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 205.선우, 혼나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선우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선우는 그 느낌이 너무나 아늑하여 더욱 파고들었다.
말캉 말캉
그러자 부드럽기 그지없는 감촉이 선우의 얼굴을 감싸기 시작하였다.
`좋다.`
그 감촉에 감탄한 선우는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선우는 눈을 감은 채로 천천히 손을 올렸다.
주물럭 주물럭
그리고 얼굴을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무언가를 손으로 주무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손바닥 가득 말캉한 부드러움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하응"
그렇게 감촉을 즐기고 있는 사이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선우는 그 신음성을 즐기며 손을 더욱 세게 쥐었다.
"항!"
그러자 아까보다 더욱 큰 신음성이 터졌다.
"그렇게 좋아요?"
머지않아 아름다운 미성이 선우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선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무척이나 기품 넘치는 아름다운 여인, 당대부인이 그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좋아."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짤막이 답하였다.
그리고는 다시금 그녀의 가슴에 파고든 뒤 마음껏 주무르기 시작하였다.
주물 주물 주물
"흐아앙"
마치 떡 반죽을 하듯 주무르는 선우의 손길에 당대부인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그녀의 신음성에 선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반응마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 한 번 더할까?"
선우는 그녀를 만지작거리며 은근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아이..안돼요. 오늘부터 이 소저를 감시하기로 했잖아요."
선우의 말에 당대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을 하였다.
"쩝"
선우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선 온종일하고 싶건만 아무래도 상황이 허락지 않은 듯했다.
쓰담쓰담
"걱정마세요. 밤은 언제나 온답니다".
당대부인은 그런 선우가 귀여웠는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그녀와 보낼 밤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북해까지 가면 최소 넉 달 이상은 그녀를 보지 못한다.
남은 기간동안 충분히 안고 가리라
그때였다.
번뜩
`응?`
선우는 무언가 번뜩이며 지나가는 것을 느낌을 받았다.
`뭐지?`
선우는 의아함을 느꼈다.
너무 찰나에 지나간 기억이라 제대로 기억하진 못하였지만 무언가 엄청 중요한 것을 잊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스쳐지나간 기억을 복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 찜찜하였기 때문이다.
"왜 그래요?"
당대부인은 인상을 찌푸린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끄응...뭔가 기억날 듯 말 듯한데 기억이 안 나서."
"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나서 말이야."
선우는 당대부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중요한 일 같나요?"
"그게 되게 중요한 일 같은데……."
선우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분명 기억은 안나지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을 보면 작은 일은 아닌듯싶었다.
"그럴 땐 천천히 복기해보는 게 좋아요."
"복기?"
"네, 오늘부터 어제까지 차근차근 있었던 일 위주로 올라가 보는 거예요."
"오"
그녀의 말에 선우는 감탄하였다.
확실히 기억이 안 나는 상황이라면 그녀의 말대로 복기를 하는 편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차근차근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기 시작하였다.
`가려와 기승위로 한 번하고....후배 위로 한 번 더 하고.....정상 위로 한 번하고....다시 배면좌위로 한번 하고....보지를 빨고....자지를 빨리고........`
선우는 어제 있었던 일들을 하나 둘씩 떠올리며 천천히 복기해 가기 시작하였다.
`.....가려가 울어서 달래주고.....옥령이 따라간다는 걸 당서윤이 말리고.....북해행이 결정나고......옥령의 거처에서....앗!`
그때 복기를 하던 선우의 눈이 갑자기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시발 좆됐다.`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벌떡
"가려, 나 먼저 준비하고 나갈게!"
선우는 재빨리 침상에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주워든 후 입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인가요?"
당대부인은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선우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사랑스러운 낭군님이 저리 바쁘게 움직인단 말인가?
"급한 일!"
말을 마친 선우는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당대부인은 그런 선우의 뒷모습을 갸웃거리며 지켜볼 뿐이었다.
*********
선우는 달렸다.
음양조화신공을 최고로 운용하고 풍진보를 밟아가며 달리고 또 달렸다.
그것도 부족하여 각성까지 써가며 신체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선우의 몸이 잔상만을 남기며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망할 망할 망할 망할 망할!`
선우는 속으로 수도 없이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탓이었다.
분명 선우는 당가에 오자마자 옥령을 찾아가 진한 입맞춤을 나누었다.
그리고 밤새 재우지 않겠다는 은밀한 약속까지 굳게 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약속을 잊어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옥령이 아닌 당대부인과 진한 밤을 보내고 말았다.
분명 화났을 것이다.
그냥 화가 난 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화가 났을 것이다.
선우의 발걸음이 더욱더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
.
.
.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선우는 옥령이 머물고 있는 거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억..허억..허억..허억"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린 탓인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대신 미칠듯이 심장이 뛰었고 거친 숨이 몰아쉬어 졌다.
각성의 부작용이었다.
주소양과 싸울 때조차 쓰지 않던 각성을 지금 쓴 것이다.
거처에 도착한 선우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옥령~"
그리고 옥령의 이름을 불렀다.
".........."
하지만 선우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거처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선우는 천천히 거처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원래 자던 방은 문을 부서진 터라 분명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선우는 거처에 있는 문을 하나씩 열어보며 그녀의 행방을 찾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흠칫
갑자기 어마어마한 살기가 선우를 덮쳐들기 시작하였다.
"으윽!"
선우는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화경에 오른 선우조차 오싹하게 느껴질 정도로 농밀한 살기였다.
꿀꺽
선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살기의 근원지를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어마어마한 살기가 제일 끝쪽에 있는 방에서 풍겨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우는 걸음을 옮겼다.
똑 똑
이내 문 앞에 도착한 선우는 문을 두드렸다.
"옥령?"
"........."
"거기 안에 있지?"
".........."
"들어간다?"
"........"
선우는 몇 번이고 문을 향해 말을 하였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없었다.
꿀꺽
선우는 침을 꼴깍 삼키고 천천히 문고리를 잡았다.
끼이익
그리고 그대로 천천히 밀어넣어 문을 완전히 개방하였다.
문이 개방되자 선우는 시선을 돌려 안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흠칫
그리고 머지않아 몸을 흠칫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 제일 안쪽에 있는 침상 한 귀퉁이 흉흉한 기세를 풍기고 있는 옥령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
그녀는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살기어린 모습에 선우는 소름 돋는 느낌을 받았다.
언제나 자애로운 옥령의 모습과 상당한 괴리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 있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을 기다리다 밤을 샌듯 보였다.
그리고 속이 비치는 내의를 입은 걸보면 어젯밤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좆됐다.`
선우는 깨달았다.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왜 오셨나요?"
그때 옥령이 선우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차가웠는지 선우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히 너를 보려고....."
"왜요?"
"보고 싶어서...."
"이제 와서요?"
".............."
"선우, 저는 지금 무척이나 분통하고 원통하고 서운해요."
"............"
"제가 선우가 오길 기다리면서 얼마나 설렜는지 아시나요? 침상을 정리하고 향냥을 뿌리고 화장까지 하면서 선우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옥령은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한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군요. 한 시진이 지나고 세 시진이 지나고 네 시진이 지나도 말이죠."
"...미안해"
선우는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를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에게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개 드세요. 눈길 피하지 마세요. 제 눈 똑바로 쳐다보세요."
옥령은 그런 선우를 타박하며 말을 이었다.
"선우에게 저와의 약속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와의 약속이 소중하지 않은 건가요?"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따지듯 말을 내뱉었다.
"그런건 아니지만.."
"그런게 아닌데 어째서 이제야 오신 거죠? 분명 당대부인에게 북해로 떠나가게 된 사실만 알리고 돌아오신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같이 밤까지 보내고 온다는 말은 못 들은 것 같은데요?"
옥령은 얼굴까지 붉혀가며 드물게 화를 내고 있었다.
선우는 죄책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옥령은 선우에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화를 내었던 적이 없었다.
선우가 그녀를 속인 사실을 고할 때도
그녀를 놔두고 당대부인과 정을 통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녀는 그저 선우를 이해해줬을 뿐 그 어떤 타박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타박하기엔 그녀는 너무나 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어떤 일도 이해해주던 그녀가 말이다.
죄책감이 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우는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제가 먼저인데.....어제는 선우와 밤을 보내기로 한 사람은 저였다고요!"
옥령은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흐그흑....흑...흑..."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옥..령?"
그녀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흑,..흐흑....왜 자꾸 힘들게 만들어요.."
옥령은 잔뜩 젖은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 선우와 밤을 보냈을 때 옆에만 있어주면 된다고 했죠? 그거 사실 거짓말이에요. 옆에만 있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저를 지켜봐 줬으면 좋겠고 저만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요."
옥령은 선우를 바라보며 북받친 설움을 토해내듯 말하기 시작했다.
"선우가 당대부인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큰 내색은 안 했지만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오는 것을 느꼈어요. 다른 여자가 생긴 만큼 저에 대한 관심 또한 줄어들 테니까요!"
"............."
"그래도 참았어요. 선우가 좋으니까! 그저 존재만으로도 저에게는 광명같은 존재니까요! 그리고 합리화했죠. 그래도 선우의 제일 첫번째 여자는 저라면서 말이에요!"
"..........."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저를 비참하게 만들어야 했나요? 분명 저와 밤을 보내기로 약속을 해놓고 당대부인과 밤을 보내면 제 기분이 어떨까 상상은 해보셨나요? 비참했어요. 너무너무 비참했다고요! 게다가 선우의 첫 번째라는 그 합리화조차 깨져버렸어요!"
옥령은 선우를 물기 젖은 눈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선우가 자신이 아닌 당대부인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선우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당대부인에게로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자꾸 사람 비참하게 만들어요! 왜! 왜! 선우에게 나쁜 사람이 되게 만드냐고요! 화내기 싫은데... 선우에게 화내기 싫은데.... "
"미안해."
"어째서 두 번째로 밀려난 제 기분을 알아주지 않는 거예요.....왜...왜.."
옥령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옥령...정말 정말 미안해."
선우는 옥령에게 다가가 그녀를 감싸 안으며 말을 이었다.
"몰라요.. 선우는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옥령은 그런 선우의 손길을 못 이긴척 받아들이더니 이내 그의 가슴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쓰담 쓰담
"전부 내 잘못이야. 미안해 . 옥령"
선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과의 말을 전하였다.
사실 선우는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옥령과 약속을 까맣게 잊고 당대부인과 밤을 보낸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옥령의 말을 들으며 선우는 그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정이 선하여 마냥 모든 것을 이해해줄 것 같던 그녀도 실상은 그저 참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과 자신이 옥령의 선함을 기대어 그녀를 함부로 대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선우의 관심이 멀어질까 봐
선우에게 버려질까 봐 말이다.
선우는 그렇게 여리기 짝이 없는 여인을 이렇듯 생각 없이 대한 것이다.
선우는 반성하였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안일하게 대한 자신에 대해서 말이다.
"옥령"
선우는 품안에 안긴 옥령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한테는 언제나 네가 첫 번째야."
"거짓말."
선우의 말에 옥령은 고개를 도리질 치며 부정하였다.
자신이 첫 번째라면 약속을 잊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짜야."
선우는 옥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너는 내게 안식처같은 존재야, 같이 있을 땐 어떤 때보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포근한 그런 안식처같은 존재말이야. "
"..........."
"그런 네가 첫 번째가 아니라면 누가 첫 번째겠어?"
".........."
"옥령."
"......네"
"소중한 만큼 더욱 아껴주어야 하는데 나는 그 소중함에 익숙해져 그 사실을 잠시 망각을 한 것 같아."
선우는 옥령을 더욱 꼬옥 껴안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 그리고 모두에게 확실히 말해놓을게. 네가 나의 첫 번째라고 말이야."
"............"
"용서해줄래?"
선우는 진심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옥령은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용서할 수밖에 없잖아요."
옥령은 선우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고마워. 옥령"
선우는 옥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선우는 흔쾌히 자신을 용서해준 옥령에 대한 고마움이 올라왔다.
결국, 다시금 자신을 배려해줬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선우는 가녀린 옥령의 몸을 더욱 꽉 껴안았다.
옥령은 그런 선우의 품에 더욱 파고 들으며 그의 온기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