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196.나와 하나가 되어라.
"안돼."
선우는 주소양의 말에 단호히 거절의 의사를 표하였다.
"어째서죠!"
주소양은 반박하듯 선우에게 소리쳤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네 존재는 눈에 너무 띄어"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네 위치를 망각하고 있는 것 아니야? 너는 무림맹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상징이자 천무맹의 안주인이야. 그런 네가 별안간 당가에 와 있겠다고? 사람들이 널 어떻게 볼것 같아?"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필요 없어요! 그저 제가 가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곳에 있을 뿐이에요! 제가 머무르고 싶은 곳은 사랑하는 딸 설아가 있는 곳이고요!"
주소양은 선우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였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는 항상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한 번도 의식한 적 없이 말이다.
"너야 상관없겠지만 당가는 달라. 너와 엮이는 것 자체가 손해밖에 없는 일이고 불필요한 관심만 생긴다고!"
"그게 무슨 말이죠?"
주소양은 모르겠다는 듯 선우에게 물었다.
"지금 이예설은 후계다툼 중인 것 아니였어? 그런데 이예설 뿐만아니라 어미인 너까지 당가에 와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
"모든 이목이 집중 될거야. 당가가 너의 뒤편에 설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선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천무맹은 겉으로 건실한 조직으로 보이나 내부는 후계와 관련된 어마어마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반대 파벌의 힘을 낮추기 위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 물고 늘어졌으며 심하면 칼부림까지 오갔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주소양과 이예설 모두가 당가에 오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수많은 이들이 주소양과 당진설이 손을 잡았다 여길 것이고 그들의 이목이 당가에 집중될 것이다.
이재원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선우의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인 것이다.
"불편한 관심 따위는 사양이야."
선우는 단호한 음색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그치만...그치만.."
선우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그저 앞마디만 반복할 뿐 그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하였다.
선우의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는 정치적인 입장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당가로 감으로써 발생되는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망각해버린 것이다.
"그치만은 없어, 나는 정했고 너는 그 결정에 따라야 해."
선우는 주소양을 바라보며 완전히 못 박아버렸다.
어린애도 아니고 떼를 쓰는 것을 받아줄 의무 따위는 없었다.
통보하고 행할 뿐이었다.
주소양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상황을 마음에 들지 않으나 상황을 뒤집을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우는 그런 주소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주소양같은 미녀가 처연히 눈물을 짓고 있으니 뭔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을 느꼈다.
`찝찝하게.`
선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래도 음양조화기를 순환하며 서로 연결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의 감정에 조금 이입되는 것이 느껴졌다.
"주소양"
선우는 처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소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주소양은 슬픈 음색으로 선우의 물음에 답하였다.
"당가에 오고 싶다면 명분을 만들어라."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명..분이요?"
"그래, 네가 당가에 있어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명분 말이야."
"............"
선우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만약 명분도 없이 당가를 찾는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네에"
주소양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그리고 항상 명심해라. 네 딸이 내 수중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만약 허튼짓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그런짓은 하지 않아요!"
선우의 말에 주소양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 모습에 선우는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 협박이면 그녀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선우는 그녀가 허튼짓을 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미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한 그녀가 어찌 이재원에게 사실을 고하겠는가?
게다가 딸까지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이었다.
딴 마음 따위를 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선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균현에서 사고 쳤던 모든 것들을 수습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당가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리라
******
십만대산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로 험준하기 그지없는 그곳에는 거대한 종교단체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마교라고 불렀다.
천마라는 불리우는 위대한 신인(神人)에 의해 탄생하게 된 마교는 종교로서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지만, 엄연히 무림단체로 구분되는 곳이었다.
과거 황실과 중원 무림에 저항하기 위해 천마에게 무공을 전수받아 강력한 무력단체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천마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그들의 광신적인 면모와 폭발적인 마공의 위력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각인 되었고 중원의 많은 이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였다.
황실과 중원 무림인들을 피해 십만대산으로 숨어든 마교는 극한의 환경에서 필사적인 저항을 이어갔고 결국 황실조차 그들의 토벌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백만대군을 자랑하는 황실조차 마교의 저력을 감당치 못했다고 말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황자들의 황위 다툼이 주요한 이유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혹자는 말한다.
황제를 죽여 황위 다툼을 조장한 것이 마교라고 말이다.
딱히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믿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만큼 마교는 기괴하고 기묘하였으니 말이다.
*************
마교 대전 안
옥좌에는 냉막한 인상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남자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침중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똑 똑
그때였다.
어디선가 그의 귓가를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마여, 소인 마뇌(魔腦)입니다."
"들어오라."
마뇌의 음성에 천마는 그의 출입을 허해주었다.
드르르륵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뇌가 대전 안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마교의 무사 넷이 커다란 관을 든 채로 따라 들어왔다.
쿵
이내 마교의 무사들은 대전 중앙 쪽에 관을 내려놓았다.
"창마(槍魔)의 시체입니다."
마뇌는 관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의 말을 들은 천마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지어졌다.
"잘했다."
그의 말을 들은 마뇌는 꾸벅 인사를 한 후 홀로 대전 밖으로 나가버렸다.
순간 관을 들고 온 마교의 무사들은 어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중간에 알현하다 말고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그것도 자신들을 냅두고 말이다.
그때였다.
쇄애애애액
불길하고 끈적하기 그지없는 기운들이 그들은 물론 관 주위까지 전부 휘감기 시작하였다.
"아..아니!?"
"천..천마시여!""
"이게 대체!?"
그들은 단번에 불길한 기운들이 천마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불신에 가득한 눈으로 천마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나와 하나가 되어라."
천마는 담담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천마의 기운이 그들을 완전히 휘감았다.
"크아아아아아악!!!!!!"
대전 안에 들어온 무사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마뇌가 자신들을 놓고 홀로 나가버린 이유를 말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서렸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대전 안에는 천마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전부 흡수해버린 것이다.
"음양마........"
천마는 조용한 음성으로 깊은 분노를 내보였다.
쩌저저적
그의 발길질을 참지 못한 것인지 대전 바닥이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음양마......!"
쩌저저저저적!
쾅
이내 바닥이 완전히 갈라지더니 이내 양옆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그때였다.
드르르륵
땅이 갈라지는 굉음을 들은 것인지 마뇌가 다급히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
"천..천마여...고정하소서.."
마뇌는 천마를 쳐다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강하더군"
천마는 그런 마뇌를 쳐다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내 팔을 보아라."
천마의 말에 마뇌는 찬찬히 시선을 돌려 그의 팔을 바라보았다.
천마의 팔을 유심히 살펴보니 오른쪽 팔 부근에 헐렁한 옷소매가 펄럭거릴 뿐이었다.
오른팔이 보이지가 않았다.
외팔이가 된 것이다.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인지 회복조차 되지 않더군."
담담히 말하지만, 그의 음색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음양마와 생사결을 벌였던 그였다.
그런데 그와 결투에서 팔을 한쪽 잃고 만 것이다.
게다가 음양마에게 당한 상처는 무슨 조화인지 재생조차 되지 않았다.
완전히 회복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지금껏 수많은 교인들을 흡수하고 먹었다.
하지만 음양마에게 당한 오른팔은 재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음양마가 쓴 술수는 마선(魔仙)에 이르렀다는 천마조차 알 수 없었다.
수백년간 그 누구도 파괴하지 못한 불사의 권능을 파괴하다니 말이다.
"그...그래도...그를 이기지 않으셨습니까?"
천마의 대답에 마뇌는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겨? 그를?"
그 말을 들은 천마는 모르겠다는 듯 그에게 되물었다.
"그걸 이겼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의 입가에는 자조적인 미소가 지어졌다.
천마는 음양마를 이겼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저 또다시 승부를 내지 못한 것일 뿐이었다.
`패배감이 드는군.`
천마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패배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수백년 간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면서 인간의 몸으로는 감히 다다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하던 그였다.
그런 위대한 자신이 뜻대로 하지 못하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바로 음양마였다.
그 또한 이백 년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존재라지만 그의 몇 배가 넘는 긴 세월을 살아온 천마의 입장에서는 패배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천마는 고개를 돌려 오른쪽 팔 부근을 바라보았다.
있어야 할 부분이 텅 비어있었다.
으득
천마는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음양마에 대한 열등감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마뇌여"
천마는 앞에 부복하고 있는 마뇌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더 많은 시체들을 가져오거라, 더 많은 고수들 잡아오거라."
그는 무거운 음색으로 마뇌를 향해 말하였다.
"알..알겠습니다."
위대한 천마의 말에 마뇌는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답을 하였다.
"서두르거라."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천마의 말을 들은 마뇌는 그대로 뒤를 돌아 대전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마뇌가 나간 자리를 비우자 천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회복에 전념하였다.
마뇌가 또 다른 제물을 바쳐올 때까지 말이다.
*********
"하아"
대전 밖으로 나온 마뇌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음양마와 일전을 벌인 이후 천마의 심기가 영 좋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격하게 분노를 터트리지는 않으나 그는 알 수 있었다.
저 차가운 목소리에 내재되있는 열화와 같은 분노를 말이다.
저 분노는 음양마를 찢어죽이지 않는 이상 풀리지 않으리라
`망할 음양마`
마뇌는 속으로 음양마를 향해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그로인해 발생한 피해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교는 음양마라는 존재에 의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위대한 천마는 팔을 잃어버렸으며 마교의 위대함과 웅장함을 보여주었던 높디높은 전각들은 모두 무너져 내려 잔해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과거 황실과 중원 무림의 핍박을 받았을 때도 꿋꿋이 버티던 마교가 음양마라는 괴인의 손에 박살이 난 것이다.
욕짓거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아"
마뇌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심에 잠겼다.
천마에게 바칠 제물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 바쳤던 무인들은 모두 절정에 이른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조차 약하다며 타박을 하지 않았던가
더욱더 강한 자들이 필요하였다.
최소 초절정에 이른 이들로 말이다.
마뇌의 미간에 주름이 더욱 짙어지기 시작하였다.
안 그래도 음양마에 의해 마교 내 고수들이 씨가 마른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얼마 남지도 않은 고수들을 전부 제물로 바쳤다간 중원 침공은 물 건너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고민 되었다.
어떻게 하면 제물로 쓸만한 자들을 구할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납치해야겠군.`
이내 마뇌는 외부에서 납치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천마의 회복을 위해서라지만 교내의 전력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개별적으로 납치하기보단 세력 하나를 한꺼번에 납치하는 게 좋겠군.`
마뇌는 적당히 납치할만한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단체로 납치하고도 뒷탈이 없으려면 중원 무림의 비호를 받지 않는 자들이어야 했다.
중원 무림의 보호를 받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강자들을 말이다.
`흐음`
마뇌는 한참을 고심하였다.
번뜩
그리고 이내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마침 조건에 딱 맞는 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생각을 마친 마뇌는 걸음을 더욱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천마에게 바칠 제물 생각뿐이었다.