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201. 북해로-2
'시발'
선우는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결국 당서윤과 자신 중 둘 중 하나가 북해에 지원을 가야한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선우는 극심한 고민에 빠졌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인지하나 북해까지 가긴 싫었기 때문이다.
선우의 기억으로는 북해는 중원에서 어마어마하게 먼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북해를 왔다갔다하는데만 몇달은 걸린다는 소리였다.
이제 막 당가에 왔건만 그렇게 오랜 기간을 다시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선우는 슬쩍 당서윤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보낼까라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왔기 때문이다.
"뭘 봐."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당서윤이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서윤아, 너 북해로 관광갔다올 생각없어?"
선우는 은근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없는데?"
"그러지 말고 잘생각해보는게 어때? 너 몇 달간 업무만 보느라 힘들었잖아? 이번 기회에 기분전환 좀 하자"
"기분전환은 너나해."
선우의 말에 당서윤은 어림없다는 듯 단호히 말하였다.
"서윤아....나 반년만에 돌아온거야, 그런데 북해까지 가라고?"
선우는 당서윤을 바라보며 애원하듯 말하였다.
"그 반년 모두 네 볼일 보러갔다온거잖아?"
당서윤은 그런 선우의 애원을 담박에 끊내었다.
맞는 말이었다.
반년 중 대부분은 건곤대나이 수련과 본인이 사고쳤던 것을 수습하는 기간이었다.
".........."
당서윤의 말에 선우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당가를 섭정하고 있다고는 하나 피해를 주었으면 피해를 주었지 당가를 위해 딱히 무얼 해준 기억은 없었다.
황보세가를 봉문시키고 독왕의 위명을 날리긴 했지만 그 또한 사고친 걸 수습하다 얻어걸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선우의 표정이 급격히 시무룩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간 꼼짝없이 북해에 가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서윤은 그런 선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축 처진 모습을 보자 이내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멋대로 사고를 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당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 그에게 너무 매정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타깝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북해로 갈만한 인원은 선우밖에 없었다.
마음같아선 선우를 당가에 두고 자신이 북해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자리를 비우게되면 당가의 내정이 얼마나 개판이 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게다가 북해에서 왔다갔다하는 거리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넉달이고 넉넉히 잡으면 반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넉달에서 반년정도의 기간이라면 당가를 말아먹기 충분한 시간이리라
그녀는 선우에게 미안함이 들었지만 이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 또한 세가를 섭정하는 자로서 겪어야할 책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시발 시발 시발 시발'
한편 선우는 속으로 쉴새없이 욕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사실 선우도 알고 있었다.
지금 북해로 지원갈만한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가에는 장로급 고수는 단 두명밖에 없었고 그 중 한명인 당서윤은 내정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반년이나 되는 시간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어 애써 부정해봤지만 소용없는듯 하였다,
".........언제부터 가면 됩니까?"
선우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금적화에게 물었다.
"칠주야내에 출발하게 될거예요.."
"그렇게 빨리!?"
그녀의 말에 선우는 놀라 되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칠주야는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까요."
선우의 물음에 금적화는 담담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실종 사건의 경우 시간이 오래될 수록 실종자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사실상 칠주야도 넉넉히 잡은 것이리라
"그럼 독왕의 모습으로 지원을 가면 될까?"
선우는 당서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건 안돼."
선우의 말에 당서윤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한시가 급한일이긴 하지만 이런 일에 독왕이 직접 나선다는 인식을 주어선 안돼."
"어째서?"
"가주는 세가의 기둥이야.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가주가 나서게 된다면 그 꼴이 우습게 될거야."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가주는 세가의 기둥이자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런 자리에 있는 자가 함부로 세가 밖으로 걸음을 가벼이하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당가를 얕잡아 볼 것이다.
"저번에도 신혼 여행이라고 하고 몇달 동안 자리를 비우지 않았어?"
"신혼여행이랑 이번 일은 아예 다른 경우야. 세가에서 혼인은 인륜지대사 중 하나잖아. 연맹의 무인 몇 명 실종된 것과 비교할 수는 없어. "
선우의 말에 당서윤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어떻게해?"
선우는 모르겠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독왕으로 변모하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북해를 따라가라는 말인가
"이번 기회에 장선우라는 존재를 알리자."
"뭐!?"
그녀의 말에 선우는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뜬금없이 장선우의 존재는 왜 알린단 말인가
"언제까지 너라는 존재를 숨길 수는 없어. 이번 기회에 당가에 새로운 전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내가 나선다고 청성과 아미가 납득을 할까?"
선우는 걱정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애초에 그들이 알고있는 장로급 고수는 독왕과 독서시뿐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별호도 없는 선우가 지원을 가봤자 환영할 리가 없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좋아할거야."
"어째서?"
"너에 대해서는 구파에서도 알고 있을 것 같거든"
"뭐라고!?"
선우는 당서윤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자신의 존재를 어찌 구파에서 알고 있다는 말인가
"용봉지회."
선우의 물음에 당서윤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균현에서 용봉을 전부 박살낸 이야기는 구파의 수뇌부들은 전부 알고 있을거야"
"뭐..뭐라고!?"
"설마 스무 명이나 되는 용봉들이 전부 비밀을 지켜줄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
"그..그건 아니지만.."
"분명 그들 중 누군가는 문파에 너에 대한 보고를 올렸을거야. 그리고 다른 문파와 정보를 공유했겠지."
"그럼 그들도 내 존재를 안다는 거야?"
"내 예상은 그래. 아마 이번에 네가 나선다해도 큰 반발을 없을거야. 오히려 환영하겠지. 차세대 무림을 이끌어갈 용봉들을 홀로 박살내버린 너란 존재를 말이야."
"............"
그녀의 말에 선우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라는 존재를 전면에 내보일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독왕으로 위장해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행동에 너무 큰 제약이 걸려버린다.
이름도 알려졌고 얼굴도 알려진 독왕이었기에 말과 행동에 더욱더 조심해야되는 것이다.
하지만 선우라는 새로운 신분이 생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독왕의 신분보다는 더욱더 자유로운 언행이 가능하리라
"그럼 수준은 어느정도면 적당할것 같아?"
선우는 당서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가 전면에 나설 생각이긴 하였지만 무공을 온전히 보여줄 수는 없었다.
안그래도 독왕의 제자라는 부담스러운 칭호때문에 이목이 쏠리는 상황에서 화경에 이른 무공을 선보였다간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초절정 수준정도면 적당할 것 같아."
당서윤 또한 그 사정을 아는지라 그녀가 생각하는 적정한 경지를 넌지시 말하였다.
"너무 강하지 않아?"
선우는 걱정된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선우의 나이가 올해 스물 여덟이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초절정에 이르렀다면 많은 이들이 놀라워하리라
"용봉을 박살 낸 남자가 초절정이 아니라면 그게 더 의심스러울 것 같은데?"
선우의 물음에 당서윤은 가볍게 답하였다.
맞는 말이었다.
비록 선우에게 패배하긴 하였지만 용봉들은 차세대 무림을 이끌어간다고 여겨지는 무림의 동량들이었다.
그런 용봉들을 단숨에 제압한 선우의 실력이 고작 절정 상경이라면 오히려 의심만 받게 될 것이다..
"그건 또 그렇네."
당서윤의 말에 선우는 이내 수긍하였다.
듣다보면 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충원 전력은 나 혼자 뿐이야?"
"아니 당가의 무사들을 몇 명 딸려보낼거야."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선우는 이해가 안된다는듯 당서윤에게 말하였다.
당가 최고 전력인 자신이 가는데 대체 무슨 걱정이란 말인가
"그렇게 해야해, 적어도 당가에서 이번 일에 제대로 나선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말이야."
선우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청성과 아미 그리고 당가가 맺은 사천연맹은 겉으로는 휘황찬란해보이나 속은 부실하기 그지없는 관계였다.
이익을 위해 모였다고는 하지만 급히 모인만큼 신뢰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성과 아미와 당문은 언제나 사천의 패권을 둘러싸고 싸우던 경쟁자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 일에 대한 대처가 중요하였다.
만약 여기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당가는 신뢰를 잃게 될 것이고 연맹은 흔들리게 될 것이다.
"일류급 무사 스무 명 정도면 어느정도 구색이 맞을거야."
"충분하겠어?"
"그정도면 충분해."
선우의 물음에 당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일류급 무인 스무명정도라면 그리 큰 전력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초절정고수인 선우가 있었기에 청성과 아미 또한 납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인원은 대충 정해진 거네?"
"그렇지, 아마 더 추가되거나 줄지는 않을거야."
선우의 물음에 당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일류고수 스무 명은 당가에서 지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였다.
그 이상의 인력 파견은 당가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우리라
"저..기요."
그때였다.
선우의 옆에 있던 옥령이 조심스레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시죠?
"......저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옥령은 민망한듯 얼굴을 붉힌 채 당서윤에게 물었다.
"안돼요."
당서윤은 옥령의 물음에 단호히 거절의 의사를 표하였다.
"어..어째서요!"
옥령은 드물게 언성을 높이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듣기로는 혈검향 선배님께서는 정체를 숨기셔야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물음에 당서윤은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맞..아요."
그녀의 말에 옥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상황에서 청성과 아미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북해로 가는건 너무 무리수아닌가요?"
"제가 은거한지는 벌써 이십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요. 대부분 저에 대해 잊고 있을거예요."
당서윤의 물음에 옥령은 나름의 항의를 하였다.
그녀의 말대로 옥령은 은거한지 이십여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나 노년의 고수들밖에 없을 것이다.
"젊은 이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이가 좀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선배님을 기억할 겁니다."
옥령의 말에 당서윤은 단호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럴리가요! 제가 무림에서 활동한 시기는 고작 일 년정도에 불과해요!"
당서윤의 말에 옥령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녀의 말을 부정하였다.
옥령은 억울하였다.
무림에 출도한 옥령은 당시 최대의 사파방파였던 거악방을 멸문시킨 후 그대로 무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거악방이 멸문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일 년에 불과하였다.
일 년만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홀연히 은거를 택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런 자신을 기억한다니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작 일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들을 해내셨으니까요."
당서윤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선배님은 거악방이라는 거대한 사파세력을 홀로 멸문을 시켰고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하셨어요. "
"저는 그저 부모님의 원수를 갚은 것 뿐이예요! 더구나 거악방같은 사파무리라면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멸문을 시켰을거예요."
"아니요."
옥령의 물음에 당서윤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그녀의 말을 부정을 하였다.
"당시 거악방은 무림에 자리를 잡은 지 사 십년이 넘었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토벌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들과 전쟁을 통해 잃는 것이 두려워서 말이죠."
당서윤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초절정 상경에 이른 고수인 거악방주 주태와 수많은 사파의 고수들을 거느리고 있는 거악방을 누가 감히 건들일 수 있겠어요? "
사실이었다.
당시 무림의 수많은 명문대파들은 거악방을 악으로 규정하며 경멸하였지만 그누구도 선뜻 그들을 토벌하겠다면서 나서는 곳은 없었다.
웬만한 중소문파정도는 찜쩌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력을 소유하고 있던 거악방이었다.
도대체 어떤 이가 문파의 존망을 걸고 그들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볼 수 있었겠는가
그런 명문대파들의 방치 속에 거악방은 무럭무럭 자랐고 이내 웬만한 구파와 버금가는 전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저 껄끄러운 정도에 그쳤던 이들이 두려울 정도로 커버린 것이다.
"그 어떤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양민들이 수탈당하고 괴롭힘 당하였으며 겁간까지 당하는 이가 수두룩했지만 명문대파라 불리우는 이들은 그저 외면하기 일수 였습니다. 그들이 두려웠으니까요. "
당서윤의 눈에서 반짝이는 빛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그때 등장한 것이 혈검향 선배님입니다. 선배님은 홀몸으로 그들에게 전쟁을 선포하였고 수많은 사마외도들을 검 한자루로 모두 토벌하였습니다. 고작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말이지요. "
당서윤은 이제는 아예 동경이 잔뜩 담긴 눈빛으로 옥령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배님이 무림에서 보낸 일 년은 다른 이들이 의미없이 보낸 일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당서윤은 확신에 찬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확신 합니다. 만약 선배님께서 일 년만에 은거를 하지 않으셨다면 여중제일인의 자리는 선배님의 것일 거라고 말입니다."
"아..우우우"
당서윤의 말에 옥령은 부끄러운듯 얼굴을 잔뜩 붉혔다.
왜 자신을 보내주지 않냐며 따질 요량이었건만 뜬금없는 찬사가 쏟아지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때문에 선배님은 갈 수 없습니다."
당서윤은 옥령에게 못박듯이 말하였다.
옥령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