."
"헛소리할거면 꺼저, 왜 일하는 데까지 찾아와서 관심도 없는 네 치정문제를 지껄이는 거야?"
당서윤은 이해가 안된다는 듯 선우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런거 말할 사람이 너밖에 더 있냐?"
"요랑님한테 말해."
"걔가 이런 치정문제에 대해 뭘 알겠어?"
"모르겠지, 하지만 배우는게 빠르니까 네가 하나부터 열 가지 다 알려주면 분명 이해해주실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야 말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 바쁘다고 이새끼야! 바빠! 내가 당가에 도착하고 몇 시진을 잤는지 알아? 세 시진이야! 세 시진! 하루에 한 시진꼴로 잤다고! 얼마나 바쁜지 이해 안 돼? 너 인성에 문제 있어? 왜 그렇게 개인주의야?"
선우의 반박에 당서윤은 속사포처럼을 말을 따박따박 쏟아내었다.
그녀는 지금 정신적인 피로가 극에 달해있는 상태였다.
당가에 도착한 지 벌써 사흘이라는 시간이 지났건만 제대로 된 수면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쌓였던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결재 서류에는 도장을 찍었어야 했고 선별해둔 의뢰서 또한 재정리를 해야 했다.
말 그대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판국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선우가 찾아와 쓸데없이 신경을 거슬리게 하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어....."
선우는 당서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뭐가 어쩔 수 없어!"
"이런거 말할 사람이 너 밖에 없어..."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속내를 살짝 털어놓았다.
"옥령 선배나 당대부인한테 가"
"아니 두 사람이랑 관련된 치정문제인데 그걸 당사자한테 어떻게 하소연하냐?"
"나한테는 해도 되고?"
"친구잖아"
선우는 당서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제대로 들어줄 만한 친구는 너밖에 없어...".
"망할 새끼 진짜."
선우의 말에 당서윤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탁
그리고 서류를 그대로 책상에 내팽개쳤다.
"일각뿐이야."
그리고 그녀는 선우에게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선우의 얼굴에 화색이 돋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